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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나에게 내려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바로 본래 마음 성(性) 이다. 성性은 마음의 본래 실상, 내 마음의 본래 모습을 말한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은 변화막측하다. 수시로 바뀌고 변덕스러워서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다. 하늘땅과 인간과 만물을 낳아 주는 조물주의 마음, 대자연의 마음이 바로 성(性)이다. 성(性)은 마음의 본체, 마음의 본래 모습, 본 마음이요, 다른 말로 도심(道心), 천심(天心)이라고 한다.
하늘이 나에게 내려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바로 본래 마음 성(性) 이다. 성性은 마음의 본래 실상, 내 마음의 본래 모습을 말한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은 변화막측하다. 수시로 바뀌고 변덕스러워서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다. 하늘땅과 인간과 만물을 낳아 주는 조물주의 마음, 대자연의 마음이 바로 성(性)이다. 성(性)은 마음의 본체, 마음의 본래 모습, 본 마음이요, 다른 말로 도심(道心), 천심(天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인간의 총체적인 의식 현상을 뜻한다. 그런데 불가나 도가에서 말하는 마음은 본래의 마음(本心), 진리의 마음, 도심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 수행의 핵심으로 말하는 '명심견성(明心見性)' 도 궁극으로 내 마음을 밝혀서 성(性)을 본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인간을 낼 때 2가지 신비를 깨치라는 명命을 주었다. 그 하나는 인간 자신에 대한 신비를 푸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 삶의 무대이자 생명 활동의 바탕인 하늘, 땅, 대자연의 신비를 규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본능적인 호기심으로 인간의 신성과 자연 현상의 신비를 탐구하며 종교와 과학 이라는 진리의 두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일찍이 공자는 '근취저신(近取諸身)하고 원취저물(遠取諸物)하라'(『周易』 계사전)라고 하였다. 이 말은 우주 신비의 전 면모인 하느님의 오묘한 존재 섭리를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찾고, 멀리는 자연 만물을 바라보면서 주(인간), 객(우주 자연)을 동시에 간파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의 존재 원리를 풀려면 우주의 신비를 알아야 하고, 우주의 깊고 깊은 존재 섭리를 가까이 다가가려면 그러한 원리가 압축 투영되어 있는 인간 자신의 신비를 알아야 한다. 대우주가 처음 열릴 때, 상대적인 두 기운인 음과 양이 서로 조화하여 창조, 변화하는 태극 세계를 열어놓았다. 그래서 인간은 나는 무엇이며,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궁극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정신과 물질, 양면의 신비를 파헤치며 분투하는 것이다.
인류 창세 역사의 황금 시절 이후 동서 문명이 분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대국적으로 정신세계의 신비는 동양(陽)에 , 물질세계의 신비는 서양(陰)(東道西器)에, 그리하여 동양의 정감적이고 직관적인 지혜는 종교를, 서양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지성은 과학을 낳았다. 이렇게 탄생한 종교와 과학이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인류 문명을 일궈나가는 두 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인간의 삶속에는 슬픔과 기쁨 사이를 오가는 영원한 운명의 시계추가 있다. 이 시계추가 희비의 양극단을 오갈 때 인간은 실의에 빠져 밀려드는 고독과 흐르는 눈물로 인생을 단련시키기도 하고, 환희와 삶의 보람으로 가슴에 멍울진 아픔을 씻어 내기도 한다.
인간은 한평생을 살면서 몇 번쯤은 운명의 쇠망치에 얻어맞고 슬픔과 충격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인생이 뼈아픈 좌절과 허무에 빠졌을 때 스스로 던지는 가장 진실되고 절박한 물음은 ‘도대체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생명의 숨결이 멎는 순간까지 후회하지 않고 가장 값지게 사는 길은 무엇인지 묻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인생의 근본문제에 해답[道]을 열어주는 것이 종교다.
'종교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인간은 이미 종교적 존재로 태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낯선 길을 가면서 본능적으로 이 세계의 신비와 자신의 운명,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풀기 어려운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고뇌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기성 종교가 전한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생의 근본을 깨닫고 스스로 새로워지라는 것이다.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영혼은 생명의 빛을 찾아 변화하고 육신은 성결(聖潔)하게 되어 마침내 영원한 우주생명의 근원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었다.
지금까지 기성 종교는 불멸의 생명의 조화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한 구도의 기본자세로서 강인한 '믿음과 실천'을 외쳐 왔다. 오직 정성과 믿음, '일심'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설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이 일심(一心) 자리는 천지와 나, 즉 주객이 하나로 녹아떨어진 조화 경지다.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열리는 이 절대 순수의 일심(一心)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마음자리다. 인간이 천지일심 자리에 머무를 때 비로소 신묘한 조화 세계가 열리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의 대광명이 밝게 비쳐 온다.
인생의 근본을 깨달음으로써 영혼은 생명의 빛을 찾아 변화하고 육신은 성결(聖潔)하게 되어 마침내 영원한 우주생명의 근원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다. 오직 정성과 믿음, '일심'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설 수 있다. 이 일심(一心) 자리는 천지와 나, 즉 주객이 하나로 녹아떨어진 조화 경지다.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열리는 이 절대 순수의 일심(一心)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마음자리다. 인간이 천지일심 자리에 머무를 때 비로소 신묘한 조화 세계가 열리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의 대광명이 밝게 비쳐 온다. 아득한 예로부터 인류는 천지 만물에 깃든 신령스러움을 체험해 왔다. 특히 동방 한민족은 신神에 대한 영적 체험과 믿음을 인류 시원의 원형문화인 '신교 문화'로 발전시켜 왔다. 신교(神敎)는 본래 '이신설교(以神說敎)'라는 말과 '신의 가르침으로 나와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 태일인간(太一人間)
한민족은 대우주 생명력의 본체인 조물주를 '삼신(三神)'이라 불러 왔다. 그 까닭은 조물주 일신(一神)이 현실계에서 3수의 구성 원리에 의해 낳고(조화), 기르고(교화), 다스리는(치화) 3가지 신성의 손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유불선 삼도(三道)는 삼신(三神)의 세 본성에 따라 인류사에 펼쳐진 제2의 모체 종교다.
신(一神)의 '3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신교神敎를 인류 문화의 뿌리가 된 '제1의 원형종교'(뿌리문화)라 한다면, 공자, 석가, 노자, 예수가 인류를 교화하기 위해 펼친 유,불,선,기독교(西仙)는 세계 문명의 원형 종교인 신교神敎에서 분화한 '제 2의 종교(줄기문화)'라 할 수 있다.
대자연의 신비를 풀고 인류 구원을 성취하는 또 다른 길은 과학이다. 그러면 과학은 어떤 세계를 추구해 왔을까?
인간은 우주의 신비를 풀기 위해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법칙'을 찾아 왔다. 그리하여 가설을 설정하고 자연에서 보고 관찰한 경험을 통해 이를 검증함으로써 합리적인 법칙을 세우게 되었다. 과학은 이처럼 자연을 탐구하고 분석하여 체계적인 법칙과 이론을 정립함으로써 우주의 신비와 그 변화 현상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 왔다.
현대 문명은 과학의 발달과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인간의 사고와 삶의 질도 놀랍게 진화했다. 우주의 생성 과정과 극미 세계의 신비를 밝힌 현대 물리학의 연구 성과는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현대 물리학에서 내놓은 새로운 세계관이 일찍이 종교에서 밝혀 놓은 우주관에 접근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랐다. 물질세계의 가장 깊은 곳까지 추적해 들어간 물리학자들은, 정신과 물질은 '한 몸'이 되어 작용하며 만물은 아무것도 없는 듯한 '텅 빈 공空' 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놀라운 모습을 발견했다.
이 우주의 현상 세계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만물의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밝힌 이 경계는 나와 우주 만물을 초월한 물아양망(物我兩忘) , 망형망재(忘形忘在)의 경지로서, 바로 이 종교에서 말하는 대우주 조물주 조화옹의 마음자리다.
종교와 과학은 우주의 신비를 파헤쳐 궁극으로 인류 구원을 성취하려는 점에서 그 목적이 동일하다. 다만 서로 방법을 달리하여 시간과 공간, 정신과 물질의 근본자리(일심)에 대한 해답을 추구해 왔을 뿐이다. 종교 세계에서는 만유 생명의 바탕인 마음을 텅 비우고 선정과 기도 생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조화세계인 하느님의 마음자리를 체험해 왔고, 과학자들은 수학적 이론과 정교한 과학적 기술을 이용하여 이 영원의 자리를 밝히고자 했다.
현대 문명을 이끌어 온 오늘날 제2의 종교는 '도의 원형 뿌리 문화'인 신교神敎와 단절되어 그 근본 가르침이 오도되고 생명력 또한 고갈되어 숱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제 인류는 제2의 세계 종교가 안고 있는 대립과 모순을 극복하고 보편적인 세계 구원을 성취할 수 있는 '제3의 초종교(열매문화)'가 출현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인류의 시원 모체 문화인 신교神敎를 태동시키고 제2의 종교문화를 발생시킨 동양의 유구한 영적 유산과 전통을 생각할 때 그러한 제3의 초종교도 역시 동양에서 태동하리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로마 시대로부터 전해지는 '빛은 동방으로부터!(exoriente lux)'라는 경구는 혼란과 전환의 시대에 언제나 동양에서 구원의 빛이 비쳐 온다는 섭리를 간파한 명구다.
인류 문명의 극적인 대전환기를 맞이한 오늘, 제3의 초종교의 출현과 함께 세계 구원의 빛이 동방에서 비쳐오고 있다. 인류의 열매 문화인 이 초종교의 출현은 문명의 양대 산맥인 종교와 과학을 통합하는 길이기도 하다. 종교와 과학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진리 세계를 나무로 비유하면, 종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의 근본(道) 자리인 뿌리를, 과학은 현상 세계(物)에 해당하는 줄기를 해명해 준다. 사실 종교가 부르짖는 이상 세계는 과학의 도움 없이 구현 될 수 없으며 과학이 해명하고자 하는 인간과 우주의 신비는 내적 통찰과 종교적 깨달음의 도움 없이는 풀 길이 없다. 이 양자를 하나로 조화시켜 천변만화하는 인간 세상을 마침내 영원한 평화의 꽃받으로 가꾸고 유불선 기독교의 우주관과 구원관을 통일하는 역할을 철학이 성취하게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우주의 본체는 무엇이고 그 본체는 어떻게 현상 세계를 열어 가는가' 하는 문제를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그러한 인간의 탐구욕이 철학의 세계를 열어 놓았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약 1만 년 전부터 음양의 체용體用관계의 세계를 열어 놓았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약 1만 년 전부터 음양의 체용관계로써 역易철학을 정립하였고 서양에서는 본체론과 우주론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양 철학은 변화의 본체와 작용을 총체적으로 해명하지 못하고 이론의 대립과 모순을 남김으로써 우주 변화의 원리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이제 인류의 통일 문화를 열기 위해서 인간 지성은 종교와 과학의 한계를 극복할 제3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길이 바로 '통일된 우주 원리'를 제시하는 '동양의 역易'철학이다.
본래 공자는 자신의 학문에 대해 ‘나는 전해진 것을 기술하였을 뿐 창작하지 않았다(述而不作)’고 했다.
공자가 그 시대까지의 민요와 역사 기록을 모아 엮은 유교의 주요 경전인 『시경』이나 『서경』 등에는 두렵고도 공경스러운 상제님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특히 『서경』에는 ‘항상 덕을 잘 닦아 상제님의 천명을 보존해야 한다[存命]’고 가르치고 있다.
본래 원시유교에서 섬긴 ‘하늘’은 인간과 만물에게 직접 천명(天命)을 내리는 인격적인 하늘(상제천)로서 만물을 주재하는 ‘주재천主宰天’, ‘인격천’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상제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천명天命을 내리며, 인간과 신들의 상벌을 주관하시면서 감정과 의지를 드러내시는 ‘인격신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공자는 이후 『논어』에서 하늘[天]을 인격적인 상제천보다는 자연천과 도덕천, 그리고 운명천의 개념으로 더 많이 언급하고 사후死後와 귀신의 문제는 언급을 꺼렸다. 또한 한 무제 때에 이르러 유학자 동중서董仲舒(BCE 170~BCE 120)는 “도지대원道之大原이 출호삼신出乎三神”이라는 신교의 가르침을 “도지대원道之大原이 출어천出於天”이라고 바꾸어 버림으로써 유교의 천天이 본래의 인격적인 상제천에서 더욱 멀어졌다. 그리하여 인격 주신인 상제님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기 시작하였으며,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삼신상제님에 대한 신앙은 사라져갔다.
제2의 공자로 불리는 주자朱子(1130~1200)는 당시 성행하는 도교와 불교에 대항하여 원시유학의 부족한 이론체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유교의 주요 경전들을 정리, 주석을 달고 ‘우주의 시원이자 주재는 곧 태극(理)’이라는 등의 형이상학적인 논리를 세웠다.
그는 ‘우주 이법의 주재자로서 상제님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학자가 다 말할 수 있는 경계가 아니며,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세계’라 하며 언급을 회피했다. 주자의 이러한 태도는 유교의 ‘天’을 상제천(인격천)에서 의리천義理天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후 성리학은 사변적 이론에만 치우쳐 유교의 ‘인간적이고 정감적인 상제의식’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의 학자들에게 상제신앙[上帝天]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천거했던 서애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주었다.
깊은 밤 어둠 속에 상제님께서 내게 임하시네. 방안 깊숙이 홀로 있는 곳에도 신명이 살피고 계신다. … 삼가하고 두려워하여 상제님의 법칙대로 따를지어다. 또 박세당(1629~1703)은 도덕적 의지가 있는 인격적인 하늘을 참되게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예송 논쟁을 이끌었던 윤휴(1617~1680)는 경전 속에서 고대의 상제신앙을 찾아내어 하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수양 방법을 제시했다.
이러한 윤휴의 사상은 훗날 다산사상의 초석이 되었다. 다산 정약용은 실학의 집대성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고대 유교문화에서 섬겨온 ‘하늘의 주재자이신 상제님 문화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산은 젊어서 한때 천주교에 심취하여 전도까지 한 일이 있었으나, 조상을 우상이라 여기고 신주를 불태우는 행태에 분노하여 신앙을 버렸다.
그 후 그는 유교의 본질이 상제신앙에 있음을 깨닫고 주요 경전 속에 드러난 상제사상을 정리하여 방대한 주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성리학의 관념적인 천天 개념을 비판하였다. 다산 철학의 출발점이자 근간은 한마디로 동방의 인격 주신의 상제천, 즉 상제님의 천명을 세우는 일이었다.
상제님이란 누구신가? 이는 천지신인天地神人 밖에서 그것들을 조화하고 재제안양宰制安養하시는 분이다.
상제를 하늘이라 이르는 것은 마치 국왕을 ‘나라’라 하는 것과 같다. 저 푸르고 형체를 갖춘 하늘을 가리켜 상제라 하는 것은 아니다. 일음일양으로 운동하는 위에 분명히 이를 주재하는 조화의 근본(상제님)이 있다.
다산은 성리학자들이 하늘을 감정도 형체도 없는 ‘도, 태극, 리理’ 등 극히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다산의 견해는 조선 후기, 주자학 일변도의 학풍 속에서 이단시되었으며 이후 상제문화는 안타깝게도 또다시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몰락한 양반 집안의 서자로 태어난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선생은 정성을 다해 기도에 정진하던 중 마침내 37세 되는 1860년 4월 5일, 천상의 하나님을 친견하였다.
왈 물구물공
曰 勿懼勿恐하라.
세인 위아상제 여부지상제야
世人이 謂我上帝어늘 汝不知上帝耶아.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동경대전』「포덕문」)
상제님께서는 최수운선생에게 시천주(侍天主) 呪文을 내려 주시고 “천강서天降書를 내려 대도를 열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주사의 새 장을 열어 놓은 하나님과의 ‘천상문답(天上問答) 사건’이다.
최수운선생은 ‘인류에게 새 역사가 열린다는 것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天命을 받고 ‘머지않아 상제님이 인간으로 강세하시어 萬古에 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출현한다는 것과 공자, 석가, 예수의 인간 성자 시대를 마무리하고 성부 아버지의 친정시대가 열리게 된다는 구원 소식을 전하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내 아들이니 나를 아버지라 부르라.” 하시니 최수운선생께서 그 가르침을 공경하여 아버지라 불렀다. (『도원기서』)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용담유사』)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용담유사』)
“너는 어찌 상제를 모르느냐!”, 이것은 ‘네가 구도자로서 어찌 도의 주재자, 상제를 모르느냐? 상제님을 망각하고 사는 네가 진정한 구도자냐?’하고 꾸짖는 말씀이다. 이것은 비록 최수운선생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사실은 하나님 문화의 뿌리인 상제 문화를 망각하고 사는 한민족과 전 인류를 향해 꾸짖으신 것이다.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선생은 하나님이신 상제님께서 “너에게 무궁무궁한 도법을 주노니 닦고 다듬어 수련하여 글을 지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케 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1:8:14) 하신 하나님의 천명을 받들어 시천주 주문을 받아 내려 세상에 선포하였다.
시 천 주 조 화 정 영 세 불 망 만 사 지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지 기 금 지 원 위 대 강
至氣今至願爲大降
그리고 최수운선생은 ‘천주님이신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펼치는 새 진리, 무극대도無極大道가 머지않아 출현한다는 것과 질병란으로 온 세계가 다시 개벽된다’는 소식을 널리 전했다.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런가.『(용담유사』)
상제님의 강세와 출세 소식을 전했던 최수운선생은 상제님께서 다음과 같은 영광스런 명命을 받게 된다.
汝는吾子이니 爲我呼父也 하라.
너는 내 아들이니 나를 아버지라 부르라.『(도원기서』)
이 말씀에 따라 최수운선생은 1864년 순도하기 전까지 상제님을 아버지라 불렀다. 상제님을 ‘인간과 천지신명, 천지 만백성의 아버지’로 인식했던 것이다.
예수님과 하느님의 관계
마가복음 14장62절을 보시면 '인자가 권능자 우편에 앉은 것'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인자(人子)는 영어 원본 성경을 보면 “그 사람의 아들” 이라고 나온다. 권능자는 mighty one이라 하여 하느님을 별도로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요한계시록 20장11절을 보시면 요한이 보니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까 권능자께서 의자에 앉아계셨다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권능자가 앉는 의자를 흰 보좌라고 표현했고, 그 위에 앉으인 분이라고 분명이 묘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느님 아버지가 따로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발한 책이 소설가 이문열씨가 쓴 '사람의 아들' 이다. 이 책에 예수님이 성자의 반열에서 하느님 성부의 반열로 변질되는 기독교 역사를 정리해 놓은 부분이 있다. 실제 예수님 자신 스스로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의 대행자로 왔음을 알리는 성경구절을 알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7편28장에 예수께서 가로되,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다. 그가 나를 보내셨음' 이라고 되어 있고, 12장 49절에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게 친히 명령하여 주셨다' 는 구절이 나온다. 이로써 예수를 보내신 아버지가 얼굴없는 하나님이 아닌 인격신으로 따로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구원관의 핵심이 재림 예수인데, 사실은 아버지 하느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1장5절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1장8절을 보면 '나는 장차 올자' 라고 하였다.
기독교의 교리가 2000년을 거쳐오면서 많은 부분이 왜곡되었다. 예수님이 그토록 외쳤던 아버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했다. 만약..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아버지였으면 그렇게 외치지 않았겠죠. 구약의 왜곡은 더 심각하다. 야훼하느님은 또 누구인지. 야훼를 보통 예수님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지 보겠습니다.
민족신 여호와의 유일신 숭배 역사
구약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은 엘, 엘로힘과 여호와가 있다. 엘 은 강한 자를 뜻하는 말로 헤브루(Hebrew : one from across the river,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뜻)족의 원뿌리인 수메르족이 하느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헤브루는 유대족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이다. 헤브루족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가나안 지방의 전쟁신인 여호와를 엘 대신 하느님으로 지칭하게 되었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 란 뜻으로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의 주체인 하느님을 가리킨다. 헤브루인들이 처음에 하느님이라 지칭하였던 엘이란 말 대신에 여호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규합하여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민족해방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계약 공동체를 이루면서 새로운 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모세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름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여호와'에게서 조상 전래의 하느님을 재인식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원래 여호와는 시나이 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부족의 지방신이었다. 여호와는 호렙산(시나이 반도)에서 처음으로 모세(레위 지파)에게 나타나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여호와가 금방 모든 유대인들의 신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유대족들이 가나안의 농경지역(팔레스타인)을 정복하면서부터 여호와는 부족의 전쟁신으로 전면에 떠오르게 되었다. 여호와는 이 기간 이스라엘, 즉 유대민족의 전쟁신이 되어 자신의 백성들을 모든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어 준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사바오트(Sabaot : 전쟁신)라는 여호와의 별명이 생겨났다.
유대인의 민족신 여호와는 팔레스타인의 토착민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라고 명령한다. 여호와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이러한 살상을 감행하도록 끊임없이 부추겼으며 유화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이를 완강하게 질책하였다. 예를 들면 여호와는 사울왕이 아말렉인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해서 그에 대한 축복을 거두었다.
반면에 여호와가 총애했던 다윗왕은 단순히 그가 정복한 나라의 족속들을 모조리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아예 상당히 가학적인 즐거움을 찾았다. 유대 종교사에서 포로기 이후는 유일신관의 강화가 절정에 달해 새롭게 전환되는 시기다. 이 때 소부족의 지방신에 지나지 않았던 여호와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세계의 창조주, 온 우주의 주(主)로서 절대 주권자로 숭배하게 되었다. (세계의 종교, 세르게이 토카레프, 한국종교연구회 옮김, 1991)
유대족의 지방신인 여호와가 초월신으로 변질되는 과정
바빌론에 포로가 되어 갔던 유대인이 그들의 포로 경험을 통해 그때까지 자기들의 신은 자기 민족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부족신관이 얼마나 허황했던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참담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보편신(Universal God)이라는 새로운 신관을 갖게 되었다. 이리하여 제 2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에서는 한 민족만을 위한 전투적이고 무자비한 신은 사라지고 만국을 통치하는 보편 신(Universal God)의 생각이 등장하게 된다. (예수는 없다, 141쪽,179쪽)
왜 예수님은 하느님으로 둔갑하게 되었는가?
예수 사후 313년 니케아 공의회때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가 싸우게 되고 예수님이 단순한 선지자냐 하느님이냐를 가지고 싸우게 된다. 그리고 로마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게 된 이후에는 예수님이 하느님으로 둔갑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바울이 만들어 놓은 바울 신학이 있다. 바울은 단 한번도 예수님을 만난적이 없다. 오직 사막에서의 영적 체험만 가지고 바울신학을 만들었다.
1) 예수가 아니라, 아버지가 오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누가복음 4:43)
2) 예수를 믿지 말고 아버지를 믿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18)
3) 구원은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 진다
이르시되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가복음 14:36)
예수님이 하느님으로 왜곡된 과정
1) 제자들에 의한 예수님 왜곡 과정
예수에게는 12제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성경을 만들때 성령을 받아서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와 누가 복음은 서로 일치하지 않다. 마가는 세례요한으로 부터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기에 거기서 하느님의 정통성을 찾았고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하여 로고스적 하느님으로 예수를 증거하고 있다.
마태,누가는 동정년 마리아로부터 아버지 없이 영으로 잉태된 분이 예수님이기에 예수님이 하느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이는 정녕 따로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7장 21절~23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종교회의 통한 예수님 왜곡 과정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때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간의 대립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초기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아버지 하느님이 아니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264년이 지나 톨레도 회의때는 예수님에게서도 성령이 발생 가능성을 처음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성령은 아버지에게서만 내리는 것으로 알았지만, 예수님도 성령을 내릴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영적 지위가 인간에 의해 계속 변해갔다. 그리고 나서 1054년에 이 휠리오케Filioque 문제로 동서교회가 나뉘게 된다. 동방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서방의 교회가 내부 부패되어 칼뱅에 의한 종교개혁을 계기로 천주교와 기독교로 나뉘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전세계 81억 인구 중 기독교는 약 7%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원래 살던 갈데아 우르 지역은 원래 수메르 우르지역이었다.
수메르는 기독교문명을 낳았던 최초의 서양문명이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출토된 길가메쉬 서사시다. 성경과 똑같은 홍수신화 뿐아니라 창조신화, 에덴동산, 바벨탑이야기와 다신문화도 그대로 똑같다. 그럼 이 수메르인은 어디서 왔을까요?
수메르문명의 최고 권위자 크레머 박사는 제사장과 왕을 동일시 하는 문화, 그리고 학교에서 선생님을 스승이자 아버지로 불렀던 군사부일체 문화가 모두 동방에서 왔다고 결론 내렸다.
범준(范浚)이라는 사람이 그의 좌우명(座右銘)에서
"참위 삼재(參爲三才)하니 왈유심이(日惟心爾)로다"라고 했었다. '삼재'란 천지인, 즉 하늘 . 땅 · 사람인데 여기서 사람이라 하면 사람의 심령, 영혼을 말한다. 육신은 조금 살다가는 죽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심령, 내영혼이 주체가 돼서 천지인 삼재에 참여하게 된다' 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서는 영혼과 육신이 합일해서 사람 노릇을 하고, 죽어서는 육신은 없어도 내영혼, 신명(神明)이 사람 노릇을 한다. 그러면 사람과 신명神明이라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 사람은 '육신이 있는 사람' 이요, 신명은 '육신이 없는 사람' 이다. 신명은 육신만 없을 뿐이지 역시 똑같은 사람이다.
예컨대 박갑순이라는 사람이 죽었는데 박갑순에게 욕을 퍼부으면, 육신은 없지만 박갑순의 영혼, 신명이 그것을 듣고서 "저 나 쁜 놈, 내게다 욕을 한다"고 하면서 앙갚음을 한다. 육신도 박 갑순이요 신명도 박갑순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무신론자도 많지만, 인간이란 육신만 있다고 해서 완성품이 아니다. 살아 있는 육신이 50 퍼센트요, 죽어서의 신명이 또한 50 퍼센트다. 육신이 50 퍼센트 박갑순이고, 신명이 50 퍼센트 박갑순이다. 육신과 신명이 합해서 100 퍼센트 박갑순이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육신은 없어졌지만 그 죽은 사람들의 신명, 영혼은 육신이 없는 사람 노릇을 하고 있다. 육신은 살다가 생로병사에 의해 죽어지면 끝이 난다. 하지만 신명은 그렇게 죽는 것이 아니다. 닦은 바에 따라서 천 년도 가고, 만 년도 가는 것이다. 그리고 신명세계는 사람 세상보다도 백 배 이상 더 밝다. " 지지여신(知之如神)이라" , 아는 것이 신명과 같다는 말이다. 신명神明은 태양보다도 더 밝은 것이다.
道典 8:32) 하루는 상제님께서 어느 마을을 지나시는데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거늘, 정작 제사 받는 신명은 마당을 겉돌고 다른 신명이 들어가 제사상을 받고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그 신명을 부르시어 “저 사람의 날인데 어찌 네가 먹느냐?” 하시니 그가 답하기를 “저 사람이 살아생전에 저의 재산을 모두 탕진시킨 채 갚지 못하였는데, 죽어서도 그 은혜를 갚지 아니하니 오늘은 비록 자기 날이라고 하나 저의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하니라. 후에 상제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치 없는 법은 없느니라.” 하시니라.
죽으면 아주 죽느냐? 매미가 허물 벗듯이 옷 벗어 놓는 이치니라.” 하시니라.
道典 4:126) 먹장난하다 한 맺고 죽은 신명을 위로하심
하루는 경석에게 “검은 두루마기를 가져오라.” 하여 입으시고, 또 속옷을 벗으시고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신 뒤에
여러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이리하면 일본 사람과 같으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같습니다.” 하니라. 이에 다시 벗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에 한 아이와 더불어 먹장난을 하였는데,
그 아이가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 오지 않고 다른 서당에 다니다가 그 후에 병들어 죽었거늘 그 신명이 그 일로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나에게 와서 해원시켜 주기를 원하므로 ‘어떻게 하면 해원이 되겠느냐?’ 물으니 그 신명이 내가 일본옷을 싫어하는 줄 알고 ‘일본옷을 입으라.’ 하므로 내가 이제 그 신명을 위로함이로다.” 하시니라.
道典 2:118) 사람이 죽음의 질서에 들어가면
김송환(金松煥)이 사후(死後)의 일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손을 둔 신은 황천신(黃泉神)이니 삼신(三神)이 되어 하늘로부터 자손을 타 내리고 자손을 두지 못한 신은 중천신(中天神)이니 곧 서신(西神)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9:213) 사람은 죽어서도 공부를 계속한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는 것도 때가 있나니 그 도수를 넘겨도 못쓰는 것이요, 너무 일러도 못쓰는 것이니라. 나의 명으로 명부에서 데려오라고 해야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또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하시니라.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천지에만 빌어도 안 되나니 먼저 조상에게 빌고 그 조상이 나에게 와서 빌어야 뜻을 이루느니라.” 하시니라.
남북극 빙하가 대량으로 녹아내리는 이유?
도교는 본래 신교의 신선사상[仙脈]을 바탕으로 생성된 종교다.
중국의 문헌을 살펴보면 신선사상이 등장하는 것은 대체로 BCE 4세기 이전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신선 계보를 적은 조여적의 『청학집』에는 ‘동방선파의 조종’을 ‘환인’까지로 소급하여 말하고 있다. 『청학집』에는 “환인진인桓仁眞人이 동방선파東方仙派의 조종이고, 환웅천왕桓雄天王은 환인의 아들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동방 신선문화의 조종祖宗은 바로 환국의 환인천제라는 것이다.
『사기』에 의하면 신선사상이 성행한 발해 연안 주변의 제왕 가운데는 진시황처럼 삼신산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도교는 훗날 황제와 노자의 학설로 이론 체계를 세우고 교단을 확립하여 황제와 노자를 시조로 받들었다. 도교는 대체로 황제와 노자를 시조로 삼고 있어서 황로지학黃老之學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교의 개설서인 『운급칠첨雲핞七籤』에는 신농씨의 후예인 광성자가, 두 차례나 찾아와 간절히 도를 구하는 황제에게 ‘대자연의 허(虛)를 네 몸으로 삼으라(以虛爲體)’ 하여 선도의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도교의 주요 경전인 『포박자抱朴子』에도 “옛날, 황제가 동쪽 청구靑邱쫮 땅으로 가서 풍산을 지나 치우천황의 국사國師인 ‘자부’를 뵈었다. 그는 자부 선생에게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전수 받고 크게 깨달아 모든 신령스런 존재들과 교류했다”는 기록이 있다.
자부선사는 배달 시대 치우천황의 국사國師였다. 그리고 헌원은 한때 ‘운사雲師’라는 벼슬을 맡아 치우천황의 신하로 있었다. 그러니 환국의 환인천제로부터 전해 내려온 신선의 도를 정리한 분은 황제의 스승인 자부선사이고, 신선문화를 실제로 동북아에 생활문화로 크게 전한 분은 치우천황이다.
자부선사는 인류 문명의 시조이며 우주 수학의 조상이신 태호복희씨와 동문수학한, 신선 발귀리의 후손이다. 뿐만 아니라 『관자』에는 “옛적에 황제 헌원은 치우(천황)를 뵙고 천도(天道)를 환히 알게 되었다”고 했다.
도교의 또 다른 시조인 노자는 산동성 지역의 동이족 사람이다. 노자는 자신의 성을 한韓씨에서 동방을 상징하는 ‘나무 목木’ 자가 들어 있는 이李(동방의 아들이란 뜻)씨로 바꾸었다. 공자에게 예를 가르쳐 주었다는 노담이 바로 이 노자다.
천제문화의 근원이 배달과 조선(고조선)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고 있던 노자가 말년에 함곡관을 넘어 서쪽으로 갈 때 수문장 윤희에게 『도덕경』 81장을 전해 주었는데, 이 사건이 천자문화가 동방에서 왔음을 뜻하는 ‘자기동래紫氣東來’의 유래가 되었다. 이 명구는 청나라 건륭제 때 지은 이화원?和園의 동문 입구(만수산萬壽山의 동쪽 기슭에 있는 성문)와 심양의 고궁에서도 볼 수 있고, 중국 전역에 있는 조선족의 상가나 음식점 현판에서도 자주 보게 된다.
결국 황제와 노자는 혈통적으로나 학맥적으로 모두 동이족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따르면 천지는 무너졌다가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고 한다. ‘천지가 새롭게 형성되면 원시천존이 대라천 중앙에 있는 옥경에 나타나거나 궁상窮桑의 들판으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도의 비법을 가르쳤다. 그때 수많은 천선天仙들이 모두 도의 근원이자 본체인 원시천존으로부터 도를 전수 받는다’는 것이다.
도교의 신앙 형태 역시 신교(神敎)를 계승하고 있다. 본래 신교神敎는 태고시대로부터 북극성, 삼태성, 북두칠성이라는 하늘의 세 신성한 별들을 섬겨왔는데 도교에도 태일太一, 삼청三淸, 칠성사상이 있다. 먼저, 하늘의 모든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도는데 그 중심별을 태일 또는 태을太乙이라고 한다.
그리고 삼청(옥청, 상청, 태청)의 세 신은 도교의 근본이 되는 신으로 도교의 모든 행사에 반드시 모셔지고 있다. 혹자는 최고신인 원시천존이 셋으로 나뉜 분신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 분인 신(하나님)이 삼신으로 작용하여(一卽三, 三卽一), 만물의 생성과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며 만물을 낳고 기른다는 신교의 삼신관과 동일하다.
칠성 또한 도교에서 매우 중요하게 받들어졌다. 조선 초기의 중신인 변계량卞季良(1369~1430)은 도교 사원인 소격전에서 기도를 올리면서 상제님이 계신 북두칠성의 조화를 이렇게 찬양했다.
'저 푸른 것이 하늘인데, 비록 소리도 냄새도 없으나 북쪽하늘에 북두가 있기에 상서로움과 재앙을 내릴 수 있사옵니다.'
한편 명실상부한 ‘도교의 하나님이신 최고신’으로 가장 널리 모셔지는 분은 ‘천상 옥경의 옥황상제님’이다. 옥황상제님은 위계 조직을 갖춘 여러 천신들을 지휘하며 인간과 신들을 다스리신다. 천신들은 인간 세상에서와 같이 해마다 자신의 직무를 상제님께 보고하는데, 그 업적에 따라서 상벌과 위계가 정해진다. 인간의 운명도 신들이 보고한 선악의 공과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본래 도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과 구원의 목적은 도의 주권자인 상제님을 친견하여 ‘천명과 신교’를 받는 데 있다. 그런데 이후 도교는 노자, 장자 이후 후대로 내려오면서 사변철학과 무병장수를 추구하는 양생술에 치우친 나머지, 도교는 우주의 통치자요 도道의 주재자인 상제님과 멀어지게 되었다.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바로 성령의 본체인 '하느님의 마음(불성)'을 밝히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의 문을 열어 지혜와 대광명이 충만한 본래의 마음자리를 본 자를 '부처(진리를 깨달은 성인)'라 한다. 석가는 오직 천지의 성령이 드나드는 일심一心 세계를 쫒아 진리를 등불 삼고(법등명) 자신을 등불 삼아(자등명) 우주의 근원인 도道의 조화 세계로 들어가라고 가르쳤다.
불교의 최고 이상은 번뇌를 극복한 해탈이며, 영생의 道의 조화 자리에 드는 열반이다. 기독교가 성부, 성자, 성신의 삼박자 구원을 전했듯이 불교는 삼신불을 말한다. 삼신불은 법신불, 화신불, 보신불을 가르킨다.
시간, 공간이 끊어진 이 우주 자체가 진리의 몸인 법신(法神)이다. 산도, 강도, 지구도, 우주 만유가 대우주 광명 자체인 법신法神이다. 신교(神敎)에서 전하는 살아있는 삼신(三神)이 바로 법신불(法身佛)이다. 그리고 우주 진리 생명의 참뜻과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은 천지부모의 자녀인 성자요 화신(化身)으로서 그 목적을 깨닫고 심법을 연 이를 깨달은 자, 부처(화신불化身佛 )라 한다.
보신불(報身佛)은 단순한 부처의 경계를 넘어 과거 무량한 시간을 통해 온갖 수행을 거쳐 진리와 하나 되어 나타난 몸으로 창생에게 은혜를 내려 주는 부처를 말한다. 3천 년 전, 이 세상을 다녀간 석가는 하느님의 마음(법신불)자리에서 천명(天命)을 받고 강세한 화신불(化身佛)이다.
사법계관(四法界觀)
석가가 40년 이상 설법한 주제는 생명의 근원인 마음(一心)이다. 마음에는 유형과 무형의 세계를 파악하는 '식識'이라는 작용이 있다. 불가에서는 이 식識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밝힌 '유식설(唯識說)'을 전하는데 유식설唯識說에서는 모든 존재는 마음의 작용인 식(識앎)에 의해서 나타나는 가상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의 식識에는 가장 먼저 육체를 통해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5식識(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있다. 이 감각 기관의 5식識을 통일하는 주체가 의식인 제6식이다. 이 제6식의 뿌리가 되는 근원적인 자아의식, 강력한 자기 통일의식을 제7식 말나식이라 한다. 그리고 마음의 근원인 심층의식으로서 모든 표상을 낳는 근본식이자 모든 체험과 기억의 종자를 저장하는 식이 제8식 아뢰야식이다. 이 아뢰야식을 넘어 궁극의 경계로 들어가면 우주의 절대 순수의식인 아마라식(제9식)에 이르게 된다.
불가에서 말하는 유식설의 핵심은 유,무형 세계에 대한 진리의 인식이다. 화엄경에서는 우주 만물이 존재하는 진리를 '사법계관'으로 전하고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는 선재동자의 장대한 순례 여정이 그려지고 있다. 선재는 수많은 선지식들을 만나 가르침을 받으며 남행하여 마침내 미륵불과 감격적으로 상봉한다. 미륵님은 진리를 찾아 수만 리 길을 걸어온 선재를 찬탄하고, 흔들림 없는 깨침의 세계로 들어서고자 하는 그에게 보리심의 공덕을 설한다. 이후 선재는 지혜의 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의 금강도량에 들어 중중무진(깊고 깊어 다함이 없음)의 법계로 진입한다.
'법法'은 일체의 존재에 대해 밝히는 진리를 뜻한다. '법계法界'는 유,무형의 모든 존재가 나타나는 진리의 세계다. 그리고 '법계관(法界觀)'이란 이러한 일체의 존재 세계를 인식하는 틀, 곧 세계관을 말한다. 우주 삼라만상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떠한 섭리로 벌여져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무한히 중층적인 우주의 현실 법계法界를 4단의 논리로 해명한 우주관이 화엄경에 나오는 사법계관이다. '(1) 사법계관(四法界觀) ', '(2) 이법계관(理法界觀) ', '(3) 이사무애법계관(理事無碍法界觀) ', '(4) 사사무애법계관(事事無碍法界觀) '이 바로 그것이다.
첫째는 사법계관(四法界觀)이다.
천지간에는 온갖 만물이 생겨나 희비를 연출하며 존재하지만 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으며 제각기 제2의 천성을 달리하여 태어난다. 겨울에 대지를 덮는 흰 눈송이도 그 결정 모양이 모두 다르다. 이렇듯 현상계는 진실로 변화무상한 세계다. 그런데 우리 눈에 비치는 이 변화무쌍한 다양하고 차별적인 현상세계가 그 본질에서는 차별없는 진리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이 바로 사법계관이다.
둘째는 이법계관(理法界觀)이다.
산, 바다, 식물, 동물, 사람 등 모두 다르게 보이는 화려한 현상 세계도 그 이면을 진리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모두 허상과 같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텅 비어 있는 조화의 큰 구명 속에서 생성, 변화하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벌어져 있는 것이다.
금강경에서는 '약견제상비상이면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니라'고 하여 '만물을 볼 때 그 현상들을 그대로 공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만물의 참 모습이요,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고 하였다. 천지 만물의 본질이 바로 공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근본(空)자리에서 볼 때, '천지 만물은 모두가 공성空性으로 동일하다' 는 것이 이법계관의 핵심이다.
셋째는 이사무애법계관(理事無碍法界觀)이다.
현실 세계와 그것이 생겨난 본체 세계 사이에는 모순과 걸림이 없다. 만물의 현상은 동일한 본체를 바탕으로해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무애법계관은 현상계와 본체계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 앞에 펼쳐진 만유는 생명의 근원(성부=법신불) 자리에서 벌어져 나왔으므로, 그 모체의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현상(色)이 생명의 고향인 본체(空)와 따로 떨어져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체와 일체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화려한 우주의 현상세계가 곧 영원한 생명의 고향이며, 천국과 극락으로 표현되는 생명의 본체 세계가 곧 현실 세계인 것이다. 이사무애법계관은 이처럼 본체계와 현상계가 모순과 차별이 없이 동일하다는 것으로, 현상과 본체를 통합하는 법계관이다. 현상이 곧 본체라는 것이 이사무애법계관의 결론이다. 반야심경에서는 이를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말하고 있다.
넷째는 사사무애법계관(事事無碍法界觀)이다.
천지 만물은 그것이 생겨나기 전의 생명의 근원자리와 모순 없이 일체 관계에 있으므로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도 그 상호 관계에서 모순과 걸림이 전혀 없다는 것이 사사무애법계관이다. 세상만사를 뜻대로 할 수 있는 이 경지는 신神의 무소불능한 절대 조화의 경계(일심 법계)이다.
예를 들면 천체를 비롯한 삼라만상의 본질은 1초의 휴식도 없이 운동하는 것인데 모순적이며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느님의 조화 일심一心 경지에서는 전혀 걸림이 없는 것이다. 하느님의 대행자인 석가나 예수는 만사萬事를 뜻대로 행하는 사사무애한 도권과 신권까지는 쓰지 못했다. 이 사사무애의 도리를 바탕으로 우주 만유가 삼신의 성령의 본체, 즉 일심 조화 세계로부터 벌어져 나왔다. 일심법계관이야말로 화엄경에 석가가 펼친 묘명진경한 우주의 핵심 세계관이다.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朴重彬,1891~1943)은
그의 고향인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는 일찍부터 보천교인들이 많았던 곳으로 그는 초기 교단시대부터 증산상제님을 신앙하였다. 그리고 소태산 박중빈과 함께 원불교의 2대 교주인 정산(鼎山) 송규(宋奎,1900~1962) 또한 초기 보천교 교단 시대의 신앙인이었다.
원불교에서 내세우고 있는 기본 교리의 핵심은 박중빈과 송규가 증산상제님 신앙의 과정에서 체험한 진리 내용이다. 원불교에서 불교 법신불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일원상(一圓相)은 상제님의 무극대도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원불교라는 교명을 사용하기 이전 이리(익산)에서 '불법연구회'라는 간판을 붙인 때(1919)에도 증산상제님을 신봉했다는 사실이다.
원불교 교주의 호(號), 소태산(소태는 솥을 의미)과 2대 교주 호(號) 정산(鼎山, 솥정)이 모두 성숙과 결실의 도(道)를 상징하는 증산상제님의 존호 증산(솥 증甑,뫼 산山)를 모방하였다는 점이다.
정읍 불출암 (현재 화엄사)에서 남서쪽으로 8km가면 마동이라는 데가 있다. 그곳이 바로 원불교가 처음 창시되기 시작한 곳이다. 그곳이 화해리인데 원불교 교당 앞에 보면 소태산 박중빈과 정산 송규, 두 사람이 만난 사실을 적은 비석이 있다.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대순진리회는 부산에 있는 태극도에서 갈려나와 태극진리회(1969)라고 했다가 대순진리회(1972년)라는 교명으로 서울 중곡동에 본부를 두고 설립되었다. 대순진리회에서 땅상제로 받들고 있는 조철제는 경남 함안사람으로 어려서 부친을 따라 만주 유하현(지금의 봉천지방)에 이주하여 그곳에서 김혁(金赫,보천교신도)를 만나 증산상제님 진리를 처음 접하고 보천교에 입교하였다.
그 후 1916년에 귀국하여 충남 안면도에 거주하다가 마침 그 지방을 순회하던 이치복씨를 만나 상제님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가 있으며, 1918년에는 김형렬의 미륵불교단에 가입하였고, 그 후 1925년 4월 전북 구 태인에서 스스로 무극대도교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해방 후 본부를 부산 보수동으로 옮기고 교명을 태극도라고 개칭하였다.
1958년 조철제가 세상을 뜨자 박한경과 간부들간의 종권 다툼이 심화되었는데, 이때 박한경이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중곡동에서 대순진리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독자적인 판을 차리게 된 것이다. 대순진리회는 종통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있다.
상제님께서는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세상을 여시기 위해 태모(太母)님께 종통맥을 전수하셨다. 반면에 대순진리회에서는 교주 조철제를 옥황상제라고 칭하며 증산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줄여서 구천상제)라고 하여 상제관을 왜곡시켰다.
“상제”란 ‘지존무상하신 천상의 하나님’이란 뜻으로 천지인 삼계(三界) 우주를 주재하시는 ‘한분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인간으로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상제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순진리회에서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1974년에 발간된 <전경(典經)>은 그 당시 교리 날조의 주역을 담당한 前 서울대 종교학과 주임 교수 장병길이, 1929년에 간행된 이상호씨의 대순전경(大巡典經)을 그대로 베끼고, 인위적으로 조작된 교주 조철제의 행적을 덧붙여서 만들어 낸 것이다.
대순진리회는 가정파괴, 금품사취 등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켜 비난을 받아 왔으며, 이미 TV(‘추적 60분’ 등) 및 신문지상에 그 실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상세히 고발된 바 있다.
통일교는
1954년 5월 1일 서울 성동구 북학동 391번지에서 출범한 통일교 단체의 정식 명칭은 <세계기독교 통일신령협회>다. 통일교의 교리 체계를 세운 '원리강론' 책에 증산상제님의 진리 핵심이 들어가 있다. 원시반본이 '복귀섭리' 라는 논리로, 해원은 '탕감'이라는 논리로 들어가 있다.
통일교의 메시아 강세사상 논리는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선생과 증산 상제님 다음에 문선명이 와서 세상을 매듭짓는 다고 한다. 아담과 이브에서 이브는 문선명의 부인 한학자가 왔다는 게 '메시아 종적섭리' 다. 이 횡적, 종적 섭리가 만나는 것이 천지 참부모 사상이라고 한다.
통일교는 그 산하조직인 <천주섭리사상연구원>이란 단체를 통하여<한반도의 신비와 미래상>(1986), <절대사상과 참시대>(1987), <천군비상계엄과 남북통일>(1987), <성산성지 한반도>(1987) 등의 책에서 증산 상제님의 진리를 왜곡해 자신들의 교리를 합리화 시키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증산도왜곡의 실상'(통일교편) 참조]
통일교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변색시켜 진리를 악용하고 있음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혀진 바 있다. 그 일례로 중앙일보 상무를 역임하고, 그 전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특파원 생활을 한바 있는 언론인 김영희(金永熙)씨의 견해다.
통일교의 원리가 가르치는 인간의 최종 목표는 지상 천국건설이다. 이것은 죽어서 딴 세상에 태어나 복락을 누리는것 보다는 현실 세계가 바로 선경이 되길 바라고, 미륵 용화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한민족 특유의 현세주의적 미륵신앙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은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을 '모사재천 성사재인'으로 뒤집어 인간이 神 보다 위에서 신을 부리면서 일을 성사한다고 주장했다. 통일교가 어디까지나 기독교의 한 종파인 이상 인간을 신 위에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김영희,'워싱턴을 움직인 한국인' 중에서)
이상에서 우리는 상제님 진리가 직접 간접적으로 많은 단체들이 상제님 진리를 대의에 어긋나게 왜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religion)라는 말은 불교, 기독교, 유교 등의 개별 종교들을 총칭하는 유(類)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명치)시대에 서양의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화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종교는 '부처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불교용어다.
서기 600년경 중국의 천태산지자의 저서 '법화현의'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종(宗)은 부처가 직접 설법해 놓은 것이고, 교(敎)는 이것을 알기 쉽게 강해한 것을 의미다. 그런데 서양의 'reiligion'을 번역할 때 동양에는 이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 학자들이 '릴리전'을 불가에서 쓴 '종교'라는 엉뚱한 말로 처음 번역 하였던 것이다.
본래 '릴리전(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religio'로 재결합이라는 뜻이다. 즉 죄를 지은 인간이 쫒겨났다가 다시 돌아와 신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의 릴리전이 본래 앞에서와 같은 뜻을 가진 불교의 종교로 번역된 것이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인류 원형문화 빛의 세계! (2024 세계개천문화대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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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몸을 이루는 것은 정(精,미립자) 이 정은 각각의 기(氣,고유의 에너지장)을
발하고 이기를 통제하는 것이 신(神,에너지 조절장치)이죠
性 =心 + 生으로 마음이 태어남을 의미하는바 태어날때 하늘로부터 받는 것이
혼(魂) 땅으로부터 받는 것이 백(魄) 그래서 性은 변하기 어렵죠
우리 몸을 유지키 위해 음식물(地氣)을 섭취 위장에서 소화하고
폐을 통해 천기(天氣)를 흡수 이를 태운 에지지로 활동하고 성장하고
나중에는 다시 온 곳으로 돌아 가는데
사람은 직립하면서 부터 지기를 담당하는 장기 위장이 아랫 쪽에
천기를 담당하는 폐장이 상부에 위치 함으로 氣는 온 곳으로 돌아 갈려는
性이 있어 火는 윗쪽으로 水는 아래로향해 수화가 불리되면 각자 도생이 되어
화를 수아래에 두면 水가 화의 에너지를 받아 새로운 것을 창출하죠
수행이란 화를 수아래에 두는 것 전도법 水昇火降일명 복식호흡이죠
연정화기_연기화신_연신환허 단계로 가는 데
단지 생명력 수련 명수(命修)는 화신까지이고 환허로 갈려면 정신적 수련(性修)도
해야죠 그래서 性命雙修죠 즉 우주 속의 나(我)기 때문에 우주의 의지를
읽고 대처해야죠 我을 만든 놈은 我을 자기의지데로 움직일려고 하지만
등신이가 뜻데로 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