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애월 고내봉이라는 곳에서 2년 반 정도 살았습니다. 한 십년 전 쯤 될 것입니다. 고내봉 무수한 무덤 가운데 농막이 있었고 이 농막을 구입한 소유주가 사람 살겠끔 수리하여 한 일 년 정도 살다가 비워있는 집입니다.
집세 없이 잡풀이 허리까지 차는 집을 다 걷어내고 수리하였고 7평짜리 방 두 개에서 하나는 법당으로 사용하고 하나는 다각실 겸 잠자는 방으로 사용하고 전체 땅 평수가 170평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이년 반 동안 “세상에 이런 일이”하는 TV 프로에도 소개되고 재미나게 살았습니다.
토굴답게 법당에는 관세음보살 사진하나 걸어놓고 사시마지는 어시바루에 담아 공양 올리며 법회도 없고 초팔일 행사도 없고 기도와 정진만 하고 지냈습니다. 새벽에 도량석하러 나오면 무덤에 영가들이 합장하고 기다리는 것도 느끼고 오전일과 정진으로 보내고 점심공양 마치고 등산화신고 나오면서 신묘장구대다라니 나모라.... 속으로 하면서 고내봉 한 시간 정도의 둘레 길 돌아 들어올 때 까지 끊어지지 않았고 오후는 자유정진 시간인데, 울력은 보름에 한 번 예초기 돌리면 그만이고 그 때 카페에 자료를 가장 많이 올린 것 같습니다.
떠날 인연이 되니 소유주는 다른 이에게 팔았고 제주도에 도량하나 세우려는 것도 포기하고 다시 육지로 나왔는데 마지막 기도회향하는 날 7평짜리 법당에 가사를 수한 많은 비구스님들이 동참하는 꿈도 현몽하였는데, 정성만 있으면 형상하고는 상관없이 감응한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질긴 인연으로 제주에 다시 내려왔고 무주선원을 어렵게 불사하여 현재에 이르지만 변한 것은 없습니다. 7평짜리 작은 방에서 부처님 사진 걸어놓고 기도할 적에도 손수 마지지어 올리며 혼자서 기도했고 지금 20평 법당에서 나름 여법이 부처님 모시고 기도 하여도 손수 마지지어 올리며 혼자서 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법회에 공을 많이 들였지만 한 달에 한 번, 십여 분 법회에 인도하는 것이 끝이고 도량이 천여 평되다 보니 제초 울력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이 재정은 고내봉 토굴시절보다 나아져 법공양을 많이 하였고 특히 그 어려운 『금강심론』 시리즈를 5권을 열 번이 넘게 교정보아서 법공양출판 한 것이 보람입니다.
손수공양지어 해결하는 인연은 참 오랜 세월이고 앞으로 아마 죽을 때까지 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식(一食) 일찬(一饌)이라도 가장 깨끗한 공양이 손수지어 먹는 공양입니다. 남에 손에 의지해서 공양을 해결하려면 밖이나 안이나 정치가 필요한 것이고 정치에는 권모수술이 들어가고 다 그런 것 아닙니까? 홀로 사는 것도 팔자라면 팔자고 기질이라면 기질인데 원래 타고나기를 직선적이라 이런 기질은 정진 힘은 있으나 대중처소에서는 못 견디는 독각승(獨覺僧)기질이자 팔자입니다.
그 동안의 염불공덕으로 직선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하나 온전히 다 뽑아진 것은 아니고 온화한 얼굴에 부드러운 말, 그림은 그리는데 생각같이 쉽지는 않습니다. “고내봉 시절처럼 살아야 하는데” 하는 서운한 생각도 있지만 여기서도 나름 이룬 것이 있고 다듬은 것이 있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결국은 다 혼자 살다 혼자 가는 것 아닙니까?
처사시절부터 늘 암송하던 부처님의 육성법문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
첫댓글 저도 스님 가시는 길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기꺼이요....아직 때가 아닐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
스님은 부처님 닮아가고 불자는 스님 닮아가는 수행...
불자들이 닮아가고 싶은 진정한 스님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카페에 가입했더니, 메일로도 스님의 글을 읽을 수가 있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넵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살림살이 초라하나 금색광명 미타세상...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