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21.토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에페4,1-7.11-13 마태9,9-13
“나를 따라라”
-중심, 방향, 일치의 공동체-
저는 언제나 기상하면 만세칠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집무실의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 가장 좋은 기도, 만세칠창을 작년 8월15일 광복절이후 시작했으니
1년이 훨씬 넘었고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성 요셉 수도원 만세!”
만세칠창후 인터넷 뉴스를 읽으며 세상을 들여다 본후 교황님 홈페이지를 통해 가르침을 배웁니다.
국제 가톨릭 학생 모임의 회원들을 만나 주신 말씀이 그대로 우리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여정중에 있는 순례자들로서 주 예수님과의 더욱 깊은 일치에로 불림받고 있다.”
오늘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도 성 마태오가 주님께 불림받고 있는 장면이 잘 드러납니다.
당대 세리라 하면 죄인처럼 사람 취급 못받는 아주 무시당하던 신분이었습니다.
바로 세관에 앉아 있던 세리 마태오가 그런 신원의 사람이었습니다.
앞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후 길을 가시던 길이신 주님께서 세관에 앉아있는 갈망의 사람,
마태오를 첫눈에 알아보신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바, 그의 과거나 신분이 아닌 그의 내면의 당신을 찾는 순수와 열정, 갈망입니다.
참으로 주님과 마태오의 운명적, 축복의 만남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고정관념이 없고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는, 참으로 자유로운 분이셨고 실상의 본질을 직시하신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주님을 찾는 갈망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주님의 부르심에 마태오는 즉시 일어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님을 따릅니다.
다른 제자들처럼 모두를 버리고 주님을 따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은총의 섭리입니다.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만약 세리 마태오가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을 따르지 않았다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런지요?
한두번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날마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여정중에 있는 당대 제자들이요 우리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버림의 여정’이자 ‘따름의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비로소 삶의 목표와 방향을 찾았고, 삶의 중심과 의미를 찾은 마태오이듯이
우리 또한 그러합니다.
또 주님께 부름 받은 세리 마태오는 “혼자”의 삶에서 “더불어”의 제자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듯이
우리 또한 주님께 불림 받아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오를 포함한 당신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자 제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바리사이와
주고 받은 대화가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당신네 제자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참으로 바리사이의 무지를 반영합니다.
사람 눈에 세리와 죄인이지 주님 눈에는 모두가 평등한 인간이요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일뿐임을
까맣게 모른 무지한 바리사이였습니다.
주님의 대답이 복음중의 복음이요 참 명쾌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며 제자들의 공동체의 성격이 환히 드러납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의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우리가 건강하고 의인이라 부른 것이 아니라 병자요 죄인이라 불림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병없고 죄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말그대로 치유받은 병자들의 공동체이자 용서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공동체요,
자비로운 목자이자 의사이신 주님은 우리를 부단히 용서하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이를 깨달을 때 저절로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대신한 바오로의 말씀이 그대로 교회공동체에 불림받은 우리를 향한 말씀같습니다.
길다 싶지만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내용이라 전문을 인용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하십시오.”
말그대로 주님을 닮은 사랑의 일치입니다. 획일적 일치가 아니라 한분이신 주님을 중심으로 한
다양성의 일치요 상호보완의 조화의 일치입니다.
바오로가 강조하는 중심의 “하나”가 일치의 원천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분이시고, 주님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서로 좋아서 일치가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중심 방향이 같아서 일치입니다.
그러니 서로 맞추려 하기 보다는 중심의 주님께 부단히 맞춰가며 각자의 책무에 충실할 때
저절로 다양성과 조화의 일치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바로 이런 아름답고 성숙된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 궁극의 희망이자 목표이며,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 사랑의 ‘일치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교황님은 “미사는 하늘을 향한 고속도로다(Eucharist is the highway to Heaven)”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