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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89회
晉나라 중군원수 선진(先軫)은 이미 秦나라가 정나라를 기습하려는 모의를 하고 있음을 알고, 진양공(晉襄公)에게 말했다.
“秦侯는 건숙(蹇叔)과 백리해(百里奚)의 간언을 듣지 않고, 천리 먼 길을 가서 정나라를 기습하려고 합니다. 이는 태복(太卜) 곽언(郭偃)이 지난번 점괘에서 ‘쥐가 서쪽으로부터 와서 우리 담장을 넘는다.’고 한 바로 그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빨리 저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난지(欒枝)가 말했다.
“秦은 선군께 큰 은혜를 베풀었는데, 그 은덕을 갚기도 전에 그 군대를 공격하면, 선군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선진이 말했다.
“秦軍을 공격하는 것은 선군의 뜻을 바르게 계승하는 것입니다. 선군의 국상에 다른 동맹국들은 바쁜데도 불구하고 조문을 왔는데, 秦은 애도의 뜻을 표하기는커녕 군대를 일으켜 우리의 국경을 넘어 우리와 동성인 정나라를 정벌하려고 합니다. 秦의 무례함이 너무 심합니다! 선군께서도 필시 구천(九泉)에서 원한을 품으실 것이니, 무슨 은덕을 보답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秦과 우리는 피차 출병하게 되면 서로 돕기로 약조했는데, 정나라를 포위했을 때 秦은 우리를 배신하고 가 버렸습니다. 그로써 秦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이 신의를 저버렸는데, 우리가 뭣 때문에 은덕을 베풀 것입니까?”
[제85회에, 온 땅에서 천자를 조근하고 헤어질 때 진문공과 진목공은 피차 출병할 일이 있으면 서로 돕기로 약조하였다. 제86회에, 진문공이 진목공과 함께 정나라 토벌에 나섰는데, 진목공은 정나라 촉무의 변설에 넘어가 진문공에게 알리지도 않고 본국으로 돌아갔었다.]
난지가 또 말했다.
“秦軍이 아직 우리 국경을 침범하지 않았는데, 공격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진이 말했다.
“秦이 우리 선군을 晉의 군위에 세운 것은 晉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선군께서 제후들의 패자가 되자, 秦은 비록 겉으로는 따르는 척했지만 실은 마음속으로 시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국상을 틈타 용병한 것은 우리가 정나라를 지켜주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인데, 우리가 출병하지 않는다면 진짜로 정나라를 지켜주지 못하게 됩니다. 저들은 정나라를 기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기세를 몰아 우리 晉까지 기습할 것입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하루 적을 놓아두면, 몇 대에 걸쳐 재앙이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秦軍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자립할 수 있겠습니까?”
[제86회에서는 晉이 정나라를 공격했는데, 여기서는 晉이 도리어 정나라를 지켜준다고 한다.]
조쇠(趙衰)가 말했다.
“秦軍을 공격한다 하더라도, 지금 주군께서는 점괴(苫塊) 중에 계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군대를 일으키는 것은 거상(居喪)의 예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염려됩니다.”
[‘점괴(苫塊)’는 ‘짚을 엮은 자리와 흙덩이 베개’라는 뜻으로, 상중(喪中)에 상주(喪主)가 앉는 자리를 가리킨다.]
선진이 말했다.
“예법에 의하면, 자식이 거상 중에 짚으로 엮은 자리에 앉고 흙덩이를 베고 자는 것은 효도를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강적을 꺾음으로써 사직을 안정되게 하는 것과, 어느 쪽이 더 큰 효도일까요? 여러 경들께서 모두 반대하신다면, 신이 혼자서라도 가겠습니다!”
서신(胥臣) 등의 신료들은 모두 선진의 계책에 찬성하였다. 선진은 양공에게 상복을 입은 채로 군대를 점검해 줄 것을 청하였다. 양공이 말했다.
“원수는 秦軍이 언제 어느 길로 돌아오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진은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고서 말했다.
“신이 생각건대, 秦軍은 결코 정나라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 멀리 원정하였기 때문에, 뒤를 댈 수 없어서 그 기세가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들이 왕복하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약 4개월 정도 걸릴 것이므로, 초여름이면 면지(澠池) 땅을 지나게 것입니다. 면지 땅은 秦과 晉의 경계로서, 그 서쪽에 효산(崤山)의 두 봉우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효산과 서효산 사이의 거리는 35리인데, 秦나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그곳을 지나야 합니다. 그곳은 수목이 울창하고 바위가 험하여 병거가 지날 수 없는 곳이 도처에 있어, 그들은 반드시 병거에서 말을 풀고 도보로 지나가야 합니다. 그곳에 복병하였다가 불시에 공격하면, 秦軍을 모조리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양공이 말했다.
“원수에게 일임하겠습니다.”
선진은 아들 선차거(先且居)로 하여금 도격(屠擊)과 함께 군사 5천을 거느리고 효산 좌측에 매복하게 하고, 서신의 아들 서영(胥嬰)으로 하여금 호국거(狐鞫居)와 함께 군사 5천을 거느리고 효산 우측에 매복하게 하여, 秦軍이 당도하면 좌우에서 협공하게 하였다.
[도격은 제83회에, 진문공이 3행을 편성할 때 우행대부가 되었다. 서영은 제87회에 진문공이 3행을 2군으로 개편할 때 신하군의 대장이 되었다. 선차거와 호국거는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호국거는 호사고의 동생이다.]
호언(狐偃)의 아들 호사고(狐射姑)로 하여금 한간(韓簡)의 아들 한자여(韓子輿)와 함께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서효산에 매복하여, 미리 나무를 잘라 秦軍의 귀로를 차단하게 하였다. 양요미(梁繇靡)의 아들 양홍(梁弘)으로 하여금 내구(萊駒)와 함께 군사 5천을 거느리고 동효산에 매복하였다가, 秦軍이 다 지나간 다음에 뒤를 추격하도록 하였다.
[호사고는 제54회에 진문공이 포성에서 적나라로 망명했을 때부터 조쇠·선진·서신 등과 함께 진문공을 수행하였다. 진문공이 망명했을 수행했던 신하가 9명인데, 그 가운데 개자추·전힐·위주·호모·호언은 죽고 4명이 남았다. 한간과 양요미는 제60회에 秦나라와 한원에서 싸울 때 진혜공과 함께 참전했으며, 제71회에 진문공이 귀국할 때 강성 교외로 나와 영접했다. 양홍과 내구는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선진은 조쇠·난지·서신·양처보(陽處父)·선멸(先蔑) 등의 숙장(宿將)들과 함께 진양공을 모시고 효산에서 20리 떨어진 곳에 하채하여, 각기 대오를 편성하여 대기하고 있다가 사방에서 접응하기로 하였다. 그야말로 와궁(窩弓)을 정돈하여 맹호를 쏘고 향이(香餌)을 안배하여 어별(魚鼈)을 낚는 격이었다.
[‘와궁(窩弓)’은 사냥하기 위해 설치한 활 모양의 덫이다. ‘향이(香餌)’는 향기로운 미끼이고, ‘어별(魚鼈)’은 물고기와 자라로서, 물속에 사는 생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난지는 제77회에 하군대장이었는데, 제87회에 진문공이 5군으로 재편하면서 서신이 하군대장이 되고 난지는 물러났다. 선멸은 제77회에 좌행대부였다. 양처보는 제87회에 조쇠·선진·호사고와 함께 진문공의 임종 시에 고명을 받았다. 극결은 제87회에 서신이 진문공에게 천거하여 하군부장이 되었는데, 여기서는 이름이 빠졌다.]
한편, 봄 2월 중순에 활(滑)나라를 멸망시킨 秦軍은 수레마다 노획물을 잔뜩 싣고 많은 포로들을 끌고 귀국하였다. 정나라를 기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대신 활나라에서 얻은 노획물로 속죄하려고 하였다. 여름 4월 초순에 秦軍은 면지에 이르렀다. 백을(白乙)이 맹명(孟明)에게 말했다.
“여기서 면지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바로 효산인데, 길이 아주 험준한 곳입니다. 우리 부친께서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하신 곳입니다. 주장(主將)께서는 경솔히 생각지 마십시오.”
맹명이 말했다.
“나는 천리를 달리면서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효산만 지나면 곧 秦나라 경계에 들어서게 되어 고향이 아주 가까우니, 빨리 가든 늦게 가든 우리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뭐가 걱정입니까?”
서걸술(西乞術)이 말했다.
“주장께서는 호랑이 같은 위세가 있긴 하지만, 조심해서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혹 晉나라 복병이 갑자기 일어난다면 어떻게 방어하시겠습니까?”
맹명이 말했다.
“장군은 어찌 그처럼 晉軍을 두려워하십니까? 내가 앞장서겠습니다. 만약 복병이 있으면 내가 대적하겠습니다!”
맹명은 효장(驍將) 포만자(褒蠻子)로 하여금 일군을 거느리고 ‘백리(百里)’라고 쓴 원수기(元帥旗)를 들고 앞서 가면서 길을 열게 하였다. 맹명은 제2대, 서걸술은 제3대, 백을은 제4대가 되었는데, 부대 간의 거리는 1~2리 정도였다.
[맹명은 백리해의 아들로서 성이 ‘백리’이다. 제88회에, 秦軍이 주나라 도성을 지날 때 맨 먼저 병거에 뛰어올라 달렸던 장수가 바로 포만자이다.]
한편, 포만자는 무게 80근이 나가는 방천화극(方天畫戟)을 가볍게 휘두르면서 스스로 천하무적(天下無敵)임을 자랑하는 장수였다. 포만자는 병거를 몰고 면지를 지나 서쪽을 향해 진군하였다. 동효산에 당도하자, 홀연 산속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한 무리의 군마가 나타났다. 병거 위에 한 대장이 서서 길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네가 秦나라 장수 맹명이냐? 우리가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포만자가 말했다.
“네 이름은 뭐냐?”
그 장수가 대답했다.
“나는 晉나라 대장 내구다!”
포만자가 말했다.
“晉나라 난지나 위주(魏犨)라면 내가 장난삼아 몇 합 겨뤄 보겠다만, 너는 무명소졸(無名小卒)인데 어찌 감히 내 귀로를 막는 것이냐? 빨리 빨리 길을 비켜, 내가 지나가게 해라! 만약 지체하면 내 화극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내구는 크게 노하여 긴 창을 들고 달려 나가 포만자의 가슴을 찔렀다. 포만자는 가볍게 몸을 돌려 피하면서 화극으로 내구를 찔렀다. 내구가 급히 몸을 피하자, 화극이 병거의 횡목에 꽂혔다. 포만자가 화극을 비틀자 횡목이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내구는 포만자의 귀신같은 용력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과연 맹명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로구나!”
포만자가 가가대소(呵呵大笑)하며 말했다.
“나는 맹명 원수의 부하 아장(牙將) 포만자다! 우리 원수께서 어찌 너 같은 쥐새끼 무리들과 교봉하겠느냐? 너는 빨리 도망쳐라. 우리 원수께서 당도하면, 네놈들은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내구는 깜짝 놀라 혼백이 달아나는 듯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장이 저런 영웅이니, 맹명은 대체 얼마나 대단할까?”
내구가 큰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이 지나가게 해줄 테니, 우리 군사들을 해치지 말라!”
내구는 晉軍을 길 한쪽 편으로 비켜서게 하여, 포만자의 전대(前隊)가 지나가게 하였다. 포만자는 군사를 보내 주장 맹명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사소한 晉軍이 매복하고 있었지만, 모두 쫓아버렸습니다. 속히 오셔서 전대와 병력을 합쳐 효산을 통과하면 아무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맹명은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면서, 서걸술과 백을의 양군을 재촉하여 함께 진군하였다.
한편, 내구는 병력을 이끌고 양홍에게 가서 포만자의 용맹을 얘기했다. 양홍이 웃으며 말했다.
“비록 고래나 교룡(蛟龍)이라 하더라도 이미 철망(鐵網) 안에 들어왔는데, 무슨 변화를 부릴 수 있겠소? 우리는 병력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다가, 저들이 모두 통과한 다음에 뒤를 쫓아 추격하면 전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오.”
[원래 선진의 계책에 의하면, 양홍과 내구의 임무는 秦軍이 모두 통과한 후에 뒤를 쫓아 추격하는 것이었다.]
한편, 맹명 등 세 장수는 동효산으로 들어서서 몇 리를 행군했는데, 그곳 지명이 상천제(上天梯), 타마애(墮馬崖), 절명암(絕命巖), 낙혼간(落魂澗), 귀수굴(鬼愁窟), 단운욕(斷雲峪) 등으로 모두 험준하기로 유명한 곳이라 병거나 말을 타고는 통과할 수 없는 곳이었다. 전초부대인 포만자는 이미 멀리 가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상천제(上天梯)’는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 ‘타마애(墮馬崖)’는 ‘말이 추락하는 벼랑’, ‘절명암(絕命巖)’은 ‘목숨이 끊어지는 암벽’, ‘낙혼간(落魂澗)’은 ‘혼백이 떨어져나가는 계곡’, ‘귀수굴(鬼愁窟)’은 ‘귀신이 살고 있는 굴’, ‘단운욕(斷雲峪)’은 ‘구름이 끊어지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맹명이 말했다.
“포만자가 이미 지나갔으니, 매복은 없을 것이다.”
맹명은 장병들에게 말에게 매어 놓은 고삐와 밧줄을 풀고, 갑옷을 벗으라고 분부하였다. 병사들은 말을 끌고 병거를 밀면서 나아갔는데, 발이 계속 미끄러져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대오도 흐트러져 엉망이 되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秦軍이 지난번에 출병할 때도 효산을 지나갔는데, 그때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올 때는 어째서 이렇게 힘든 것인가?”
거기엔 이런 이유가 있다. 당초 秦軍이 출병할 때는, 사기가 왕성했고 가로막는 晉軍도 없었다. 수레도 가볍고 말도 활기찼으며, 천천히 내 뜻대로 행군했기 때문에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미 천리를 왕래하여 사람과 말이 모두 피곤한데다, 활나라에서 사로잡은 많은 포로들을 끌고 가고 있었고 노획물을 가득 실은 수레는 무겁기만 하였다. 게다가 晉軍을 한번 만났기 때문에, 비록 통과하기는 했지만 전면에 또 매복이 있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갈 때보다 몇 배로 힘든 것은 자연스런 이치였던 것이다.
맹명 등이 험준한 상천제를 지나가고 있을 때, 북소리와 뿔나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후대에서 병사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晉軍이 뒤에서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맹명이 말했다.
“우리도 나아가기 힘든데, 저들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에서 복병이 가로막지 않을까 걱정이지, 뒤에서 추격해 오는 것이야 뭐가 두렵겠느냐? 각 부대에 속히 전진하라고 명을 전해라!”
맹명은 백을에게 앞서 가라고 하면서 말했다.
“내가 뒤를 끊으면서 추격병을 막겠소.”
秦軍이 타마애를 통과하여 절명암에 접근했을 때, 앞서 가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더니 한 병사가 와서 보고했다.
“전면에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길을 막고 있습니다. 인마가 모두 지나갈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맹명은 생각했다.
“그 나무들이 어디서 왔을까? 전면에 매복이 있는 것이 아닐까?”
맹명이 친히 앞으로 나아가 보았더니, 바위 옆에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문왕피우처(文王避雨處)’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비석 옆에서는 붉은 깃발이 하나 서 있는데, 깃대 길이는 세 길이 넘고 깃발에는 ‘晉’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깃발 아래에는 나무들이 가로세로로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맹명이 말했다.
“이것은 의병지계(疑兵之計)다. 하지만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매복이 있을지 모르므로 수색하면서 전진하라!”
맹명은 명을 내려 군사들로 하여금 깃발을 뽑아 버리게 하고, 나무들을 치우게 하였다.
[‘의병지계(疑兵之計)’는 군사가 없는데 있는 것처럼 꾸미거나, 적은데 많은 것처럼 꾸미는 계략이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晉’ 자가 쓰여 있는 그 붉은 깃발은 바로 매복군의 신호였다. 晉軍은 골짜기 속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가, 깃발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秦軍이 당도했음을 알고 일제히 일어났다.
秦軍이 나무들을 치우고 있는데, 전면에서 우레 같은 북소리가 들리면서 깃발들이 햇빛에 번쩍이는데, 도대체 군마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다. 백을은 군사들에게 병장기를 정돈하고 전투태세를 갖추라고 명하였다.
그때 암벽 위 높은 곳에 한 장군이 나타났다. 그는 晉軍 장수 호사고였다. 호사고가 큰소리로 외쳤다.
“너희 선봉 포만자는 이미 사로잡혔다. 너희들은 빨리 투항하여 죽음을 면하도록 하라!”
[원래 선진의 계책에 의하면, 호사고와 한자여는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서효산에 매복하여 미리 나무를 잘라 秦軍의 귀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원래 포만자는 자신의 용맹만 믿고 전진하다가 함정에 빠졌는데, 晉軍들이 갈고리로 끌어올려 포박하고 함거에 가두었던 것이다.
백을은 크게 놀라, 병사를 보내 서걸술과 주장 맹명에게 알렸다. 세 장수는 상의하여, 어떻게든 힘을 다해 길을 뚫고 나가기로 하였다. 맹명이 보니 폭이 한 자 정도 되는 샛길이 있었는데, 한쪽은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고 다른 한쪽은 만 길 깊이의 계곡이었다. 바로 낙혼간이었다. 비록 천군만마(千軍萬馬)가 있다 하더라도 싸울 수가 없는 곳이었다. 맹명은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하고 명을 내렸다.
“이곳은 교봉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대군은 일제히 동효산 넓은 곳으로 후퇴하여, 결사전을 벌인다!”
백을이 주장의 명을 받들어 군마를 후퇴시키는데, 징소리와 북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얼마 후 타마애까지 후퇴했는데, 동쪽 길에서 수많은 깃발이 끊이지 않고 연이어 오고 있었다. 바로 晉軍 대장 양홍과 부장 내구가 5천 인마를 거느리고 뒤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추격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秦軍은 타마애로 갈 수가 없어 또 방향을 바꿨다. 이때 秦軍은 마치 뜨거운 철판 위에서 개미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양과도 같았다. 맹명은 군사들에게, 좌우 양쪽으로 산을 기어오르든 계곡을 넘어가든 알아서 길을 찾아 탈출하라고 명하였다.
그때 왼편 산정에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어지럽게 울리면서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나 소리쳤다.
“대장 선차거가 여기 있다! 맹명은 빨리 투항하라!”
그때 오른편 계곡 건너에서도 포성이 산골짜기를 울리면서 ‘대장 서영’이라고 쓴 깃발이 세워졌다.
[원래 선진의 계책에 의하면, 선차거와 도격은 군사 5천을 거느리고 효산 좌측에 매복하고, 서영과 호국거는 군사 5천을 거느리고 효산 우측에 매복하여, 秦軍을 좌우에서 협공하는 것이었다.]
맹명은 이때 마치 만 개의 화살이 가슴을 꿰뚫는 것 같았고, 어떻게 해볼 아무런 방도도 생각나지 않았다. 秦軍은 각자 흩어져 산을 기어오르고 계곡을 건너갔지만, 모두 晉軍에게 죽음을 당하거나 사로잡혔다.
맹명은 크게 노하여, 서걸술·백을과 함께 다시 타마애로 달려갔다. 그때 길을 가로막고 있던 나무들에는 이미 유황이나 염초 같은 인화물이 뿌려져 있었는데, 한자여가 거기에 불을 붙였다. 화염과 연기는 하늘까지 치솟아 올랐고, 붉은 불덩어리들이 땅 위를 덮었다. 후면에서는 양홍의 군마가 당도하여 압박해 왔다. 맹명 등 세 장수의 전후좌우에는 모두 晉軍으로 가득했다.
맹명이 백을에게 말했다.
“그대 부친은 진정 귀신같은 분이오! 오늘 이곳에 꼼짝없이 갇혔으니, 나는 죽을 수밖에 없소! 두 분은 복장을 갈아입고 각자 도망치시오! 만약 천행으로 살아나 한 사람이라도 秦나라로 돌아가게 되거든, 주군께 아뢰어 군대를 일으켜 복수해 주시오. 그러면 구천 아래에서도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을 것이오!”
서걸술과 백을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것입니다. 설혹 탈출한다 하더라도 무슨 면목으로 혼자 고국으로 돌아간단 말입니까? ……”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수하의 군병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내버린 병거와 병장기들만 길에 쌓였다. 맹명 등 세 장수는 더 이상 어쩔 방도가 없어, 바위 아래 모여 앉아 포박되기만 기다렸다.
晉軍이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 오자, 秦軍 장병들은 마치 가마솥 속의 만두가 하나씩 먹히는 것처럼 한 명씩 묶여서 사로잡혔다. 흐르는 피가 계곡물을 붉게 물들이고, 시체가 산길을 가득 메웠다. 단 한 마리의 말이나 한 대의 병거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제88회에, 秦軍이 낙양성을 지날 때 왕손 만이 秦軍의 패전을 예언했었는데, 딱 들어맞았다.]
염옹(髯翁)이 시를 읊었다.
千里雄心一旦灰 천리 달려온 영웅의 마음 하루아침에 재가 되고
西崤無復隻輪回 서효산에는 다시 병거가 구르지 못했도다.
休誇晉帥多奇計 晉의 장수 계책이 기이하다 칭찬하지 말라.
蹇叔先曾墮淚來 건숙은 이미 알고 눈물을 흘렸도다.
선차거와 여러 장수들은 동효산 아래에 모여, 秦의 세 장수와 포만자를 함거에 태웠다. 秦軍 포로와 노획한 병거와 말, 거기다 활나라에서 잡혀온 포로와 전리품까지 모두 끌고 진양공의 대채로 갔다. 양공은 상복을 입은 채로 포로와 전리품을 받았다. 군중에서는 환호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양공은 세 장수의 이름을 묻고 나서, 또 말했다.
“포만자가 누구요?”
양홍이 말했다.
“이 자는 비록 아장에 불과하지만 겸인지용(兼人之勇)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구가 이 자와 싸워 한번 패했는데, 만약 함정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제압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겸인지용(兼人之勇)’은 몇 사람을 당해 낼만한 용맹을 말한다.]
양공이 놀라며 말했다.
“이 자가 그처럼 효용하다면, 살려두었다가는 훗날 또 다른 변을 일으킬까 두렵구나!”
양공은 내구를 앞으로 불러 말했다.
“그대는 이 자와 겨루어 졌다고 하니, 이제 과인의 면전에서 참수하여 한을 풀도록 하시오!”
내구는 명을 받고, 포만자를 뜰에 있는 기둥에 묶고서, 손에 큰 칼을 쥐고 목을 베려고 하였다. 그때 포만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너는 나한테 패한 놈이 아니냐! 어찌 감히 나를 범하려 하느냐?”
포만자가 소리를 지르자 마치 허공에 벼락이 치는 듯하면서 집이 흔들렸다. 포만자가 소리를 지르면서 양쪽 팔을 잡아당기자 밧줄이 모두 끊어졌다. 내구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려 칼을 땅에 떨어뜨렸다.
포만자가 그 칼을 집으려고 할 때, 곁에서 구경하고 있던 낭심(狼曋)이라는 소교(小校)가 먼저 칼을 주워 포만자를 베었다. 낭심은 두 번 칼을 휘둘러 포만자의 목을 베어 양공 앞에 바쳤다. 양공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내구의 용맹은 일개 소교만도 못하구나!”
양공은 내구를 쫓아내고, 낭심을 차우(車右)로 임명하였다. 낭심은 사은하고 물러났는데, 주군의 인정을 받았다고 자부하여 원수 선진에게 인사하러 가지도 않았다. 선진은 심중으로 불쾌해 하였다.
첫댓글 순마갱의 주인공 제나라 경공(景公)은
언제 나오나요?
잘 보고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