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드립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한 교수의 글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한쪽의 날개로 날 수 있다는 착각속에 사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기든스는 제3의 길이론을 제시하였습니다.
우와 좌 함께 봐야 양눈을 뜨고 사는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이 이루어질 수 잇따고 봅니다.
그런데 청연우파연대는 그런면에서 저에게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여 입회하였습니다.
남과 북이 통일이 될려면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고 보다가 동학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도 편달을 기다립니다.
동학 민중이 꿈꾼 세상, 오늘과 어찌 다르랴!
'전 국방대학교 국방정신교육원 교수 고순계'
케냐의 독립운동을 이끌다가 초대 대통령을 지낸 케냐타는 아프리카 민족지도자로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지난 78년 그는 이런 말을 남기고 죽었다.
"1백년전 백인 선교사들은 손에 성경책 한 권만을 들고 이 나라에 상륙하였다. 그런데 1백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들한테는 한 권의 성경책 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백인들이 가져갔다" 선교사를 앞세워 아프리카 대륙을 집어삼킨 백인들의 식민정책을 뼈아프게 꼬집은 말이다. 이제 표면상 아프리카 대륙은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겉모양만 그럴싸할 뿐 식민지 상태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백인들은 철수했지만, 그들은 아프리카를 상품시장으로 남겨 좋고 간데 불과한 것이다.
지난 2월 9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농민군과 그 유족들에게 110년 만에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이에 따라 1884년 혁명 이후 그동안 동학혁명군을 '비적(匪賊)', '역적(逆賊)' 괴수(魁首)로 불렸던 동학 농민군과 그 후손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될 수 있는 길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동학은 후기 조선이 정권다툼으로 지배층의 알력이 극도에 달한 가운데 양반과 토호(土豪)들은 백성들에 대한 횡포와 착취를 자행함으로써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각지에서 농민봉기를 일으키는 등 사회는 매우 불안한 상황에서 탄생하였다. 더구나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간섭이 날로 심해져 국운이 위기에 처하는 한편 , 국민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유교. 불교가 극도로 부패하여 조정은 민중을 제도할 능력을 상실하였다. 게다가 새로 들어온 서학(西學)(천주교)의 세력이 날로 팽창하여 그 이질적인 사고와 행동이 우리의 전통적인 그것과 서로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때 최제우는 서학에 대처하여 민족의 주체성과 도덕관을 바로 세우고, 국권을 튼튼하게 다지기 위해서는 서학에 대응할 만한 동토(東土)의 동학사상을 창조한 것이다.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지상천국의 이념과 만민 평등의 이상을 나타내는 인내천(人乃天)의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의 사상에 두고 있다. 최제우의 동학과 동학혁명의 정봉준과 민중이 꿈꾸었던 세상은 오늘과 어떻게 다를까? 분단된 북조국은 차차하고 남조국의 우리는 누구인가?
강남의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어머니 얼굴을 그리게 하였더니 놀랍게도 '머리는 노랗게, 눈동자는 새파랗게' 색칠한다는 미술 평론가의 지적은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미국의 '뉴키즈'가 내한하여 노래를 불렀을 때 우리의 여중 고생들이 저들을 향해 던진 눈물의 손수건과 벗어 던진 속옷이 세 트럭이 나왔다는 기사와 열광하던 우리의 한 여고생의 주검은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잘 대변해준다.
현재 우리나라는 외래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다. "김양, 안녕"보다는 '미스킴, 굳모닝'이 더 멋있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문화환경에 살고 있다. 이러한 문화형태를 <자학(自虐)의 혼합문화>라고 한다. 이 문화는 말 그대로 자신의 문화를 비하하여 남의 문화를 숭상하고 쫓는 정서구조를 지니고 있다. 정반합(正反合)에서 정보다 반이 더 크기 때문에 주객이 바뀌게 그 발전적 경사는 발전이라기보다 자기상실의 사회이다. 남의 말, 남의 생각, 멀리서 온 철학과 종교는 질퍽하게 깔려 발목이 빠질 지경인데, 내 목소리, 자신의 사상, 가까이 있는 민족문화와 철학은 쓰레기통에 쳐 박혀 씨가 마를 정도이니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남의 나라 혼들을 불러다가 극진한 대우를 하면서도 우리의 조상 선영들에게는 찬밥조차 올리기를 마다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니,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며 어느 땅에서 물 마시며 나물 먹으며 발을 딛고 살고 있단 말인가? 충청도 한 산골에 사는 한 초등학생의 지적을 통해 일그러진 자화상을 들여다보자.
"우리는 시골에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들입니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우리 말, 우리 글이 무척 아름답고, 훌륭한 글이라고 배웠습니다. 또 여진족이 자기네 말과 글과 풍습을 버리고 중국 것을 좋아하다가 사라진 민족이 되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시내에 나가면 외국 글씨의 간판들이 가득하고, 우리가 입는 옷도 모자도 과자이름도 연필도 외국말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민족이 여진족처럼 없어지는 민족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반대로 자신의 정서와 고유의 문화에 긍지를 가지고서 외래문화를 선별 수용, 보다 나은 문화로 발전해 가는 것을 <자존의 포함문화>라고 한다. 이는 정반합의 반이 정보다 적어서 자신의 뿌리를 바탕으로 가지와 잎만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변화를 가져올 뿐이다. 즉 전자 혼합문화는 기둥까지 바뀌어 자기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혁명차원'이라면, 후자의 포함문화는 미세한 변화만이 주어지는 '개혁차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 긍정의 주체적인 '자존의 포함 문화'를 가진 사회의 조직은 국민들에게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타문화에 대해 흔들림이 없이 도전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즉 외부의 문화에 대해 즉각적으로 "왜(why?)"의 대자인식(對自認識)을 함으로써 수용의 거름을 거치는데 반해, 전자인 '자학의 혼합문화'의 조직은 외부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 즉 "어떻게(how!)"의 즉자인식(卽自認識)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혼합문화에서는 "A에서 B"를 후자인 포함문화에서는 "가에서 나"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문화환경이 된다. 그리하여 외부의 문화가 自己문화를 급속히 잠식해 들어가 고유의 뿌리가 사라져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세계는 문화강국만이 약육강식의 세계화 대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문명 충돌론>의 저자 새뮤얼 헌팅톤은 주장하고 있다.
한 월간지의 조사에 의하면 국내 경영인들조차 "주위에 존경받을 만한 국내 기업인이 없다"는 국민의 反기업 정서로 우리의 안방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점령해가고 있다. "대한독립만세"소리가 메아리치는 탑골공원 앞에 있던 민족기업 <고려당·태극당>이 미국의 <버거킹·맥도날드>로 간판이 바뀌고 지금 문전 성시를 이루고 있다.
문화는 경제이다.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 동기'라는 연구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코카콜라'병에 '815콜라'를 넣고 뜯는 척 하면서 주었더니 "역시 콜라는 코카콜라야"라고 하는 현실은 우리의 일그러진 혼합문화와 망국의 외제선호병리가 연계된 현실을 주목하게 한다. 이러한 사회병리치유는 서구문화에 의해서 무기력하게 학습된 자기상실과 어설픈 남의 것을 좋아하는 <드라큘라>대신에 고운 우리 것을 선호하는 <도깨비>를 마음의 고향에 내면화함으로서만이 가능하다.
"국력=정신전력·물질전력"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 정신전력은 바로 우리의 마음의 고향 잠재의식이 도깨비냐 드라큘라냐에 따른 정신전력으로서 국력의 실상과 허상의 향방이 정해진다. 세계화와 지방화(민족화) - 세방화(世方化)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실사구시의 길이 없을까? 그 길로 경쟁의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면서 승자에게 찬사를 보내는 시장경제의 자본주의도 아니면서 국가 관료들의 일방적 계획에 의하여 경직화하기 쉬운 국가 사회주의도 아닌 중도 중용으로 <림상옥>이 꿈꾸는 균형의 상생相生의 상도商道가 동학의 최제우, 전봉준의 꿈은 아닐까?
동학혁명이 좌절된 후 부하들이 동학혁명의 지도자 최시형에게 "언제 우리나라가 잘 되겠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한다. "만국병마가 우리 강토에 왔다가 돌아갈 때이니라"라고. 그 만국병마는 외형적 외국병마를 넘어 서구적 가치와 이념, 종교도 외국병마라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의 지나친 비약일까?
위기는 기회라고 하였다. 분단 반세기의 위기를 맞이하여 뒤늦게나마 사면 복권된 동학혁명군을 우리 사회는 주목한다. 동학농민혁명 유족회는 "특별법 제정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봉기한 동학농민군이 꼬박 110년 만에 명예를 회복한 역사적 장거"라며 "왜곡된 근현대사를 바로잡는 출발점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여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하였다.
동학혁명은 안으로 썩은 정권을 뒤엎고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쳐 자주적인 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장엄한 운동이었다. 동학은 내외의 위기에 처하여 스스로의 역량과 결단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그 힘차고 장한 전통을 우리는 길이길이 계승하여 가슴에는 주체성을 눈은 세계로 하는 역사적 방향 감각과 넓은 시야로 민중과 동귀일체 할 수 있어야 한다. 동학의 전봉준 장군과 최시형 지도자 그리고 동학민중이 꿈꾸던 세상은 언제이려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