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6일 월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두 그릇과 한 그릇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똑 같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하나의 그릇에 먹고, 동생은 두 개의 그릇에 먹었습니다. 두 개의 그릇에 먹는 동생은 그의 음식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한 그릇에는 쓴 음식, 다른 한 그릇에는 단 음식을. 한 개의 그릇에 먹은 형은 단 음식과 쓴 음식을 섞어 먹어야 했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동생은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반면에 형은 건강해졌습니다. 마침내 동생은 심각한 병을 앓았고, 죽음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형에게 물었습니다. “형의 건강 비결은 뭐지?” 형이 말했습니다. “너는 두 그릇으로 음식을 먹었지. 너는 오직 음식의 단맛을 제일로 여겼던 거야. 음식의 영양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맛보다도 영양가를 소중히 했던 거야. 내가 쓴 음식과 단 음식을 한곳에 섞어 먹은 것이 바로 그 때문이야. 어떤 맛의 음식이라도 나는 버리지 않았다. 나는 모든 음식을 영양가로서 섭취했던 거야. 그랬더니 그 음식들은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신은 나에게 축복을 내렸지.”
동생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두 개의 그릇에 담긴 쓴 음식과 단 음식을 한 그릇에 섞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동생은 잃었던 원기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수피우화/ 김남용 엮음)
세상에 살면서 입에 맞고, 몸에 좋은 것만 먹을 수는 없습니다.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을 먹고 삽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일 수 있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어서 구별해 놓고 좋은 것만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몸에 좋은 것으로 골라서 먹는다고 해도 결국은 몸에 좋지 않은 것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또 몸도 그렇게 반응할 것입니다. 영양이나 건강이나 심리적으로 튼튼한 사람이 되려면 모든 것에 부딪쳐야 한다고 합니다.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어야 한다는 말도 같은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매일 거룩한 말만 하고 산다고 하여도,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하여도 모두에게 다 좋고 거룩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고 하여도 매일 그 음식에 파묻혀 있다면 좋은 맛으로 느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쓰고 맛이 없어도 영양 때문에 골고루 먹어야 한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들끼리만 어울린다면 영양이 결핍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래서 균형이 필요하고, 서로 맞지 않지만 어울리며, 싸우기도 하고, 이겨나가기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해가 있는 곳에 성인들이 태어납니다. 심각한 위기가 닥치면 영웅이 태어난다고도 하였습니다. 주님의 성탄 다음 날 최초의 순교자이신 성 스테파노 축일인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몰고 오실 단 맛과 쓴 맛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스테파노 성인은 유다인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성인의 뛰어난 언변과 능력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유다인들은 사람들을 매수하여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스테파노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스테파노’란 말은 그리스 어로 ‘관’(冠)을 뜻한다고 합니다. 스테파노 성인은 박해를 통해서 이 세상에 승리의 월계관을 가져오신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비록 지금 입에 맞지 않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일지라도 ‘감탄고토’(甘呑苦吐)는 이 세상을 사는 지혜가 아닌 것입니다. <제 비위에 맞으면 받아들이고 안 맞으면 배반한다.>는 감탄고토의 삶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로우면 붙기도 하였다가 이롭지 않으면 돌아서기도 하여 서로 믿음이 없는 행위를 한다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믿음이나 신앙에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쓴 것과 단 것을 애써서 구분하고, 다른 그릇에 담아 두 개의 그릇이 필요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하나의 그릇에 섞어서 담아 잘 요리해서 먹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고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 의지해서 용기를 가지고 사랑으로 살아야 할 때입니다.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8-10; 7,54-59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7,54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축일12월 26일 성 스테파노 (Stephen)
신분 : 순교자, 부제
활동 연도 : +35년경
같은 이름 : 스더왕, 스테파누스, 스테판
그리스어에 능숙한 유대인으로서 아마도 유대 나라 밖에서 태어난 듯하나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세속적인 요구에 부응하도록 사도들로부터 선발된 일곱 부제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았고,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힘을 가득히 받아 백성들 앞에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많이 행하였다. 또한 그는 키레네(Cyrene)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유대인들로 구성된 일명 '자유인의 회당'에 속한 몇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들이 성 스테파누스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사람을 매수하여 그가 모세(Moyses)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는 체포되어 의회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설교를 하자 의회 의원들은 성 스테파누스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갈며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도시 외곽에서 돌을 맞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사도 6-7장 참조). 사도행전 8장 2절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성 스테파누스를 장사지냈다고 언급되어 있으나,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편 415년 8월 3일 루키아누스(Lucianus) 신부가 예루살렘에서 15km 떨어진 카프르 가말라(Kafr Gamala)에서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를 발견하였는데, 이 유해는 에스파냐의 메노르카(Menorca), 아프리카의 히포(Hippo)와 예루살렘, 시온(Sion),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거쳐 로마(Roma) 등으로 나누어져 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각 도시에 보관된 유해 위에 성 스테파누스 기념 성당이 건축되어 이 성당들에서 많은 기적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 공경은 세계 각 곳으로 퍼져 나갔다. 서방 교회에서는 9세기경부터 1955년 공식 전례에서 제외될 때까지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가 발견된 8월 3일을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 발견 축일'로 기념하였다.
축일12월 26일 성녀 크리스티나 (Christina)
신분 : 수녀
활동 지역 : 마케이트(Markyate)
활동 연도 : 1097-1160년경
같은 이름 : 끄리스띠나, 크리스띠나
영국 잉글랜드(England) 지방 헌팅던(Huntingdon)에서 앵글로색슨족(Anglo-Saxon)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길드 상인 귀족의 딸로 태어난 성녀 크리스티나는 15세에 성 알바누스(Albanus) 수도원을 방문하고 개인적으로 동정 서원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이를 반대하고 버크트레드(Berktred)라는 한 청년과 결혼을 계획하였다. 성녀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혼인문제를 로버트 블로에트(Robert Bloet) 주교에게 가져갔고, 처음에 그녀의 편을 들었던 주교는 후에 뇌물을 받고 자신의 판결을 변경하였다.
결국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약혼하고 결혼한 성녀 크리스티나는 부부관계를 거부한 이유로 결혼 첫 해를 죄수로서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에아드윈(Eadwin)이라는 한 은수자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녀는 프램스테드(Flamstead)로 피신해서 2년간 알프웬(Alfwen)이라는 여성 은수자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 후 1118년에 마케이트의 은둔소로 이주하여 복자 로제르(Roger) 은수자의 영적 제자가 되었다.
1122년 버크트레드는 요크(York)의 대주교로부터 혼인 무효판결을 얻어냈고, 또 다음 해에 블로에트 주교가 사망함으로써 마침내 성녀 크리스티나는 마케이트에서 그녀의 남은 생애를 보낼 허가를 받게 되었다. 그녀의 거룩한 삶에 대한 명성은 곧 다른 이들에게 알려져 그녀의 집은 베네딕토회의 작은 수녀원이 되었다. 성녀 크리스티나는 요크, 퐁트브로(Fontevrault), 마르시니(Marcigny) 등의 수녀원 원장직을 제의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계속 마케이트에 머물다가 선종하였다. 그녀는 종종 탈혼과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성녀의 축일은 12월 5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축일12월 26일 성 디오니시오 (Dionysius)
신분 : 교황
활동 연도 :192/200-267/268년
같은 이름 : 데니스, 드니, 디오니시우스, 디오니씨오, 디오니씨우스
그리스 사람으로 인정되는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가 259년 7월 22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에 그는 로마(Roma)의 사제로 봉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교황선거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하여 거의 1년이나 지체되었던 선거였다. 260년경에 성 디오니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주교인 디오니시우스의 저서 가운데서 술어를 고치라는 중요한 교서를 발표하였다. 이 교서는 하나의 천주성 안에 삼위가 계시다는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것이므로 지극히 중요하였다. 또한 그는 고트족의 침입으로 황폐해진 카파도키아(Cappadocia) 교회에 거액의 복구 자금을 보내어 그리스도인 포로들의 몸값으로도 사용케 하였다. 그의 재임 기간에 갈리에누스 황제의 박해가 시작되었으나 그전의 박해로 쓰러질 듯한 교회를 가장 성공적으로 재건한 분으로 손꼽힌다. 그는 박해 시대에 순교자로 기록되지 않은 첫 번째 교황으로 로마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의 교황 묘지에 안장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스테파노 (Stephen), 디오니시오 (Dionysius) 형제들과 크리스티나 (Christina)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