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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85회
주양왕(周襄王)은 제후들로부터 조근(朝覲)을 받는 의례를 마치고, 낙양(洛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제후들은 하양(河陽) 경계까지 와서 양왕을 전송하였다. 진문공(晉文公)은 선멸(先蔑)로 하여금 위성공(衛成公)을 낙양으로 압송하게 하였다.
그때 위성공은 가벼운 병이 났는데, 진문공은 의원 연(衍)으로 하여금 동행하게 하였다. 하지만 병을 보살피게 한다는 것은 핑계였고, 실은 위성공을 독살함으로써 흉중의 분노를 해소하려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고 반드시 죽여 버릴 것이다!”
진문공은 선멸에게 분부하였다.
“일을 빨리 끝내도록 하고, 끝나면 의원 연과 함께 돌아와 보고하시오.”
양왕이 떠난 후에도 제후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진문공이 말했다.
“과인은 천자의 명으로 정벌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금 허나라가 오로지 초나라만 섬기며 중국과는 소통하고 있지 않습니다. 천자께서 왕림하셔서 여러 제후들께서는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와주셨습니다. 그런데 허나라 도성 영양(穎陽)은 여기서 아주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못 들은 척하고 있으니, 태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여러 제후들과 함께 가서 허나라의 죄를 묻고자 합니다!”
제후들이 모두 말했다.
“군후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진문공이 주동이 되어, 齊·宋·魯·蔡·陳·秦·莒·邾 8국 제후들이 모두 군대를 거느리고 일제히 영양으로 진군하였다.
한편, 정문공(鄭文公) 첩(捷)은 원래 楚王과 인척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晉나라가 두려워 회맹에 참여했었다. 그런데 진문공의 曹·衛에 대한 조처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심중으로 불평을 품고 있었다.
[제68회에, 정문공의 부인 문미(文羋)는 초성왕(楚成王)의 누이동생이었다. 그리고 문미의 두 딸 백미(伯羋)와 숙미(叔羋)를 초성왕이 강제로 데려가 후궁으로 삼았다.]
정문공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晉侯가 망명했던 시절에 내가 그에게 실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말로는 曹·衛의 복위를 허락한다고 해놓고서, 실제로는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처럼 원한을 품고 있으니, 정나라에 대한 감정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초나라 편에 붙었다가, 후에 환난이 닥치면 초나라에 의지하는 것이 낫겠다.”
상경(上卿) 숙첨(叔詹)은 정문공이 주저하는 것을 보고, 晉을 배신하려는 뜻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간했다.
[제37회에, 숙첨·도숙·사숙 세 사람을 정나라 사람들은 ‘삼량(三良)’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晉侯가 다행히 우리 鄭에게서 받은 모욕을 용서하였습니다. 주군께서는 두 마음을 갖지 마십시오. 만약 두 마음을 가졌다가 죄를 얻게 되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문공은 숙첨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시켜 ‘정나라에 전염병이 퍼졌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기도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진문공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먼저 귀국하였다.
귀국한 정문공은 사신을 초나라로 보내 우호를 맺고 말을 전하게 하였다.
“晉侯는 許나라가 상국(上國)과 친한 것을 미워하여, 제후들을 몰고 죄를 물으러 갔습니다. 과군은 상국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晉侯를 따르지 않고, 이렇게 와서 고합니다.”
허나라에서도 제후들이 군대를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사신을 초나라로 보내 위급을 고하였다. 초성왕(楚成王)이 말했다.
“우리 군대가 패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晉과 싸울 수는 없다. 저들이 전쟁에 싫증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평을 청할 수밖에 없다.”
초성왕은 허나라를 구원하지 않았다.
제후들의 군대가 영양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였다.
그때 조공공(曹共公)은 아직도 오록성(五鹿城)에 갇혀 있었는데, 晉侯의 사면령이 내려오지 않자, 晉侯를 찾아가 설득할 수 있는 언변에 능한 자를 구하였다. 소신(小臣) 후누(侯獳)가 많은 뇌물을 가지고 가서 晉侯를 설득하겠다고 청하였다. 조공공은 허락하였다.
후누는 제후들이 허나라에 있다는 것을 듣고, 영양으로 가서 진문공을 알현하고자 하였다. 그때 마침 진문공은 피로가 쌓여 한질(寒疾)에 걸렸는데, 꿈속에 의관을 갖춘 귀신이 나타나 문공에게 음식을 달라고 하였다. 문공은 귀신을 꾸짖어 물리쳤지만,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문공은 태복(太卜) 곽언(郭偃)을 불러 길흉을 점치게 하였다.
후누는 황금과 비단을 한 수레 끌고 곽언을 찾아가 사정을 고하고, 귀신의 일을 빌려 여차여차하게 晉侯에게 진언하여 曹伯을 석방해 주도록 해달라고 청하였다. 곽언은 뇌물을 받고 허락하였다.
곽언이 알현하자, 진문공은 꿈 얘기를 했다. 곽언을 점을 쳐서 ‘천택(天澤)’의 괘를 얻었는데, 음(陰)이 변하여 양(陽)이 되는 괘였다. 곽언은 문공에게 다음과 같은 괘사(卦辭)를 바쳤다.
陰極生陽 음이 극에 달하여 양을 낳고
蟄蟲開張 잠자던 벌레들이 기지개를 켠다.
大赦天下 천하에 대사면(大赦免)을 내리면
鐘鼓堂堂 종소리와 북소리가 당당하리라!
문공이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오?”
곽언이 대답했다.
“이 점괘가 주군의 꿈에 합치됩니다. 필시 제사가 끊어진 귀신이 주군께 사면을 구하는 것입니다.”
“과인은 제사를 권한 적은 있지만, 제사를 페한 적이 없었소. 대체 그 귀신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사면을 구한단 말이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헤아려 볼 때, 曹나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曹나라 시조 숙진탁(叔振鐸)은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晉나라의 시조 당숙(唐叔)은 무왕(武王)의 아들입니다.
예전에 제환공(齊桓公)은 회맹을 열어 이성(異姓)의 나라인 형(邢)과 위(衛)를 재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군께서는 동성의 나라인 曹와 衛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리고 천토(踐土)의 회맹 때 위나라는 복위시켜 주시고 조나라는 복위시켜 주지 않으셨으니, 같은 죄에 대해 다른 벌을 내리신 겁니다.
숙진탁은 제사가 끊어지게 되자, 주군의 꿈에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군께서 曹伯을 복위시켜 주심으로써 숙진탁의 영혼을 편안케 해주시고, 관대하고 어진 사면령을 내려 종과 북을 울리는 즐거움을 누리신다면 어찌 질병을 근심하시겠습니까?”
[제45회에, 북적주(北狄主) 수만(瞍瞞)이 형나라와 위나라를 침략하였다. 제환공은 멸망 직전에 이른 두 나라를 구원하고, 이의(夷儀)과 초구(楚邱)에 성을 쌓아 나라를 재건해 주었다. 두 나라는 주왕실과 동성인 ‘희씨(姬氏)’이고 제나라는 ‘강씨(姜氏)’이므로, 제환공의 입장에서 볼 때 두 나라는 이성의 나라이다.]
곽언의 말을 듣고, 문공은 마음이 활짝 열리면서 병세가 절반은 나은 것 같았다. 문공은 그날로 사람을 오록으로 보내 조공공을 본국으로 돌려보내 복위하게 하였다. 그리고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지난번에 송나라에 주었던 조나라의 땅을 반환하게 하였다.
[제79회에, 진문공은 서신(胥臣)으로 하여금 송나라 대부 화수로(華秀老)와 함께 가서 조나라 땅을 접수하게 했었다.]
석방된 조공공은 마치 조롱에 갇혀 있던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고, 우리에 갇혀 있던 원숭이가 다시 숲속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복위한 조공공은 본국의 군대를 이끌고 영양으로 와서 진문공에게 복위시켜 준 은혜에 사례하고, 허나라를 포위하고 있는 제후들과 협력하였다. 문공의 병은 점차 나아졌다.
허희공(許僖公)은 楚軍이 구원하러 오지 않는 것을 보고, 두 손을 묶고 입에 옥을 물고서 晉의 군중(軍中)으로 가서 항복을 청하며 황금과 비단을 내어 군사들을 호궤하였다. 문공과 제후들은 포위를 풀고 각기 본국으로 돌아갔다.
진목공(秦穆公)은 작별할 때 진문공과 약조하였다.
“훗날 군대를 동원할 일이 생기면, 秦軍이 출병하면 晉이 돕고, 晉軍이 출병하면 秦이 돕기로 합시다. 피차 동심협력하여 좌시하지 않기로 합시다.”
두 군후는 약조를 하고 각자 본국으로 돌아갔다.
진문공은 도중에 정나라가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 우호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이동하여 정나라를 정벌하고자 하였다. 조쇠(趙衰)가 간했다.
“주군의 옥체가 평안하지 않으므로 과로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군사들도 오랫동안 지쳐 있으며, 제후들도 모두 해산하였습니다. 귀국하여 1년 정도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정나라를 도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문공은 晉나라로 귀국하였다.
한편, 주양왕이 경성으로 돌아오자, 신하들이 알현하고 칭하하였다. 선멸은 양왕에게 재배하고서 晉侯의 명을 전하면서 衛侯를 사구(司寇)에게 넘겨 처벌할 것을 청하였다.
그때는 주공(周公) 열(閱)이 태재(太宰)가 되어 정사를 맡고 있었는데, 열은 衛侯를 관사에 구금하고서 반성하도록 하자고 청하였다. 양왕이 말했다.
“옥에 가두는 것은 벌이 너무 중하고, 공관에서 살게 하는 것은 벌이 너무 가벼운 것 같소.”
양왕은 민간의 빈방을 얻어 衛侯를 감금하게 하였다. 양왕은 본래 衛侯를 살려주고 싶었지만, 진문공이 십분 분노하고 있고 또 선멸이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문공의 뜻을 거스르기가 두려워 별실에 유폐하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명색은 구금이었지만, 실은 관대하게 대한 것이었다.
영유(寧俞)는 위성공을 긴밀하게 수행하여, 잠잘 때에도 반드시 함께 하여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음식도 반드시 자신이 먼저 맛본 후에 바쳤다. 선멸이 의원 연에게 위성공을 독살하라고 수차례 재촉했지만, 영유가 그처럼 철저하게 방비하고 있어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의원 연은 할 수 없이 영유에게 실정을 고하였다.
“晉侯는 고집이 세고 은혜와 원한에 대해 분명한 분임을 그대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죄를 범한 자는 반드시 죽이고, 원한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보복합니다. 제가 이번에 따라온 것은, 실은 주군의 명을 받들어 衛侯를 독살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성공하지 못하면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책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영유가 연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았으니, 내가 어찌 그대를 위해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주군은 이제 노쇠하여, 사람의 지모를 멀리하고 귀신의 음모를 더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들으니, 曹伯이 사면을 받은 것도 점쟁이의 한 마디 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대는 衛侯가 죽지 않을 정도로 독약을 조금만 넣고, 모든 것을 귀신의 탓으로 돌리시오. 그러면 벌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과군은 그대에게 사례할 것입니다.”
의원 연은 영유의 말에 찬성하고 물러갔다.
영유는 衛侯의 명이라고 핑계대고 의원 연을 찾아가 병을 치료할 약주를 달라고 하면서, 은밀히 보옥(寶玉) 한 상자를 건네고 돌아갔다.
연이 선멸에게 말했다.
“衛侯가 죽을 날이 다가왔습니다!”
연은 선멸이 보는 앞에서 약사발에 짐독(鴆毒)을 탔는데, 실제로 독약의 양은 아주 적었고 다른 약을 섞어 색깔만 그럴듯하게 만든 것이었다.
연은 약주를 가지고 위성공을 치료하러 갔다. 영유가 맛을 보려고 하자, 연은 짐짓 허락하지 않으면서 위성공에게 억지로 먹였다.
위성공이 약을 두세 모금 넘겼을 때, 연은 눈을 부릅뜨고 뜰을 바라보다가 홀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입으로는 선혈을 토하며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었는데, 그 바람에 약사발도 엎어져 독주가 바닥에 낭자하게 되었다.
영유는 깜짝 놀란 척하면서 좌우에 명하여 의원을 부축해 일으키게 하였다. 잠시 후 의원이 깨어나자, 좌우에서 어떻게 된 연유인지 물었다. 연이 말했다.
“방금 衛侯에게 약주를 먹일 때, 홀연 한 신인(神人)이 나타났습니다. 키는 한 길이 넘고 머리는 말[斗] 만한데, 차림새가 위엄이 있었습니다. 그 신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곧장 방으로 들어오더니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숙(唐叔)의 명을 받들어 衛侯를 구하러 왔노라!’ 그리고는 쇠망치로 약사발을 쳐서 깨뜨려 버렸습니다. 저는 혼백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위성공도 자신이 본 것을 말했는데, 연이 한 말과 같았다. 영유는 노한 척하며 말했다.
“너는 원래 독을 써서 우리 주군을 해치려고 했다! 만약 신인이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주군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나는 너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
영유가 팔을 걷어 부치고 연에게 덤벼들자, 좌우에서 말렸다.
소식을 들은 선멸이 달려가 보고서, 영유에게 말했다.
“그대의 주군이 신의 도움을 받았으니, 아직 죽지 않을 것이오. 내가 과군께 가서 복명하겠소.”
위성공은 독을 복용하기는 했지만 아주 적은 양이었기 때문에, 얼마간 앓다가 회복되었다.
선멸은 의원 연과 함께 晉나라로 돌아가, 사실을 진문공에게 복명하였다. 문공은 그 말을 믿고 의원 연을 사면하였다.
사관이 시를 읊었다.
酖酒何名毒衛侯 무슨 명분으로 衛侯를 독살하려 했던가?
漫教醫衍碎磁甌 부질없이 연으로 하여금 약사발만 깨뜨리게 했구나!
文公怒氣雖如火 문공의 노기가 비록 불같았지만
怎脫今朝寧武謀 어찌 영유의 지모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한편, 노희공(魯僖公)은 원래 위나라와 대대로 친목을 유지해 왔는데, 의원 연이 위성공을 독살하려 했지만 죽이지 못했고, 또 진문공이 연을 벌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장손신(臧孫辰)에게 물었다.
“衛侯가 복위할 수 있겠소?”
장손신이 대답했다.
“복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형벌은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큰 형벌은 군대를 동원하여 부월(斧鉞)로 죽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칼이나 톱으로 팔다리를 자르는 것입니다. 가장 가벼운 것은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며, 들판에 묶어 놓거나, 저자에 세워 놓고 백성들에게 그 죄를 밝히는 형벌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晉侯는 衛侯에 대하여 그런 형벌을 사용하지 않고, 몰래 독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의원을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衛侯를 죽였다는 오명(汚名)을 꺼렸기 때문입니다.”
“衛侯가 죽지 않았지만, 주나라에서 노후(老後)를 보내지 않겠소?”
“만약 제후들이 요청하면, 晉侯는 필시 衛侯를 사면할 것입니다. 그리고 衛侯가 복위되면, 필시 우리 노나라와 더욱 친해질 것입니다. 그리되면 제후들이 모두 우리 노나라의 높은 의기를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노희공은 크게 기뻐하면서, 장손신을 주왕실로 보냈다.
장손신은 백벽(白璧) 열 쌍을 바치며, 주양왕에게 衛侯의 사면을 청하였다. 양왕이 말했다.
“그건 晉의 뜻이오. 만약 晉侯가 뒷말을 하지 않는다면, 짐이 어찌 衛侯를 사면하지 않겠소?”
장손신이 말했다.
“과군은 신을 晉侯에게 보내 청하려 했지만, 왕명이 없으면 신이 어찌 감히 晉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양왕은 백벽을 받고, 허락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장손신은 晉나라로 가서 문공을 알현하고, 역시 백벽 열 쌍을 바치며 말했다.
“과군은 위나라와는 형제와 마찬가지입니다. 衛侯가 군후께 죄를 지어, 과군은 황공하여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이제 군후께서 이미 曹伯을 사면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과군은 비록 변변치 못하나마 예물을 바치고 衛侯 대신 속죄하고자 합니다.”
문공이 말했다.
“衛侯는 이미 경성에 있으니, 왕의 죄인이오. 과인이 어찌 마음대로 할 수 있겠소?”
“군후께서는 천자를 대신하여 제후를 호령하고 계시니, 군후께서 그 죄를 사면해 주신다면 왕명과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선멸이 아뢰었다.
“노나라는 위나라와 친하므로, 주군께서 노나라를 위해 위나라를 사면하시면, 두 나라는 더욱 친해져 우리 晉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그러면 주군께 불리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문공은 허락하고, 즉시 선멸에게 명하여 장손신과 함께 주왕실로 가서 양왕에게 청하게 하였다. 양왕은 위성공을 석방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때 원헌(元咺)은 이미 공자 하(瑕)를 군위에 받들었으며, 도성을 보수하고 출입을 엄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제84회 말미에, 원헌은 공자 하를 군위에 옹립하고 자신은 재상이 되었다. 공자 하는 숙무의 아우라고 했으니, 또한 위성공의 아우이다.]
위성공은 귀국하는 날, 원헌이 군사를 동원하여 항거하지 않을까 두려워, 은밀히 영유와 모의하였다. 영유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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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周歂)과 야근(冶廑)이 공자 하를 옹립하는 데 공이 세워 경(卿)의 벼슬을 원했는데, 거절당하여 원망을 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그들과 결탁하면 내부의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에게 공달(孔達)이라는 아주 친한 벗이 있습니다. 그는 송나라의 충신 공부가(孔父嘉)의 후손인데, 흉중에 대단한 경륜(經綸)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천과 야근도 공달과 면식이 있습니다. 공달로 하여금 주군의 명을 받들게 하고, 주천과 야근에게 경의 벼슬을 주겠다고 하여 원헌을 죽이게 하면, 나머지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15회에, 송나라 태재 화독이 사마 공부가를 죽였고, 공부가의 아들 목금부는 노나라로 달아났다. 목금부의 6세손이 공자(孔子)라고 하였다. 공달은 공자의 직계는 아니다.]
위성공이 말했다.
“그대는 나를 위해 은밀히 행하시오, 만약 일이 성공하면, 어찌 경의 벼슬을 아끼겠소?”
영유는 심복으로 하여금 말을 퍼뜨리게 했다.
“衛侯는 왕의 은총을 입어 석방되기는 했지만, 귀국할 면목이 없어 초나라로 피난할 것이다.”
영유는 위성공의 친필 서신을 받아, 공달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리고 주천·야근과 은밀히 결탁하여 여차여차 하라고 하였다. 주천과 야근은 모의하였다.
“원헌은 매일 밤 친히 성을 순시하고 있소. 성문 근처에 병사를 매복시켰다가 기습하여 원헌을 죽인 다음, 궁중으로 달려 들어가 공자 하를 죽이고 궁실을 청소하고서 衛侯를 영접합시다. 그러면 우리 두 사람은 일등공신이 될 것이오.”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 가병들을 모아 성문 근처에 매복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