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날 -
2013년 6월 8일 토요일
울산바위
홀연히 솟은 아름다운 바람막이 아래로 운무 떼가 섬하나 띄우고 있었다.
산이 바다로 둔갑하는 순간이었고, 바위는 그렇게 홀연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거대한 봉우리는 공룡의 등칼퀴처럼 꿈틀거렸고, 꼬리는 휘어지다 마침내 서쪽 바다 아래로 솟구치듯 빠졌다.
부윰하게 피어나던 운무는 꿈길처럼 길을 잃게 하는가 싶더니 어디론가 무등을 태우고 다닌다.
이 산 저 바위 가득찬 신비 투성이 설악의 참맛을 느끼려니,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숨었다 드러났다 꼬리는 자맥질을 치는데, 사람들은 바쁘게 꼬리를 붙잡느라 혼비백산이다.
그러니까 그게 바로 신나는 무등놀이다.
울산바위에 운무가 또 그렇게 깔리거든, 놀라지 말고 그냥 무등을 즐기면 될 것이다.
이렇게 바위들이 태워주는 무등은 튼튼하기 때문이다.
설악산을 한번이라도 찾은 이는 영원히 사랑하지 않고는 못배긴다고 말한다.
어느 골짜기 어느 봉우리건 찾을 때마다 그 사랑을 인정하게 되는 산. 우리는 그곳을 설악산이라 부르면 될 것이다.
속초시 설악동과 고성군 토성면을 이어주는 외설악의 아름다운 바위경계 울산바위.
그 치마처럼 넓고 어깨처럼 강건한 곳으로 떠나는 날,
하늘의 구름이 봉우리를 기어흐르고 펼쳐졌던 풍경들이 구름 안에 모여 들었다.
설악은 늘 그렇게 운무와 함께 등장하는 마지막 스타 같았다. 그 황홀한 자태...
곧이어 넋을 놓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표정.. 그 무한의 운무에서는 웬 바람이 그리도 달던지.
속초시를 감싸고 있는 울산바위 전설엔 웅장한 바위 하나가 설악에 눌러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먼옛날 조물주가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산(금강산)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바위들을 한데 불러 모았다.
그 소식에 울산을 대표하는 이 바위도 길을 나섰다. 그러나 육중하고 거대한 몸집으로 인해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는 이미 다 차고 말았다.
대신에 울산바위는 잠시 쉬었다 가려던 설악에서 설악의 아름다움에 눈멀게 되었는데,
결국 돌아가지 않고 영원히 설악산의 식구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 이 울산바위의 전설이다.
그러나 울산바위의 유래는 병풍처럼 둘러친 듯한 울타리(蔚)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둘레가 4km에 달하는 육중함이 산의 울타리로서도 제격일 듯하다.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안기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넓게 품을 벌리고 선 울산바위.
멀리 날아서 찍지 않는 한, 산에서 바위 전체를 담기란 불가능한 너비를 자랑하는 그 품으로 새처럼 날아오르고 싶다.
얼마나 아름다움에 놀랐는지 그 경탄스러움을 지지배배 여기에다 다 쏟아놓고 싶다.
산행을 시작한지 어느덧 만4년이 되었다. 첫 산행은 2009년 6월 북한산이었다.
산을 오른다기보다는 그저 걸음마였고, 산이라곤 집앞 남산도 겨우 다니던 생초보였었다.
산이 두려울리 없었다.
모르고 올랐기에 겁도 없었지만 오름과 내림만 있는 산인 줄 알았으니 거의 단순무지의 쾌활함 뿐이었다.
첫 산행의 시작이 좋았을까. 이후 산의 기준은 한참동안 북한산이었다.
이상하게 그 자부심은 쉽게 떨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듯 보였다. 차츰 모든 산이 무릇 그러함을 깨달아 갔다.
어딜 가나 산하를 굽어살피는 산정의 높은 멋에 눈멀어 갔다.
어딜 가나 그만큼의 기대와 떨림이 몸안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체력을 기르거나 장쾌한 포부가 있을 리 없는 가난한 산사랑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한두개쯤 쌓이는 산의 내용도 지식처럼 자부심이 되어 갔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그 4년을 꽉 채우는 기념산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물론 아무도 그 4년의 행보에 관해 알지 못하는 내 안의 자부심이기에 생일상을 자축하는 의미이다.
그 자축의 촛불이 가슴을 채우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10년 20년 경력의 산사람들도 그들만의 자부심이 있듯
겨우 4년된 경력도 나만의 의미에서는 매한가지다.
그렇게 남녘에서 설악의 울산바위, 점봉산 곰배령을 둘러보는 이틀짜리 산행을 다녀온 것이다.
곰배령 걷기라는 여행을 위해 울산바위까지 가볍게 다녀오자는 마음이었으나,
우리에게 설악산이란 과거 추억의 수학여행 코스이던 만만함을 설악이라는 이름값으로 되갚아준 명불허전,
딱 그 이름값에 걸맞는 자태 그대로였다. 그런 산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떨리고 감사하다.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소공원으로 입장하니 시간은 이미 12시를 지났다.
이른 아침 6시도 안되어 의령에서 출발했으니, 중간중간 아침밥과 휴게소 휴식을 하느라 가다서다 하여 6시간을 더 달렸던 것이다.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까지 차량이 거북이 걸음으로 약 30분간을 지체하였다.
소공원 내에서 각자의 도시락을 펼치니 멀리 설악산으로 수학여행 온 학생 같았다.
어릴 때 연습장 노트의 표지에도 등장하고 여행한 사람들의 선물마다 등장하던 설악산 흔들바위.
익숙했지만 처음 찾는 실물이었다. 대청봉에 오르고 공룡능선을 목표로 세웠어도 정작 흔들바위니 울산바위 같은 수학여행 코스에는
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너무 익숙하기에 떨어지는 신비감 같은 것이라 해두자.
그렇지만 늘 준비되지 않은 것에서 놀라운 생의 경이로움이 태어나는 것.
뜻밖에도 이 유명한 바위에는 아직도 옛명성에 걸맞는 자신감과 오히려 오래되어서 더해진 전설을 뿜고 있었다.
미처 준비되지 않았지만 이 어설픈 것에서 곧 시작될 어깨 걸침과 저마다의 표정으로 든든해질 산행의 값어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13:30)
설악에 깃든 신흥사 아름다운 돌담 위로 세월이 쌓이듯 푸른 녹음이 덮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른 여행하고 싶은 마음 절반을 품에 숨기고 가족여행을 왔었다.
이웃 친한 언니의 가족과 함께 한 여행길이었다. 남녘에서 강원도는 멀기에 한번 나서면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이 그렇게 생기는 것인지
통일전망대까지 원껏 쏘다녔었다.
그 남편이 하필 여행 중에 심하게 아프고 말았다. 평소 여행이란 것을 거의 하지 못했던 그는 아이들이 실망할까봐,
또 오래전부터 예정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에게 자신의 아픔을 숨기며 장거리 여행을 계속했다.
물론 그렇게 아픈 줄 아무도 몰랐고 덕분에 여행의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그날 밤, 울산바위가 내려다보는 어느 콘도에서 드디어 참고 있던 고삐가 풀리고 말았다.
먹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할 만큼 기력 또한 떨어졌다. 너무도 참았기에 그 어떤 약도 소용이 없을만큼 아픔이 컸다.
어머니는 살아오면서 배운 지혜를 총동원해 밤새 극진히 간호해 주셨다. 체한 것이 잘 내려가지 않아 어렵게 바늘을 구해
여러번 피를 뽑고 주무르는 등 정말 극진히 치료해 주셨다. 어머니의 보살핌 덕분이었는지,
약효가 서서히 나타난 덕분인지 다음날 그는 간밤의 힘겨움을 씻고 무사히 일어날 수 있었다.
그날 아침 그 남편의 눈에 보였던 것이 바로 울산바위였다.
설악산 한계령을 넘고 긴 장거리 운전으로 여기저기 아픈 와중에 제대로 경치 감상을 못했던 그는
마침내 그날 아침 씻은 듯이 경쾌한 울산바위를 보고, 어쩌면 저렇게 멋진 바위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지,
그렇게 감동적인 풍경은 처음이라며 감탄을 하였다.
그렇게 하여 울산바위는 그에게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소중함이 되었다.
그곳을 다시 찾은 작은꽃 언니는 이런 얘기를 해도 참 쾌활하게 전한다.
일이 바빠 오지 못하는 남편 마음 헤아려 짚으면 서먹하므로, 유쾌하게 웃으려 노력한다.
얼마나 오고 싶었을까, 참 목이 메이는 그런 소리마저도.
여행이란 그러고보니 정말로 재산 같다. 꼬깃꼬깃 쌈짓돈이다.
눈가 촉촉하게 떠올리다 보면 잊었던 생의 하루 되살아 오고, 누군가에겐 그토록 간절하던 하루란 것을
또 이렇게 인식하니, 떠나지 못하는 타인의 간절함.. 대신 잘 보아야 할 마음의 부채임을 알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떠나고싶은 멋진 절경의 하나이겠지만, 생의 사투를 벌인 사람에게는 그 다가옴이,
씻은 얼굴로 맞아준 거룩한 신의 모습일지도 모를 일.
그 추억의 페이지 지나니 흔들바위가 나타났다. (14:10)
우측의 계조암 앞으로 마치 소가 누운 듯이 편평한 바위가 있었는데 그 위에 생각보다 자그마한 흔들바위가 얹혀 있었다.
한 사람의 힘으로 밀 수 있으나 백 명이 밀어도 한 사람이 민 것과 같다고 하는 전설의 바위.
그 전설 치고는 참 소박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흔들바위의 실물을 처음 보았다는 사실이 더 믿기지 않았다.
계조암을 둘러보자니 시간이 임박해 보였다. 바위나 구경하고 가려는데 웬 아이가 작은 돌탑에서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이의 다음 차례로 우리도 사진 하나 찍고 가자며 차례를 기다리는데,
아이의 아빠가 참으로 꼼꼼하게도 여러 포즈를 취하며 아이의 사진작가처럼 오래오래 찍고 있었다.
아이는 뭘 해도 귀엽고 자연스러운데, 아빠는 마치 그걸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혹은 카메라 세계에 이제 갓 입문하였는지
참으로 진지하게 아이의 다음 포즈를 주문하였다. 아이 얼굴에 더운데 귀찮은 표정이 역력했음에도 말이다.
그냥 포기하고 산으로 가야 하나 고민을 할 무렵, 할 일을 다한 아빠가 아이를 내려오라 하였다.
우리는 살았다는 듯이 다음 차례의 임무를 수행했다. 웃기지 않았지만 즐거운듯 열심히 찍었다.
우리가 어쩌면 성급한 성격이라는 마음의 결론을 내려 보았다.
울산바위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전망대에 오르니, 깊은 골짜기 속으로 안개가 유유히 떠나녔다.
저 속으로 대청과 중청, 소청이 있을 것이며 그 계곡의 운무 사이로는 공룡능선이 엎드려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공룡능선을 오르고자 마음 먹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가 언제일지, 그 언제가 되더라도 직접 공룡을 넘는 그날을 기약하는 일은 또 설렘이다.
울산바위를 일러 누군가는 돌아서서 옷을 벗는 여인의 뒷모습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넓게 퍼진 긴 치맛자락을 떠올려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벗는 울산바위를 발치 아래에서는 한폭의 화면에 잡을 수는 없다.
한 토막씩 끊어서 찍는대도 이렇게 혼신으로 누워 찍어야 겨우 사람 하나 그 아래에 담을 수 있다.
바위에서 태어난 소나무에 반하여 한참을 바라다 보았다.
어디서 장난삼아 본 나의 전생은 깊은 산 속 소나무였다.
소나무, 푸른 옷 입고 무채색 바위에서 태어나니,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고 완전무장한 채 태어나는
아테나를 보는 듯하였다.
가히 일품인 소나무 두 그루, 바위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저런 장면.. 그리움이 차오르는 것을 모습으로 표현하면 계단을 오르듯 저렇게 불쑥 떠오르고
무심한듯 바람에 휘날리지도 않으며 생활처럼 견고한 저 소나무 같을 것이다.
곁을 지나던 누군가 말했다. 저 소나무가 부부일까 연인일까.
둘이 나란히 한 곳을 바라보니 부부 같기도 한데 그렇기에 더욱 연인같기도 하여서..
우리 나이가 있으니 부부라 말할 법도 한데, 그래서 더욱 연인이라 말할 수도 있겠어서..
모든 게 헷갈리고 자신 없어서.. 이 나이란 것이 서서히 수수께끼 같은 말투였다.
세상은 그래서 살면 살수록 알 수 없어질까.
무척 알 수 없어져,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임을 가끔 느낀다.
울산바위까지는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아마도 그건 설악산의 어느 관광지 한 꼭지 잠시 다녀온다는, 관광상품 같은 울산바위의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울산바위까지 결코 호락호락 쉬운 코스만은 아니었다.
서둘러 다녀와야 하는 사람에게, 그것도 다음 여행지에 맞춰 이동해야 한다는 약속이 있었으니
사진 많이 찍는 사람일수록 불리하고, 더없이 달려야 겨우 다른 산님들과 맞출 수 있으므로
그래서 더없이 길었던 오르막이었으리라.
정상까지 5분 남았을까.. 정말 5분만 가면 된단 말야, 믿고싶어 올려다 보았던 계단, 계단...
저 묽은 우윳빛 운무를 깔고 서 있을 산정의 모습이 다급하게 보고 싶었지만,
울산바위의 치맛자락, 그 소나무 거두고 서 있는 품새에 가던 걸음 멈추지 않을 수 없다.
계단 오를 때마다 모습을 바꾸는 소나무도 이왕이면 소나무마다 눈길 주어야 할 것이다.
소나무 삼매경에 빠진 울산바위의 소나무 예찬을 멀리서 예의주시하는 늙은 산이 귀를 쫑긋 내밀고 경청하고 있다.
계단 반환점에 서 있는 이정표 나무.
조금 외로운 듯 앙상하다. 어디로 가라는 슬픈 신호냐고 묻던 '와사등'이란 시도 있었지.
정상이 바로 위이건만 가지가지 소나무에 반한 발길은 얼음처럼 붙잡히고
가야한다는 책임감은 운무처럼 해체된다.
대체 이런 소나무의 지시문, 어디서 또 만날까.
친숙한 얼굴 하나 보고 말았다.
팽, 토라진 저 얼굴. 눈 딱 감고 끄떡도 않는 저 토라진 입매 눈매.. 영락없는 삐짐씨 얼굴이다.
고개도 심하게 토라져서 목이 아프지 않을까 심히 걱정될 지경이다.
주위엔 무던하게 순박한 얼굴들 뿐인데, 무얼 그리 못마땅하다고 팽, 혼자 삐졌다. 잘난 척은...
그런대로 봐줄 만한 건 저 새침떼기 얼굴이 그저 깨물어주고 싶은 강아지 닮았기 때문이다.
운무 속에서 만나는 봉오리의 모습들이 신기한 마술램프에 취한 것일까.
바위가 흔들리는 것처럼 다가서는 오묘한 동작이 세 컷 연속으로 촬영한 장면마다 고스란히 찍힌 것이다.
운무 속에서 걸어와 안기는 지친 영혼처럼 봉오리가 와서 안긴다.
와서 둥둥.. 나를 두드린다.
그 도도한 삐짐양의 얼굴이 하늘 아래 가장 높이까지 솟았다.
콧대가 너무 높은 걸까. 삐짐이 오래가는 사람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지..
자기만 모르는 것처럼 고개 하나 세상을 향해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큰 덩어리 바위 저혼자 머리이자 몸통이고 두뇌이자 심장이다.
그런 일체의 것들이 서로 조화로이 이룬 가족의 형태, 울산바위의 진면목은 그것이 아닐까 한다.
산 아래에서 이끌고 온 듯한 안개들이 이제 어디로 갈 곳 없어 함께 멈칫했다.
완벽한 허공만이 안개처럼 가득했다.
오직 아무것도 없어야 그곳이 정상이란 명제를 나처럼 비명을 지르듯 와글와글 야단이었다.
안개가 야단을 내어도 이토록 침묵하니.. 사람이 침묵사용법을 배운다면 안개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갈 수 있는 편평함의 마지막 쯤에서 난간은 끝났다.
기댈 수 있을 때 멈추라 이르는 붉은 저지선.
울산바위의 마지막에 다다른 것이다. 어디로 가라는 그 어떤 지시문도 없는 완벽한 허공이지만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아는 그간의 지혜를 여기 어디쯤에 묻어두고 돌아서겠지.
안개의 무등을 타고 놀았던 울산바위.
설악산을 한번이라도 찾은 이는 영원히 사랑하지 않고는 못배긴다고 말한다더니...
그 사랑이 어느덧 4년차 경력 앞세우며, 참으로 긴 꼬리 끝 굽어보듯 저를 살핀다.
10년 후 내다보는 것보다 내년이면 다섯 손가락 가득 채우겠다는 작은 욕심으로 또 열심히 산에 들겠지.
1박 2일 중 첫날의 산행은 설악산 울산바위 통째로 삼킨 안개처럼 근사했다.
오후 5시에 하산완료 라는 막중한 일정표를 잘 지키기 위해 하산하는 길은 서둘러 내려왔다.
빠듯한 일정표였지만 그것을 채웠을 때는 또 얼마나 뿌듯한지.
다음 여행지는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이다. 하나의 여행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으로 몰아세우는 여행의 일정을 더듬으니, 준비된 선물 중 이제 겨우 하나 터뜨렸다는 희열이 몰려왔다.
그 하나로도 이미 빵빵하지만, 나머지 선물에 욕심의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보고 있어도 보고싶고...그런 설렘처럼
가득 채워도 더 채우려 몸을 푸는 여행중독, 울산바위 산안개처럼 곰실곰실 피워본다.
카페 게시글
살아가는 이야기
설악산 울산바위
ㅋi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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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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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울산바위 평생 한번 올라가 봤는데 이제는 다시는 오르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원한 모습 잘 감상하고 갑니다
이제까지 등반대회중에 옆지기와 가장 다정한 모습이 많이 보여서 좋습니다...
오름길이 생각보다 평탄했습니다.
얼마전 공포의 808계단을 새로이 우회로 만들어 아주 평탄했습니다.
이번 산행에선 제 사진이 유독 많이 들어갔어요. 워낙 까불었더니...^^
와우~가슴까지 서늘하네.
나는 한 20년 전에 두세번 그 근처까지만 갔었죠.
아! 한계령 가고싶다. 그 바람, 그 향기...
멋진 여행이었네.
젊을때 많이 다녀야 하는걸
산행마다 멋진 여행기를 쏟아내니
다른이들보다 몇배는 값진 여행을 하십니다
언니가는 날이라고 구름조차 은근히 마중나와주시고 금상첨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