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가 지배한 로마공화정의 30년 역사는 대단한 것이었다. 국토는 5배가 되었으며 시칠리아라는 황금의 땅을 얻었다. 더군다나 카르타고와 그리스를 격파한 지중해 최강의 군대가 그들의 무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BC 264년 막 번영하는 로마공화국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축제분위기기 한창인 로마공화국의 원로원 안으로 한 밀사가 황급히 다가와 외쳤다.
"누미디아 왕국이 멸망했소. 아프리카의 용장인 자라가 이끄는 카르타고의 정예용병부대가 본국으로 귀환중이오. 또한 카르타고의 바론이 시칠리아 강습을 준비중이오."
한편 퀸투스의 막내아들인 아시니우스가 지키는 북방 변경의 장군 가이우스 아밀리우스는 어느날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을 맞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야만족의 침략을 받은 세게스타의 유지라고 소개하며 야만족으로부터의 보호를 요청해왔다.
로마의 신참귀족가문인 아밀리우스 가문은 그들을 자기 가문의 클리엔테스(피후원자)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야만족들을 골족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의 사나운 용모와 지칠줄 모르는 힘과 사나운 용맹, 그리고 포악한 성질을 설명했다. 또한 그 북쪽의 게르만 족들의 침략이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온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도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로마공화국은 야만족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껴 사절을 보내 당시 한참 그리스를 정벌중이던 동방의 강대국 마케도니아 왕국에 동맹을 요청하고 수락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을 제쳐두고 로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종신독재관 푸블리우스 퀸투스의 사망소식이었다. 축제가 한창이던 6월 퀸투스는 잠자리에 들고 다시 걸어나오지 못하였다. 30년간의 독재관 통치를 경험한 원로원은 무력하기 그지 없었다. 그들은 서둘러 퀸투스의 장례를 치루고나서 시칠리아의 푸블리우스 루카와 데키우스 라에비누스에게 소식을 전했다. 북방에 있던 퀸투스의 삼남 아시니우스는 자신의 부장인 가이우스를 데리고 로마로 천천히 귀환하기 시작했다. 또한 퀸투스의 양자인 티베리우스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아시니우스의 로마 장악을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카푸아에서 북상하였다.
한편 메시나로 귀환하여 루카와 같이 시칠리아의 통치업무를 보고있던 데키우스는 로마에 있던 자신의 동생 마르쿠스에게서 루카보다 한발 먼저 퀸투스의 사망 소식을 전해받았다. 그는 즉시 루카를 메시나의 성채에 유폐시켰다. 그야말로 푸블리우스 가문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아시니우스와 그의 배다른 형제인 티베리우스는 늙고 고지식 하였다. 물론 실전 경험이 있는 군대는 자신과 루카만이 가지고 있었다. 그는 군대를 대동하고 메시나에서 뱃길로 로마로 출발했다.
로마 장악을 위한 두 가문의 경주가 시작되었다. 메시나에서 출발한 라에비누스 가문의 데키우스, 카푸아와 북방변경에서 출발한 푸블리우스의 두 형제. 물론 푸블리우스 형제의 여행길이 더 가까웠겠지만 행운은 데키우스의 편을 들어주었다.
푸블리우스 형제보다 이틀 먼저 로마에 입성한 데키우스는 정권공백의 위기를 빌미로 멋대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원로원을 군대로 포위하였다. 힘에 굴복된 원로원은 데키우스에게 유리한 법들을 유례없는 속도로 하루만에 통과시켰다. 데키우스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행보할 수 있으며 이후 모든 사령관들은 로마 성벽 내로 군대를 이끌고 들어올 수 없었다. 데키우스와 마르쿠스 즉 라에비누스 두 형제는 원로원의 프린켑스(제 일인자)로 지명받았으며 그들은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 집정관과 같은 권한을 지게 되었다. 물론 데키우스는 푸블리우스 형제들을 사령관에서 해임시키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뒤늦게 도착한 푸블리우스가의 두 형제들은 당황하였다. 고지식한 그들은 모든 군대를 해산시켰으며 군대의 통수권을 잃은 것에대해 반항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데키우스의 의도대로 이듬해의 집정관으로 당선되기는 하였으나 로마 시민들 중에 진정한 공화국의 지도자가 누구인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였다.
한편 북방변경을 책임지던 가이우스 아이밀리우스가 이끄는 아이밀리우스 가문은 데키우스의 배려로 인하여 일족의 남자들이 북쪽 변경을 책임지는 중책을 떠맡게 되었다. 신참귀족인 가이우스 아이밀리우스는 데키우스의 라에비누스 일족에게 충성을 다짐하였다.
푸블리우스 가문의 가신이었던 라에비누스 가문은 결국 주인을 배신하고 로마라는 거대한 가족의 수장이 되었다. 데키우스도 별 수 없었다. 퀸투스를 비난하였지만 이듬해에 자신 스스로 종신 독재관으로 추대하여 로마 공화국의 지도자가 된 것이다. 강력해진 공화국 앞에는 카르타고의 복수의 칼과 골족의 은밀한 창이 조여오고 있었다.
ps . 아.... RTR이 오리지널보다 힘들긴 힘들군요...
첫댓글 저도 이거 해봤는데 힘들더라구요.
바바리안으로 돌리시나요.. 확장으로 돌리시면 일리리아랑 카르타고 드랍공격에 죽을 맛이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