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바위 고개
석야 신웅순
내 고향 뒷산에는 바위고개가 있다. 언덕 같은 작으마한 산에 큰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불렀다.
그 곳은 어렸을 적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깨복쟁이 친구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위고개를 떠났다. 돈을 벌러 서울로 떠났다.
우리들에게 바위고개는 보리 고개였다. 춘삼월엔 진달래를 따먹어 입술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오월이면 보리를 서리해 바위고개에서 보리목 채로 구워먹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남자 아이들은 농사일을 도왔고 여자 아이들은 집안일을 거들었다. 남자들은 무작정 상경했고 여자들은 공장이나 부유한 집으로 식모살이 갔다. 남몰래 뒷곁에서 봄비처럼 서럽게 울었을 그들이다. 서울 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돈을 많이 벌자. 돈을 많이 벌자’수 없이 되뇌이며 울었을 그들이 지금의 6,70대들이다.
하늘은 낮고 산은 깊었었지
유난히도 진달래꽃 붉게 핀 해였었지
남몰래
산 너머 가서
울먹였던
그 봄비
-신웅순의「어머니 21」
나는 돈 벌 재주가 없어 공부를 택했다. 공부하느라 세월 청춘을 다 보냈다. 어렸을 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화가가 되고자함이 아니라 그냥 그림이 좋았다. 밀쳐두었던 그림에 칠십을 넘기고서야 손을 댔다. 시작한 것만도 꿈만 같다.
능력 밖이라 잘 그릴 리 만무하나 못 그려도 좋다. 그 때를 생각하며 그리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진달래가 피면 봄비가 내렸다.
산 너머 서럽게 울먹였을 봄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 두 명만 바람결에 소식을 전해 올 뿐이다.
가난했던 시절 고단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바위고개였다. 거기서 바라본 먼 하늘은 절절한 시였고 첩첩 먼 산들은 애틋한 노래였다.
그 먼 하늘과 산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워왔던 바위고개였다. 아니 우리가 버리고 간 바위고개였다.
회한에 찬 바위고개를 누가 그린다 했는가. 내 고향 바위고개는 아리랑 같은 그런 한 많은 고갯길일지 모른다.
우리들은 길 없는 길을 어지러이 걸어왔다. 여기까지 온 것만도 내겐 행운이요, 기적이었다. 눈물겹도록 고마운 세상이다.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국은
반드시 뒤따르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김구 선생이 애송시「야설(野雪)」일부
누군들 걸어왔던 길이 부끄럽지 않은 이가 있을까. 부끄럽지 않은 그런 길을 가고 싶다. 아니다. 이제라도 가야한다.
고개 너머 저쪽, 망망한 바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가.
- 2024.8.1.여여재, 석야 신웅순의 서재.
첫댓글 바위고개.
어렸을때 겪었던 이야기가 눈에 보입니다.
다 지나간 그 옛날 추억 거리가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