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기 대응책이 한계를 보이는 시점에서 실물경제 침체가 중첩되자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급해진 각국 정부는 경제만 살린다면 어떤 조치도 무제한으로 내놓고 있다.
금융시장은 시스템 안정을 전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각국이 추진하는 무제한의 조치는 국가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국가간 규칙이 약화되고 자국 이기주의로 흐르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향후 투자가는 금융과 실물경제의 변화뿐 아니라 국제질서의 안정 여부(국제공조)까지 판단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불확실성의 세계
미국뿐 아니라 각국은 경기부양책 실시 중 자국 제품을 우선 사용토록 하는 Buy America 규정과 같은 보호무역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은 유가 급락으로 미세한 균열을 노출시키고 있다. 또한 국가간에 경쟁적인 국채 발행으로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한편 파키스탄 북서부는 점차 탈레반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밀수혐의를 받던 중국 화물선을 러시아가 격침시키면서 양국 관계도 냉각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쇼비니즘(chauvinism, 배타적 애국주의)적 행태가 목격되고 있다. 경제를 넘어 세계 질서마저도 점점 불안정해지는 모습이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시대
이번 위기는 말 그대로 글로벌 위기이기 때문에 글로벌 공조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물론 통화스왑과 같은 금융 분야는 어느 정도 글로벌 공조가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위기의 경과 기간이 길어지고 각국의 위기 대응 조치간에 미세한 충돌이 발생하면서 ‘국제공조’가 이완되는 모습이다. 지난 주 EU의 동유럽 구제금융안 합의 실패나 자동차 산업에서 국가간 갈등이 커지는 것도 국제 공조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사회학자나 역사철학자들은 경제적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회 변동을 가져오는 것으로 이해한다. 경제가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글로벌 위기와 같이 인류 모두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지구적 차원의 질서보다는 자신, 혹은 자국만의 이익을 취하려는 경향이 높아진다. 모두가 제로섬 게임적 시각을 갖게 된다.
이런 현상이 최근 국제질서에 투영되면서 자국만의 이익에 집착하는 중상주의(重商主義)적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1929년 대공황이 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된 것은 당시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국 이기주의에 빠졌기 때문이다.
반면 1980년대 초반 이후 냉전 종식 과정에서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리는 하락하고 PER이 상승했다. 약 25년에 걸친 이 시기는(1982~2007년) 세계화를 기반으로 하는 인류 역사 최고의 호황기였다. (그림 1의 음영 부분) 당시 금융시장은 미국 주도의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국제 질서를 기반으로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1차 오일쇼크 초반과 유사하게 금리와 PER이 동시에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상태에서 불안정한 국제질서가 지속 혹은 강화된다면 금융시장 회복도 지연될 수 있다.
금값 고공 행진의 비밀
상품투자 전문가인 제임스 터크(James Turk)는 최근 한국에 소개된 ‘달러를 버려라’ 란 책에서 달러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금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금값과 달러가 동시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달러 기근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이다.
물론 금 가격 상승의 이면에는 달러 강세가 단기에 그치고 결국은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필자도 일정부분 이 논리에 동의한다. 그러나 과도적으로 국제 공조 체제의 약화가 국제질서의 불안정으로 이어지면서 달러와 금 가격이 동반 강세를 보이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국제질서가 장기 Valuation을 결정
기업의 가치평가는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인 지금은 국제질서가 변화하면 결국 기업의 재무제표도 변화한다. 투자환경이 불안정할수록 경제 예측과 투자의 세계에서는 국제질서의 안정성이 중요한 지표가 된다.
현 시점에서 언제 그리고 어떤 형태로 국제질서가 안정될지 여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세계사회학회장을 역임한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장기간에 걸친 이행의 시대(The age of transition)에 이미 진입한 것으로 평가한다.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나 글로벌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도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까지 시장의 예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그래도 한국은 희망이 있다!
최근의 환율 문제는 달러가치가 초강세를 보이는 시점에서 한국의 외화유동성 문제가 결합된 결과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국제질서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경제 규모와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극단적인 비관론은 자제해야 한다.
한편 만인이 투쟁하는 무질서의 시대에 한국의 적응력은 어떠할까? 정글에서의 생존력은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자체 체력뿐이다. 한국은 여타 국가와 달리 국가 재정이 안정적이다. 글로벌 위기가 장기화될 것을 가정할 때 대부분 국가의 재정 투입은 2~3년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 누적 재정적자 규모가 크다. 반면 한국은 올해부터 실질적인 재정적자에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한국의 대기업은 21세기 들어 재무구조의 안정성이 매우 높아 졌다. 이런 현상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글로벌 제로섬이라는 정글’에서 버틸 시간과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국제질서를 고려한 시장 대응이 필요
국제질서의 변화를 투자의 관점에서 보자! 우선 시장에 대한 과거의 전제와 가정을 버리고 새롭게 살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이제 보이고 있다. 문제는 보이는 손끼리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가 안정될 때까지 경제와 금융 분야를 넘어 국제공조와 질서까지도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달러가치와 금 가격은 그래서 중요하다. 금 가격과 달러 가치가 안정될 때 글로벌 위기는 한고비를 넘기게 된다. 물론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의 안정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저점에 접근했을 때 내놓을 카드가 있는 국가는 한국 등 몇몇 국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고비 이후의 환율과 금 가격은 한국의 문제보다는 국제질서의 안정성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첫댓글 좋은 정보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