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이다. 팀으로 복귀한 후 이어진 대학팀들과의 연습경기로 그들은 힘이 드는 듯 했다. 몸이 힘들다며 기분 좋은 투정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얼굴에선 피곤함과 함께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임) “잘 지내다 왔어요. 작년처럼 주변관광이나 그런 것들은 없었지만 나름 훈련을 하면서 소소하게 터키를 느껴보기도 하고 즐겨보기도 했어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훈련이었으니까요. 훈련에 집중했고 또 열중했어요. 터키에서 3주간 있는 동안 모두 10게임을 했어요. 그중 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 출전했지요.
감독님이 바뀌셨고 팀이 변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했고 또 적응하려고 노력했어요. 팀이 원하는 부분과 맞는 부분들이 있어서 뿌듯하기도 했고 더 열심히 했어요. 큰 부상 없이 잘 다녀왔습니다.”
(이) “3주간 터키에 있는 동안 사실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부상을 입는 바람에 연습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고 열흘정도 훈련에 참가했던 것 같아요.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몸만 좀 더 좋았으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을 텐데. 팀 선수들하고도 더 많이 호흡하고 맞춰보고 그랬을 텐데.
후반부에 회복을 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오늘은 또 절망적이네요. 운동하다가 다쳤거든요. 전지훈련 이후로 조금씩 몸을 만들어갔고 또 많이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쳐버리니까 허무하네요. 더 노력해야죠. 준비 되어있어야 하니까요.”
저마다 아쉬움이 묻어나고, 또한 희망도 묻어난다. 아쉬웠다고 해서 한없이 실망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에 그들은 다시 일어나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얼굴엔 항상 아쉬움과 희망이 공존한다.
(이) “가서 재밌는 일 없었냐고요? 저희 호텔에 FC서울 선수들도 함께 지냈거든요. 박주영 선수도 보고, 김은중 선수도 봤어요.(웃음) 외국인들이 가득한 것 보다는 같은 한국 사람들이 함께 지내서 삭막하지 않고 좋았어요.(웃음)”
못 말리는 우리의 이태우. 그는 같은 프로 선수인 박주영과 김은중이 정말 신기했을까?
기대하시라 그의 찬란한 입담을.
프로 데뷔, 그러나 녹녹치 않았던 푸른 잔디
2005년 임현우는 아주대를 졸업하고 대구에 입단했다. 학창시절 줄곧 주전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중요한 순간에 큰 수훈을 세우기도 한 그.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고 그는 제대로 된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듬해 입단한 이태우 또한 같은 처지였다. 경희대를 졸업하고 2006년에 입단한 그도 쉼 없이 달리고 싶었던 푸른 그라운드가 아닌 관중석에 앉아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보아야 했다.
간간히 찾아오는 출전 기회. 그러나 교체선수로 경기를 함께하기만 했을 뿐 정작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일말의 희망을 안고 원정 버스에 올랐지만 돌아오는 길, 그들은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
(임) “기회가 왔을 때 못 잡은 게 잘못인 것 같아요. 많이 아쉬웠죠. 처음 입단할 당시에 깁스를 하고 있었어요. 입단해서 대구에 올 때 ‘내가 과연 이 몸을 하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얼른 깁스 풀고 운동하기를 기다렸고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죠. 하지만 부상이 매번 재발하면서 스스로한테 많이 실망했어요. 제대로 몸도 올라오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많이 했죠.
몸이 올라온 상태에서도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전 감독님 스타일과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겠죠. 전 감독님은 수비에도 적극적인 가담을 원하셨는데 제 포지션 상 많이 부담스러웠거든요. 감독님 탓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제가 많이 부족했지요. 적응하고 노력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요. 올해는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야죠. (웃음)”
(이) “질문의 요지가 똑같은 것 같네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기회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속상했던 것이 사실 우리들 마음 이예요. 하지만 어디 가서 그런 부분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요. 다 핑계니까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지만 선수와 감독이라는 자리를 두고 보았을 때 제 잘못이 더 크거든요. 감독의 마음에 들지 못했으니까요. 내가 이만큼 부족한 부분을 금방 찾지 못했고 또 찾은 뒤에도 채우지 못했으니까 저희 잘 못이 큰 거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선수로서 왜 그런 마음이 안 들겠어요. 남들처럼 골도 넣고 세리머니도 멋지고 하고 싶고 그랬죠. 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으니까. 올해 한 걸음 더 걸어 나가면 되는 것이잖아요. 지난 일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웃음)”
고작 10분의 시간, 많게는 후반 40분의 시간을 경기에 출전했다.
대부분 후반 10분을 남겨두고 교체되어 들어가는 상황. 그들의 능력을 짧은 시간 내에 보여주어야 했고 끊임없이 달렸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고 또 한잔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05년부터 줄곧 나는 임현우라는 선수에게 많은 기대를 했었다. 이태우 또한 그랬다. 연습경기를 찾거나 훈련장을 찾았을 때 항상 한걸음 더 뛰고 밝은 모습으로 경기에 집중하는 얼굴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연습경기 출전기회를 잡아 좋은 경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다가도 매번 기대하곤 했다.
기대하는 이들을 향해 제대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그들 또한 아마 매번 마음이 쓰렸을 터.
(이) “관중석에서 이렇게 내려다보면서 ‘내가 누구보다 더 잘했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또 다른 사실은 저 또한 그 상황에 뛰고 있다면 다른 선수와 다르지 않게 경기를 뛰고 있을 것이라는 거예요. 제가 그 사람들 보다 잘하면 뛰고 있겠죠. 다 똑같은 거예요.”
“원정경기를 가잖아요. 작년에 가는 날이 나름 있었어요. 쫓아는 가도 뛰지는 못하는 거예요. 원정 버스에 오를 때 생각하죠. 이 사람이 나를 데리고 가서 ‘한번은 기회를 주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잖아요. 가서 몸을 풀면 예전 코치님이 ‘오늘 준비해라’ 그러세요. 그런데 결과는 못 뛰고 오게 되고. 그러면 굉장히 스트레스가 쌓이죠.”
1년차이기에, 2년차이기에 참을 수 있었다. 아직 만들어온 시간보다 만들어 나아가야하는 시간이 더 많이 남아있기에 그들은 묵묵히 경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누구보다 독한 마음을 먹고 집중하고 있다. 충분히, 넉넉한 시간을 쉬었기에.
가장 떨리던 순간, 데뷔전
많은 경기를 소화하진 못했지만 프로 데뷔전을 치르지 못한 것은 아니다. 프로 입단 첫해 데뷔경기 조차 치르지 못하는 선수들에 비하면 그들은 행복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심장을 한없이 두드리던 그날.
(이) “부산과의 경기에서 데뷔를 했어요. 원정경기였는데 5 : 1이라는 큰 스코어로 지고 말았죠. 2006년 신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경기에 출전했어요. 사람이 안 되려고 하면 안 되는 거 있잖아요.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되는 날이 아니었죠. 이후로도 경기 따라가서 출전하면 매번 졌어요. 딱 한번 이겼구나. 대전 원정 가서 한번 이겼어요. 경기를 뛰진 않았지만 그래도 따라가서 이긴 경기는 그게 처음이었어요.
아, 질문이 뭐였죠? 아! 데뷔전. (웃음) 제 나이가 당시 스물넷이잖아요. 중학교 빼고,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만 생각해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경기를 했겠어요. 연습경기 이러저러한 경기 다 뛴 거 생각하면 얼마나 많아요. 데뷔전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딛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에요. 긴장이 되지는 않았어요. 마음만 앞섰던 것 같아요. 긴장보다는 마음이 앞서서 많이 그르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나름의 떨림이 있었다고 할까요?”
(임) “앞이 안보였죠. 보이는 게 없었어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마음은 급하고, 무언가 보여주긴 해야 하고. 도대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요. 볼을 잡으면 미리 그라운드를 한번 살피고 다시 패스해 줄 곳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래야 경기를 풀어 가는데 정말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어요.
공이 오면 그저 ‘잘 잡기만 하자’하고 생각했어요. 그것 밖에 생각하지 못했어요. 잡고 나서 그러니까 문제가 된 거죠. 어디다 내어 줘야하는데 멍하니 그냥 있었죠. (웃음)
가장 떨렸던 순간인 것 같아요. 프로라는 이름을 얻고 입단해서 운동을 했지만 나 스스로 ‘내가 프로구나’ 하는 걸 그때 알았던 것 같아요. 가슴 떨리고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프로가 되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가장 크게 나눌 수 있는 것이 금전적인 부분이다.
능력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운동을 하게 되는 프로무대. 처음 입단해 월급을 받던 순간, 학교 이름이 아닌 내 이름 석자가 또렷이 적힌 내 생의 첫 프로 유니폼을 받았던 순간. 이들에게 프로는 또 다른 처음을 경험한 쓰리지만 달콤한 곳이다.
(임) “처음 유니폼 받았을 때 ‘아, 이제 프로선수구나. 이제 프로답게 볼 차야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매해 유니폼을 받고 어딜 가든 입게 되는 것인데도 프로 첫 유니폼은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하는 것이니까. 내 이름을 걸고 뛰는 것이니까. 더 많은 부담이 따를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더 자중하게 됐죠.
유니폼 받았을 때도 그렇지만 첫 월급 탔을 때도 기억나요. 당시에 아버지께서 관리해주신다고 해서 모두 드렸거든요. 지금은 아니고요. 드리면서 참 기분이 좋았어요. 운동하기 싫어서 도망 다니던 막내아들이 무언가 드릴 수 있다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봉투 세 개에 어느 만큼의 돈을 넣고 두 개는 부모님 드리고 하나는 형한테 줬어요. 지금은 영어선생님이 되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당시에 형은 그냥 학생이었거든요. 동생이 용돈 하라며 준 돈이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할 수도 있지만 제가 번 돈을 가족 모두에게 쓰고 싶었으니까요.
전해주고 나니까 마음이 왜 그렇게 뿌듯한지 몰라요. 제가 할 도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데뷔전만큼이나 잊지 못할 순간이었어요.
이번 설에는 어른들 드시라고 좋은 술을 준비했어요.”
(이) “먹고 취하는 건 다 똑같은데 비싼 술을……. (웃음)”
(임) “가족들을 위해서 무언가 준비하고 건넨 뒤 행복한 얼굴 보는 것이 참 좋아요. 얼른 가족들 만나고 싶어요. (웃음)”
막내아들이 프로라는 멋진 무대에 입문한 것으로도 부모님과 형제들에겐 더 없이 행복하고 소중한 일이다. 돈을 벌었다는 것, 그리고 주었다는 것이 다만 이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아들이 주었기에 행복한 것이고, 내 형제가 건넸기에 단 1원의 돈 조차도 쉬이 꺼내어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처음 유니폼 받았을 때 저도 참 행복했지만 부모님이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더 행복했어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타지로 돌면서 고되게 운동한 것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그런데 프로에 입단했고 ‘저 입단 했습니다’하면서 아들 이름 적힌 유니폼을 이렇게 보여드렸으니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하시겠어요. 그 행복함에 좋았어요.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형들이 너무 멋져보였고,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 형들이 멋져보였어요. 대학교 때는 또 프로가 멋있어보였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이제 제가 프로가 되고 나니까 반대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프로가 됐으니까 학생들에게 있어서 선망의 대상이 된 거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면서 행복하고 더 어깨가 무겁더라고요.
운동이 더 고되긴 해요. 돈이 오고 가고 어떻게 보면 젊은 나이에 남들보다는 많이 버는 것이 사실이니까. 제 미래를 위해서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 고된 운동이지만 즐겁게 해요. ‘아들이 프로축구 선수다, 아들이 이번에 또 뭐 좀 타왔더라’ 그래서 좋았어요. 내가 기뻤던 것 보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더 좋았어요.”
장하다, 대한의 아들들. 모든 자식들은 그렇다. 직접 내 손으로 일해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얻게 되면 마음이 찡하고 가족들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내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선물해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프로는 단순히 돈을 벌게 해주는 수단이 아니라 가족에게 사랑을 배달하고 그로 인해 기쁨을 얻는 매개체인 것이다.
(이) “아마 모든 선수들이 그럴 거예요. 모아둔 돈이 만약 30만원 있다고 하면 선뜻 자신이 무언가 사고 싶었던 물건이 있더라도 부모님 것, 가족들 것부터 사게 되어 있어요. 그러고 나서 남은 돈으로 정말 저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게 되죠.
그치 현우야? 너도 그렇지 않아?”
(임) “응.
다들 그래요. 스스로한테 쓰는 것 보다 가족들이 우선이니까요. 아마 모든 선수들 마음이 같을 거예요.”
어쩌면 가장 불투명한 미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운동선수들일 것이다.
정해진 순간이 아니라 모르게 찾아오는 부상이라는 녀석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평생해온 일들을 한순간에 접어 버려야 한다.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내 것’이라는 나 하나의 생각으로 살 수도 있지만 가족들 앞에서의 그들은 ‘나’가 아닌 ‘우리’이기에 우리의 미래를 만들며 살아간단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평생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것이라는 무언의 마음 씀씀이들이 전해지는 순간.
- 2부에서 계속됩니다.
K-리그 명예기자 이솔희
경기사진출처 : 대구FC 공식홈페이지
첫댓글 이선수 스피드가 좋아서 변감독이랑 잘맞을듯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