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떠난 뒤 가족 잃은 만큼 아픈 이유?
김현정 에디터2026. 8. 8. 18:01
반려견을 떠나보낸 뒤 오랫동안 빈자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습관처럼 이름을 부르거나 산책하던 시간이 되면 유독 허전함을 느낀다. 주변에서는 "동물인데 너무 오래 슬퍼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근 연구들은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이 사람을 잃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연구에서는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의 7.5%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애도가 지속되는 '지속성 애도 장애(PGD)' 기준을 충족하였다.
왜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이토록 아픈 걸까. 최근 과학 연구들을 따라가 보면 그 배경에는 인간과 개가 맺어온 특별한 관계가 있다.
● 친구·연인보다 만족스러운 관계
보르발러 투르찬·에니코 쿠비니 헝가리 외트뵈시로란드대 연구팀은 반려견 보호자 717명에게 반려견과 자녀, 연인, 가까운 친척, 가장 친한 친구와의 관계를 평가하도록 하였다. 연구 결과는 2025년 4월 2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되었다.
연구팀은 동반자 관계와 친밀감, 신뢰, 만족도 등 13개 항목을 비교했다. 그 결과 보호자들은 자녀를 제외한 모든 인간관계보다 반려견과의 관계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고하였다. 반려견은 동반자 관계와 돌봄 측면에서도 친척과 친구, 연인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려견과의 관계에서는 부정적인 상호작용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연구진은 사람과 개의 관계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대가 가진 긍정적인 측면과 친한 친구 사이에서 나타나는 적은 갈등을 동시에 지닌다고 분석하였다.
반려견은 어린이에게는 놀이 친구,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생활의 동반자,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는 자녀와 비슷한 존재, 노년기에는 정서적 지지자가 될 수 있다.
개는 장난감의 모양이 달라도 사용 방식이 같으면 기능을 바탕으로 단어의 의미를 일반화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성형 AI 제작.
● 내 말을 알아듣는 반려견
사람과 반려견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서는 '언어'다.
클라우디아 푸가차 헝가리 외트뵈시로란드대 연구팀은 단어 학습 능력이 뛰어난 개들이 사물의 겉모습이 아닌 기능을 바탕으로 단어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는 2025년 9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되었다.
연구팀은 개들에게 '잡아당기기'와 '가져오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서로 다른 장난감과 함께 학습시켰다. 이후 크기와 색, 모양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장난감을 제시하였다.
개들은 처음 보는 장난감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적절한 물건을 구별하였다. 단순히 특정한 모양의 장난감과 단어를 연결해 암기한 것이 아니라 물건이 지닌 기능을 바탕으로 단어의 의미를 일반화한 것이다.
● 대화를 엿듣기만 해도 새로운 단어 배운다
개가 말을 배우는 능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샤니 드로르 외트뵈시로란드대 연구팀은 단어 학습 능력이 뛰어난 개가 자신에게 직접 말을 걸지 않아도 사람끼리 나누는 대화를 듣고 새로운 사물의 이름을 익힐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는 2026년 1월 8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되었다.
연구팀은 많은 장난감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재능 있는 단어 학습자(GWL)' 개 10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보호자가 직접 새로운 장난감의 이름을 알려주는 상황과 보호자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개가 지켜보기만 하는 상황을 비교하였다.
10마리 가운데 7마리가 두 상황 모두에서 새로운 장난감의 이름을 학습하였다. 자신에게 직접 알려주지 않은 단어도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며 익힌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능력이 생후 18개월 안팎의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엿듣기 학습'과 기능적으로 비슷하다고 설명하였다.
개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달라지는 체취를 감지하고 행동과 의사결정에 변화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성형 AI 제작.
● 말하지 않아도 스트레스 냄새 알아챈다
반려견과의 소통에는 말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개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체취의 변화에도 반응한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편안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서 각각 체취를 채취해 개들에게 맡게 하였다. 연구 결과는 2024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의 냄새를 맡은 개는 모호한 상황을 보다 비관적으로 판단하는 행동을 보였다. 연구팀은 사람의 스트레스가 냄새라는 화학적 신호를 통해 개의 감정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하였다.
보호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반려견이 사람의 상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 인간과 개의 동행, 빙하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과 개의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진 역사는 현대의 반려동물 문화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안데르스 베리스트룀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연구팀은 고대 개와 늑대 216마리의 유전체를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2026년 3월 2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되었다.
가장 오래된 표본은 스위스 케슬러로크 유적에서 나온 약 1만4200년 전 개였다. 유전체 분석 결과 이 개는 이후 유럽에서 살았던 개들과 유전적인 연속성을 보였다.
같은 날 윌리엄 마시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이 '네이처'에 발표한 또 다른 논문에서는 튀르키예에서 약 1만5800년 전, 영국에서 약 1만4300년 전의 개 표본 유전체가 분석되었다.
두 연구는 빙하기 말기에 이미 개들이 인간과 함께 서유라시아의 넓은 지역에 퍼져 있었으며 인간과 개의 관계가 적어도 1만 년 이상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와 유사한 수준의 깊은 애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생성형 AI 제작.
● 그래서 이별도 가족 사별만큼 아팠다
오랜 동행과 매일의 돌봄, 언어와 감정의 교류가 쌓이면서 반려견은 단순히 '기르는 동물'을 넘어선 존재가 된다. 관계가 깊은 만큼 그 관계가 사라졌을 때 겪는 상실 역시 클 수 있다.
필립 하일랜드 아일랜드 메이누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영국 성인 975명을 대상으로 사람이나 반려동물을 잃은 뒤 나타나는 애도를 조사하였다. 연구 결과는 2026년 1월 14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되었다.
조사 대상 가운데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32.6%이었다. 이들 중 반려동물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모두 경험한 사람 가운데 21%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가장 고통스러운 사별로 꼽았다.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의 7.5%는 '지속성 애도 장애(PGD)' 기준을 충족하였다.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경우 7.8%, 조부모 등 다른 가족 구성원 8.3%, 형제자매 8.9%, 배우자나 연인 9.1%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부모를 잃은 경우는 11.2%, 자녀를 잃은 경우는 21.3%였다.
연구팀은 전체 지속성 애도 장애 사례의 8.1%, 약 12명 중 1명꼴이 반려동물과의 사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더 주목할 점은 슬픔이 나타나는 방식이었다. 분석 결과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과 사람을 잃은 사람 사이에서 지속성 애도 장애 증상이 나타나는 구조에는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반려동물을 잃은 뒤에도 임상적으로 심각한 수준의 애도가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사람의 죽음만을 지속성 애도 장애 진단의 사별 대상으로 한정하는 현재 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반려견은 매일 돌봐야 하는 존재인 동시에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다. 사람의 말을 일부 이해하고 대화를 들으며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흔적까지 냄새로 감지한다. 이런 관계의 역사는 빙하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뒤 겪는 깊은 슬픔을 단순히 '동물 한 마리를 잃은 슬픔'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과학이 보여주는 답은 오히려 단순하다. 이별이 가족을 잃은 것만큼 아플 수 있는 것은 함께 살아 있는 동안 이미 가족에 가까운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doi.org/10.1038/s41598-025-95515-8
doi.org/10.1016/j.cub.2025.08.013
doi.org/10.1126/science.adq5474
doi.org/10.1038/s41598-024-66147-1
doi.org/10.1038/s41586-026-10112-7
doi.org/10.1038/s41586-026-10170-x
doi.org/10.1371/journal.pone.0339213
[김현정 에디터 hjn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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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친했던 사람이 떠나 가도 몇 일간 또는 그 이상, 또는 간간이 허전한 마음으로
마음을 울려 주는데 막상 애견도 그 공허한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