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신기한 것은 무엇인가?
세상에는 신기한 것이 많다. 먼저 나를 비롯한 무수한 사물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여기 저기 공사장이나, 험준한 산에서 산을 옮기기도 하고 산을 만드는 불도저도 신기하고, 그 가파른 언덕을 기어오르는 자동차,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아니 세상에 모든 것이 다 신기하다.
같은 사람인데도 여지와 남자라는 것, 그래서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일 수도 있다. 이를 테면 금성과 화성에서 온 남. 여, 연둣빛 나뭇잎, 붉은 노을, 안개나, 구름까지도,
그런데 그와는 다른 데에서 신기한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눈이 미치는 곳에서,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분명히 오래 전에 탄생해서 새로울 것 같지 않은 고전 음악이나, 지나간 유행가, 혹은 소설이나 시 속에서 그러한 신기한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자 또 다른 행복이다.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트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우리 세 사람이란 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안이라는 대학원 학생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요컨대 가난뱅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여 그의 정체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도 나지 않는 서른 대여섯 살짜리 사내를 말한다.(...)
나는 스물다섯 살짜리 시골 출신, 고등학교는 나오고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하고 나서 군대에 갔다가 임질에 한 번 걸려 본 적이 있고, 지금은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아마 알았을 것이다.“
소설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의 도입부다. 을사년스런 그해 겨울, 세 사람의 남자가 우연히 포장마차에서 만나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책의 전체적인 흐름이고, 그 패러디로 1984가 나오기도 했다.
“잠깐 무슨 얘기를 하시자는 겁니까?”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들어보세요. 그 친구와 나는 출근시간의 만원 버스 속을 비집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앞에 섭니다. 나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나서, 달려오느라고 좀 멍해진 머리를 올리고 있는 손에 기댑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아랫배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보냅니다, 그러면 처음엔 얼른 눈에 뜨이지 않지만 아랫배가 조용히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르내린다는 건...호흡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죠?”
“물론입니다. 시체의 아랫배는 꿈쩍도 않으니까요. 하여튼,....나는 그 아침의 만원 버스 속에서 보는 젊은 여자의 아랫배의 종요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퍽, 음탕한 얘기군요” 라고 안은 기묘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화가 났다. 그 얘기는, 내가 만일 박사게임 같은 데에 나가게 도해서,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이라는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남들은 상추니, 오월의 새벽이니, 천사의 아미니, 하고 대답하겠지만 나는 그 움직임이 가장 신선한 것이라고 대답하려니, 하고 일부러 기억해 두었던 것이다.
“아니, 음탕한 얘기는 아닙니다.” 나는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그 얘기는 정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관계 같은 것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동작은 오르내린다.” 는 것이지 꿈틀거린다는 것인 아니군요. 김형은 아직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지 않으시구먼.“
우린 다시 침묵 속으로 떨어지는 술잔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개새끼, 그게 꿈틀거리는 것이 아니라도 괜찮다.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난 방금 생각해 봤는데. 김형의 그 오르내림도 역시 꿈틀거리는 일종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렇죠?”나는 즐거워졌다. “그것은 틀림없이 꿈틀거림입니다. 난 여자의 아랫배를 가장 사랑합니다. 안형은 어떤 꿈틀거림을 가장 사랑합니까?”
“어떤 꿈틀거림이 아닙니다.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예를 들면,...데모도.”
“데모가? 데모를? 그러니까 데모?”
“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작가가 소설 속에서 ‘세상에서 신기한 것’이라며 강조 하는 ‘꿈틀거림’ 요즘 세태로 친다면 ‘성희롱 자‘나 ’변태‘ 로 신고 당하기 알맞은 여자의 ’아랫배’는 4,19와 한일협정 데모를 비롯한 1960년대 서울의 모습을 비유한 글이다.
그렇다면 2023년 겨울, 오늘의 세상 풍경은 어떠한가? 지금도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세상에 대한 조소와 자조를 나누는데 달라진 것도 많다.
이를테면 어딜 가나 담배연기 자욱하던 60년대나 80년대 풍경이 사라지고, 오로지 나라의 세금을 위해 불철주야 온몸을 불사르는 흡연 가들은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나라를 위해 애국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등등,
나 역시 꿈틀거림을 사랑한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꿈틀거림이 아닐까? 살아 있는 한, 크게는 아닐지라도 조금씩이나마 꿈틀거리면서 이 땅을 살아갈 나의 인생, 그대의 삶도 역시 그렇지 않을까?
2023년 1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