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자에서 학점 4.4의 학생회장으로 거듭 나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4학년 김석찬 씨
- 양천강서영등포내일신문_2011.11.22_484호_44면
지난 9월 강남구 대치도서관에서 살아있는 책과 소통하는 ‘리빙라이브러리’를 열었다. 그곳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끈 ‘사람 책’ 김석찬 씨(서초구 잠원동, 27세). 깔끔한 외모에 부드럽고 차분한 말씨, 논리적으로 자신의 스토리를 들려주는 여유, 독자들의 두서없는 질문에 성의를 다해 대답하는 배려 등은 ‘이 사람이 정말 게임중독자였단 말인가’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다른 독자들과 함께 만난 40분간은 순간처럼 지나갔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첫 만남에서 반한 그의 매력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게임중독에 빠져 고민하는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유일하게 존중받았던 사이버 게임 공간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학업성적 평균 90점 전후의 평범하고 모범적인 김석찬 학생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게임에 빠져들게 된 것은 어른들의 영향이 컸다. 전후사정 따지지 않고 일단 학생을 혼내고 보는 권위적인 선생님, 그 억울함을 공감해주지 못한 부모가 한 청소년을 게임 공간으로 빠져들게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권위적인 학생부 생활지도 교사였어요. 한 번은 억울하게 꾸지람을 들어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디 감히 선생님한테 말대꾸를 하냐’며 더 야단을 쳤어요. 그 사건 이후로 저는 잘잘못과 무관하게 선생님께 야단맞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심지어 ‘너는 나쁜 아이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으셨어요. 한 마디로 말해 찍힌 학생이 된 셈이죠. 억울한 사정을 부모님께 이야기해봤지만 부모님은 제 말을 믿지 않고 마치 제 잘못처럼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반발심이 생겨 학교를 기피하고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와 선생님에 대한 반발심으로 시작한 게임에 그는 점점 빠져들었다. 억울하고 외로웠던 시간을 게임으로 보냈다. 현실공간에서는 전혀 존중받지 못했지만 게임 공간에선 달랐다.
“사이버 게임 공간 내에서는 항상 ‘~님’이라고 하거든요. 존중받는 느낌이었어요. 게임을 잘하니까 더 저를 존중해주는 멤버들이 많았죠. 하지만 중2 때 선생님이 저만 혼냈던 것도 아니고, 여학생들 중에는 따귀를 맞고도 어긋나지 않은 학생들도 있어요. 당시 저는 바른생활을 하며 어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고나니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빠져든 게임공간에서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거의 5년을 게임 멤버들에게 존중(?)받으며 폐인이 되어갔다.
180시간을 쉬지 않고 게임하기도
아침 6시 30분이면 집을 나가 PC방부터 갔고 점심시간도 PC방에서 보냈다. 그리고 점점 학교에 가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처음엔 혼나서 가기 싫었던 학교가 나중에는 게임에 빠져 갈 수 없는 곳이 된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의 게임 중독은 마찬가지였다.
“밥도 컴퓨터 앞에서 먹었고, 하루 3~4시간만 자면서 게임을 계속했어요. 심할 때는 180시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게임을 연속으로 한 적도 있어요. 집에서도 했고 PC방에서도 했는데, 하루는 청소년들이 나가야하는 10시에 PC방을 나와 건물 화장실에서 잔적도 있습니다. 잠이 깬 후에는 6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PC방으로 들어갔죠.”
그는 현재 후각기능이 상실된 상태다. PC방에서 오랫동안 담배냄새 속에서 지낸 탓이다. 고등학교 때 그는 아버지의 직장관계로 아르헨티나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게임중독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국제학교에 다녔지만 학교를 밥 먹듯이 빠지는 것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였고 PC방에 세 대의 컴퓨터를 잡아놓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그의 부모가 얼마나 애를 태웠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매일 언쟁이 오가는 집안 분위기가 그려지지 않는가. 하지만 그의 부모는 달랐다. 방치하지도 않았지만 심하게 야단치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제가 언젠가는 학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계셨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하셨기에 서로 다투지도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가끔 게임이 잘 되는지 묻기도 했고, 게임 오프모임에 갈 때면 교통비와 용돈을 챙겨 주시며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게임에 대한 지원 조건으로 최소한의 공부는 할 수 있도록 과외선생님을 붙여 주셨어요.”
시간이 약, 그리고 희망이 되어준 멘토들
이 정도로 게임에 빠지면 주위의 만류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같이 게임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서야 게임이 시들해졌다. 그리고 그가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또 게임에서 벗어났을 때 좌절하지 않고 학업에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멘토들이 있었다.
“중학교 때 과외선생님이 무엇인가 하나에 그 정도로 열중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는 거라고 말해주셨어요. 이 말은 나중에 제가 게임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래 공부라고 못하겠냐’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지요. 국제학교 선생님들의 이해도 제게 큰 힘이 되었어요. 오랜만에 학교를 가도 선생님들은 ‘학교 나왔네?’라고 말하며 반갑게 맞아주었어요.”
국제학교 선생님들의 친절은 그를 학교에 다시 나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를 다시 나가자 어머니는 부족한 공부 때문에 숙제하기 힘들어하는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국내에서라면 어땠을까요?”라는 질문에 그는 “아마 힘들었을 거예요. 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선생님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씁쓸해 했다.
게임에 빠졌던 시간이 허송세월만은 아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대학입시에 도전했다. 해외거주 경험이 있고 다행히 영어가 좀 되어서 특례로 단국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는 학교생활에 충실했다. 그는 게임만 했던 시간이 허송세월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컴퓨터를 잘 활용했던 경험은 컴퓨터로 팀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큰 도움이 되어 동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어요. 또 밤을 새워 게임했던 경험은 전공 관련 작업을 할 때나 광고회사 인턴사원으로 촬영 조감독을 맡아 밤샘작업을 할 때 체력적으로 힘들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그의 성적은 수직 상승해 4.44의 학점을 받기도 했고, 3학년 때는 학생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현재, 작년에 학생회장 일에 매진하면서 미흡할 수밖에 없었던 공부를 보충하고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현장 체험을 위해 휴학 중이다.
“오랫동안 게임을 한 탓에 항상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올해는 휴학을 한 후 컴퓨터 그래픽도 배우고 있고, 앞으로 일하고 싶은 분야와 관련된 국내외 실제 현장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틈틈이 게임중독에 빠진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리빙라이브러리’ 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주제로 소통하고 있다. 그가 청소년 시절 즐겨 했던 게임 중 하나가 ‘어둠의 전설’이라고 한다. 빛의 방향을 잃지 않고 어둠의 터널 속을 뚫고 나와 세상을 더 환하게 비추는 빛이 되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의 노력에 박수의 갈채를 보낸다.
<김석찬 씨가 청소년, 학부모, 선생님께 전하는 메시지>
* 게임 중독 청소년들에게
무엇인가에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큰 장점 중의 하나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지금 단지, 게임인 것일 뿐입니다. 그 열정이 게임이 아닌 학업이나 직업으로서의 일로 옮겨 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게임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자녀가 나중에 학업으로 돌아왔을 때 너무 뒤처져 있다고 느끼지 않게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교는 졸업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셨으면 합니다. 아이들 자신도 현재의 충동을 잘 조절할 수 없어서 고민이 많습니다. 부모님들이 잘 기다려주고 다독여준다면 반드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올 것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저에게 “너를 사랑한다. 너를 키우면서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모른다. 네가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인생은 길다. 네가 돌아오면 그때가 시작하는 때고,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속도도 빨라지니까 언제든 돌아오면 된다”라는 말을 계속 해주셨습니다. 잠도 안자고 게임만 하는 제게 좋아하는 음식을 컴퓨터 옆으로 갖다 주시기도 했고, 홍삼이나 보약도 지어주셨습니다. 부모님은 대단한 원칙주의자셨지만 제가 워낙 중독이 되어 있으니까 그 원칙을 깨셨습니다. 학교에 불려가서 저 때문에 각서도 쓰시고 우시기도 많이 하셨으면서도, ‘떡이나 물건은 남의 것이 커보여도, 자식은 내 자식이 최고다’라고 하시며 저를 미워하지 않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오늘날 제가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 학교 선생님들께
학생들을 항상 사랑과 관심으로 보듬어 주시라고 부탁드립니다. 게임을 하건, 술을 마시건, 담배를 피건, 안 좋은 친구들이랑 어울리건, 무엇을 했던 간에 모처럼 등교한 학생들에게 "너 그동안 학교 안 나오고 뭐했어? 사실대로 얘기해봐!"라고 혼내고 다그치기보다, "그동안 잘 지냈니?"와 같이 안부를 묻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지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할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갔는데 야단만 치면, 오히려 반발합니다. 잘못했음에도 선생님들께서 따뜻하게 대해주시면,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사춘기 청소년들은 그냥 사랑과 관심이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안가고 게임만 하면 손해가 나는 것은 선생님이 아니라 아이 자신이라는 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끝까지 믿어주시고 감싸주시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