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는 곧 상상할 수 있나이다.
십자(十字)는 네거리를 뜻함이요
네거리는 온갖 길 위의 사람들이
모이고 또, 각기 떠나가는 곳임을
또한, 합하여 어떤 하나가 이루어지고
이루어진 그것이 다시
어떤 일들의 시작이 되는
말하자면 퍼지고 모이는 일이
운명처럼 겹치는 그런 곳,
그리하여 십자로는 역사의 저자를 형성하고
(후략)
- 김정웅 '십자로에서' 부분
시인은 십자로에서 십자가를 본다. 진리요 생명인 십자가가 사거리 한복판에 이미 놓여 있다고 말한다. 길 위의 십자가에 모인 사람들에겐 어떤 간절함이 있다. 뜻의 합일을 이루고 다시 어디론가 흩어지는 것, 그리고 다시 모여 또 시작하는 것. 그것이 역사이자 운명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십자가는 저 멀리 예배당의 허공에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 속의 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각자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등짐을 지고 가야 하는 바로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