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맛있게 먹을 때에 먹기를 그만두라
“나의 야심은, 다른 모든 사람이 한 권의 책 속에서 말하는 것,
다른 모든 사람이 한 권의 책 속에서도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을 열 개의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다.“
니체가 <우상의 황혼>에서 한 말이다.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사람이 니체다.
“나는 왜 이렇듯 좋은 책을 쓰는가?”
“나는 왜 이렇듯 현명하고 영리한가?“
이렇게 말했던 그가 인류가 지니고 있는 가장 깊은 책을 선사한다고
말했던 책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다.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는 떠나야 할 때 명성과 이별하라.
그리하여 떠나야 할 때 떠나라.
이 어려운 수업을 하라
자기가 가장 맛있게 먹을 때에 먹기를 그만두라.
길게 사랑받고자 하는 자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익어야 할 가을날을 기다리는 신맛이 나는 사과의 운명도 있다.
그는 익는 것과 동시에 누렇게 되고 시들어 버린다.
어떤 사람은 심정이 먼저 늙고, 어떤 사람은 정신이 먼저 늙는다.
단 어떤 사람은 청년이면서 이미 늙은 사람처럼 되었고,
어떤 사람은 늦게까지 그 젊음을 간직하는 사람도 있다.‘
(...) 많은 사람들이 맛이 들기 전에 그친다. 이미 여름철에 썩고 만다. (...)
과잉된 인간의 무리는 너무도 오래 살고,
너무도 그 가지에 오래 매달려 있다.
원컨대 폭풍아, 불어라!
그리하여 이 썩은 열매를 모두 가지에서 흔들어 떨어뜨려버려라.“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 1부 ‘자유로운 죽음’에서
한 말이다.
요즘 살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있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말이다.
그런데, 맛있는 음식, 그 고귀한 것들을 앞에 두고
어떻게 수저를 놓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설 수 있을 것인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지고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너무도 늦은 것이며,
소수 사람들의 죽음은 너무 이르다.“
이 말도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말이다.
오래 살면서 아름답고 고상한 향기를 세상 가득 뿜어내야 할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비명에 죽고
일찍 죽어야 할 사람들이 오래 살면서 세상에 온갖 악취를 풍기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그는 너무도 일찍 죽었다.
만약 그가 내 나이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는 자기의 가르침을 철회했을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만큼 그는 충분히 고귀한 인간이었다.“
목숨을 건 혁명이나 종교를 전파하는 시기는
젊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나폴레옹, 체 게바라, 안중근, 다 젊을 때에 그러한 일들을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게 되면 분별력이 생기게 되고,
이것저것 주위를 살피다가 보면
운산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예수 역시 서른셋의 나이를 지나 마흔 셋, 쉰셋이 되도록 살았으면
그가 했던 말들을 수정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죽음을 배우는 것이리라.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순간순간 놓치지 말고 배워야 하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아니 망각한 채 보내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죽음 앞에 서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들의 삶이리라.
“인간은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
그럼으로써만이 죽음으로 가는 자의 죽음은 축제가 된다.“
니체의 말이 귓전을 때리는 새벽이다.
2023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