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남일보 2021년 12월 28일자 신문을 펼쳐들자 ‘한평생 몸 팔며 살아온 창녀. 밑바닥 삶의 슬픈 고백’이라는 타이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밑에 작은 글씨로 28~31일. 1월7~9일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라고 적혀 있고 대구 대명공연거리 내 골목실험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고 소개했다.
신문 기사를 읽는 순간 프루스트현상처럼 아슴아슴 젊은 날이 갈마들었다. 모든 것을 무화하고 가뭇없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젊은 날의 기억이, 번개는 지나갔어도 잔상이 남듯 의식과 무의식의 안쪽 기억의 격납고에서 온기를 지니며 살아있었든 모양이었다. 세월이 흘렀다고 그녀를 잊을 수 있을까. 흰옷에 묻은 물감처럼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다가 기억창고의 문을 벌컥 열고 튀어 나왔다.
꼭 관람해야지! 기억을 소환하는 일은 우리의 인생을 호명하는 일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기사를 스크랩 하였다. 마지막 날인 1월 9일 보기로 마음을 정하고 예약을 하기 위해 겨우 골목실험극장 관계자와 연결이 되었으나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실망했다. ‘극장 수용 인원은 100여명이지만 강화된 거리두기로 1회 공연 당 20명만 예약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뜨거워라, 싶었다. 100여명이면 모자 쓰고 마스크하면 묻혀 관람하겠다 싶었는데 20명이라니? 먼저 알았으니 망정이지 내가 구경거리가 될 뻔했다. 하긴 보나마나 비디오 아닌가. 대신에 인터넷에 들어가 간을 보기로 했다.
배우 양희경의 1인극으로 초연된 유명한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는 거창국제연극제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극단 ‘시소’의 안건우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2021 대한민국연극제 연기상, 제21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연기상을 수상한, 최영주 ‘극단 골목’ 대표가 늙은 창녀 역을 맡아 홀로 극을 이끌어간다고 했다.
줄거리를 보자. 마흔을 넘긴 늙은 창녀는 어느 날 찾아온 손님과의 대화에서 문득 지나간 세월을 떠올리게 되고 기억 속에 묻혀두었던 기구한 사연과 어린 시절, 그리고 고향 생각으로 가슴이 미어지게 되며 끝내 가슴속 깊은 슬픔과 아픔을 자아낸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썩고 문드러진 곳에서 세상을 구할 싹이 나듯 순수에 대한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나게 만들었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시간을 길어 올렸다. 그러자 시간은 찰나에 한 갑자나 훌쩍 거꾸로 흘렀다.
이미 고인이 된 호방했던 우리 동문 이길식군의 결혼식이 대구 모처에서 열렸다. 그날 우리 동기가 7명 온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 면면은 밝히지 않고 이니셜을 쓰겠다. 결혼식 사회는 내가 맡았는데 피로연이 끝나고 나서 신랑이 봉투를 내게 건넸다. 받아들자 제법 두둑해 마음이 푼푼했다. 나는 동기들에게 봉투를 들어 보이고 따라올 사람 따라오라 했더니 한 사람 빠짐없이 졸졸 따라왔다. 일단 자리를 옮겨 2차를 해도 봉투는 거의 그대로였다. 그 때 친구들 대부분이 지방에 근무했기에 해거름이 되자 그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길식이는 오늘 밤 딱지를 떼는데 우리도 오늘 밤 딱지 떼로 가자.”
누군가 말했다. “옳소!”당시 모두 총각이여서 그랬든가 이구동성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내가 난처해하자 ‘빌런’으로 이름 난 친구가 벌떡 일어나 돈 봉투를 낚아채며 유세를 부렸다.
“지금부터는 날 따라라. 자갈마당으로 간다. 그 쪽은 내가 빠사하다.”
거나해진 친구들은 레밍처럼 그 친구의 꽁무니를 따랐다. 바람 맞은 먼지처럼 모두들 발걸음이 둥둥 떠다녔다. 사실 나는 ‘자갈마당’이야기는 들어봤지만 그때가 처음이었다. 허지만 내가 누군가. 초짜 티내기는 쪽팔렸기에 기를 쓰고 곱살끼었다. 사실 그 시절 나는 전두엽을 쓰기보다 서부 영화 속 건달처럼, 그저 길거리의 버려진 한 마리 개처럼 비일상적이었다. 닻 없는 배처럼 표류하며 뜨거움만이 삶의 전부인 노마드였다. 택시 두 대에 나누어 타고 향촌동에 내려 따로국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자갈마당 입구에 들어섰을 때는 밤이 제법 이슥했다.
속칭 ‘자갈마당’은 가히 불야성이었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이십 여 객창의 쇼윈도는 색색의 전등이 불을 밝히고 투명한 큰 유리문 안에는 열대여섯 명 정도의 창녀들이 객창마다 반라의 차림으로 움직이는 상품이 되어 호객하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우리처럼 패거리를 지은 사람들, 아니면 한 둘이 발정 난 수캐들 마냥 객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우리 또래보다 아저씨들이 많았고 늙수그레한 분들도 더러 보였다. 돌이켜보면 참 잔인한 풍경이었고, 어쩌면 인간의 민낯이 거기 있었다.
우리는 한 객창의 문을 밀고 우르르 들어갔다. 대충 세 종류의 여자들이 요란스럽게 화장을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 보다 어린 여자, 우리 또래, 그리고 연상의 여자들이 대강 3/1 정도씩이었다.
“나는 저애.”
K가 치보고 내리보고 하드니 제일 먼저 앳된 아가씨를 점찍었다. 아가씨가 빵긋 웃었다.
“난 저 아가씨.”
N이 피부가 고운 아가씨를 가리켰다. 아가씨가 윙크로 답해주었다.
“난 뒷줄에 앉은 저 아가씨.”
J가 가냘픈 아가씨를 손가락질했다. 날씬한 아가씨도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들은 물 만난 고기였다. 허나 나머지 친구들은 여자들을 둘러보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할 수 없이 우리 모두 따라 나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자기들이 마음에 두었던 아가씨들을 선점해 버리니 재미없다며 몽니를 부렸다. 다른 집으로 옮겨갔다.
“저애.”
이번엔 B가 잽싸게 제일 먼저 아가씨를 점찍었다. 아가씨도 빵긋 웃었다.
“난 저 아가씨.”
L이 뒤질세라 두 번째로 가리켰다. 아가씨도 윙크로 답해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K, N, J가 파투를 내며 객창을 나가버렸다. 남자는 지갑으로 말하고 여자는 나이로 말 한다더니 보는 눈은 거기서 거기였다. 어련하랴 싶었지만 답이 없었다. 모두가 ‘온리 원’이었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경우를 찾아 어근버근하다보니 친구들이 점찍었던 아가씨들은 모두 팔려나가고 객창의 쇼윈도는 팥소 빠진 찐빵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그렇게 어영부영 변죽을 울리며 뜸을 들이다 어렵사리 다음날 아침, 저녁 먹은 따로 국밥 집에 모이기로 하고 각개전투에 돌입했다.
나는 S와 같이 어느 집 쇼윈도를 밀고 들어섰다. S는 역시 그중 제일 젊은 아가씨를 파트너로 점찍었다. 나는 그녀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웠으나 설핏 둘러보았다. 뒷줄 벽에 노박이로 등을 기댄 채 이미 서른은 넘어 보이는 여인이 얼굴에 비해 유난히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텅 빈 뜰처럼 허망하게 비어 있었고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다. 그러나 그 어둠은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공친 날이 너무너무 많았다고. 게다가 그녀는 어릴 적 나를 살뜰히 보살펴 주던 이웃집 은자 누나와 살짝 겹쳐졌다. 뭉클, 나는 집게손가락을 쭉 뻗어 그녀를 가리켰다. 그녀의 큰 눈에 불이 반짝 켜지며 긴가민가 주위를 돌아보다 오른손을 자기 가슴에 얹으며 ‘날?’하는 제스처를 보내왔다. 나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가 안내하는 데로 그녀의 방에 들어섰다. 세평도 될까 말까한 방의 천정에는 뼈다귀 같은 텅그스텐 필라멘트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백열알전등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는 손바닥만 한 요와 이불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서로 빼닮은 베개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머리맡에는 찌그러진 물주전자가 맥없이 오봉에 담겨있었다. 옆에는 흰 수건이 한 장 놓여 있었고, 그것이 다였다. 그 방에 그 외의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눈빛처럼 휑뎅그렁했다.
“롱 타임이라 했죠?”
그녀는 잽을 날리듯 두 번째로 물었다. 생각 외로 그녀는 서울말을 쓰고 있었고 그 음성은 맑고 투명했다. 그렇다고, 나도 두 번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콧잔등에 주름을 지으며 내 재킷에 손을 가져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톡 치며 매정하게 밀어냈다. 그러자 그녀의 큰 눈이 더 커지드니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이며 자신의 옷을 벗으려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말리며 말했다.
“술 한 잔 마실 수 있어요?”
그녀의 눈두덩에 살짝 바른 라즈베리빛 섀도가 알전등에 반짝였다. 눈동자가 빨다만 사탕처럼 빛나며 말했다.
“그럼요. 대신 술은 소주예요. 하실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난 다음, 친구가 나누어준 돈을 몽땅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남는다며 돌려주려는 것을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녀가 나가더니 거슬러 주지 못한 셈에 답이라도 하듯 25도짜리 소주 세 병, 구운 오징어 두 마리, 그리고 고추장 종지와 술잔이 담긴 알루미늄 소반을 들고 들어왔다. 우리는 알루미늄 소반을 사이에 두고 속닥하게 마주 앉았다. 처음엔 옆방의 숨넘어가는 소리에 주눅이 들어 뻘쭘했으나,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나중엔 반주삼아 금세 노닥거렸다. 그녀는 날 아래동생 대하듯 했고, 나 또한 큰 누님 대하듯 편안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달걀 위를 걷듯 조바심을 치기는 했다. 혹여 ‘늙은 창녀의 노래’처럼 신파조의 신세타령이 나올까 봐서다. 아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눈물이라도 보일까봐. 그러나 그녀는 헤어질 때까지 신세타령이나 흘러간 과거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도리어 시시껄렁한 신소리까지 하며 황당한 유머를 했고 나는 거의 맞추지 못했다.
“엿장수는 하루에 몇 번 정도 가위질을 할까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면,
“엿장수 마음대로”하고는, 깔깔 넘어갔다.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실은?”하고 물었다.
“전봇대!”나는 확신을 가지고 답했다.
“이건, 문제가 끝나기도 전에 잘도 맞추네?”그녀의 큰 눈에 웃음이 고였다.
“그건 밤이면 술 마시고 하는 내 전공이니까요.”
우린 까르르 넘어가며 바투 앉아 술잔을 부딪치며 잔을 비우고 또 채웠다.
술판이 끝날 때까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녀가 마지막 술잔을 들고 내게 물었다.
“예이츠의 ‘술 노래’란 시를 알아요?”
나는 가방끈이 짧아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때는 예이츠라는 시인이 누군지 코빼기도 몰랐다. 하긴 예이츠는 내가 태어나기 1년전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이미 볼이 빨개진 그녀는 마지막 술잔을 들고 시를 낙랑하게 읊었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네
우리가 나이 들어 세상 뜨기 전
알아야 할 진실은 다만 이것뿐.
나는 술잔에 내 입술을 적시며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짓노라.
그녀는 술자리를 정리하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곡직한 그녀의 성정을 말릴 수도 말릴 재간도 없었다. 그녀는 다만 직업인(?)으로서 돈을 지불한 손님을 위해 자기가 맡은 노동을 시작하려하고 있었다. 그녀는 알몸으로 이불도 덮지 않고 요에 반듯이 누웠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등을 벽에 기댄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온몸이 눈처럼 희고 고왔다. 평소 친구들과 어울려 키들거렸던 어떤 여인들의 누드보다 아름다웠고 거기다 에로틱하기까지 했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쓴 문장이 떠올랐다.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옷을 벗었다. 그러나 내복은 입은 채 그녀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그녀가 일어나 내 러닝셔츠를 벗기려했다. 나는 러닝셔츠를 움켜잡았다. 이번에는 그녀가 내 손등을 톡 치며 셔츠를 벗기고는 말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나신은 저리가라네!”
다음, 그녀의 손길이 내 팬티에 왔다. 나는 왠지 우세스러워 팬티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냅다 후려쳤다. 그녀는 바로 은자 누나였다. 내가 깜짝 놀라는 사이 팬티는 발목까지 벗겨졌고 누나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나는 고잔 줄 알았지?…”
그놈도 놀라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렸다. 누나는 어느새 말 타듯 내 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어정쩡한 놈을 살살 다독이드니 유인해 울창한 숲속 누나의 옹달샘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가마솥화덕처럼 펄펄 끓었다. 두 몸이 하나로 연결되자 누나는 아주 서서히 박을 타기 시작했다. 그 놈은 풍선의 주둥이였다. 옹달샘의 뜨거운 샘물이 주둥이를 통해 내 몸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앞뒤 재지 않고 몸뚱이는 무작정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나의 풀무질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 진구덩이에 빠진 듯, 벼락에 맞은 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 떨리게 비명이 어금니 사이로 흘렀다. 풍선은 점점 부풀어 오르다 결국 펑, 터져버렸다. 나는 내 몸이 민들레홀씨처럼 산산조각이 나 방안 가득 흩날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어질어질해졌다. 누나도 깊은숨을 몰아내며 내 몸 위에 젖은 빨래처럼 널브러졌다.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의‘동백꽃’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누군가 인간이 된다는 것은 우는 법, 밤을 지새우는 법, 새벽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했던가. 뜬 금 없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날 밤 나는 도화지만한 격자무늬 유리창에 여명이 스며들 때 까지 하얀 밤을 지새우며 ‘그녀가 누나였고, 누나가 그녀였다’는 것을 아슴푸레 새기며 조금은 더 여물어진 것 같다. 생판 남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모래바람이 일었지만,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그 흔한 작별 인사도 없이…
첫댓글 현란한 글 솜씨 그리고 솔직하고 화끈하게
욕망의 세계를 그려낸 용기가 대단하네. ㅎㅎㅎ..
동백꽃에 버금가는 수작이다 차마 점순이는 아니겠지만,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인가 .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