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날 아침, 이양이 전서를 보내왔다. 송강이 상의하자, 오용이 말했다.
“적군에게는 필시 교활한 계책이 있을 것입니다. 노지심 등이 이미 적진 깊숙이 들어가 있으니, 속히 교전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송강은 오늘 교전하자는 답서를 보냈다. 진명·동평·호연작·서녕·장청·경영이 전대가 되어 병마 2만을 거느렸는데, 활과 쇠뇌를 든 군사는 바깥에 배치하고 방패와 창을 든 군사들은 안에 배치하였다. 또 전차를 전면에 내세우고 기병들이 옆에서 호위하면서 진격하였다.
황신·손립·왕영·호삼랑은 군마 1만을 정돈하여 영채 안에서 대기하고, 이응·시진·한도·팽기 역시 병마 1만을 정돈하여 영채 안에서 대기하였다. 그리고 전군에서 호포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 동서 양로로 돌격해 나오기로 하였다. 그리고 관승·주동·뇌횡·손신·고대수·장청·손이랑은 보군 2만을 거느리고 대채 뒤에 대기하여 적의 구원병이 오면 방비하게 하였다.
배정이 끝나자, 송강은 오용·공손승과 함께 친히 전투를 독려하기로 하고, 나머지 장수들은 영채를 지키게 하였다. 오전 8시쯤 되어, 오용이 운제 위에 올라가 살펴보니 산세가 험준하여 급히 명을 내려 군마를 2리 후퇴시켜 진을 펼치게 하였다.
한편, 기산의 적장 이양은 원랑·등감·마강·마경 등 4명의 호장(虎將)과 2만5천 병마를 거느리고 나왔다. 등감은 장대에 황월의 수급을 매달고 5천 철기(鐵騎)를 이끌고 달려 나왔다. 군사들은 모두 쇠갑옷을 입고 투구를 깊게 눌러 써 두 눈만 내놓은 상태였다. 말들도 모두 두꺼운 갑옷을 입히고 얼굴까지 가려 네 발굽만 드러나 있었다.
이양은 어제 여장군이 돌을 날려 한 장수를 말에서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이처럼 중무장을 하여 화살과 돌을 막으려고 한 것이었다. 5천 철기는 궁수 2개 부대와 장창수 1개 부대를 앞세우고, 그 뒤를 이어 군사들이 양로로 나누어 쳐들어왔다.
송군은 적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급히 후퇴하였다. 송강은 호포를 터뜨리게 하였다. 맨 앞에서 전차를 밀고 가던 송군 수백 명이 화살에 맞아 다쳤지만, 다행히 전차가 가로막고 있어서 적의 철기들이 더 이상 앞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전차 뒤에는 송군의 기병이 있었지만 역시 앞으로 나아가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때 산 뒤편에서 연주포 터지는 소리가 울리면서, 노지심을 비롯한 보군들이 산 위로 쳐들어 올라갔다. 산채를 지키고 있던 적병들은 5천의 노약한 병사들과 편장 1명뿐이었다. 노지심 등은 적병을 모조리 죽이고 산채를 탈취하였다.
이양 등은 산 뒤편에서 변이 일어난 것을 보고 급히 후퇴하려는데, 황신 등의 네 장수와 이응 등의 네 장수가 양로에서 쳐들어왔다. 송강은 또 총포수들로 하여금 철기를 쏘게 하였다. 적병들은 크게 무너졌다. 그때 노지심과 이규 등 14명의 두령들이 보군을 이끌고 산 위에서 쳐들어 내려왔다. 적병들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별이 흩어지듯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애석하게도 맹장 원랑도 화포에 맞아 죽었고, 이양은 뒤편에 있다가 노지심의 선장에 맞아 죽었다. 마경과 등감도 난군 속에서 죽고, 단지 마강 하나만 살아서 도망쳤다. 획득한 갑옷과 말 등이 무수하였다. 3만 군병 중 태반이 죽어 산 위아래에 시체가 가득 널렸다.
송강이 병력을 거두어 점검해 보니, 천여 명을 잃었다. 날이 저물어 기산 북쪽에 영채를 세우고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송강은 병력을 거느리고 산을 올라가, 금은과 식량 등을 수습하고 영채는 불 질러 버렸다. 삼군의 장병들에게 크게 상을 내리고, 노지심 등 15명 두령들과 경영의 공을 기록하였다. 송강은 병력을 독려하여 기산을 지나 형남에서 15리 떨어진 곳에 하채하고, 성을 공략할 일을 군사 오용과 상의하였다.
한편, 노준의의 병마는 서경을 향해 가면서, 산을 만나면 길을 뚫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으면서 진격하였다. 보풍에서 적장 무순이 향화와 등촉을 밝히고서 성을 바치는 등, 지나는 고을마다 적병들이 조정에 귀순하였다. 노준의는 적장을 위무하고 전처럼 성을 지키게 하였다. 적장들은 감읍하여 진심으로 그릇된 길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노준의는 아무런 근심 없이 곧장 남쪽으로 진격하였다. 며칠 후, 서경성 남쪽 30리 밖 이궐산에 당도하여 하채하였다. 군사들을 풀어 정탐해 보니, 서경성은 주장인 가짜 선무사 공단이 통군(統軍) 해승과 몇 명의 맹장을 거느리고 지키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해승은 일찍이 진법을 배워 현묘한 이치를 깊이 알고 있었다.
노준의는 어떤 계책을 써서 성을 취할 것인지, 주무와 상의하였다. 주무가 말했다.
“해승이란 놈이 병법을 제법 알고 있다고 하니, 분명 저놈들이 먼저 싸우러 올 것입니다. 우리는 진세를 벌려 놓고 있다가, 적병이 오면 천천히 맞아 싸우면 됩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군사의 말이 옳소.”
노준의는 즉시 군마를 점검하고 산 남쪽의 평탄한 곳에 순환팔괘진(循環八卦陣)을 펼쳤다.
얼마 후, 적병이 세 부대로 나누어 왔다. 가운데 부대는 홍기, 왼쪽 부대는 청기, 오른쪽 부대는 홍기를 들고 있었다. 해승은 송군이 진세를 펼친 것을 보고, 청기 부대와 홍기 부대를 좌우로 나누어 진세를 펼쳤다. 운제에 올라가 송군이 순환팔괘진을 펼친 것을 본 해승이 말했다.
“그런 진을 누가 모를 것 같으냐? 내가 진을 펼쳐 저놈들을 놀라게 해줘야겠다.”
해승은 북을 울리게 하고, 지휘대를 세우고 그 위에 올라가 신호 깃발을 좌우로 흔들어 진세를 펼쳤다. 지휘대를 내려와 말을 타고 진 앞으로 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네놈들은 순환팔괘진으로 누굴 속이려는 거냐? 내가 펼친 진을 알아보겠느냐?”
노준의는 해승이 진법으로 싸우려는 것을 듣고, 주무와 함께 운제에 올라가 살펴보았다. 적병의 진은 세 사람을 한 소대로 묶고, 세 소대를 합하여 한 중대로 하고, 다섯 중대를 합하여 한 대대로 만들어 놓았다. 바깥은 네모난데 안으로 둥글면서, 큰 진이 작은 진들을 포함하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주무가 노준의에게 말했다.
“저건 당나라의 명장 이정의 육화진(六花陣)으로서, 제갈공명의 팔괘진(八卦陣)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적장은 우리가 자신의 진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장은 우리의 팔괘진이 팔팔 육십사의 변화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니, 제갈공명의 팔괘진으로 저 육화진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노준의는 진 앞으로 나가서 소리쳤다.
“네놈의 그까짓 육화진이 뭐가 신기하냐!”
해승이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감히 깨뜨려 보겠느냐?”
노준의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까짓 하찮은 진을 깨뜨리는 것이 뭐가 어렵겠느냐!”
노준의가 본진으로 들어가자, 주무가 지휘대 올라가 신호 깃발을 좌우로 흔들어 진을 팔진도로 변화시켰다. 주무는 양지·손안·변상으로 하여금 갑옷 입은 마군 1천을 이끌고 적진을 치게 하였다.
“오늘은 금(金)에 속한 날이므로, 우리 진에서 정남쪽에 위치한 군마가 일제히 돌격해야 합니다.”
양지 등은 명을 받고 북을 세 번 울린 다음, 적군의 서쪽 문기를 뚫고 돌격했다. 그때 노준의가 마령 등의 장수와 대군을 이끌고 총공격을 했다. 적병은 대패하였다.
한편, 양지 등은 적진 속으로 뛰어들어 해승과 마주쳤는데, 해승은 맹장 몇 명의 보호를 받으며 북쪽으로 달아났다. 손안과 변상은 공을 세우려고 병력을 이끌고 해승을 추격하였는데 너무 깊숙이 들어가고 말았다. 그때 산기슭 뒤에서 징소리가 나면서 한 떼의 군마가 튀어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