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7일 화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굉일과 반굉일
어느 날 살레지오회 노숭피 신부님께서 “핵교와 학교가 어떻게 다르지요?”라고 물으셨는데 나는 충청도에서 살아서 ‘학교’를 사투리로 ‘핵교’라고 하는 것은 알았는데 어떻게 다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웃지도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핵교는 댕기고요, 학교는 다니지요.” 외국신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우리 모두는 한바탕 웃었습니다. 신부님은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의 숭늉을 너무 좋아하셔서 당신이 좋아하시는 숭늉과 커피를 합하셔서 이름을 ‘숭피’로 지으신 신부님이시기도 합니다.
어려서 ‘굉일’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 ‘반굉일’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핵교와 같이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굉일’은 ‘공일’의 사투리입니다. 그리고 ‘반굉일’은 ‘반공일’의 사투리이지요. 예전에 충청도 사람들은 일요일은 학교도 쉬고 직장도 쉰다고 해서 공일(空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은 반만 쉰다고 해서 반공일(半空日)이라고 하였지요. 지금도 “오늘이 반굉일여서 핵교 갔다 일찍 왔구먼, 낼 읍내 승당 갈껀감?” 하시던 공소의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때만 해도 주일에 공소에서 공소예절을 하려면 공과책(지금의 가톨릭 기도서)을 틀리지 않고 읽을 중학생이 많이 대접받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들이 읍내 성당에 간다면 공소 노인들이 공과책을 읽으면서 더듬거렸기 때문에 성당에 가는지 묻는 말씀으로 그때는 공소에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일은 평생을 농촌에서 일만 하시던 어른들이 쉬는 날을 가리켜 하시던 말씀입니다. 그 일요일을 교회에서는 ‘파공첨례(破公瞻禮 : 모든 공적 행동을 파하고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의 날’이라고 불렀고, 주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학교에 가서야 ‘공일’이 아니라 ‘일요일’이라고 배웠고, 교회에서 ‘주일’(主日 : 주님의 날)로 다시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주일(週日)로 일요일을 말하는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이 한자로 멋지게 週日이라고 쓰면 “아하 저렇게 쓰는구나!”하고 감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어린 아이들도 주일이라고 말하고, 주님의 날을 알아보며, 主日이라고 씁니다. 그것을 보면 정말 무식하게 교회를 다녔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안식일이라는 말도 어떻게 보내야 하는 날인지 지금은 아주 작은 어린아이들도 알아듣습니다.
안식일(安息日)이 편안히 쉬는 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식일은 죽은 사람처럼 일도 하지 말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만 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안식일이 ‘내가 편히 쉬는 날’로 알기도 하였습니다.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는 바쁜 일상이다 보니 매일 중에 주일만이라도 안식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일이 나에게 정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안식일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주일의 주인은 정말 누구인가?’
주일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쉬고, 학교나 관청도 쉬니까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공일이 되었고, 성당에 나가 미사에 참례하면 모든 일이 끝난 것 같이 내 시간을 마련합니다. 예식장에도 가고, 오랜 만에 등산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낮잠도 자고, 내 중심의 안식일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일은 나의 날인가? 주님의 날인가? 생각해보니 대부분 내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2. 주일에 해야 할 일이 성당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교우들을 만나서 하루를 보내면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사목임원들을 만나고, 교회 일을 상의하고, 빠짐없이 짜여진 본당 내 각 단체나 회합에 참여하고, 피정이나 연수회를 보내면 참 뜻있는 주일을 보냈다고 자위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과연 주님의 날에 합당한 일인지를 생각하면 의례적이며 관습적인 신자생활이었습니다. 정말 만남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의 만남보다는 나와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니 말입니다.
3. 주일에 가족들이 오순도순 같이 모여 사랑을 더욱 깊게 하고, 사랑의 보금자리를 가꾸는 일에 나는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였는지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교회 일을 하느라고 거의 주일을 가족과 같이 보내지 못했습니다. 말로는 사랑의 성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으로 내 가정의 성화를 위해서는 별로 노력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4. 주님과 친해지기 위해서 나는 어떤 기도를 어떻게 바쳤는지 생각해 봅니다. 습관처럼 미사에 참례하고 정성 없이 미사를 후딱 해치워버린 듯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바쳤던 기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도를 대신 해주고, 미사를 대신 바쳐준 것처럼 신부님의 강론 말씀도 가슴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며 기억에도 남지 않으며 복음이나, 신자들의 기도 또한 누굴 위해서 지향을 두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그렇게 공일(空日)로 보낸 주일인 것만 같습니다.
<희망은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6,10-20
형제 여러분, 10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11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14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5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20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축일1월 17일 성 안토니오 (Anthony)
신분 : 수도원장, 수도승
활동 지역 : 이집트(Egypt)
활동 연도 : 251-356년
같은 이름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251년 이집트 중부 코마나(Comana)의 부유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무 살 되던 해에 부모를 여의고 누이동생과 단둘이 남게 되었다. 어느 날 성당에 갔다가 우연히 부자 청년에 관한 복음 말씀을 듣게 되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할 결심을 한 그는 상속받은 재산 중에서 누이동생을 위해 일부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은수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고향 근처 한적한 곳으로 가서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독수 생활을 시작했다. 312년에 그는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라는 부르심을 받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산기슭에 있는 빈 무덤 동굴에 거처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15년 동안 노동과 기도 그리고 성경 읽기에 전념하며 엄격한 독수 생활을 실천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는 순교할 각오로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사형 선고를 받은 신자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이집트 나일강 끝에 자리한 피스피르(Pispir) 산에 들어갔다가 텅 비어 있는 성채를 발견하고, 그 입구를 막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약 20년 동안 또다시 독수 생활을 했다. 고적한 생활 속에서 그는 때때로 악마로부터 맹렬한 영적 · 육적인 유혹을 받아 한동안 고생했지만, 더욱 굳은 믿음과 의지와 기도로써 극복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뛰어난 성덕과 수많은 기적에 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소망을 간직하고 성 안토니우스를 찾아와 충고를 청하고 또 그가 어떻게 사는지 살피러 왔다. 제자가 되기를 원했던 많은 사람에 의해 은수자 집단이 여러 곳에 생겨났는데, 그 중 니트리아(Nitria)와 스케티스(Scetis)가 유명하다. 이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고 각자 움막에서 살면서 주일이나 축일에 함께 모여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영적 스승인 성 안토니우스에게서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성 안토니우스는 독수자로서 더욱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홍해 근처에 있는 콜짐(Kolzim)이라는 높은 산으로 들어가 은둔소를 정하고 기도와 수덕 생활에 열중했다. 성 안토니우스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옹호해 달라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의 청을 받고 알렉산드리아로 간 일 외에는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만일 전승이 옳다고 한다면 그는 356년 105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성 안토니우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전해진 이유는, 그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던 성 아타나시우스가 기록한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가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 사막의 은수자들이 환상에 빠지거나 혹은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혜로우며 영적인 사람임과 동시에 학문이 뛰어났으며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이 엄격했다고 한다. 성 안토니우스는 생전이나 사후나 그리스도교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사막의 교부', '모든 수도자들의 원조', '은수자들의 아버지'로 공경을 받는 이유는 그가 처음으로 은수자들을 한데 모아서 다소 산만한 형태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공동 생활을 시작했고, 그들에 대해 어떤 권위를 갖고 일정한 규칙을 제공하며 지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신은 고독하고 한적한 독수 생활을 오랫동안 계속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보통 T자 모양의 지팡이와 함께 수도 규칙을 상징하는 책이나 종을 소지하거나 작은 돼지와 함께 표현된다. 돼지가 등장하는 이유는 성인에게 치유를 청하는 환자들을 위해 돼지 지방으로 치료해 통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전승에서 시작되었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사막에서 악마가 온갖 맹수와 뱀의 환영으로 그를 괴롭혔는데, 어느 날은 멧돼지의 몸을 빌려 성인에게 나타났지만, 성인의 기도로 악마를 쫓아내고 그 멧돼지를 길들였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종은 보통 돼지를 부를 때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안토니오 (Anthony)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