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의 실현 <내 고향집> “구암리카페에서의 축제 음악회”
2024.10.29.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에페5,21-33 루카13,18-21
어제는 참 행복하고 만족한 하루였습니다. 100% 충만한 하루를, 하느님 나라를 살았던 날이었습니다. 과정마다 목적지였고 과정마다 만족했습니다. 어디서 마쳐도 완성된 하루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다음 행복기도 내용 그대로 였습니다. 늘 자주 외어보며 지금 여기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임을 확인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발견이자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역시 기상하자마자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 만세칠창중 네 번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를 힘껏 외쳤습니다. 평화로운 하루 순례여정중 또렷히 부각되는 깨달음은 ‘결코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것입니다. 일어나서도 안되겠고 일어나지도 않겠다 하는 생각을 평화로이 살아가는 분들을 볼 때 저절로 드는 확신이었습니다.
“산에
산을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깊은 산같은 분이예요.”
늘 산이라 자부하며,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산처럼 머물러 살다가 어제는 참 오랜만에 움직였습니다. 함께 했던 분에게 산을 움직였다며 믿음을 격찬했습니다. 산아래 모두 바뀌어도 늘 그 자리에 한결같은, 변함없는 산이 있어 전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에 늘 거기 그 자리에 산처럼 정주해야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했습니다.
어제 하루 휴가를 내어 참 좋은 “하느님의 선물”같은 분들과 참으로 오랫만에 충남 예산 봉산의 고향집 순례를 했습니다. 하루 거룩한 순례피정을 다녀온 느낌으로 참 충만한 하루였습니다. 두분 자매님의 생애가 그대로 하나의 “살아 있는 성경책”과도 같다 생각되는 분들이었습니다. 명실공히 다음 다산 어른의 말씀을 상기시키는 분들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은 입으로 하는 자랑이 아니다. 본보기가 되고 싶다면 거쳐 온 세월로 증명하라.”
살아 온 생애 자체가 본보기가 되는 분들이었습니다. 어제 하루 저에겐 ‘신의 한 수’ 같은 하느님의 선물같은 분들이었습니다. 함께 편안히 나눈 식사도 좋았고 고향집 예쁜 구암리카페에서 머물렀던 시간도 참 평화로워 시간 가는줄 몰랐습니다. 마냥 평화로워 마냥 머물고 싶었습니다. 참 아담하고 아름답고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카페로 평화로운 분위기에 저절로 젖게 하는 느낌이었고 함께한 자매님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했습니다.
고향집 근처에서 만난 분은 오직 한분이었지만 오랜만에 충청도 사투리로 친근한 대화도 나눴습니다. 제 고향집 구암리카페 집자리가 좋다는 말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건 어머니도 살아 생전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여긴 좋은 집자리니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어머님 말씀을 들었다며 형수님은 좋은 집자리에서 제가 태어났다며 저를 지목했습니다.
태어나서 20년간 고등학교 시절까지 살아온 고향집입니다. 저의 정서 8할은 여기 고향집 환경 영향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주마등처럼 무수히 떠오르는 그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제의 절정은 구암리카페 뜨락에서 즉흥적으로 열린 음악회였습니다. 함께한 한분은 70대 자매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냈던 재원으로 노래와 기타에 능숙한 분이었습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라 열정에 있음을 확인시켜 준 분이었습니다.
두분 다 공통적으로 뛰어나게 좋은 분들이고, 한분은 겸손과 진실, 한분은 순수와 열정으로 요약할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수도생활을 그대로 보답받고 있다는 느낌의 하루였습니다. 참 무수한 동요들을 함께 열창했고 그대로 하느님 나라임을 실감했습니다. 문득 떠오른 ‘일터로 가자’ 노래를 약간 개작해 불러도 봤습니다.
“낙원이 어디냐고 묻지 말게나
웃으며 노래하는 여기가 낙원이로구나
내 가슴엔 비가 개어 하늘 푸르고
내 가슴엔 언제나 본바람 분다
어화 어화, 어화디야 일터로 가자
이 나라의 주인이 너와 나로구나”
함께 한분들이 하느님 나라의 새일꾼 자매들처럼 느껴졌습니다. 참 기이할 정도로 카페에서 만났던 몇분의 손님과 초등학교에서 만났던 분 한분외에는 면소재지에서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할 정도로 텅빈 시골 땅에 건물들이었습니다. 그대로 구암리카페에 손님은 계속된다하여 기뻤고 친절한 분들이라 잘 될 것이란 예감도 들었습니다.
후에 자생 음악회 동안 카페는 비어 있었지만 비어 있는 그 모습도 참 평화로웠습니다. 카페처럼 지친 분들에게 늘 편안한 빈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두 비유입니다. 오늘의 은혜로웠던 추억에 잘 맞는 비유임을 깨닫습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두 비유들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다.”
하느님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의 그물망입니다. 성장하는 겨자씨 나무처럼 오늘의 보물같은 추억은 끊임없이 섬기고 나누는 풍부한 관계의 그물망으로 확장될 것이라 믿습니다. 더불어 내 자신이 성장하는 겨자씨처럼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 되길 바라는 마음 역시 간절합니다. 이어지는 또 하나의 비유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바로 어제 함께 했던 분들이 사랑의 누룩과 같은 분들었고, 그리하여 기쁨으로 부풀러 올랐던 하느님 나라의 분위기를 체험했습니다. 누룩은 참 좋은 효소입니다. 부패인생을 향기로운 발효인생 하느님 나라로 변모시켜주는 성령의 효소, 사랑의 효소입니다. 건물이나 자연환경이 만드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성령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만드는 하느님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사람이 희망이요 참보물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으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겨자씨 나무같은 사람, 성령의 효소가 되어 안팎으로 발효시켜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부부공동체나 수도공동체를 통해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아내와 남편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 원리는 다음 두 구절이면 충분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여기에 무수히 덧붙일 수 있습니다. 서로 섬기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나누십시오, 서로 존중하십시오, 이럴 때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구절도 소중합니다.
“여러분도 저마다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중해야 합니다.”
상호사랑, 상호존경의 하느님 나라 부부공동체입니다. 부부뿐만이 아니라 제가 몸담고 살아가는 요셉수도공동체 역시 그대로 하느니 나라의 실현입니다. 성규 72장은 사랑이 그대로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 수도공동체 묘사입니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지극히 열렬한 사람으로 이런 열정을 실천할 것이다. 즉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그리스도보다 아무 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다.”
명실공히 그리스도 중심의 사랑의 공동체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얼마전 바티칸 고백사제들에게 주신 교황님의 당부말씀도 좋은 깨달음이 됩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용서하십시오. 여러분은 용서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논의하구요! 하느님의 부드러움을, 겸손을 배우고, 심리분석가가 되지 말고 연민의 경청자가, 용서와 자비의 사람이 되십시오.”
이런 사제들과 이런 사제들을 보고 배운 이들의 공동체라면 그대로 하느님 나라 실현의 공동체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겨자씨와 누룩의 효소가 우리 모두 사랑으로 성장하는 하느님 나라를, 발효로 숙성해가는 하느님 나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줍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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