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나이를 먹게 되면 나름 살아온 기억속에 안주하려 한다. 이게 아마도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본다.요새는 하도 세태가 너무 빨리 변화하는 탓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의 열풍에 나이가 있는 세대는 잘 적응할 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변화의 풍속도가 심한 세상이라고 할 수밖에!
날짜를 보니 한 해의 끝인 12월이네.상투적인 어법으로 세월이 화살같이 빠르다고 하는 어구도 새삼스럽게도 가슴에 와 닿는다. 바로 엊그제에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한다고들 말을 했는데,어느 사이에 벌써 한 해의 마무리가 되는 끝달에 와 있다니 이는 믿기 어려운 세월의 속도가 아닌가 한다.
올 한 해에도 변화무쌍한 삶의 이적들이 연출되면서 나라 전체가 홍역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톡톡히 치루었다.지금 그 여파가 서서히 우리네 일상의 삶이라는 전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소리하려고 글을 쓰는 거 아니다.보다 실질적인 삶이라는 현실의 장에서 우리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삶의 거짓없는 진실만을 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12월이 되니 찬바람도 무섭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의 강도도 장난이 아닐 정도로 겨울임을 실감하게 한다.이런 시기에는 길거리에는 군고구마 파는 행상인들이 등장하고 사거리마다 위치한 포차에서 향기로 코끝을 자극하는 먹고픈 어묵의 향기가 사람들을 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 포차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어쩌면 이게 가장 흔한 겨울철 거리적인 풍경의 한 그림이라도 해도 좋을 것이다.
연탄불에 대한 향수란 거 대단히 강렬하다.지금이야 우리가 잘 사는 시대에 있는 탓에 불에 대한 부족함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산다. 그야말로 불의 전성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우리가 철없던 그 시절엔 겨울철만 되면 월동준비의 제 1호가 바로 연탄사재기가 아닌가 한다. 집집마다 월동으로 김장하고 그 다음이 바로 따뜻한 불의 상징이었던 연탄을 사서 광이나 구석에 산처럼 쌓아올려놓아야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안도감에 우린 연탄을 중요시 했었다.
지금은 그 연탄이 어디에 있나? 아마도 뉴스에도 별 등장하지 않는 연탄 소식도 겨울철이 되면 겨우이 체면치레하듯이 뉴스 시간에 언급된다.
우리들의 밥과 온기를 가능케 했었던 그 연탄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우리네 이웃들과 그리고 시장터 식당이나 술집에서만 그 연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기억과 추억들이 따스한 불씨하에 생기면서 우린 연탄불이 주는 역기능에 묵숨이 경각에 달려 사지에서 살아 나려고 힘든 과정을 겪었던 얘기들을 어찌 잊을 수가 있는가?
참으로 경제개발시대에 있어서 우리네 삶에 있어서 동고동락했던 연탄 화력에 우린 얼마나 웃고 울었는가? 특히 석쇠란 놈 위에 고기를 놓고서 고기 익히는 맛이란 그게 연탄이 있어서 가능했었지.
그 추억을 다시금 올려도 이제는 삶의 풍성한 시대라 해도 그런 추억을 되풀이 하기가 인고한 세태이고 보니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늘이 12월의 첫주말이다. 나도 먹고 살려고 걸어서 타동네 재래시장에 가 사고 귀가했다.저녁무렵이라서 그러한지도는 몰라도 시장내의 전경이 을씨년스럽게 느낀다.다니는 사람들도 많지도 않다.
그런 풍경이 낯설지가 않다.앞으로 추운 날씨가 이어지게 되면 시장터 분위기란 게 냉랭한 거 아닐까 한다.
아직도 연탄불로 무엇을 하는 거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곧 등장하리라 본다.
연탄이 주는 어감은 따뜻하다고 하면 나만의 생각인가? 누구나 이 연탄으로 인해 우린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비록 그 주요한 위치에서 밀려나 있다고 해도 추억을 안고 있는 세대에게는 이 연탄불이야말로 겨울철에 있어서 둘도 없는 가장 가까운 거라고 여긴다.
점점 사람의 삶이 문명화될수록 이런 하찮은 삶의 도구들이 인간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모양이다.
그 일례가 바로 연탄볼이다.이게 있어야 겨울철 군것질을 마음 놓고 행하는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허나,지금은 과학화된 문명의 이기에 의해 철 상관없이 다양한 먹을 거리가 거리마다 상점마다 지천으로 존재하고 있는 탓에 우린 연탄불이 지니는 그 추억에의 여행이 자연스럽게 가로막히게 된다.
이제는 추억에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따뜻함의 대명사격인 연탄불에 얽힌 삶의 이바구가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주는 연결 통로가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전시대의 유산이 된 거 같아서 마음이 아리다.
시인의 가녀린 노래처럼 너는 누구처럼 따뜻한 열기로 남을 따뜻하게 한 적이 있는가?로 절규하듯이 이 겨울동안에 춥다는 현실에 안주하여 오로지 나만 중히 여기는 극도 이기적인 발상에 함몰되어 연탄불의 신화를 잊고서 남의 추위를 잊고 사는 못난 짓에 하지 않을 경계를 하고 있는가?
그리도 춥고 먹을 게 변변치 않았던 그 시절에 우린 연탄불에 둘러앉자서 추위도 잊고 배고픔도 잊으면서 연탄불이 내뿜는 화력에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겨울을 이겨나가게 아닌가 한다.
그 시절엔 우리 모두가 하나이었고 또 연탄불만 있으면 가장 추위에도 무서워하지 않고 같이 겨울을 보냈다. 지금은 우리는 없고 각자가 되어 따로이,외로이 홀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거 아닌지 한다.
아하!우리 곁에 따스한 사람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작은 19공탄의 화력에 우리의 겨울철 내내 그 곁에서 삶의 희로애락이 맥락없이 풍성한 이바구의 씨앗이 되어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었다고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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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보다는 군불에 더 강한 그 무엇을 가진 모양입이더.
춥고 배고픈시절의 대명사
였던 연탄은 5060 의 추억
꺼리에 분명합니다.
어렵던 시절에는 따뜻한
온기가, 한번 피워 놓으면
길게가는 게 연탄의 특징입니다.
에나가님은 아니 우리들도
어려움 속에서도 연탄불의
온기를 그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추웠었지만 따뜻한 온기를요.
지금은 다들 잘 산다고들 하지만
우린 추워속에서 따스함을 느끼는
온기를 잃고서 사는 거 아닌가 합니다.
겨울이면 차디찬 손과 발을 연탄불로 달궈진 따뜻한 아랫목
덮어둔 이불속에 넣고 정담을 나누던 가족간의 사랑이 그리워지는군요.
연탄보일러에 대한 애환도 많었었지요.
한 아궁이에 세게씩 세 곳에 불을 지피다보면 추운 겨울
한밤중에도 지하실까지 내려와야하는 번거로움과 연탄재를
대문 앞에 줄세워 쌓아노면 짖궂은 아이들이 그것을 발길로 차
대문 앞 길거리가 아수라장이 되던 ..
지나간 것,사라진 것들은 모두 아련한그리움이 되나봅니다..
님이 갖는 추억은 우리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겨울철의 연탄에 얽힌 삶의
파노로마가 아닌가 합니다.
아!그리운 연탄불위에 석쇠안에
무엇이든지 간에 두고 굽는다는 거
생각만 해도 입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