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山에서 (외 2편)
오규원
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 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밖에
믿고 싶어 못 버리는 사람들의
무슨 근사한 이야기의 幻想밖에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근사한 이야기의 意志와 理想 속에 자라며 흔들리듯
그대의 사랑도 믿음도 나의 詐期도 詐期의 확실함도
확실한 그만큼 확실하지 않고
근사한 풀밭에는 잡초가 자란다.
확실하지 않음이나 사랑하는 게 어떤가.
詩에는 아무 것도 없다. 詩에는
남아 있는 우리의 생밖에.
남아 있는 우리의 생은 우리와 늘 만난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게.
믿고 싶지 않겠지만
조금도 근사하지 않게.
커피나 한 잔
커피나 한 잔, 우리들께서도 커피나 한 잔, 우리들의 緘默. 우리들의 拒否께서도 다정하게 함께 한 잔. 우리들을 응시하고 있는 窓께서도, 窓 밖에서 날개를 비틀고 있는 새께서도 한 잔. 이 50원의 꿈이 쉬어가는 곳은 50원어치의 포도덩굴로 퍼져 50원어치의 하늘을 향해 50원어치만 웃는 것이 技巧主義라고 우리들은 누구에게 말해야 하나.
容納하소서 技巧主義여, 技巧主義의 시간이여 커피나 한 잔. 살의 事實과 살의 꿈을 지나 살의 노래 속에 내리는 확인의 뿌리께서도 한 잔 드셨는지. 저 바람의 비난과 길이 기르는 불편한 발자국도 그 길 위에 쌓이는 음울한 死者의 목소리를 지나 우리들께서는 무엇을 확인하시려는가, 우리들께서는 그 敗北로 무엇을 말하시려 하는가.
풀잎은 理由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풀잎은 풀 때문에 흔들린다고 잠 못 드신 들판께서도 피곤하실 테니 커피나 한 잔.
한 잎의 여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끄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나는 정말로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오규원 제 3시집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 1978년 9월 1일 초판 1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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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吳圭原 / 1941~2007. 본명은 규옥圭沃. 경남 밀양군 삼랑진 출생. 동아대학교 법학과 졸업. 1968년 10월 《現代文學》에 김현승 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 시집 『분명한 事件』 『巡禮』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외. 시 창작 이론집 『현대시작법』 등. 1982~2002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