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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여상 25회 졸업생 Home coming day를 마치고
25회 3-1반 백경숙
기록적인 폭염더위와 104년만에 최악의 가뭄까지 동반했던 올여름..그 8월의 끝자락..
문득 낯선 번호로 문자 한통을 받았다.
“이게 모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조심스레 열어본 문자의 내용..
“우리는 당신을 보고 싶어합니다...”라는 내용과 함께..30년만에 처음으로 인천여상 25회 졸업생들의 홈커밍데이 알림 문자였다.
헉~ 갑자기 30도를 윽박지르던 더위가 한풀 꺽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뭔가 뜨거운 숨결이 코끝을 훅하고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잊고 있던 낡은 사진 한 장,,,그러나 너무나 소중해서 꼬깃꼬깃 책장 속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둘 수밖에 없었던 ....그런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어느날 문득 책갈피 속에서 우연히 찾아낸 그런 기분이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화들짝 반가운 기분과 함께 또 한켠에서는 그냥 그 낡은 사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책 갈피속에 끼워 넣은 채 책장을 닫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드는건 왜일까?
그랬다...분명 인천여상은 우리에게 많은 학문과 기술, 그리고 순수와 예지를 가르쳐준 학교였고 동시대 같은 뜻을 품고 한 배를 탄 동지 같은 보고 싶은 친구들과 3년이란 시간을 고스란히 함께 지냈던 끈끈한 추억이 담뿍 담겨있는 정겨운 곳이었다.. ..
하지만 반면 자신의 정체성과 내일을 향한 도전과 비젼으로 용트림을 틀며 청운의 뜨거운 꿈을 꾸어야 할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기였던 우리들의 그때 그 학교는 푸르른 빛인 동시에 아련한 슬픔이었고 아픔이었다.
몇몇 진학반 친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우리 동문 친구들은 그동안 오랜 세월 너무나 익숙하게 살아왔던 학생이라는 신분을 떼고 대학진학의 배움의 길을 접은 채 취업이라는 낯설고 생소한 사회 초년생의 길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현실이
그 당시 여린 사춘기 소녀들에겐 얼마나 큰 부담이자 아픔이었는지....
그 길은 대부분의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어려운 가정형편과 여러 가지 외부적 상황들로 인해 피치 못하게 선택해야만 했던 길이기에...그것이 더 아픔으로,,,때로는 표현못 할 슬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꺼내보고 싶기도 하고 그 아픔들을 애써 외면한 채 그냥 그대로 곱게 접어 감추어 두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은 이미 3주후 갖게 될 동문의 장소로 달려가고 있었다.
‘ 친구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 학교 교정은?’
‘ 또 선생님은? ’
‘
첫사랑을 만나던 그 순간처럼 나의 마음은 설레임과 그리움으로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아련한 추억들이 나의 기억의 편린들과 그리움을 다시 하나씩 꺼집어 내기 시작했고 나의 소녀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머나먼 세월의 저편 꿈 많았던 그때 그 학교로 나를 다시 이끌었다.
드디어 D데이....
졸업 후 단 한번도 교정의 뜨락을 밟지 못했던 나는 설레임과 동시에 조금은 낯선 이방인의 마음처럼
그렇게 학교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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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만에 다시 찾은 교정...
항구에서 불어오던 그 실바람이 나의 머릿결을 반갑게 매만지며 반겨주는 듯 했고 3년을 하루처럼 오르내리던
교정의 옛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다지 많이 변해있지 않았다.
가장 보고 싶었던 구름다리..그리고 우리들의 끝도 없는 수다가 이어졌던 추억의 장소인 바로 그 다리밑에 운치있게 자리 잡고 있는 등나무 의자도 그대로 였고, 4월이면 젊은 베르테르의 편지가 생각나게 하던 라일락 나무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추운 겨울이면 살끝을 에이는 바람에 몸을 웅크리며 냅다 뛰어 달려갔던 실천동의 모습도 안은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겉에서
보는 모습은 여전했다.
봄가을, 체육대회때면 온 전교생이 모여 체육활동과 응원으로 열기를 띠었던 그 마당은 여전한데, 옛 남인천 여중 건물 바로 앞에 있던 응원석의 층계들은 아쉽게도 없어졌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하는 조회시간때, 백조예술제때, 합창대회때 혹은 내가 주로 참가해던 웅변대회때면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 저마다 기량을 뽐냈던 그 강당도 바뀌었다.
..하지만 어느덧 학교를 둘러보던 나는 재잘 대던 친구들의 수다소리와 나뭇잎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터질 듯이 꺄르르 웃어대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맴돌며 짧은 단발머리를 한 채 풀 빳빳하게 먹인 흰카라에 단정한 교복을 입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18세의 소녀로 돌아가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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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먼저 나를 반겼던 친구들..
이번 모임을 위해 많은 친구들을 하나 하나 수소문하며, 어려운 고비를 넘겨가며 이렇게 귀한 자리가 있기 까지 물심양면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이번 모임의 일등공신이자 동창회장인 정순, 그리고 정순을 도와 함께 애쎴던 이은경...박영애..박은미...
그리고 곧이어 하나둘씩 모여 들기 시작하는 그리운 동문 친구들..
인천과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들도 꽤나 있었다. 그리고 서울과 인천 근교, 지방, 멀리는 이국땅에서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다양한 삶을 개척하며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 현재의 삶은 모두들 제각각 다르지만, 모습들은 어쩜... 그때 그대로인지...물론 세월의 흔적이야 비껴갈 수 없겠지만 , 그래도 , 그래도 웬지 30여년전 단발머리 친구들의 소녀같은 그 모습 그대로인듯한 이 느낌은 뭘까? 세월은 흘러도 우리의 마음만은 그대로인걸까?
모두들 30여년만의 만남에 감격해서인지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진한 포옹을 나누는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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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 은사님들의 감격스런 입장..
“와우~ 어쩜 선생님들도 30년전 그때랑 저리도 똑같으실까? 안변하셨어..그치 그치?”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함께 감사와 애정이 담뿍 담긴 우렁찬 박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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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전제로한 실업계 학교라서 자칫하면 정서가 메마를 수도 있었을 텐데..
늘 감동적인 클래식 음악 한곡으로 우리들의 감성을 일깨워주고 너무나도 멋진 테너 목소리로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셨던
나삼수 선생님...... 얼마전 몸이 편찮으셨다고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풍채와 단정한 용모는 정말 그때 모습 그대로이셨다.
그리고 30여년전 그때 10대들의 순수한 마음을 고스란히 앗아갔던 젊은 베르테르 가용현 선생님의 그 소리 없는 미소도 변함이 없으셨다. ...우리끼리는 그걸 썩소라고 불렀었지? 아마도? 후훗~
그때만해도 젊은 오빠라 할수 있었던,,,그리고 늘 칼날같은 양복바지선이 매일같이 화제가 되었던 이준희 선생님...
어라? 오늘은 바지에 그 날카로운 칼날이 실종되었네? 어인일이시옵니까? 선생님..그리하시면 아니되시옵니다..
바지에 칼날을 다시 세우셔야 젊은 오빠가 유지되옵니닷! 풉풉..
정치경제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셨던,,,때로는 나쁜 남자 스타일처럼 빈틈없이 강해보이시기도 하셨지만
어느때던가 가을소풍때 그 가을에 어울리는 러브미텐더를 멋스럽게,,
조금은 느끼하게...엘비스프레슬리의 버전으로 부르셔서 단발머리 소녀들의 탄성을 한몸에 받으셨던 이광희 선생님..
늘 표정은 한결같은 무표정이셨지만,,때론 수줍은 소년처럼 부끄러움도 타시고 18세 소녀들앞에서 눈도 한번 제대로 못맞추셨던, 웬지 어딘가 모르게 작가 이상과 같은 천재적인 포스가 느껴졌던 김봉연 선생님..
그리고...만년 소녀같던, 톡톡 튀는 목소리와 거기에 걸맞는 통통튀는 앙증맞은 걸음걸이, 진학을 접은 우리들에게 꿈을 잃지
말라고, 침을 튀기시며 열정적으로 당부하시던 ....특별히 나는 개인적으로 3학년 합창대회때 나의 지휘법을 고쳐주셔서 그동안 두 번이나 놓쳤던 지휘상을 받게 해주셨던 고마우셨던 김인영 선생님...정말정말...어쩜 그리도 안늙으셨을까? 이제는 우리들과 함께 있으면 친구라고 해도 믿을 것 만 같았다.
선생님..그 젊음의 비법은 뭔가요? 아마도 선생님의 늘 밝고 긍정적인 사고와 커다란 함박웃음이 그 비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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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정말 감사했던 것은 아직도 명문 인천여상의 맥을 이어가도록 물심양면으로 학교를 돌보며 대 인천여상의 학교장다운
여장부스타일이면서도 여성스러움의 섬세함을 두루 갖추신 덕스러운 이미지의 이임순 학교장님의 많은 배려와 신세대 오빠같이 잘생긴 교감선생님, 그리고 후배와 학교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한 김미옥 총동창회장과 임호선 총동창회 총무님,,그리고 18회 민문희선배님이 기꺼이 우리들의 잔치자리에 함께 해주셨던 점이다.
이번 행사에서 빼놓을수 없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순서는 후배들의 다양한 축하공연과 더불어 끝까지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하면서 재치 있게 분위기를 띄워주는 그날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감당해주었던...
우리 때보다 훨씬 발랄하고 톡톡 튀는 재능과 끼로 똘똘 뭉친 우리들의 꿈나무 재학생들의 역할이었다.
너무너무 귀엽고 앙증맞은 이쁜 후배들아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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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지 못했던 더 많은 학우들, 그리고 이미 운명을 달리하셨거나, 몸이 불편하셔서 참석하지 못한 선생님들을 향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의 첫 번째 홈커밍 데이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우리들의 여고시절을 회상하며 수 십년 세월의 간극을 뛰어 넘어 지난 얘기를 어제 만난 친구처럼 대할 수 있었던 건
꿈 많았던 여고 시절의 추억과 서로의 아픔을 고스란히 함께 공유 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나온 일상에서 문득 떠오르는 아련한 수 만가지의 소소한 추억의 조각들....
이준희 선생님이 부르신 “과거는 흘러갔다”를 들으며 웬지 숙연해졌던 마음...
비록 시간이 흘러 이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우리들의 소녀시대이긴 하지만
아직도 살아가야할 날들이 많음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오늘의 이 기억 또한 먼 훗날
또 하나의 빛바랜 추억으로 꺼집어 내는 그날까지 책갈피 속에 곱게 간직하겠지....
변함없는 친구들과의 우정과 우리들의 옛정을 간직하신 여러 선생님들과의 오늘의 이 감격스런 해후를
떠올리면서 다음의 만남을 다시 한번 기약해본다.
인천여상이여 영원하라, 25회 동문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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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시한번 지난 홈커밍데이 모임의 기쁜날을 회상하게 만드는 귀한글... 감사한다...친구야... 총동창회가 짝수해(2012년도 모임완료)에 있어여... 함께한 친구들, 함께하지못한,친구들 모두 잘지내고 다음모임에 건강히 만나길 바래여.....
마니 설레였겠습니다. 그 심정이 그대로 전해지는듯합니다. 인천여상의 졸업생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행복하세요 ~~
3학년 1반 백경숙 학생을 백일장 "장원"으로 추천합니다!!
너무너무 곱게 쓰셨어요.
"책갈피 속에 끼워넣은채 책장문을 닫고 싶은~"은, 제 맘을 훔쳐 보시고 쓰신것 같아, 처음부터 공감하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 시절 뒤엉켰던 맘을 추스렸을 땐......졸업이 눈앞이더라구요.
고맙습니다...우리모두가 겪었던 한 마음이라 공감이 컸겠죠....아마도...
어!!ㅋㅋ 백 인혜~~^^**
방가방가..네 글이 참 곱구나...
그날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새삼 뭉클하다~
누군지...개명한 내 이름을 아는것 보니
나의 측근? ㅋㅋ
실은 제가 백경숙- 백인혜로 개명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