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로 중국남성과 강제결혼 당하는북한여성들 (18)
주성하기자 2013-03-09 7:14 am
아래 글은 지난 1월 말에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청년의 방문기입니다. 올 1월 북중 국경의 상황을 깊이있게는 몰라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기에 3회로 나누어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이들에겐 장백을 향해 가는 길이지만, 탈북자들에겐 반대로 목숨을 내건 필사의 탈출길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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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경 답사기]
1편. 대련에서 송강하, 송강하에서 장백
1편.
2013년 1월 말, 우리 일행의 북한 국경 답사는 중국 요녕성 대련시(大连)에서 출발했다. 대련은 중국 동북3성으로 가는 입구이다. 우리가 흔히 만주벌판이라고 부르는 중국의 동북3성으로 가는 다양한 방법 중에 시간적으로나 자금면에서 가장 효율성 있는 출발지가 바로 대련시이다.
인천공항에서 50분을 비행하면 대련에 도착한다. 대련에 도착한 후 우리 일행은 다음날 기차를 타기 위해 대련에서 1박을 했다. 본격적인 답사를 하기 전에 1박의 휴식을 취하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다. 휴식을 취하면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앞으로의 동북3성 내륙지방 일정을 감안해 기차를 타기 전에 대도시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식사와 커피를 먹었다. 중국의 내륙지방에는 도시지역보다 음식여건이 많이 부족하여 우리는 “도시 음식”을 최대한 먹어두기로 한 것이다.
우리 일행이 타고 갈 기차는 낮 2시에 대련시를 출발해 다음날 오전 8시에 송강하(松江河)에 도착하는 기차이다. 대련역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며 유동인구가 매우 많은 역이다. 대련역에서는 동북3성 내륙과 북경, 상해 등 중국 전역으로 출발하는 시발역이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침대기차칸에 탔다. 중국의 기차는 일반석과 침대석으로 나뉘는데, 침대석은 다시 딱딱한 침대칸과 푹신한 침대칸으로 구분된다. 푹신한 침대칸이 제일 요금이 비싸지만 밤을 꼬박 새고 도착하는 일정이기에 우리는 푹신한 침대칸에 승차했다.
중국의 침대기차칸은 4인 1실이다. 우리가 탄 실에는 우리 일행 외에 2명의 중국사람들이 탔다. 모두 다 중국내륙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우리 같은 외국인이 한겨울에 중국내륙지방으로 침대기차를 타고 가는 것은 드문 일이다. 따라서 우리 실의 중국인들은 우리에게 신기하다는 듯이 계속해서 말을 걸어 왔다. 그 둘 중 한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분이셨고 한사람은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기차는 밤새 달려 길림성 송강하에 도착했다. 아침 8시가 다 되어 기차 문이 열리고 송강하역에 도착하자 너무나 차가운 공기가 우리 일행을 맞았다. 체감온도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날씨는 그곳이 백두산 바로 아래 동네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다.
역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마중 나온 김선생님을 만났다. 김선생님은 나이가 무척 많은 어르신이지만 그 추운날에 우리를 위해 직접 역전에 마중을 나오셨다. 우리는 김선생님과 택시를 타고 김선생님댁으로 이동했다.
송강하는 매우 작은 시골 도시이지만 한국사람들에게는 낯익다. 바로 백두산으로 가기 위한 최종 거점 도시가 바로 송강하이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북파, 서파, 남파로 나뉘는데, 그중 서파로 가는 거점이 송강하이다. 특히 백두산 서파쪽으로 대규모 스키장과 리조트가 개발되는 바람에 송강하는 작은 도시이지만 각종 숙박시설과 스키관련 숍들이 많이 들어섰다.
김선생님댁은 일반 아파트 가정집이었는데 실제로 들어가 보니 교회였다. 정확히 말하면 가정집을 개조한 교회 예배당이었다. 김선생님은 이곳에서 조선족과 한국인,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선교활동을 한다고 했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현재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라는 것은 허가된 교회, 승인된 공무원 신분의 목사 아래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중국에 가보면 각 지역마다 교회가 있고 민족별로, 예를 들어 한족, 조선족 등이 사용하는 별개의 교회들이 설립되어 있다.
따라서 김선생님이 운영하시는 가정집 교회는 사실상 중국법으로는 불법이다. 단속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김선생님은 가끔 단속이 있지만 알아서 피해간다고 했다. 중국 공안쪽에서도 알고는 있을 수 있지만 관례적으로 단속은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생님 집에 앉을려는 순간, 김선생님이 어디선가 전화를 받고는 우리에게 어서 다시 송강하 기차역으로 가보자고 했다. 지금 송강하 기차역에 북한을 탈북하여 중국에 팔려갔던 여성의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한국으로 가기위해 중국 남부지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김선생님과 다시 택시를 타고 급하게 송강하역으로 향했다. 예상치도 못하게 송강하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중국탈출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이 중국내에서 열악한 인권환경에 처해있는 북한이탈주민 여성의 자녀의 실태를 직접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송강하역에 가서 대기실을 살펴보아 찾아봤지만 그 아이와 아버지는 없었다. 참고로 현재 중국에는 북한에서 인신매매라는 방법을 통해 중국으로 탈출하여 중국 내륙지방에서 숨어 지내는 여성들이 중국남성들과 강제결혼하여 낳은 아이들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고 있다.
현재 그러한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실태조사가 명확히 되어 있지 않고 있다. 탈북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과 어머니가 한국으로 최종탈북하여 중국인 아버지와 할머니 등과 함께 사는 아이들은 중국인 호구등록이 어려워 기본적인 아동권, 교육권 등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아이와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김선생님 집에서 몸을 녹이면서 잠시 쉬다가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인 장백현으로 향하기로 했다.
송강하는 백두산으로 가는 길목이면서 장백현으로 가는 주요 통로이다. 북한의 혜산시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장백현은 철도가 없기 때문에 오직 도로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정확한 지명은 “중국 길림성 백산시 장백현 장백진”이다.
장백현으로 가는 버스는 송강하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재밌는 것은 버스터미널 내부에서 승차하는 것과 버스터미널 밖에서 승차하는 요금이 각기 다르다. 이는 버스터미널에 내야하는 세금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승차 손님들은 버스터미널 외부에서 장백현 방면 버스를 기다린다.
우리가 탄 버스는 미니버스이다. 눈이 가득한 백두산 주변지역을 이동하는 버스로서 불안하기도 했다. 더구나 버스에는 백두산 지역에서 채취한 각종 산나물, 채소들을 박스채로 장백현에 가서 팔려는 상인들이 빼곡히 타는 바람에 입석으로 가는 승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잠시였다. 눈 덮인 산길 도로를 향하는 미니버스는 매우 안정적으로 속도를 내면서 달렸다. 역시 이 지역 운전은 지역 사람들이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강하에서 장백현까지는 약 4시간이 소요된다.
오고가는 차들도 거의 없고 주변은 온통 산속인 전형적인 산길이다. 하지만 이 산이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영혼이 서린 백두산이기에 가는 내내 백두산의 정기를 몸으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시간, 드디어 본격적인 우리의 목적지인 장백현에 도착했다. 기나긴 산길이 끝나고 어느 샌가 강줄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강넘어 익숙히 보이는 민가들이 보였다. 바로 압록강과 북한 혜산시의 모습이었다.
마치 시냇물 사이를 지나 넘어 보듯 너무나 가까이 그 모습이 다가온 북한 혜산시의 풍경에 정신을 놓고 있는 순간 우리는 바로 장백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혜산시와 장백현은 정말로 압록강을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이웃 동네였던 것이다.(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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