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는데, 육체적으로
죽어 있던 잡시 동안에 그들이 겪었던 얘기들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죽어서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과정을
보면서 그들은 각자 다른 세계를 경험하였다. 어떤 사람은 아름답고 평온한 세계에서 편안하게 지냈고,
또 어떤 사람은 지옥같이 무서웠던 곳에서 고생했던 일 등 그들은 다시 살아나와 그때의 그 경험을
얘기하면서 한결같이 갈아 있을 때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들의 각자 다른 죽음의 세계의 경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
그들은 꿈을 꾼 것이다.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갖고 있던 죄의식을 비롯한 현재의식 또는 잠재의식, 바로
그들 영혼의 현재의 파장대로 죽음이라는 꿈을 경험한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꿈을 꿀 때도 대개 그 당시의 그 사람 마음 상태에 따른 파장대로 꿈을 꾼다. 죄의식이
많으면 무서운 꿈, 평화로운 파장일 때는 평온한 꿈, 바로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우리 자신이 만들어 놓은
마음의 파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꿈이고, 죽음이다.
꿈도 꿈이요, 현실도 꿈이고 죽음도 꿈, 모든 것이 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음의 파장 상태가 만들어 내는
환상이다. 꿈에서도 깨어나 있고, 현실에서도 깨어나 있고, 죽음에서도 깨어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해탈이다.
티베트의 경전 '사자의 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도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49일 동안 계속해서 죽은 영혼에 대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경을 외우고 있다.
죽은 후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결국 꿈을 꾸고 있는(마음으로 보고 있는) 죽은 영혼의 마음속의
환상임을 계속해서 알려줌으로써 그 영혼이 그 말을 알아듣는 순간 꿈 같은 환상이 사라지고 실체의 현상
세계로 떠날 수 있다는 그 내용을 읽으면서 꿈속에 있는 나에게 아무리 죽었다고 외쳐봐야 내가 죽은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반들과 수련할 당시 꿈을 꾸면서 깨어 있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드러누워 잠이 오는 순간 오는 잠을 바라보며 나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쳐 봐도 계속해서 정신을
잃고 잠 속으로 혼절해 들어가곤 했다. 또 꿈을 꾸면 동시에 벌떡 일어나 꿈을 기록하기도 했다. 꿈속에서
나을 유혹하는 것들에 대해 정신을 치리려고 무던히 노력해 보았으나 아직도 꿈속에서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그러나 연습의 결과는 조금씩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면 어느 아름다운 여인들이 음란한 자태로 나를 유혹할 때 어느새 유혹에 빠지다가도 갑자기 정신을
차리면서 눈을 뜨게 된다든지, 어느 형태의 꿈이건 결정적인 순간 직전에는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아예 처음부터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그런 꿈조차 꾸지 않는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하면서도
잠들 때마다 혼절하듯 빠져드는 나의 무지가 한심스럽다. 그러나 꿈이건 현실이건 항상 정신차리는 노력이
쌓이고 쌓여 죽는 꿈속에서조차도 깨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 여직원 중에 결혼할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의 시아버지가 돈에 대한 집착이 몹시
강했던 모양이다. 외아들인 자신의 아들에게 돈 만원을 꾸어줘도 이자를 받을 정도로 지독한 수전노였다.
이분이 숨을 거두는 순간 온 가족이 몹시 슬퍼하며 울고 있었는데, 이분이 갑자기 일어나 앉아 손으로 돈을
세면서(실제로는 돈이 없었다고 한다) "야! 이 돈 봐라"하며 좋아하면서 다시 숨을 거두더라는 것을
여직원을 통해 들었던 일이 있다.
죽는 순간 일으키는 마음의 환상이 현실처럼 착각되어 돈의 세계 속으로 끌려 들어간 것이리라.
아마도 그 영혼이 그 돈의 세계가 환상의 세계임을 깨우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또 다른 일화로, 모 식품 회사에 다니는 과장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날 때의
얘기다. 그 아버님은 평소에 기독교를 믿지 않으셨다. 온 가족이 전부 기독교도인데 유별나게 아버님만은
기독교를 반대하시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죽기 직전 귀신들이 자신을 끌고 가려 한다고 놀라면서
가족들에게 "나 이제부터라도 하느님을 믿을 테니 찬송가 좀 불러줘" 하며 말하길래 가족들이 기쁜
마음으로 찬송가를 불러 드리니 그제서야 "저기 천사들이 나를 대리러 온다"하며 편안하게 운명하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두 가지의 실례를 통해 죽는 순간의 마음 파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두 사람은 죽는
순간의 마음의 파장대로 또다시 마음속의 세계로 떠난 것이다. 그 마음속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옥이건 천국이건 그것은 단지 마음속의 세계일 뿐이다. 평소에 정신을 차리는
습관이 배어 있어야만 죽는 순간에도 정신을 차릴 수가 있다.
사람이 잠을 자기 위해 드러누우면 금세 혼수상태로 빠지게 되며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 것과 똑같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엊저녁 혼수상태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느끼는 것이다.
스님들이 죽는 순간 앉아서 버티는 이유도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일 것이다.
드러누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다간 어느새 혼수상태가 되어 죽는 꿈속으로 빠질까 두려워 좌탈입망하는
것이다.
-가수 김도향 선생-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이분 책 '항문을 조입시다 ' 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나오던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