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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는 사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4-30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26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27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29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30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군자 중의 군자
논어의 위령공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왈 ; 군자의이위질, 예이행지, 손이출지, 신이성지, 군자재!
子曰 ; 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로움으로 바탕을 삼고, 예로써 그것을 실천하며, 겸손하게 그것을 말하고, 신의로써 그것을 이룩한다. 그래야 군자이다!”
모든 사람이 군자 되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물론 돈도 많이 벌고 권력도 있고, 명예도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역사에 그 이름을 누대에 알리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더 바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군자 되기를 더 소망할지 모릅니다. 군자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단한 자기 수련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언행이 일치되어야 하고, 배운 것을 실제로 실천하며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공자는 군자를 의로움에 바탕을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의로움은 하느님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정의로운 삶이며 옳은 일을 올바르게 하려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옳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을 ‘효율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일에 기교를 부려 일을 빨리하고 효과가 높게 하는 것이 효율성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하는 것이 효율성이 좋은 것입니다. 우리사회가 정의가 상실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시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로써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는 겸손하게 배운 것을 익히는 것이며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하느님의 품을 떠나지 않고 그분의 품에 평안함을 누리는 것이 예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실천하는 것을 예의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예절을 형식적인 관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직장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예입니다. 학교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는 것이 바로 예이며,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여 자녀를 기르는 것이 예인 것이고, 가정주부가 가정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예인 것입니다. 예로써 실천한다는 것은 배우고 익힌 것을 최선을 다해서 실행에 옮긴다는 말입니다.
겸손하게 말한다는 것은 내 주장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경청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용기를 가지고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말하는 것이며, 내 생각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하느님의 뜻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말을 할 때에도 자신들의 당리당략을 우선 말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겸손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은 신뢰로써 이룹니다. 상호 신뢰와 절대적인 믿음으로써 완성됩니다. 군자는 하느님의 뜻을 믿음으로써 완성하기를 소망하고 언제나 그 뜻을 헤아려 살피기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잠시라도 하느님의 뜻을 벗어날까봐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그래서 군자의 행동을 근신(謹愼)한다고 합니다. 행여 하느님의 뜻을 그르칠까봐 조심하는 것입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 군자는 조심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을 군자 중의 군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하느님의 정의로움에 바탕을 두어 메시아의 길을 닦으려고 준비하는 사람으로 파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의롭게 살았고, 정의를 갈구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예로써 하느님의 뜻을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메시아를 맞아들이라고 사람들에게 촉구했습니다. 스스로 광야에서 고행하며 회개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헤로데에게는 강력하게 그 잘못을 규탄했으며, 사람들에게는 세례를 받고 새 사람이 되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믿음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군자 중의 군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권력과 황금과 명예의 노예가 되어 하늘나라를 핍박하고 박해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옳지 않은 쪽으로 세상을 몰고 가고 있다고 개탄하십니다. 그 속에서 정의의 길을 걸으며 군자의 길을 걷고 있는 세례자 요한을 닮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를 닮아서 진정한 군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구세주의 탄생을 앞두고 우리가 군자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의에 살고, 예로써 실천하고, 겸손하게 말하며, 믿음으로써 완성하는 군자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은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4,1-10
1 환성을 올려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즐거워하여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아들들이 혼인한 여인의 아들들보다 많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너의 천막 터를 넓혀라. 네 장막의 휘장을 아낌없이 펼쳐라. 네 천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3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고 네 후손들이 뭇 나라를 차지하여 황폐한 성읍들에 자리 잡을 것이다.
4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수치스러워하지 마라. 네가 창피를 당하지 않으리라.
네 젊은 시절의 부끄러움을 잊고 네 과부 시절의 치욕을 네가 다시는 회상하지 않으리라.
5 너를 만드신 분이 너의 남편,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의 구원자, 그분께서는 온 땅의 하느님이라 불리신다.
6 정녕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 아파하는 아내인 양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8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
네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9 “이는 나에게 노아의 때와 같다. 노아의 물이 다시는 땅에 범람하지 않으리라고 내가 맹세하였듯이
너에게 분노를 터뜨리지도 너를 꾸짖지도 않겠다고 내가 맹세한다.
10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축일 : 12월 15일 성녀 비르지니아 첸투리오네 브라첼리 (Virginia Centurione Bracelli)
신분 : 과부, 설립자, 수녀
활동 지역 : 제노바(Genova)
활동 연도 : 1587-1651년
같은 이름 : 버지니아, 첸뚜리오네
성녀 비르지니아 첸투리오네 브라첼리는 1587년 4월 2일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공화국의 총독을 역임(1621-1622년)한 조르지오 첸투리오네(Giorgio Centurione)와 렐리아 스피놀라(Spinola)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전통적인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세례성사를 받은 그녀는 어머니와 가정교사로부터 신앙과 문학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비르지니아는 봉쇄 수도생활에 대한 성소를 느꼈지만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1602년 12월 10일 가스파레 그리말디 브라첼리(Gaspare Grimaldi Bracelli)와 결혼을 했다.
그녀의 남편인 가스파레는 저명하고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지만 도박에 깊이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다. 비르지니아는 결혼 생활을 통해 렐리아(Lelia)와 이사벨라(Isabella) 두 딸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스파레 브라첼리는 결혼을 한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쾌락에 빠진 생활을 포기하지 않아 결국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다. 비르지니아는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기도와 애정을 갖고 남편을 겸손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이끌려고 노력했지만, 불행히도 병약해진 남편은 1607년 6월 13일 이탈리아 서북부 알레산드리아(Alessandria)에서 사망하였다. 신앙심 깊은 비르지니아는 남편이 하느님 안에서 은총과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었다.
20살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된 그녀는 평생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며 아버지가 제안한 재혼의 기회를 거절했다. 그녀는 시댁에 머물며 자녀들을 교육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기도와 자선 활동에 전념하였다. 1610년 가난한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특별한 소명을 느낀 비르지니아는 아버지의 엄격한 통제 하에서도 가문을 훌륭히 지키며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재산의 반을 가지고 개인적 또는 자선기관을 이용해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두 딸이 결혼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자 그녀는 버려진 아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병든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소외된 이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전적으로 투신하였다.
1624년 가을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리구오리(Liguori) 공화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사부아(Savoie) 공작 간의 전쟁으로 직업을 잃고 굶주리는 이들이 증가하였다. 비르지니아는 처음에는 15명의 버려진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다가 점차 마을의 난민들 전체로 확장해갔다. 그녀는 특별히 가난한 여성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였다. 1635년 8월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녀는 본격적으로 마을로 나가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가난한 이들과 그릇된 길에 빠질 위험에 놓인 이들을 찾아다니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점증하는 가난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조직인 ‘자비로운 8명의 부인회’와 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이들의 자비로운 보호자인 100명의 부인회’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가정 방문을 통해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특별히 숫기가 없는 이들의 요구를 조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1629-1630년의 전염병과 대기근의 시기에 그녀는 어린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사업을 더욱 본격화하기 위해 몬테 칼바리오(Monte Calvario)에 있는 빈 수도원 건물을 빌려 피난처이신 성모의 집의 보호 하에 있던 이들을 데리고 1631년 4월 13일 입주하였다. 그 후 3년의 시간 동안 그녀가 설립한 기구는 300명의 환자들을 돌보는 세 개의 시설로 확장되었다. 그러자 비르지니아는 제노바 공화국 의회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하여 1635년 12월 13일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다. 이 시설에 수용된 이들은 함께 음식과 옷을 나누며 비르지니아의 훌륭한 자매들이 되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비르지니아는 몬테 칼바리오 수도원을 아예 매입하고자 했으나 값이 너무 비싸 포기하였다. 대신 카리냐노(Carignano) 언덕 옆에 있는 두 채의 주택을 구입하여 피난처이신 성모의 집과 성당으로 개축하여 그녀가 설립한 기구의 모원으로 삼았다. 그녀가 설립한 기구의 정신은 1644-1650년에 편찬된 규칙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모든 거주시설은 피난처이신 성모의 집과 같은 형태를 갖춰야 하며 공화국 의회에서 임명된 훌륭한 평신도 보호자의 감독과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수도복을 입는 자매들과 그렇지 않은 자매들 간의 구분은 필요하지만 그들 모두 서원 여부와 상관없이 순명과 가난, 노동과 기도 안에서 엄격한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 또한 공공의 보호시설에서 봉사할 준비를 해야 하며 이를 서원의 한 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정신에 따라 운영되던 기구는 그 후 두 개의 수도회, 즉 골고타 언덕의 피난처이신 성모의 자매회와 골고타 언덕의 성모의 자매회로 분리되었다.
1641년 7월 3일 수도회의 진정한 책임자인 보호자 모임이 임명되자 비르지니아는 비로소 행정적인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녀는 모든 직무에서 물러나 가장 낮은 자매의 자세로 기꺼이 허드렛일을 수행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거리에 나가 자선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였다. 그녀는 모든 이들, 특별히 병든 이들의 어머니로서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자 했다. 비르지니아는 몇 년 동안 죄악의 뿌리를 치유하고, 타락으로부터 예방하며, 병자와 장애인들을 기구에 모셔오고, 건장한 남자들에게 일터를 찾아주며, 여성들에게는 자수와 양말을 만드는 기술을 훈련시키고,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사회활동 그룹을 조직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도회의 활동이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협력자들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비르지니아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다시 관리직 활동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 지역 전체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노력했고, 1637년에는 제노바 공화국의 수호성인으로서 성모 마리아가 선정될 수 있도록 활약하기도 했다. 또한 40시간 기도 모임과 가정 사명의 회복을 위해서 힘썼다. 귀족 가문과 기사들 간의 평화 조정자로서도 활동한 그녀는 1647년 교회와 공화국 간의 화해를 도모해 공화국 당국이 보호시설에 대한 지원을 포기함으로써 야기된 논쟁을 종식시켰다.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시간을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도움을 청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다. 환시와 내적 담화 등 많은 신비적 은사를 받은 그녀는 1651년 12월 15일 64세의 나이로 제노바에서 선종하였다. 1985년 8월 22일 제노바를 방문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녀의 시복식을 거행했고, 2003년 5월 18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녀를 성인품에 올렸다.
오늘 축일을 맞은 비르지니아 첸투리오네 브라첼리 (Virginia Centurione Bracelli)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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