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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무붕(小人無朋)
소인들은 당(黨)이 없다
小 : 작을 소(小/0)
人 : 사람 인(人/0)
無 : 없을 무(灬/8)
朋 : 무리 붕(月/4)
공자(孔子)의 언행록인 논어(論語)에 “군자는 화합은 하지만 한 통속은 되지 않고 소인은 한 통속은 되지만 화합은 하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의리(義理)에 입각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꼭 상호간에 남의 비위를 맞추어가면서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 소인들은 모이는 목적이 이익에 있다.
그러나 이익을 추구할 때는 화합이 되는 듯해도 마음 속으로 각자의 계산이 다르기 때문에 화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소인들 만명이 모이면 마음은 만 가지가 된다. 군자가 지향하는 의리는 공정한 것이고 당당한 것이고 떳떳한 것이지만 소인이 추구하는 이익은 사사로운 것이고 부정한 것이고 구차한 것이다. 의리를 지향하는 군자들는 의견이 달라도 서로 존경하지만 이익만을 추구하는 소인들은 한 단체 속에 속해 있다해도 사실은 서로가 서로의 적(敵)인 것이다.
이런 속성상 군자는 단합이 되지만 소인은 끝없이 분열한다. 소인들이 어떤 이익을 위해서 공동보조를 취하여 그 이익을 자기들이 차지했을 때 잠시 화합이 되는 듯하지만 곧 바로 그 이익을 자기가 독점하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또 적을 만들어 일부를 잘라내어야 하기 때문에 또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끝없는 투쟁을 하다보면 결국 그 이익을 자기 혼자 차지할 때까지 싸워야 한다.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해치고 괴롭혀야 한다. 마침내 이익을 자기 혼자 차지한다 해도 천하 사람들을 자기의 적으로 만든 마당에 그 이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하의 소인들이 자기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자긴들온전히 버틸 수 있겠는가?
소인은 먼저 남을 망치고 결국은 자기를 망치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자기가 남에게 손해를 보이면 손해를 본 그 사람도 자기를 손해 보이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손으로 자기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송(宋)나라의 대문장가 구양수(歐陽脩)는 붕당론(朋黨論)이란 글을 지어 소인의 심리를 군자와 비교하여 명쾌하게 밝혔다.
붕당론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신(臣)이 생각컨대 ‘소인들은 당(黨)이 없고 오직 군자들만이 당이 있습니다.’ 그 까닭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소인들이 좋아하는 것은 이익과 녹봉(祿俸: 월급)입니다. 그들이 탐내는 것은 재물입니다. 다 함께 이익을 얻겠다 싶을 때는 잠시 서로 어울려서 당이 되지만 그 것은 위선(僞善)입니다. 이익을 보게 되면 앞을 다투어 나가다가 이익이 다 끝나면 관계가 멀어지고 도리어 서로 해치게 됩니다. 비록 형제나 친척이라도 관계를 서로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臣)은 소인들은 당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당이 되는 것은 위선일 뿐입니다. 군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키는 것은 도의(道義)이고 행하는 것은 충성과 신의이고 아끼는 것은 명예와 절개입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자신을 수양하기에 군자들끼리는 서로 도(道)를 같이 하면서 서로 도움을 줍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나라를 섬기기에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시종 한결 같으니 이것이 바로 군자들의 당입니다.”
然臣謂小人無朋, 惟君子則有之, 其故何哉? 小人所好者利祿也, 所貪者財貨也, 當其同利之時, 暫相黨引以爲朋者, 僞也. 及其見利而爭先, 或利盡而交疏, 甚者反相賊害, 雖其兄弟親戚, 不能相保. 故臣謂小人無朋, 其暫爲朋者, 僞也.
君子則不然, 所守者道義, 所行者忠信, 所惜者名節. 以之修身, 則同道而相益; 以之事國, 則同心而共濟, 終始如一, 此君子之朋也.
구양수의 이 글은 마치 지금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사람들을 위해서 천년 전에 미리 준비해 둔 것 같다. 어떻게 이들의 심리를 이렇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까? 천년 전의 소인들이나 지금의 소인들이나 심리상태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리라.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자기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고생한 민주당을 배반하고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 자체가 배신행위이다. 설령 대통령이 그런 발상을 한다고 해도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 가운데 사람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러면 안 됩니다”라고 바른 길을 일러 주어야 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따라가면 장관 자리, 국영기업체 사장 자리 등등 갖가지 이익이 생길 가능성이 있으니까 대부분이 다 따라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통령이 당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런 이익이 안 되니까 “당을 떠나라”. “신당을 창당한다” 등등의 소리를 당에서 막 하는 것이다.
이익거리가 없는 곳에 소인들이 남아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정당 보조금이라든지 비례대표 출신 의원들의 자리 문제 때문에 당을 떠나고 싶어도 섣불리 당을 떠나지 못하고 서로 상대방 보고 나가라고 한다. 앞으로 분열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런 판국이니 국가의 장래와 백성들의 생활은 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우리 나라에 언제 군자들이 모인 정당 같은 정당이 출현할 수 있을는지?
군자의 붕당과 소인의 붕당
붕당론(朋黨論) / 구양수(歐陽脩)
1. 군자의 붕당과 소인의 붕당 차이점
군자의 붕당과 소인이 붕당의 본질적인 차이
臣聞朋黨之說, 自古有之, 惟幸人君, 辨其君子小人而已.
제가 들어보니 붕당에 대한 논설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오직 다행히 임금만이 군자와 소인을 분별할 따름입니다.
大凡君子與君子, 以同道爲朋, 小人與小人, 以同利爲朋, 此自然之理也.
대저 군자와 군자는 같은 도로 벗이 되고, 소인과 소인은 같은 이익으로 벗이 되는 것이 자연한 아치라고 합니다.
소인의 붕당은 있을 수 없다
然臣謂小人無朋, 惟君子則有之, 其故何哉?
그러나 저는 소인은 붕당이 없고, 오직 군자만이 붕당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小人所好者利祿也, 所貪者財貨也, 當其同利之時, 暫相黨引以爲朋者, 僞也.
소인은 좋아하는 것이 이익과 봉록이고, 탐내는 것이 재화이기에, 같은 이익을 맞닥뜨렸을 때에 잠시 서로의 당으로 끌어들여 붕당이 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及其見利而爭先, 或利盡而交疏, 甚者反相賊害, 雖其兄弟親戚, 不能相保.
이익을 봄에 미쳐서 앞을 다투고 혹 이익이 다하면 사귐이 소원해지고, 심지어는 도리어 서로 해쳐 비록 형제와 친척이더라도, 서로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故臣謂小人無朋, 其暫爲朋者, 僞也.
그러므로 저는 소인은 붕당이 없고, 잠시라도 붕당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자 붕당의 특징
君子則不然, 所守者道義, 所行者忠信, 所惜者名節.
군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키는 것은 도의(道義)이고, 행하는 것은 충신(忠信)이며, 아끼는 것은 명예와 절개입니다.
以之修身, 則同道而相益; 以之事國, 則同心而共濟, 終始如一, 此君子之朋也.
그것으로 수신하면 같은 도가 더욱 유익해지고, 그것으로 나라를 섬기면 같은 마음이 함께 구제되어, 시종일관 그러하니, 이것이 군자의 붕당입니다.
故爲人君者, 但當退小人之僞朋, 用君子之眞朋, 則天下治矣.
그러므로 임금이 된 사람은 다만 마땅히 소인의 거짓된 붕당은 물리치고, 군자의 진짜 붕당을 사용하여 천하를 다스려야 합니다.
2. 과거의 붕당을 거울 삼아 군자의 붕당을 만들도록 하라
붕당의 성격에 따른 흥망성쇠
堯之時, 小人共工, 驩兜等四人, 爲一朋; 君子八元八愷十六人, 爲一朋.
요임금의 때에 소인인 공공과 환두 등 네 사람이 하나의 붕당이 되었고, 군자는 여덟 명의 선한 사람과 여덟 명의 훌륭한 사람, 즉 16명이 하나의 붕당이 되었습니다.
舜佐堯, 退四凶小人之朋而進元愷君子之朋, 堯之天下大治.
순이 요임금을 보좌하여 사흉(四凶)과 소인의 붕당을 물리치고 훌륭한 군자들의 붕당을 진출시키니, 요임금의 천하는 크게 다스려졌습니다.
及舜自爲天子, 而皐 夔 稷 契等二十二人, 幷列于朝, 更相稱美, 更相推讓, 凡二十二人, 爲一朋.
순임금이 스스로 천자가 되심에 미쳐서, 고요, 기, 후직, 설 등 22명이 조정에 아울러 나열하여 서서, 번갈아가며 서로의 아름다움을 칭찬해주고 번갈아가며 서로 추대하고 사양함으로, 무릇 22명이 하나의 붕당이 되었습니다.
而舜皆用之, 天下亦大治.
순임금이 모두 등용하시니 천하가 또한 크게 다스려졌습니다.
書曰: 紂有臣億萬, 惟億萬心, 周有臣三千, 惟一心.
서경에 “주임금은 신하가 억만 명이 있는데 오직 억만 마음이고, 주 무왕의 신하는 3000명이지만 오직 한 마음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紂之時, 億萬人各異心, 可謂不爲朋矣.
주임금 때에 억만 사람이 각각 다른 마음이니 붕당이 될 수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然紂以此亡國.
그래서 주임금은 이것 때문에 나라를 망하게 됐습니다.
周武王之臣, 三千人爲一大朋, 而周用以興.
주나라 무왕의 신하는 3000명으로 하나의 큰 붕당이 되었고, 주나라가 그들을 등용하여 흥하였습니다.
後漢獻帝時, 盡取天下名士, 囚禁之, 目爲黨人.
후한 헌제 때에 천하의 명사들을 모두 취하여, 그들을 가두었고 당인으로 지목했습니다.
及黃巾賊起, 漢室大亂, 後方悔悟, 盡解黨人而釋之, 然已無救矣.
황건적이 일어남에 이르러 한나라 왕실이 크게 혼란스러워진 뒤에야, 후회했고 모든 당인을 풀어 석방시켜줬지만 이미 구제할 수 없었습니다.
唐之晩年, 漸起朋黨之論.
당나라 말기에 점점 붕당의 의론이 일어났습니다.
及昭宗時, 盡殺朝之名士, 或投之黃河, 曰: 此輩淸流, 可投濁流. 而唐遂亡矣.
소종 때에 이르러 다 조정의 이름난 선비들을 죽여 혹은 황하에 던졌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이 무리들은 맑은 녀석들이니, 흐린 강물에 던질 만하겠구나.” 당나라는 마침내 망했습니다.
과거 붕당의 흥망성세를 거울 삼아라
夫前世之主, 能使人人異心, 不爲朋莫如紂.
전대의 임금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다르게 하여, 붕당이 되지 못하게 한 건 주왕과 같은 이가 없습니다.
能禁絶善人爲朋, 莫如漢獻帝.
착한 사람을 가둬둠으로 붕당이 되는 것을 가두어 끊은 건 한나라 헌제와 같은 이가 없습니다.
能誅戮淸流之朋, 莫如唐昭宗之世, 然皆亂亡其國.
청류의 붕당을 죽인 건 당나라 소종의 시대만한 게 없으니, 모두 그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망하게 했습니다.
更相稱美推讓而不自疑, 莫如舜之二十二人, 舜亦不疑而皆用之.
번갈아 서로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추대하며 사양하되 서로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순임금의 22명 같은 이가 없으니, 순임금은 또한 의심하지 않고 모두 등용했습니다.
然而後世, 不誚舜爲二十二人朋黨所欺, 而稱舜爲聰明之聖者, 以其能辨君子與小人也.
그러나 후세에 순임금이 22명의 붕당에게 속임 당했다고 꾸짖지 않고, 순임금이 총명한 성인이었다고 칭찬하는 것은, 군자와 소인을 분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周武之世, 擧其國之臣三千人, 共爲一朋, 自古爲朋之多且大, 莫如周.
주나라 무왕의 시대에 나라의 신하 3000명을 천거하여, 함께 하나의 붕당을 삼았으니, 예로부터 붕당이 된 것 중에 많고도 거대한 것은 주나라와 같은 것이 없습니다.
然周用此以興者, 善人雖多而不厭也.
그러나 주나라가 이들을 등용하여 흥하게 된 것은, 선인은 비록 많더라도 싫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夫興亡治亂之迹, 爲人君者, 可以鑑矣.
대저 흥하고 망하고 다스려지고 혼란스러워진 자취를, 임금이 된 사람이라면 거울삼을 만합니다.
붕당과 당쟁
당쟁하면 조선의 사색당쟁을 떠올리곤 한다. 허나 당쟁이 조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젠 진부하기조차 하지만, 사람은 본시 짝짓고 무리지음으로써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어쩌면 ‘자연적’ 사람이 ‘사회적’ 사람으로 거듭나는 그 시점부터 당쟁이 함께 있었다는 진술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른다.
중국의 역사에도 굵직굵직한 당쟁이 여러 차례 보인다. 그 중 비교적 이른 것으로 당말(唐末)에 있었던 '우이당쟁(牛李黨爭)'을 들 수 있다. 우승유(牛僧儒), 이종민(李宗閔) 등을 영수로 하는 '우당(牛黨)'과 이덕유(李德裕), 정담(鄭覃) 등을 영수로 하는 '이당(李黨)' 사이에 약 40여 년 간 벌어졌던 당쟁으로, 붕당정치와 당쟁의 대명사처럼 인용되곤 한다.
물론 그 훨씬 이전에도 붕당 짓기와 붕당간의 다툼이 있었음은 사실이다. 공자와 그의 제자 삼천 명이 하나의 붕당으로 규정된 적도 있을 만큼, 역사 기록이 본격화된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수많은 당파와 당쟁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우이당쟁이 주목받는 것은 아무래도 그것이 과거제라는 새로운 관료임용제도가 정착되는 시점에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대대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인 듯싶다. 이후 중국 사회가 과거제를 기축으로 운영됐음을 감안해보건대, 우이당쟁은 이후 전개된 관료집단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던 듯하다.
구양수의 '붕당론' 역시 이런 역사적 경험을 배경에 깔고 있다. 약 40여 년 간 지속된 당쟁으로 관료집단 전체가 받은 타격은 작지 않았다. 더군다나 안사(安史)의 난으로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당 조정으로서는 관료집단 내부의 대대적인 당쟁을 제압할 능력도 조정할 능력도 없었을 것이다.
붕당을 짓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붕당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관료들에게 일종의 금기가 되었다. 급기야 당말에 들어서는 절도사 주전충(朱全忠)은 청렴과 절개의 상징이었던 '청류파' 선비들을 학살하고 나서는 '붕당을 지었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이제 누가 어떤 동기로 무엇을 위해 붕당을 지었는지는 도무지 중요치 않게 되었다. 그저 붕당을 지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아침에 불귀의 객이 될 수 있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벗은 선하기 마련
구양수(歐陽脩)가 간관(諫官)이었던 시절, 그는 강직한 선비 범중엄(范仲淹)이 귀양가게 되자 서슴치 않고 간언을 올려 범중엄을 변호한다. 이에 반대파들은 구양수(歐陽脩)와 범중엄(范仲淹) 등이 작당하였다며 구양수를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구양수는 이에 굴하지 않고 붕당 짓는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선다.
그 방식은 이러했다. 우선 그는 붕당에 관련된 논의가 태고적부터 있어왔음을 지적한다. 이는 사람이 사회를 이루는 순간부터 '무리짓기'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동반자임에 대한 환기이다.
사람인 이상 무리지을 수밖에 없는 만큼, 우리가 살펴야 할 대목은 어떤 유형의 인간들이 무엇을 위해 지은 무리인가라는 것이다. 곧 선한 이들로 구성된 붕당이 있는가 하면 모리배들로 이뤄진 붕당도 있음이니, 모름지기 임금된 자가 이를 잘 구별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라고 한다.
일단 상대의 아픈 곳을 모르는 듯 건드린 다음에 조리를 갖춰 얘기하면 상대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게 된다. 구양수 역시 은근히 그러나 드러내놓고 임금을 한 차례 압박한 다음 이치를 갖춰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는 붕당은 그 본질이 선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소인배들이 이익을 매개로 잠시 뭉쳤다 흩어지는 것은 붕당이 아니지만, 본인들이 붕당이라 우기고 사람들도 그리 생각하는 바람에 소인배들의 모임도 붕당이라 칭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여 그는 어쩔 수 없이 거짓된 붕당(위붕/僞朋), 참된 붕당(진명/眞朋)이란 표현으로 소인배들의 붕당과 군자의 붕당을 구분한다.
다음으로 그는 '거짓된 붕당' 곧 소인배들의 붕당에서 방점을 찍어야 할 곳은 붕당이 아니라 '소인배'임을 주장한다. 보다 산뜻한 이해를 위해 그는 역사에서 유사한 사례를 끌어온다. 위로는 요(堯), 순(舜)부터 아래로는 직전 황조(皇朝)인 당 소종(昭宗)의 예까지 온 역사가 통째로 구양수(歐陽脩)의 논거로 활용된다.
그는 요(堯)와 순(舜)이 태평성대를 일굴 수 있었던 것은 소인배들을 내치고 선한 이들을 중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며, 주나라 역시 무왕이 한 마음을 지녔던 선한 이들을 대거 등용하였기에 천자의 나라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堯)나 순(舜) 그리고 주 무왕이 등용한 선한 이들은 당시의 통념으로 보건대 붕당임이 분명하다. 붕당정치를 했는데 태평성대를 일구었다.
당시 분위기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진술이었다. 또 폭정을 일삼았던 은의 주왕은 온 나라 사람의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놓아 어떠한 붕당도 있을 수 없게 했지만, 은은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붕당정치를 타파했는데도 결국 망했다. 역시 당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진술이었다.
붕당정치를 한 요와 순, 주 무왕은 태평성대를 일구었고, 그것을 타파한 은 주왕은 폭군이 됐다는 역설의 제시. 구양수는 성군의 대명사인 요, 순, 무왕과 붕당에 대한 당시의 통념을 한 지평에 나란히 놓음으로써, 붕당에 대한 세인들의 통념이 잘못됐음을 명쾌하게 드러낸다. 장자(莊子)가 잘 썼던 역설의 변증방식으로 기존 통념의 근거 없음을 통렬하게 설파한 것이다.
이로써 붕당의 결성 그 자체에는 아무런 죄가 없음이 증명된다. 태생이 선한지라 붕당을 지었다는 것이 오히려 그 구성원들의 선을 입증해줄 수 있게까지 된다. 문제는 붕당의 외피를 쓴 소인배들의 작당(作黨)과의 구별이다. 차라리 어리석은 자와 달리 소인배는 간특함을 꾀하고 실행에 옮길 만한 재주와 용기를 지니고 있기에, 자신들을 선한 이들로 충분히 위장할 수 있다.
역사는 이렇게 말해준다. 소인배들이 현실적인 권력을 장악할 경우, 이들은 선한 이들에 대한 집요한 공격을 통해 자신들의 결점을 가리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고. 따라서 문제의 관건은 위선과 선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의 구비에 있게 된다. 구양수가 임금된 자는 모름지기 흥망성쇠의 자취를 역사에서 찾아 귀감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고 재차 임금을 압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붕당 그 자체를 죄악시하는 근거 없음에서 탈피하여, 누가 왜 붕당을 조성하였는가를 살피는 쪽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조정은 선한 이로 채워질 것이요 그 당연한 귀결로 천하가 태평케 된다는 것이다.
정명(正名)의 험난함
구양수(歐陽脩)는 협상의 달인이었을 듯하다. 그는 붕(朋자에 대한 개념 분석을 통해 거짓된 붕당이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는 것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소인배들의 작당(作黨)조차 붕당이라 이름하는 현실을 수용한다. 물론 그것을 ‘거짓된 붕당’이라 부름으로써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효과를 자아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대신 그는 학리(學理) 면에서 한 발 양보한다. 모리배들에게 애초부터 벗이 있을 수 없다면, 그들의 모임은 응당 붕(朋)자가 아닌 다른 글자로 지칭했어야 논리적으로 맞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붕(朋)자를 사용한다.
소인배들의 개전의 가능성을 믿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들이 지닌 현실적인 정치경제적 역량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였을까? 어느 경우든 그는 소인들의 작당(作黨)에 대해 학술적인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았다.
공자(孔子)는 그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재상을 시켜주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하겠냐는 제자 자로(子路)의 물음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명분을 바로잡는 것', 정명(正名)이라고 답한다. 솔직 단순한 자로(子路) 역시 지체치 않고 “선생님도 참 현실에 너무 어두우십니다 그려.”라고 응수한다.
그러고는 바로 혼난다. “자로야! 넌 너무 다듬어지지 않았구나! 명분이 바로서야 예측 가능한 사회가 되고, 그럴 때만이 백성들은 생업에 편안히 종사할 수 있게 된다.”
예측 가능한 사회의 창출이라, 공자는 이를 위해 "학인들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만을 명분으로 세우며,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君子名之必可言也/군자명지필가언야), 言之必可行也/언지필가행야)"고 말한다.
학인(學人)이 권력의 중추를 이루던 시절, 학인들의 하는 말과 그들이 제시하는 방향이 명료하고 투명할 때 사회는 비로소 예측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학인(學人)들이 자신의 말에 대하여 구차하게 변명해서는 안 되는 것(君子於其言, 無所苟已矣)'도 권력을 쥔 자들의 한 마디가 백성의 실존을 처참하게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자였다면 소인배들의 작당을 붕당이라 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사회를 예측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요 백성들을 혼란케 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는 대상이 된다. 하나 구양수는 ‘거짓된 붕당’이라 지칭하는 선에서 멈춘다. 그것만으로도 소기했던 바의 정치적 효과를 분명하게 얻을 수 있었음이다.
자기를 정당화하는 방식의 하나는 적극적으로 타인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이다. 자기 안에 자기 정당화의 합리적인 근거가 없을 때 주로 쓰이는 이 방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쓰여왔다.
저 옛날 사방의 소수민족을 오랑캐라 이름함으로써 자신들을 우월한 문명이라 주장했던 중화주의가 그러하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패권주의가 그러하다.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선거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인배들도 주로 이 방식을 사용한다. 특히 상대방에게서 자기 안의 부정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를 집요하게 몰아붙인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에는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구양수를 몰아붙인 자들 역시 그러했다.
자신들이 작당하여 선한 이를 내쳤음에도 그들은 구양수더러 작당했다고 몰아붙인다. 선한 이름이 악한 세력에게 도용된 것이다. 붕당은 애초부터 선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악한 이에 의해 선점 당하자 도리어 선한 이를 옥죄는 무기가 된다.
이름을 장악한 자, 명분을 쥔 자. 그 획득의 과정이 정당했는가는 잘 드러나지도 않고 또 쉬이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늘 그랬듯이 현실은 드러난 결과가 보다 결정적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도둑맞은 이름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자로의 말처럼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그래서 결코 이룰 수 없는 바램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구양수의 태도가 현실적이면서도 도덕적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방식일 수 있다. 붕당이라는 이름이 소인배에 의해 도둑맞은 현실을 고발하는 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마는 것. 상대에 대한 학리적인 사형선고는 자제하는 것. 설사 '정명'이 이상이라 할지라도, 이름이 도둑맞았음을 그래서 명분이 오염됐음을 떳떳하게 고발하는 것이 그것의 첫 걸음이 될 지도 모른다.
▶️ 小(작을 소)는 ❶회의문자로 한 가운데의 갈고리 궐(亅; 갈고리)部와 나눔을 나타내는 八(팔)을 합(合)하여 물건을 작게 나누다의 뜻을 가진다. 小(소)는 작다와 적다의 두 가지 뜻을 나타냈으나, 나중에 小(소; 작다)와 少(소; 적다)를 구별하여 쓴다. ❷상형문자로 小자는 '작다'나 '어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小자는 작은 파편이 튀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작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고대에는 小자나 少(적을 소)자의 구분이 없었다. 少자도 작은 파편이 튀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小자는 '작다'로 少자는 '적다'로 뜻이 분리되었다. 그래서 小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작은 것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지만 때로는 모양자 역할만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小(소)는 크기에 따라 대(大), 중(中), 소(小)로 나눌 경우의 제일(第一) 작은 것의 뜻으로 ①작다 ②적다 ③협소하다, 좁다 ④적다고 여기다, 가볍게 여기다 ⑤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주의하다 ⑥어리다, 젊다 ⑦시간상으로 짧다 ⑧지위가 낮다 ⑨소인(小人) ⑩첩(妾) ⑪작은 달, 음력(陰曆)에서 그 달이 날수가 30일이 못 되는 달 ⑫겸양(謙讓)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 ⑬조금, 적게 ⑭작은, 조그마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미(微), 가늘 세(細), 가늘 섬(纖),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대(大), 클 거(巨)이다. 용례로는 적게 오는 눈을 소설(小雪), 일의 범위가 매우 작음을 소규모(小規模), 작은 수나 얼마 되지 않는 수를 소수(小數), 나이 어린 사람을 소인(小人), 어린 아이를 소아(小兒),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작은 규격이나 규모를 소형(小型), 자그마하게 포장한 물건을 소포(小包), 줄여서 작아짐 또는 작게 함을 축소(縮小), 가장 작음을 최소(最小), 공간이 어떤 일을 하기에 좁고 작음을 협소(狹小), 키나 체구가 보통의 경우보다 작음을 왜소(矮小), 아주 매우 작음을 극소(極小), 약하고 작음을 약소(弱小), 너무 작음을 과소(過小), 매우 가볍고 작음을 경소(輕小), 보잘것없이 작음을 비소(卑小),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어 언행을 삼감을 소심근신(小心謹愼), 작은 것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음을 일컫는 말을 소탐대실(小貪大失), 혈기에서 오는 소인의 용기를 일컫는 말을 소인지용(小人之勇),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가 그린 이상 사회 이상 국가를 이르는 말을 소국과민(小國寡民), 큰 차이 없이 거의 같음을 일컫는 말을 소이대동(小異大同), 어진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면 소인들은 겉모양만이라도 고쳐 불의한 것을 함부로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소인혁면(小人革面),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어 언행을 삼감을 일컫는 말을 소심근신(小心謹愼), 세심하고 조심성이 많다는 뜻으로 마음이 작고 약하여 작은 일에도 겁을 내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소심익익(小心翼翼), 조그마한 틈으로 물이 새어들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을 게을리하면 큰 재앙이 닥치게 됨을 비유하는 말을 소극침주(小隙沈舟), 얼마 안 되는 작은 물 속에 사는 물고기라는 뜻으로 죽음이 눈앞에 닥쳤음을 이르는 말을 소수지어(小水之魚) 등에 쓰인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널리 세상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됨을 일컫는 말을 인구회자(人口膾炙), 인간 생활에 있어서 겪는 중대한 일을 이르는 말을 인륜대사(人倫大事), 사람은 죽고 집은 결딴남 아주 망해 버림을 이르는 말을 인망가폐(人亡家廢),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나 오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양을 이르는 말을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른 것은 얼굴 모양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인심여면(人心如面), 여러 사람 중에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인중사자(人中獅子),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인중지말(人中之末),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사람은 곤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은 궁해지면 부모를 생각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반본(人窮反本),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인비인(人非人),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사람의 근본은 부지런함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재근(人生在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아주 못된 사람의 씨알머리라는 뜻으로 태도나 행실이 사람답지 아니하고 막된 사람을 욕하는 말을 인종지말(人種之末), 남이 굶주리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과 같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인기기기(人飢己飢), 인마의 왕래가 빈번하여 잇닿았다는 뜻으로 번화한 도시를 이르는 말을 인마낙역(人馬絡繹),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은혜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을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은 모두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목석과 같이 무정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인비목석(人非木石),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인사불성(人事不省) 등에 쓰인다.
▶️ 無(없을 무)는 ❶회의문자로 커다란 수풀(부수를 제외한 글자)에 불(火)이 나서 다 타 없어진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없다를 뜻한다. 유무(有無)의 無(무)는 없다를 나타내는 옛 글자이다. 먼 옛날엔 有(유)와 無(무)를 又(우)와 亡(망)과 같이 썼다. 음(音)이 같은 舞(무)와 결합하여 복잡한 글자 모양으로 쓰였다가 쓰기 쉽게 한 것이 지금의 無(무)가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無자는 ‘없다’나 ‘아니다’, ‘~하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無자는 火(불 화)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無자를 보면 양팔에 깃털을 들고 춤추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당이나 제사장이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춤추다’가 본래의 의미였다. 후에 無자가 ‘없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 되면서 후에 여기에 舛(어그러질 천)자를 더한 舞자가 '춤추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無(무)는 일반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곧 유(有)를 부정(否定)하는 말로 (1)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공허(空虛)한 것. 내용이 없는 것 (2)단견(斷見) (3)일정한 것이 없는 것. 곧 특정한 존재의 결여(缺如). 유(有)의 부정. 여하(如何)한 유(有)도 아닌 것. 존재 일반의 결여. 곧 일체 유(有)의 부정. 유(有)와 대립하는 상대적인 뜻에서의 무(無)가 아니고 유무(有無)의 대립을 끊고, 오히려 유(有) 그 자체도 성립시키고 있는 듯한 근원적, 절대적, 창조적인 것 (4)중국 철학 용어 특히 도가(道家)의 근본적 개념. 노자(老子)에 있어서는 도(道)를 뜻하며, 존재론적 시원(始原)인 동시에 규범적 근원임.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실재이므로 무(無)라 이름. 도(道)를 체득한 자로서의 성인(聖人)은 무지(無智)이며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임 (5)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없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없다 ②아니다(=非) ③아니하다(=不) ④말다, 금지하다 ⑤~하지 않다 ⑥따지지 아니하다 ⑦~아니 하겠느냐? ⑧무시하다, 업신여기다 ⑨~에 관계없이 ⑩~를 막론하고 ⑪~하든 간에 ⑫비록, 비록 ~하더라도 ⑬차라리 ⑭발어사(發語辭) ⑮허무(虛無) ⑯주검을 덮는 덮개 ⑰무려(無慮), 대강(大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그 위에 더할 수 없이 높고 좋음을 무상(無上), 하는 일에 막힘이 없이 순탄함을 무애(無㝵), 아무 일도 없음을 무사(無事), 다시 없음 또는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사람이 없음을 무인(無人), 임자가 없음을 무주(無主), 일정한 지위나 직위가 없음을 무위(無位), 다른 까닭이 아니거나 없음을 무타(無他), 쉬는 날이 없음을 무휴(無休),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이 거저임을 무상(無償), 힘이 없음을 무력(無力), 이름이 없음을 무명(無名), 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물건을 무지(無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음을 무자(無子), 형상이나 형체가 없음을 무형(無形),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하는 것이 없음을 무념(無念), 부끄러움이 없음을 무치(無恥),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무리(無理),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함을 무사분주(無事奔走), 한울님은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슨 일에나 함부로 다 참여함을 무사불참(無事不參), 즐거움과 편안함에 머물러서 더 뜻 있는 일을 망각한다는 무사안일(無事安逸), 아무 탈없이 편안함을 무사태평(無事泰平), 재미나 취미나 없고 메마르다는 무미건조(無味乾燥) 등에 쓰인다.
▶️ 朋(벗 붕)은 ❶상형문자로 고대(古代)에 보배로운 재물(財物)로 삼은 조개를 한 쌍으로 나란히 늘어뜨린 모양을 본떴다. 나란히 계속되는 데서 벗 또는 한패의 뜻으로 되었다. 자패(紫貝) 다섯 개를 끈에 꿴 것의 한 쌍 즉, 열 개의 조개를 일붕(一朋)이라고 한다. ❷상형문자로 朋자는 '친구'나 '무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朋자는 두 개의 月(달 월)자를 나란히 그린 것이지만 사실 ‘달’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朋자의 갑골문을 보면 조개를 엮어 양 갈래로 늘어트린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돈뭉치'를 표현한 것이다. 상(商)나라 때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인들은 귀한 '마노 조개'를 화폐 대용으로 썼었다. 그래서 朋자는 화폐를 묶어 놓았다는 의미에서 '돈뭉치'를 뜻했었다. 하지만 금속화폐가 등장하면서부터는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되어 '벗'이나 '친구'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조개가 서로 연결된 모습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벗'을 연상시켰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朋(붕)은 ①벗, 친구(親舊) ②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③짝, 같은 부류(部類), 패 ④마을 ⑤두 동이(분량을 세는 단위) ⑥화폐(貨幣) 단위(單位) ⑦떼를 짓다, 무리를 이루다 ⑧같다, 같게 하다 ⑨무너지다(=崩)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벗 우(友)이다. 용례로는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우(朋友),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벗을 달리 이르는 말을 붕집(朋執), 이해나 주의 따위를 함께 하는 사람끼리 뭉친 동아리를 붕당(朋黨), 나이나 신분이 비슷한 동아리를 붕배(朋輩), 동아리 끼리 어울려 모임을 붕결(朋結), 같이 한 패를 이룬 무리를 붕도(朋徒), 붕당을 지어 자기편을 두둔함을 붕비(朋比), 많은 사람이 작당하여 일어남을 붕흥(朋興), 같이 어울리는 벗을 반붕(朋伴), 옛 친구를 일컫는 말을 구붕(舊朋), 좋은 벗을 달리 이르는 말을 가붕(佳朋), 친구를 달리 이르는 말을 동붕(同朋), 얼굴이나 알고 지내는 정도의 벗을 면붕(面朋), 한데 어울려시를 짓는 벗을 시붕(詩朋), 품격이 높은 벗을 고붕(高朋), 서로 믿는 벗을 신붕(信朋), 좋은 친구를 일컫는 말을 양붕(良朋), 손님으로 대접하는 좋은 벗을 빈붕(賓朋),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을 심붕(心朋), 술 친구나 술로 사귄 벗을 주붕(酒朋), 친한 벗을 일컫는 말을 친붕(親朋), 붕은 쌍조개의 뜻으로 옛날에 돈으로 쓰인데서 나온 말로 많은 보배를 일컫는 말을 백붕(百朋), 오륜의 하나로 친구 사이의 도리는 믿음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붕우유신(朋友有信), 친구는 서로 착한 일을 권한다는 뜻으로 참다운 친구라면 서로 나쁜 짓을 못 하도록 권하고 좋은 길로 이끌어야 함을 일컫는 말을 붕우책선(朋友責善), 사상이나 이해 따위를 함께 하는 사람끼리 파를 갈라 동아리를 만듦을 이르는 말을 분붕조당(分朋造黨),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벗을 일컫는 말을 동문위붕(同門爲朋),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뜻이 같은 사람을 불러 모음을 이르는 말을 인류호붕(引類呼朋), 고귀한 벗들이 자리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마음이 맞는 고귀한 벗들이 많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모임을 가졌음을 비유하는 말을 고붕만좌(高朋滿座)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