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늘 지금처럼~
<writen
by Peterpan>
Back Music : 백지영-작은 바램
금번 실시한 지정 작가 모집에 출품했던 글입니다. 공지를 늦게 보아서
하루만에 작품을 완성하다 보니 많이 미흡한 글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소재와 가슴을 쓸어내리는 여운은 부족하지만 글을 차분하게
정독 하시면 두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마음에 와 닿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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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 상
창문을 노크하는 빗소리에 그는 조용히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상쾌한 강바람과 머리를 촉촉이 적셔오는 빗물의 느낌은 언제 느껴보아도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그의
다정한 벗이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남산 타워의 야경은
반갑게 찾아준 빗님 덕분에 오늘 만큼은 영롱하고 웅장한 그의 자태를 뽐내지 못하고 있었다. 요즈음 사람들은 화려하고 편안함을
추구하지만 그는 이렇게 조용히 세상을 적셔주고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비를 더 사랑한다.
이렇게 비를 맞고 있으면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그만의 소중한 기억들이 그의 뇌리를 후벼파 주었고 그런 느낌을 그는 무엇보다도 사랑한다. 설령, 그 기억속의 추억들이 자신의
가슴을 후벼 파내어 시리고 아플지라도 그만이 느끼는 이 여유롭고 애잔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그만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가 부러워 보였는지
누군가 방해를 한다. 비만 오면 발정 난 수컷 마냥 창문을 열고 비를 맞는 당신의 아들이 못마땅했는지 그의 방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외침이 그의 귓전에 날아들었다.
“성혁아! 문 닫아라. 너는
왜 비만 오면 발정(發情) 난 수컷 마냥 머리를 내밀고 비를 맞냐. 산성비라서 몸에 해로우니까 문 닫아라.”
“네에. 어머니 조금만 있다가 문 닫을게요. 염려마시고 주무세요.”
“쯔쯔. 저리도 비가 좋을까. 너 비하고 신랑 각시 해라.”
“하하. 어머니도 참! 알았어요. 금방 닫을 테니까 그만 쉬세요.”
환한 웃음을 보이며 어머니의 등을 떠미는
성혁의 손을 어머니가 지그시 잡으시며 한 말씀을 건넸다.
“성혁아! 아직도 많이 아프냐?”
“네? 아프다니요. 머가요?”
“욘석아. 이 애미가 모를 줄 아냐. 너 헤어진 윤지 생각나서 이런 다는거 이 애미는 다 안다. 몹쓸 년 같으니라고.”
“어머니. 윤지 그런 애 아니에요. 이상한 말씀 마시고 가서 쉬세요.”
성혁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어머니는
이내 발길을 돌려 성혁의 방을 나가셨다. 성혁은 어머니가 떠난 빈 자리에 멍하니 한 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어머니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어느
때부터 인가 비만 오면 창문을 열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당신의 아들이 왜 그랬는지를 말이다. 하기야, 윤지와 헤어진 후 삼일
밤낮을 식음(食飮)을 전폐(全廢)하고 드러누웠던 성혁이였다. 그런 아들이 마음에 상처를 더 받을까 봐 일부러 모른 척 했을 뿐이었다.
방문을 걸어 잠근 후 얼마나 더 창밖을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느새 내리던 비는 소리 없이 그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갑자기 적막해진 분위기 탓인지 성혁의 뇌리에
윤지와 헤어지던 날이 생각났다.
그날도 이랬었다. 여느 때와 같이 윤지는
성혁에게 즐거운 웃음을 선사해 주었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올 즈음에 윤지는 말문을 열었었다.
그리고, 윤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을 아는지 이슬비가 성혁의 가슴을 달래주고 있었다.
윤지는 떠나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그가 정말 좋아하는 글이 있는데 성혁이 너를 볼 때마다 생각이 났었다고. 그리고 제발 너에게 이 글귀를 쓰지 않기를 한없이 바라고
바랐지만 결국은 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여전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당연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그리워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또 너를
그러나, 다시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면 두 번 죽어도 너와는.............“
그렇게 윤지는 떠났었다. 성혁에게 있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윤지가 떠난 빈 자리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리던 이슬비가 자취를 감추었었다. 윤지가 떠남을
축복이라도 해 주는 듯이...............
#2. 만 남
성혁이 윤지를 만난 건 뙤약볕이 내리쬐는
고2 여름 방학이었다. 시골이 고향인 성혁은 방학을 맞아 아직도 시골에 살고 계시는 할머님을 뵙기 위해 고향에 갔다.
오랜만에 내려온 손자가 귀여웠는지 할머니는
주름진 치마 고름을 풀어 꼬깃꼬깃 해진 만원 짜리 한 장을 주시면서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이런 할머니 앞에서 성혁은 언제나 그렇듯이
재롱을 피웠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다가 성혁이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수리를 해서 멋지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성혁은
부리나케 친구를 불러서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학교로 갔다.
학교의 정문을 열고 들어선 성혁의 눈에
정다운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정답게 그를 맞아주었고, 아이들의 손때가 묻은 원형의 지구 놀이 기구에는 동네 꼬마 녀석들이 마냥
신나서 열심히 놀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씀처럼 그의 눈에 낯선 광경이 들어왔다.
그가 다녔을 적만 하더라도 학생수가
많아서 교실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시골에 아이들이 없어서 교실이 남기 때문인지, 기역자 형태였던 학교가 한쪽 건물이 없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아담하고 예쁜 정원이 가꾸어져 있었다. 플라타너스 나무에 매달려 있는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와 아담한 정원이
있는 학교는 너무나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상도 오래가지 않았다.
학교를 둘러보던 성혁의 눈에 시골 학생의 차림이라고는 보기 힘든 한 여학생이 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서서 아담한 정원을 바라보던
그 여학생이 성혁이 있는 곳을 곰곰이 쳐다보더니 놀랄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혹시...성혁이 아니니?”
“어......누구세요? 저를 아세요?”
“너 성혁이 맞구나. 나 모르겠니. 나 윤지야.”
“윤지? 미안한데 나는 잘 모르겠다.”
대답을 해놓고 나서 아무리 여자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아도 성혁의 기억에는 없는 애였다. 그런 성혁이가 못 마땅했던지 성혁을 잠시 쳐다보던 여자애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너랑 초등학교 5,6학년 때
같은 반 이었잖아. 넌 우리반 반장이었고.”
“머...머라고..우리가 동창이야?”
“이런..바보..하기야 넌 꼬맹이였고 난 키가 아주 컸으니까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어..그랬었구나. 우리가 동창이었구나. 암튼 반가워.”
자신을 알아보는 상대방을 자신은 모른다는
사실이 조금은 미안했다. 그래서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 상혁은 대화의 주제를 서둘러 바꾸었다.
“윤지야. 여기 옆에 있는 애
모르겠니?”
“음...잘 모르겠다..미안..”
옆에 있던 친구 녀석은 성혁만 알아보고 자신은 못 알아보는 윤지가 서운했는지
매몰차게 한 마디를 한다.
“나도 너 몰라. 윤지라고?
암튼 반갑다. 난 용수야.”
“응..용수구나. 나도 반가워.”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성혁과 윤지는 다정하게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자신만 고목나무 인 냥 서 있는 것도 어색했는지 용수는 먼저 집에 간다고 가버렸다.
윤지도 성혁과 마찬가지로 중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갔다고 했다. 그리고 윤지의 할머니가 아직도 여기에 계셔서 방학동안 잠시 내려와 있다가 학교 생각이 나서 왔는데
성혁을 알아본 것이라고 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성혁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빡빡한 학교 생활에 여자 친구 하나 사귈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쁜 여학생이 자신과
동창이고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알아보고 이렇게 즐거운 대화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즐거웠다. 결국, 성혁은
윤지에게 조심히 물었다.
“윤지야? 혹시 남자 친구 있니?”
“남자 친구? 아직 없는데..그건 왜?”
“응..그렇구나...그냥 궁금해서..”
“피이..싱겁긴...이만 가자. 집에서 할머니 많이 기다리시겠다.”
“.......................”
집에 가자는 말에 당황해서 인지 성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윤지를 따라 일어나 함께 걸었다. 하지만,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그냥 헤어지기에는
윤지의 모든 것들이 너무 눈에 선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성혁은 말을 건넸다.
“윤지야! 언제 대구 가니?”
“응..내일 갈 건데..너는 언제 가니?”
“이야..잘 되었네...나도 내일 가는데..우리 같이 가자.”
“그렇구나..잘 되었네. 어차피 대구 가려면 너 살고 있는 곳에서 버스 타고 가야 하니까 같이 가자.”
얼떨결에 성혁은 거짓말을 해버렸다.
원래 계획대로 라면 이틀 정도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내일 간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성혁은 윤지와 조금이라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성혁은 윤지의 할머니가 있는 곳까지
바래다 주면서 내일 만날 시간을 정하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 마자 할머니에게는 미안했지만 급한 일이 생겨서
내일 올라가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말씀을 들은 할머님의 눈에 서운함이 가득 배어남을 알 수 있었지만, 아직 철부지인 성혁에게
있어 지금 이 순간 윤지와의 만남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은 성혁의 눈에 하늘 거리는 웃음을 가득 머금은 윤지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3. 행복한
이별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벽닭 소리에 성혁은
잠에서 깼다. 평상시의 그라면 좀더 많은 잠을 청했을 법도 하지만 오늘은 윤지를 만나는 날이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유난스레
호들갑을 떨며 신나하는 성혁에게 할머님이 한 말씀 하신다.
“집에 가니까 그리도 좋냐.
이 할미가 이제 싫은 게로구나.”
“아니야..할머니..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다음에 다시 올게.”
할머니의 서운한 눈빛을 애써 외면한
채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더디게 가는 시계를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성혁에게 할머니가 무언가를 주었다. 신문지에
정성스럽게 쌓아서 주신 삶은 계란이었다.
“집에 가면서 배고프면 이거
먹어라. 알겄제.”
“네에. 할머니...아주 맛있게 먹을게요. 참 잠깐만요.”
성혁은 잠시 할머니에게 기다리라고 말을
하곤 쏜살같이 달려 동네에서 제일 큰 슈퍼에 갔다. 그리곤 그동안 정성스럽게 모아놓은 용돈을 털어 할머니의 속옷 한 벌을 사들고
왔다.
“할머니. 자 이거..속옷이야..내가
다음에 와서 재미있게 놀아줄게.”
“아이고 욘석...기특하기도 하지..그래 할미가 너 생각하면서 입을게.”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되어도 윤지가
나타나질 않았다. 윤지의 할머니 집에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좀더 참기로 했다. 하지만 윤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급한 일 때문에
올라간다고 거짓말을 해 놓아서 인지, 할머니는 빨리 가라고 성화셨다.
어쩔 수 없이 윤지의 연락처 하나도
모르는 체 버스에 오르는 성혁의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집에 가는 내내 성혁의 가슴은 내장의
일부분이 사라진 것처럼 너무 허했다.
허탈한 모습으로 집에 도착한 성혁은
집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힘없이 인사를 건넸고 그런 성혁이 이상했는지 어머님이 한 소릴 하신다.
“왜 벌써 왔어? 무슨 일 있었냐?”
“아니요. 그냥요. 저 들어가서 이만 쉴게요.”
방에 들어가 가방을 풀고 옷을 갈아
입으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잠시 후 어머니가 할머니 전화라고 받아 보라고 하신다. 집에 잘 도착했는지 안부를 묻는 전화이려니
하고 전화기를 들었는데 할머님의 말씀은 성혁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성혁이냐..할미다.”
“네에. 지금 방금 집에 도착했어요. 제가 전화 할 건데 왜 전화 하셨어요.”
“욘석두. 다른 게 아니고 너 가고 나서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어떤 여학생이 집에 와서 너 있냐고 물어 보길래 없다고 그랬더니
연락처 좀 달래서 내가 전화번호 알려주었다. 괜찮지?”
“네에..할머니...그럼요..고마워요..그런데 할머니,,혹시 연락처 남긴 건 없었어요?”
“응..그냥 니 전화 번호만 받아가지고 버스타고 가더라.”
“네에...알았어요..그럼 쉬세요. 다음에 또 찾아 뵐게요.”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나서 성혁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윤지가 와서 자신의 전화 번호를 가져갔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성혁은 어머니의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는 어머니는 멀거니
성혁을 쳐다보았다. 그런 어머니에게 성혁은 자신이 나가고 나서 어떤 여학생에게 전화 오면 핸드폰으로 꼭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리곤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하지만 터미널을 수백 미터 남겨놓고 차가 너무 막혔다. 마음이 조급한 성혁은 택시비를 건내고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채 정차해 있는 택시에서 내려 터미널을 향해 죽어라 뛰기 시작했다.
터미널에 도착한 성혁은 이마에 송글
송글 맺힌 땀방울을 씻을 겨를도 없이 대구행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이제 막 버스에 오르려고 하는
윤지를 볼 수 있었다.
버스에 오르려고 하던 윤지는 자신의
어깨를 잡는 성혁을 보곤 소스라치게 놀랬다. 그리고 성혁의 얼굴에 흥건하게 적셔있는 땀을 보더니 아무말없이 손수건을 꺼내어 성혁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윤지야. 아까 왜 안 왔었어?”
“응..할머니가 조금 편찮으셔서...미안해..너희 할머니 집 전화 번호도 몰라서 연락도 못했어. 근데 어떻게 여긴 왔어?”
“응. 네가 와서 우리 집 전화 번호 물어보았다고 할머니가 전화했더라.”
“그랬구나. 내가 나중에 전화하려고 했는데.”
“암튼 됐어. 윤지 얼굴 보았으니까. 그런데 윤지야!”
다소곳하게 윤지를 부르는 성혁의 말에 윤지가 대답을 했다.
“왜? 무슨 할말 있어?”
“응. 다른 게 아니고 편지해도 돼?”
“편지? 물론이야. 성혁이가 편지해 주면 고맙지.”
“정말이지..편지 보내면 꼭 답장해 줄거지.”
“응. 이쁜 꽃 편지지에 답장 이쁘게 보내줄게.”
버스가 곧 떠난다고 탑승하라는 기사
아저씨의 말에 윤지에게 연락처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성혁은 윤지를 태우고 떠나가는 버스를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짧은 만남이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성혁과 윤지는 이미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4. 꿈결같은 세상
윤지를 그렇게 떠나 보낸 후 둘의 사랑은
무르익어 가기 시작했다. 이틀이 멀다하고 서로에게 찾아온 첫사랑의 설레임을 고이 간직한 채 그렇게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서로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방학 뿐 이었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리고 성혁이 다니는 학교가 좀 까다로워서 금요일까지는
오후 10시에 학교 문을 나설 수 있었고, 토요일은 오후 6시가 되어야 학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게다가 성혁이가 교회의 학생
회장을 맡고 있어서 토요일 밤과 일요일은 교회에서 살다시피 해서 평상시 때는 윤지를 만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윤지와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학교의 방침이 까다로워서 겨울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보충수업으로 평상시와 다름없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학칙이 엄해서 결석은 있어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조퇴는 허락되지 않았다. 만약, 조퇴를
해야 한다면 담임 선생님께 일단 허락을 맡고 그 뒤에 교감 선생님께 허락을 맡아야 할 정도로 학교의 분위기는 삭막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성혁과 윤지의
만남을 방해할 순 없었다. 성혁은 조퇴를 하기위해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교무실로 갔다.
“저, 선생님..조퇴 좀 하려고
하는데요.”
“왜에? 집에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그건 아니구요. 제게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중요한 일? 무언데?”
한참을 망설이던 성혁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말을 있는 그대로 했다. 담임 선생님은 어이가 없었던지 큰소리로 웃으시며 교무실에 계시는 다른 선생님에게
말씀을 하신다.
“글쎄 이 녀석 말하는 것 좀
보세요. 학급의 반장이라는 녀석이 여자 친구 만난다고 조퇴한데요. 하하!”
그 말을 들은 옆에 계셨던 선생님들이
웃으시며 꿀밤을 먹이셨다. 하지만, 결국 선생님은 애들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하시며 조퇴를 허락해 주셨다. 아마도 솔직하게 말하는
성혁이가 대견해 보였을 것이었다.
그렇게 윤지를 만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역사적인 첫 키스도 했다. 더 많은걸 요구하는 성혁에게 윤지는 다소곳하게 거절을 했고 그런 윤지를 성혁은 아껴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긴 이별을 고했다.
고3이 되어 성혁은 학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다. 기숙사 생활은 더욱더 엄격하고 고3인 관계로 무엇보다도 대입 준비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결국,
성혁은 고3의 생활에 남은 거라곤 윤지와 주고 받은 100여통의 편지와 원하는 대학의 합격 통지서 뿐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한심한 커플이었고 너무나
쑥맥인 커플이었다. 하지만, 성혁과 윤지는 서로를 믿었고 고등학교 때는 비록 3번 밖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커플보다도
더 많은 그리움과 사랑을 키워나갔다.
성혁이 원했던 대학이 서울에 있어서
성혁은 서울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윤지 또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윤지는 학교 때문이 아니었다. 고3이 끝날 무렵
예고 없이 찾아온 윤지 부모님의 사망 소식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버린 윤지는 취업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힘들게 가장 노릇을 하는 윤지를 성혁은
열심히 도와주었고 그 만큼 더 많은 사랑을 베풀었다. 윤지와 나누었던 수많은 사연들을 글로써 다 푼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꿈결같은 2년 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윤지는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며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했고, 성혁은 그런 윤지를 바라보며 언제까지고 그들의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별은 소리 소문 없이 성혁의 곁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5. 철부지
사랑, 그리고 이별
어느 때 부터인가 윤지는 조금씩 성혁을
멀리 하려고 했다. 그리고, 성혁의 집안에서도 윤지를 멀리하려는 무언의 압력이 성혁을 압박해 오고 있었다. 세상의 잣대로 보았을
때 성혁은 잘 사는 집의 장남에 장래가 촉망되는 일류 대학 법학과 학생이었고, 윤지는 고아에 어린 동생 둘을 뒷바라지 하는 가장이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윤지와
성혁은 가끔씩 다투었다. 윤지는 성혁에게 이만 자신을 놓아달라고 애원했고, 윤지가 그러면 그럴수록 성혁의 사랑은 깊어만 갔다.
하지만 둘이 넘을 수 없는 태산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둘을 찾아왔다.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 문제가
찾아온 것이었다. 2학년을 마치면 성혁도 남들처럼 군대를 가려고 마음 먹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윤지의 곁에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에서는 빨리 군대 문제를 해결하라고 성화시다. 물론, 그 안에는 윤지와 떨어지게 하려는 부모님들의
계산도 깔려있었다.
성혁은 군대를 가는 대신 병역 특례
업체를 가겠다고 부모님들을 설득했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2년의 시간을 투자하면 해결될 군대 문제가 병역 특례를 통해서 4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다는 게 부모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반대였다. 게다가 윤지와의 문제도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며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오늘 대구에 내려갈 일이 있는데 가기 전에 잠시 얼굴 좀 보자고 윤지에게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윤지는
꽃을 한 아름 들고 있다가 성혁을 보고 꽃을 건넸다.
“이야!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 월급날도 아닌데...”
“피이..바보, 꼭 무슨 날이어야 선물하는 거야? 실망인걸.”
“아니야...아니야...고맙게 받을게...이 꽃 너무 이쁘다..꼭 너 같애.”
꽃처럼 예쁘다는 아부섞인 말에 윤지는
언제나 그랬듯이 다소곳이 웃는다. 그런 윤지가 오늘따라 더욱더 예뻐 보였다. 꽃을 전해준 윤지는 다짜고짜 성혁을 이끌고 놀이
동산에 갔다. 그리곤 평상시엔 무섭다고 곁에도 안 가던 스릴 넘치는 놀이 기구만 찾아다니며 힘껏 소릴 지르고 신났다.
소릴 지르며 무섭다고 안기는 윤지가
더없이 예뻐 보였음은 당연했다. 그리고 새참이라며 준비한 윤지가 직접 싸온 맛있는 김밥을 먹었다. 윤지가 김밥을 성혁의 입에
직접 넣어 줄때는 이런 게 바로 행복이구나 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이제 서서히 고속 버스 터미널에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을 가던 윤지가 기사
아저씨에게 고수 부지로 방향을 틀어 달라고 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성혁을 데리고 내린 윤지는 팔짱을 끼며 좀
걷자고 했고 성혁은 순순히 응했다. 그리고 윤지가 꺼내는 말은 성혁에게 있어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성혁아!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너의 사랑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갈게.”
“무슨 소리야. 어디 멀리 떠날 사람처럼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은 성혁은
처음엔 맨날 하던 소리 또 하나 보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예전과 사뭇 달랐다. 다급한 마음에 성혁은 말문을 급히
열었다.
“윤지야! 무슨 일 있어?”
“아니..없어..”
“근데 왜 떠날 사람처럼 말해?”
“성혁아!”
“응”
“이제 그만 나 놓아줘. 너 원망하지 않을게.”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또 왜 그래..한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오늘 잘 놀고 나서 이게 또 무슨 소리냐구.”
이때까지만 해도 성혁은 언제나 윤지가
했던 말의 반복이라고 생각했다.
“성혁아! 나랑 결혼하고 싶니?”
“물론이야. 내가 능력이 된다면 당장 내일이라고 결혼하고 싶어.”
“고마워. 그런 맘으로 날 사랑해 줘서.”
“별소릴 다하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다음부터
쏟아져 나오는 윤지의 말에 성혁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성혁아. 우리가 지금 22살이야.
너랑 알게 된지는 초등학교부터 따지면 12년 되었고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게 된 건 5년 되었어. 성혁이 너도 알다시피 난 부모님도
없고 어린 동생 둘을 돌봐 주어야 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너희 부모님도 우리 둘의 관계를 인정 안해 주시고 말이야.”
“........................”
“만약, 우리 둘이 결혼하려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써야 하고 그건 너의 몫이야. 물론 그건 성혁이 네가 알아서 하겠다고 수도
없이 말했지. 하지만 성혁아. 너도 생각해 보았겠지만 부모님의 입장은 생각 안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결혼을 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
“성혁이가 지금 2학년 마쳤고 군대 다녀오고 다시 복학해서 졸업하고 사회 생활 2년 정도 하면 우리들만의 힘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거야. 앞으로 최소한 7년 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거야.”
“......................”
“그 시간동안 너와 나 그리고 너희 부모님과는 수도 없이 많은 상처를 입을 거고 그 때마다 서로가 힘들어 지겠지. 그것도 우리가
참아 낸다고 하자. 그런데 성혁아. 내게는 우리 둘만의 문제 외에 나 하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동생들은 어떡해?”
“.....................”
“나 혼자 너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 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고 우리가 7년 동안 참아내면 부모님은 받아 주시겠지.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결혼했는데 너하고 나하고 또 내 동생들 뒷바라지 하는 모습을 부모님이 보시면 머라고 할까? 그리고 그걸 지켜보아야 하는
내 마음은?”
“.....................”
“성혁아! 내게 있어서 너는
내가 무엇을 하던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었어. 모든 일들의 중심에는 네가 있었고 그런 내가 너무 행복했어. 하지만 이제
그만 그 행복을 접을래. 이런 행복을 느끼게 해준 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게. 이제 그만 나 놓아줘.”
“.........................”
“오늘 나 대구로 완전히 내려가. 그래서 너와의 마지막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서 놀이 기구도 탔고 내가 만든 김밥도 너에게 직접
먹여 주었어. 나중에 성혁이랑 이쁜 애기 낳아서 같이 놀이 동산도 가고 맛있는 김밥도 먹는 미래를 상상했었는데.......”
“........................”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윤지는 끝내
소리없이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런 윤지를 쳐다보던 성혁또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조용하던 하늘에서 이슬비가 내려와 두 사람을 어루만져 주었다. 성혁은 조용히 다가가 윤지를 끌어 안았다.
“윤지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
“내가 부족해서 널 아프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어린것도 미안하고 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것도 미안하고 모든 게 다
미안해.”
“...............”
“윤지가 하는 말 다 맞아. 하지만 윤지야! 이것 하나만 약속하자.”
“..............”
“날 영원히 떠난 다는 말만은 하지 말자. 너의 말처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멀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내
자리를 지키고 있을게.”
“성혁아! 알아. 네 마음 알아. 그리고 널 믿어. 하지만 그만 할래. 이런 날 이해하고 그만 놓아줘.”
“.........................”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윤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성혁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윤지의 다음
말은 그런 성혁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만들었다.
“성혁아. 제발 너에게 이 말만은 하지 않기를 한없이 바라고 바랐지만 결국은 하게 되는구나.
다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여전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당연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그리워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또 너를
그러나, 다시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면 두 번 죽어도 너와는.............“
윤지의 말을 들은 성혁은 참을 수 없는
가슴 저림에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떠나는 윤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윤지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할게”
“................”
“내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윤지를 다시 만나는 날
늘 지금처럼 널 사랑할 게. 언제나 똑같이 늘 지금처럼.........“
그렇게 윤지와 헤어진 후 군대를 다녀왔고
성혁이 군대에 있는 동안 면회는 물론, 편지 한 장도 없었지만 윤지가 왜 그랬는지 잘 아는 성혁으로서는 제대하자마자 윤지를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 해보았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윤지는 없었다.
그러나, 성혁은 비가 오면 창밖을 보며 지금도 윤지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인가는 다시 만날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안에는 성혁이 윤지를 그리워 할 때 마다 틀어 놓는 박화 요비의 “그런 일은”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너무나 멀어 보여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언제나 나를 안아주던 따스한 인사도 잊은 건가요. 내가 뭘 잘못했나요. 혹시 나
미워졌나요. 아니죠. 떠나려는 건 아니죠.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 나는 믿을게요.
오늘은 안돼요. 내 사랑이 이대로는 이별을 감당하긴 어려운걸요. 많은 약속을 다 지울 순 없잖아요. 아직도 해 드릴게 참 많이
있는데 얼마쯤 걸어가다가 한번은 날 뒤돌아봐 줄 거죠. 그리곤 다시 예전처럼 다가와 웃으며 안아 줄 거죠.
정말 날 좋아했는데, 정말 날 아꼈었는데 아니죠. 그대를 다시 못 보는 그런 일은 절대로 없는 거죠. 나는 믿을게요. 오늘은
안돼요. 내 사랑이 이대로는 이별을 감당하긴 어려운 걸요. 많은 약속을 다 지울 순 없잖아요. 아직도 해 드릴게 참 많은 걸요.
많은 약속을 다 지울 순 없잖아요. 아직도 해드릴게 참 많은 걸요. 내일 아침엔 더 힘들어 질 거에요. 어쩌면 며칠 밤을 지새우겠죠.
언제까지나 곁에 있기로 했잖아요. 그대가 아니라면 난 혼자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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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빨간 공중 전화 박스 안의 소녀”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은 긴 장편이지만
2-3일에 한번씩 탈고가 끝나는 대로 올려 드릴 생각이니 많은 격려와 따끔한 질책 부탁드립니다. 새내기 작가......피터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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