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카페 게시글
진리 탐구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성부이시다."
김바울 추천 2 조회 54 23.12.19 03:50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3.12.19 11:04

    첫댓글
    칼빈과 칼빈 추종자들의 광란의 역사



    1.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에 의한 인간사냥의 광란의 역사

    ① 칼빈과 그의 수발이 되었던 종교국 제네바
    칼빈과 제네바의 종교국과의 관계가 어떠한 성격이었는지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종교국은 칼빈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목적과 행위들은 그의 충직한 '종교국'을 통해서 성취시켜 나갔다. 따라서 종교국은 칼빈의 손과 발이었기에 종교국의 행위와 제네바의 권력을 장악하고 칼빈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동조한 기욤 파렐(Guillaum Farel)에 대한 평가는 칼빈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칼빈은 자신의 '도덕적 테러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감시할 조직체를 만들었다. 종교국의 그것이었다. --어떤 것도 그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었다'('폭력에 대항한 양심' Stefan Zweig, 안인희 역. 자작나무. 1998, 4. p.72).



  • 23.12.19 10:13

    칼빈 자신에 의해 제네바 각 처에서 발탁된 장로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조직은 칼빈의 도덕경찰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종교국을 통해 시행되었다. 따라서 이 종교국과 여기에서 활동하는 장로교들은 칼빈의 지도이념 하에 움직이고 행동하였다('종교국-목사5, 장로-12, 합1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국은 제네바 시의 신정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과두정부의 중추기관이었다').

    13,000명의 제네바 시를 3교구로 구분하고 이유 없이 예배 출석치 않는 자들은 벌금을 바쳐야 했다.

    ② 종교국의 모든 판단을 독점한 칼빈

    칼빈은 종교국에서 '최후 판결권을 독점한 왕자의 지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종교국(법원)을 좌우할 수 있는 판사의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그의 성경 해석 여하에 따라 모든 죄의 유무와 경중이 결정되었다.'(柏井園 저'基督敎師' 1957. p.427; 조찬선 op.cit. p.90)
    그리고 칼빈은 '자기 없이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종교국의 의장이었고...시의회의 상설 고문관, 종교전쟁의 정치적 사령관...신정 국가의 모든 장관직을 한 몸에 갖고 있었다.'(Stefan Zweig. op.cit. p.67)고 하였다.

  • 23.12.19 10:16

    칼빈이 종교국에서 어떠한 위치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를 말해준다. 이는 도덕경찰국인 종교국이 칼빈의 분신과도 같았으며 칼빈의 모든 의사를 반영한 기관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관계는 칼빈의 종교국이 행하는 모든 결정 다시 말해 사형을 내리는 일이나 잔악한 고문의 방식조차 모두 칼빈의 결정과 명령과 허락 하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③ 반드시 해명과 전제되어야 하는 역사적 진실
    흔히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이 사람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 때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칼빈은 그 때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었다.' '포악한 카톨릭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등등의 변명과 이유로 합리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칼빈이 무수한 사람들을 죽인 것은 카톨릭과의 전쟁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칼빈이 제네바에 입성했을 때는 이미 제네바는 신교로 바뀌어 있었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제네바 시의 카톨릭과의 쟁투는 파렐에 의해서 거의 평정되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이 카톨릭과 관련한 전쟁의 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던 직접적인 사례는 거의 없었다.

  • 23.12.19 10:19

    칼빈이 사람들을 살상한 대상들은 대개 칼빈이 제네바 시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그의 무자비한 통치와 사상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참혹하게 살상하였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2. 칼빈의 인간사냥에 대한 역사적 증언
    ① 4년동안 제네바시를 통치하며 58명의 사람들을 죽임
    ② 재임기간 4년 동안 58명 중 35명을 불태워 죽인 칼빈
    ③ 통치기간 4년 동안 10명을 목잘라 죽임
    ④ 재임기간 4년 동안 13명을 목 매달아 죽임
    ⑤ 1545년 제네바에서 발생된 흑사병으로 인한 마녀사냥
    ⑥ 자신에게 반대한 반대당을 모두 처형

  • 23.12.19 10:22

    3. 칼빈과 그의 망나니 칼빈니스트들은무슨이유로사람을죽였나?

    ① 칼빈의 예정설을 비난했다고 사형
    ② 칼빈을 위선자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사형
    ③ 80세 노파와 그의 딸의 처형
    - 이유 :80세의 노파와 그녀의 딸이 처형장으로 함께 끌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딸은 여섯 아이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세례 주는 것을 거부한 것 외에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Stefan Zweig. op.cit. p.177). 세례를 거부했다는 것이 사형을 시킨 이유의 전부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세례라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태양신을 섬기던 이교(異敎) 체계를 카톨릭이 차용해 온 제도이다. 따라서 세례를 받지 않겠다면 그것은 성경으로 당연히 고려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칼빈은 여섯 아이의 어머니와 그 할머니를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다.
    ④ 부모를 구타했다고 소녀를 목잘라 처형시킨 칼빈과 종교국
    ⑤ 귀신쫓는 사람들을 사형
    [출처] 칼빈과 칼빈 추종자들의 광란의 역사 |작성자 파리


  • 작성자 23.12.19 10:42

    칼빈에 대해
    강한 적대감이 있으시군요..

  • 23.12.19 10:58

    칼빈에 적대감 아니고 그의 말이 절대적으로 신뢰할수 없음을 말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게 적대감입니까?

  • 작성자 23.12.20 10:57

    @jwha 로레인 뵈트너는 칼빈이 아닙니다.

  • 작성자 23.12.19 10:44

    사람은 누구나 다 공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한 구체적인 말에 대해서만 판단하는 것이 공정합니다.

    위 로레인 뵈트너가 한 말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 23.12.19 11:14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신앙이 없었습니다.


    로레인 뵈트너가 개혁주의자라고 하는데 그도 역시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펼쳐 낸 사람일뿐, 성경에 없는 사람의 사상을 절대적이라고 하는게 문제라고 제시한것인데 그 사람의 생각도 다 올려야 하나요?

    삼위일체란 단어를 만드는 권세를 누가 허락했으며 과연 그 자격이 누구한테 있느냐를 생각해 보라는겁니다!

    그리고 공과가 있다고 인정하면 공과를 다 이야기 해야지요.

  • 작성자 23.12.20 10:39

    @jwha 1. 성경근거는 마 28:19

    2. 로레인 퇴트너의 말은 보강 증거

    어느 한 위격은 1/3 하나님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 즉 하나님 전체라는 말을 하기 때문

  • 23.12.19 11:35




    로레인 뷔트노? 이자와 함께
    하나님을 세분이라고 주장하며 연쇄적으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칼빈이란
    살인마가 받을심판은 무엇일까요?

    1~ 유황불못
    2~ 유황이 없는 불못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