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가 542장 (구 340장) / 열왕기상 13 : 33 - 34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542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열왕기상 13장 33절 – 34절 말씀입니다.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아멘!
북 이스라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33절입니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 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여로보암의 문제는 도대체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 참 강팍합니다. 이런 일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일’ 이란 산당에서 우상에게 제사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왕상 13:1~6)
송아지 우상제단에서 제사드리다가 손이 마르고, 제단이 깨지고 제단의 재가 쏟아지는 이 정도의 일을 겪었다면 돌이키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적어도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합니다. 누가 봐도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인간이 지어내거나 꾸며낼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이 일 후에 하나님의 사람이 불순종하다가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습니까?
불순종하면 자기도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얘기를 들으면 손이 떨리고, 가슴이 떨려 더 이상 못하고 바로 회개 했을텐데 여로보암은 회개치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여전히 그 죄를 행했습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데도 살 기회를 망할 기회로 바꾸어 버립니다. 여로보암이 행했던 죄는 두 가지 였습니다.(33절) 첫째,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둘째, 누구든지 자원하기만 하면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왜 이렇게 큰 죄일까요?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은 것입니다. 아무나 마구 되는 대로 제사장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정한 규정에 보면 제사장은 오직 레위인들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출 28:1~4) 이렇게 제한을 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제사장 직이 인간에 의해 세워진 직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직책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정해진 사람이 예배를 인도함으로 예배의 거룩성과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레 21:4)
그러므로 그만큼 준비되고 훈련되고, 인정받은 자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예배가 살고, 백성이 살고, 나라가 삽니다. 종교가 타락하고 성공한 나라는 인류역사에 없었습니다. 여로보암도 이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도 의도적으로 일반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아버렸습니다. 이렇게 아무나 되게 했다는 것은, 그들이 인도하는 예배를 거룩한 예배가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예배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이런 예배에 사모함을 갖고 참여하겠습니까? 누가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여로보암의 죄는 예배의 거룩성을 훼손시키고, 나아가 거룩한 예배의 품격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여로보암처럼 할 때가 있습니다.
가끔 교회에 올 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일하러 가듯이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장이 영 아닌 사람도 있었습니다. 불신자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아닙니다. 그런 복장으로 교회 가는 것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대통령 만나러 가도 그렇게 안 갑니다. 좀 갖추고 입고 옵니다. 이것은 예배에 어떤 규정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배는 준비하고 와야 합니다. 복장, 마음, 시간 지키기, 일찍 와서 기도하며 기대하기, 적극적으로 참여할 마음을 갖고 와야 합니다. 이유는? 우리는 교회에 하나님을 만나러 가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은 신령한 예배를 평범한 예배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복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이 실패한 이유는, 누구든지 자원하기만 하면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본래 제사장은 자원제가 아니라 선택제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부른 사람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레위 족속 중에서도 아무다 다 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반열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훈련, 영적 지도자가 되는 훈련, 말씀 훈련, 하나님의 일을 하는 훈련,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 등 여러 훈련을 해서 택하심에 합당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훈련 했다고 다 되는 것 아니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위에서 불러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명’ -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일을 인간이 누구나 자원하기만 하면 다 할 수 있는 자원제로 격하시켰습니다. 제사장을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세우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왕이 세우는 것입니다. 제사장직, 소위 말하는 성직의 고귀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부르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셨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위대해도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 제사장의 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부르신 하나님의 종들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셨다. 하나님이 세우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부로 하면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주 다양합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부르심 이후 그 사역을 감당할 힘, 능력,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80세에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넉넉히 감당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르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40대 청년과 같은 때 부르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태중에 있을 때 부르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개 30대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회심 후 몇 년 지나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람마다 부르심의 나이도 다르고, 사역도 달랐지만 일단 부르심에 응답하고 나면, 나머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채워주셨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경우,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볍게 여기지 못합니다. 부르심은 너무 특별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내가 되고 싶어도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아 못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어서 제사장이 세워져야 그 사람이 인도하는 예배에 권위가 있고, 신뢰가 있고, 믿음이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워야 할 제사장을, 부르심도 없이 자원하기만 하면 세워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일로 격하시켜 버린 것입니다. 종교 국가,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에서는 파격을 넘어 충격적이 일입니다.
여로보암의 죄의 결과과 어떠했습니까? 여로보암의 죄는 이런 소중함과 고귀함을 다 깨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일로 낮춰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34절에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이것을 한 사람이 지은 죄가 아니라 가문의 죄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문이 끊어져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여로보암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집단 책임을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분열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이 이렇게 잘못된 기초를 놓음으로 인해서, 북 이스라엘 역사상 제대로 된 왕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북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잘 믿어 보고, 잘 살아 보려 했어도 제대로 된 모델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본 게 그것 밖에 없으니 그렇게 밖에 못하는 것입니다. 이 잘못된 모델의 원조가 누굽니까? 바로 여로보암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로보암 개인의 죄를 개인의 죄로 다루지 않고 가문의 죄로 다뤄서 가문을 끊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34절에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여기 “끊어져 멸망한다.” 는 말은 완전히 “완전히 잡아 꺾는다.” 는 말입니다.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조였던 여로보암 왕조는 그 대가 다 가기 전에 멸절되고 맙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어 즉위 2년 만에 살해당하면서 가문이 멸망한 것입니다. 예배를 우습게 알고, 하나님의 일을 우습게 안 여로보암이 잘될 수 없죠. 하나님도 그 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높이 쓰십니다.
그래서 처음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족 중 처음 예수 믿은 사람, 가문에서 처음 예수 믿은 사람, 타 종교에서 처음 기독교로 옮긴 사람,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가문의 흥망성쇠가 결정됩니다. 처음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를 보고 후대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기왕 믿을 거면, 좋은 믿음의 모델이 되시길 바랍니다. 누구나 본받고, 따르고 싶은 모델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나만큼만 믿으면 안심입니까? 나같이 믿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까? 내거 가문의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믿음의 기초를 잘 닦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하며 축복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