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정대(antoine@unitel.co.kr)
DP에서는 <타이타닉 콜렉터스 에디션>의 국내 출시를 기념해 무려 2년에 걸쳐(하핫!) DVD 칼럼니스트 김정대 씨의 '제임스 카메론 특집'을 연재 중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에 대한 놀라운 열정과 애정으로 가득한 이번 특집에서는 전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만나기 힘든 제임스 카메론에 대한 수많은 알짜배기 정보를 레퍼런스급 글솜씨로 만날 수 있습니다. 앞선 연재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길!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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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은 전쟁이다. 그것은 한 그룹의 인간들이 해체되려는 우주를 상대로 치르는 전투다. 영화제작 현장에는 늘 엔트로피 법칙이 적용된다. 그리고 인간은 그 와중에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발버둥쳐야 한다. 나에게 영화 제작 과정이란 그런 것이다." - 제임스 카메론
<어비스>의 제작 과정은 짐 카메론에게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영화의 후반 제작 과정이 마무리되어 극장에 걸릴 때까지 - 그리고 심지어 영화가 극장에 걸린 후에도! - 짐은 단 하루도 발을 뻗고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던 그는 <어비스>의 제작이 완료되자마자 문자 그대로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촬영장에서 그가 겪은 살인적인 고초들을 감안했을 때, 그가 ‘빠른 시간 내에’ 영화 제작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몇 주 후, 짐의 못 말리는 ‘워커홀릭 근성’이 다시 발동했다. 마치 ‘내가 언제 그런 고생을 했냐?’는 듯, 그는 곧장 차기작을 ‘미친 듯이’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미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특급 상업 영화감독이 된 짐은 이 시점부터 ‘과감한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자신의 이름 뒤에 꼬리처럼 따라다니는 ‘액션-SF 영화 전문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버리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차기작을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로 하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인디펜던트 제작자 산드라 아카나가 짐에게 ‘빌리 밀리건’ 프로젝트를 제안해 온 것은 이 무렵이었다.
빌리 밀리건의 실화를 다룬 다니엘 키스의 유명한 저서 'The Minds of Billy Milligan'. 이 책은 <24인의 사이코>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이 프로젝트는 무려 24개의 자아를 가졌던 다중인격장애자 빌리 밀리건의 실화를 다룬 것이다. 짐은 이 프로젝트에 즉시 매력을 느꼈다. 그에게 이 프로젝트는 소재나 정서상으로 뿐만 아니라 제작 환경 - 이 작품은 게일 앤 허드가 제작에 참여하지 않는 첫 번째 작품이 될 터였다 - 면에서도 대단한 ‘도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곧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각본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놀라지 마시라! 6천 9백 만 불짜리 매머드급 상업영화를 연출하던 그가 고작(?) 예상 제작비가 1천 1백 만 불에 불과한 ‘심각한 드라마’에 도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짐은 한때 존 쿠삭을 빌리 밀리건 역으로 내정하기도 했다).
짐이 1차 각본을 쓸 무렵, 프로젝트에는 <크라우디드 룸 The Crowded Room>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크라우디드 룸> 프로젝트는 결국 3년 뒤 짐의 손을 떠나게 된다. 프로젝트가 불발로 그친 가장 큰 이유는 짐과 제작자 아카나 사이의 불화 때문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짐은 영화사상 최대 규모의 ‘어떤 스파이 영화’를 제작하게 되지만 말이다! (15년 가까이 표류하던 <크라우디드 룸> 프로젝트는 올해 드디어 빛을 보게 될 예정이다. 현재 조엘 슈마커 감독이 올해 개봉을 목표로 하여 <크라우디드 룸>을 찍고 있다. 참고로, 짐이 쓴 <크라우디드 룸> 각본은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 상당히 재미있다! - 슈마커의 영화가 개봉한 후 짐의 각본과 비교해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 것이다).
<어비스>의 제작이 막바지에 달할 무렵, 짐은 우연히 <블루 스틸 Blue Steel>(1990)의 촬영장을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된다. 촬영장에서 그는 (영화의 주연을 맡은) 제이미 리 커티스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방문은 훗날, 커티스가 짐의 ‘어떤 초대형 스파이 영화’에 캐스팅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 날, 촬영장에서 커티스보다 더 짐을 ‘홀린’ 여인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 사람이다.
<블루 스틸>의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나름대로 ‘솔로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짐은 이 여인을 보자마자 대책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불같은 업무 추진력, 탁월한 영상 감각과 함께 이국적인 미모마저 지닌 여성 감독이었다. 짐은 그녀의 ‘화끈한’ 연출 장면을 보며 마치 자신의 ‘여성 자아’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짐의 체내에서 마구 분출하던 아드레날린은 곧 비글로우에게도 전해졌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눈이 맞았고, 곧 ‘업무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사실 짐이 비글로우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이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비글로우는 1987년에 흡혈귀 영화 <니어 다크(죽음의 키스) Near Dark)를 연출했는데, 이 영화에는 빌 팩스톤, 랜스 헨릭슨, 제넷 골드스타인 등 이른 바 ‘카메론 사단’의 배우들이 무더기로 출연한 바 있다. 짐은 일찍이 빌 팩스톤과 랜스 헨릭슨으로부터 비글로우가 얼마나 매력적인 여성인지에 대해 ‘세뇌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두 사람은 결국 1989년 8월, <어비스>가 개봉한 직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두 사람 중 특히 비글로우에게 이 결혼은 중요한 의미였다. 그녀에게 있어 이 결혼은 ‘첫 번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짐은 이번을 포함해 무려 세 차례나 웨딩마치를 울린 바 있다). 두 사람의 로맨스 관계는 - 마치 게일과 짐의 관계가 그랬듯 - 프로페셔널한 열정과 서로에 대한 원초적 욕구가 뒤섞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 게일과 짐의 관계가 그랬듯 - 두 사람의 뜨거운 관계 역시 곧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냉각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 ‘결정적’ 이유는 잠시 후에 언급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관계의 종말’을 고하기 직전에 ‘뜨거운 사랑의 결실’을 하나 맺게 된다.
<폭풍 속으로 Point Break>
비글로우의 1991년 작 <폭풍 속으로>에서 짐은 제작자로 참여했으며, 각본 작업에도 관여하게 된다. (<에이리언 네이션>(연재 글 4회 참고) 때와 마찬가지로 짐은 <폭풍 속으로>에서 ‘비공식적인’ 각본가로 참여했기 때문에 크레딧에는 그의 이름이 표기되지 않았다. 비글로우는 <폭풍 속으로> 제작 당시,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쳤음에도 각본을 탐탁치 않게 여겼는데, 짐이 마지막으로 다듬은 각본 버전을 본 뒤에야 ‘안심하고’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여러분들이 기억하시는 <폭풍 속으로>의 여러 인상적인 장면들은 짐의 손길을 거친 뒤에야 탄생했다). 한편, 이 무렵 짐은 또 다른 대형 SF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바로 <버닝 크롬 Burning Chrome>이었다. <버닝 크롬>의 각본은 <뉴로맨서>로 잘 알려진 SF작가 윌리엄 깁슨이 맡게 됐으며, 영화의 주연으로는 멜 깁슨이 고려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 역시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짐의 차기작은 짐을 ‘스타 감독’으로 만들었던 1984년의 ‘어떤 영화’의 속편이 됐다.
“돌아오겠다! I'll Be Back!" 짐은 1편으로부터 무려 7년이 지난 후에야 이 ‘약속’을 지켰다!
짐은 <터미네이터> 1편을 찍은 직후에 이미 ‘속편에 대한 구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는 이 계획을 보류하게 된다. 우선, ‘창작 영역’ 면에서 (적어도 짐의 생각에는) 1편 자체가 내재적인 한계를 가진 작품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것이다: 짐은 이미 <터미네이터>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다’ 해 버린 것이다! 1991년 스타로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짐은 이렇게 밝혔다. “나는 1편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해버렸기 때문에, 사실상 (2편을 위해서는) 남은 것이 거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짐이 속편 제작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는 (‘내재적 한계’로 인해) 속편 제작의 ‘당위성’을 찾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짐으로서도 1편이 흥행-비평 양면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터미네이터> 1편은 액션물임에도 불구하고 타임지가 선정한 그 해 영화 베스트 10에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속편에 대한 욕심이 생겼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1편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영화의 제작이 끝나는 순간부터 끈질기게 짐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1편의 제작 후 짐과 아놀드는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으며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놀드는 심심할 때(?)마다 짐에게 안부전화를 걸어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는데, 그들의 대화는 늘 다음과 같은 아놀드의 멘트로 마무리됐다. “짐, 그런데 대체 <터미네이터>의 속편은 언제 찍으실 건가요?”
다 좋다고요! 근데 대체 난 언제쯤 돌아옵니까?!
아놀드가 <터미네이터>의 속편을 그토록 갈구한 이유는 (물론) 짐의 역량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짐 역시 1편을 찍은 뒤 아놀드의 프로페셔널 근성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두 사람은 1편의 제작이 끝날 무렵 속편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나누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그들은 한 가지 ‘결의’를 하게 된다: “만일 속편을 만들게 된다면 두 사람(아놀드-짐)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참여하지 않는다면 속편 제작은 없다!” 이미 어느 순간부터인가, 짐은 (비록 이성으로는 부인했지만) 언젠가 두 번째 ‘기계 인간 이야기’를 운명적으로 만들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터미네이터>의 속편 제작을 ‘결정적으로’ 방해했던 것은 (전술했던 ‘1편의 내재적인 한계’가 아니라) 바로 ‘판권 문제’였다.
<터미네이터>의 판권은 게일 앤 허드와 헴데일 영화사(<터미네이터> 1편을 제작했던 영화사, 연재 글 2편 참조)가 각각 나눠서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속편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양 측의 동의가 모두 필요했다. 이 중, 게일 쪽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게일과 짐은 이혼 후에도 ‘직업적인 면’에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게일도 자신의 영화를 제작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므로) 시간이 약간 걸릴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예스’라는 대답을 이끌어내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헴데일 영화사였다. 헴데일 영화사도 ‘물론’ <터미네이터>의 속편을 제작하는 데에는 ‘대찬성’이었다. 하지만 ‘사이즈’가 문제였다!
Size Does Matter!
짐과 아놀드는 <터미네이터 2>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될 것임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열혈 팬들의 ‘레퍼런스급 기대 수준’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헴데일 영화사는 (어처구니없게도) ‘1편의 규모’로 속편을 만들 것을 계속 고집했다! (아니, 무슨 <터보레이터> 만들 일 있나?! 참고로, <터미네이터> 1편의 제작비는 훗날 <터미네이터 2>로 아놀드가 받은 출연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결국 짐과 아놀드는 ‘(적어도) 헴데일 영화사와는 <터미네이터 2>를 절대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하고, 누군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던 헴데일 측이 (거의 유일한 재산이라 할 수 있는) <터미네이터>의 판권을 쉽사리 포기할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얼마 후, 혜성과 같이 나타나 ‘배수진’을 치고 끝까지 버티던 헴데일 영화사를 굴복시킨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이 사람이다.
캐롤코 픽쳐스의 대표 마리오 카사르(Mario Kassar)
마리오 카사르. 1951년 생. 1976년에 그는 독립 영화 제작사인 캐롤코 픽쳐스(Carolco Pictures)를 설립하고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게 되는데, 이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5살이었다! 이후 그는 <람보> 시리즈를 연달아 히트 시키며 이름을 날리게 된다. <람보> 2편과 3편의 엄청난 제작비(<람보 3>의 제작비는 거의 <어비스>급이었다!)를 보면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그는 헴데일 영화사의 대표였던 존 데일리와는 근본적으로 ‘씀씀이의 스케일이 다른’ 인물이었다. <터미네이터 2>를 제작하기 직전에 그가 제작한 작품은 <토탈 리콜 Total Recall>(1990)이었는데 이 영화의 제작비는 - 당시로서는 거의 최대 규모인 - 6천 5백만 불에 달했다. 1990년대 이후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명단(<원초적 본능>(1992), <클리프행어>(1994), <컷스로트 아일랜드>(1995) 등)을 훑어보면 그가 얼마나 ‘배포가 큰’ 인물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카사르는 거금을 지불하고 헴데일 사가 가지고 있던 <터미네이터>의 판권을 ‘통째로’ 사들였다. 카사르가 “판권 문제를 해결했으니 마음 놓고 <터미네이터 2>를 만들 준비를 하시오! 막대한 제작비 지원도 약속하겠소!”라고 통보해오자, 짐과 아놀드는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사실 <터미네이터 2>가 극적으로 빛을 보게 된 데에는 아놀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레드 히트>, <토탈 리콜>(모두 캐롤코 사의 작품)의 작업을 통해 마리오 카사르와 친분을 쌓은 그가 <터미네이터>의 판권을 사들이도록 카사르를 설득한 것이다. 아놀드는 자신과 짐이 일찍이 맺은 ‘결의’를 언급하며 “만일 <터미네이터 2>의 판권을 사들인다면 ‘환상의 2종 선물세트(짐 카메론-아놀드 슈왈츠네거)’가 당신의 몫이 되리라는 것은 내가 보장하겠소!”라고 단언했다. 짐 카메론의 대외적 평판이야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만, 당시 아놀드가 가지고 있던 스타 파워는 이것을 능가하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터미네이터> 이후 아놀드는 ‘추락 없는 고공활공’을 계속하게 된다. <터미네이터 2>를 제작할 무렵에 그는 이미 할리우드에서 비교할 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초특급 액션 배우’로 성장해 있었다. ‘짐과 아놀드의 재결합이라!’ 아놀드가 확언한 ‘환상의 2종 선물세트’는 카사르에게는 ‘메가톤급 성공의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레퍼런스급 도박기질’을 가지고 있던 카사르가 이 엄청난 선물세트를 뿌리칠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확률, 아니 ‘한국에서 판매량 오백 만장을 돌파하는 DVD가 나올 확률’보다도 낮은 것이었다.
마리오 카사르,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두 명의 거물급 액션 배우와 함께 사진 한 장 찰칵!
하지만 판권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터미네이터 2>의 제작에 ‘그린 라이트’가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카사르가 판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닐 때, 짐은 카사르에게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바로 ‘아놀드와 린다 해밀턴이 모두 캐스팅되기 전까지는 각본을 단 한 줄도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짐이 ‘2편과 1편의 유기적 연관성’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표적 일화다. 연재 글 3편에 소개된 ‘시고니 위버’와의 일화를 연상하시면 된다). 아놀드야 이미 ‘1천 만 년 전에’ <터미네이터 2>에 출연할 것이 확정된 인물이었지만, 해밀턴의 경우는 아직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해밀턴은 <터미네이터 2>에 출연하기 직전까지 TV 시리즈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의 캐서린 역을 맡아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짐이 <터미네이터 2>에 다시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다른 SF 영화의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짐은 해밀턴에게 ‘2편에 다시 출연해야만 하는 명분’을 각인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2편은 1편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될 것이오. 2편에서 터미네이터의 타깃은 당신의 아들 존 코너이고, 당신은 정신병원에 수감된 상태요. 존 코너는 ‘착한 터미네이터’와 함께 당신을 정신병원에서 탈출시킬 것이며, 당신은 인류를 구하게 될 것이오. 어때요? 관심 있나요?” 해밀턴은 짐의 설명을 들은 후 이렇게 짧게 대답했다.
“좋아요! 한번 ‘미쳐보고’ 싶습니다!”
판권 문제와 린다 해밀턴의 캐스팅 문제가 모두 해결되자 드디어 <터미네이터 2>의 제작이 가시화됐다. 마리오 카사르는 이미 짐에게 1편의 열 배에 달하는 제작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상태였다. 바야흐로 짐이 가장 싫어하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 작업에 착수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바로 ‘각본 작업’이다. 1990년 초, 윌리엄 위셔(짐의 오랜 친구이자 <터미네이터>의 공동 각본가, 연재 글 1편 및 2편 참조)는 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이보게 친구!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있네. 좋은 뉴스는 <터미네이터 2> 제작이 곧 시작된다는 걸세. 나쁜 뉴스는 벌써 제작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네! 나와 함께 곧장 각본 작업을 시작 할 수 있겠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공동 각본가 윌리엄 위셔
(물론) 위셔는 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스!"라고 외쳤다. 아니, 그런데 제작이 벌써 지연되고 있다는 건 또 무슨 말이냐고? 짐은 카사르와 합의하여 영화의 개봉일을 1991년 7월 4일(미국 독립기념일)로 정했다. 즉, 짐이 위셔에게 전화를 건 시점부터 개봉일까지는 불과 1년 반도 채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터미네이터 2>의 제작은 (카사르에게 만큼이나) 짐에게도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던 셈이다. 전작 <어비스>가 흥행에서 썩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 짐의 결정이 늘 그러하듯 - 이런 살인적인 제작 일정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긴 했지만 적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전작들의 제작 경험을 토대로) ‘치밀하게 계산된 도박’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전작들과는 달리(<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제외한 모든 작품들에서 짐은 ‘단독 각본작업’을 했다) 짐이 <터미네이터 2>의 각본작업에 위셔를 ‘공동 각본가’로 끌어들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제작 일정에 너무나 빡빡했기 때문이다. 짐은 최소한 2~3달 내에 각본 초고를 완성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백지상태’에서 데드라인에 맞춰 이 일을 홀로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둘째, 위셔는 이미 <터미네이터>에서 짐과 함께 각본 작업을 했던 관계로, 누구보다도 ‘터미네이터의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위셔와 함께라면 짐이 2편을 통해 ‘삽질을 할’ 위험성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윌리엄 위셔(우)와 짐 카메론(좌)
두 사람은 전화통화 직후, 비버리힐즈에 있는 짐의 자택에서 트리트먼트(영화의 줄거리와 중요한 장면들, 등장인물 등을 압축해 적은 글)의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트리트먼트 작업 첫 날, 짐은 위셔에게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있는 쪽지를 건내며, 그것이 <터미네이터 2>의 기본 줄거리라고 말했다.
“어린 존 코너와 그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가 친구가 된다”
이 쪽지를 본 위셔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으하하하!
‘소년과 터미네이터가 친구가 되다니!’ 위셔에게 이것은 거의 ‘우뢰매’급의 유치 찬란 아동용 이야기로 느껴졌다. 위셔가 배꼽을 잡고 웃자 짐도 함께 ‘으하하!’ 하면서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잠시 후, 짐은 웃음을 뚝 멈추고 정색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진심일세. 이게 바로 우리가 (그럴듯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야기일세!”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때부터 (정말로!) ‘소년과 터미네이터’에 관한 레퍼런스급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작업 방식은 전형적인 ‘브레인스토밍’ 방식이었다. 두 사람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기탄없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내놓았다. 그것이 아무리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 적어도 이 단계에서는 -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짐은 그것을 항목 별로 정리해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하곤 했다. 시간이 갈수록 ‘터미네이터와 존의 만남’ ‘정신병원의 사라 코너’ 등으로 명명된 파일들이 쌓여갔다. 파일이 충분히 확보되자, 짐과 위셔는 그것을 하나의 트리트먼트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하여 트리트먼트를 완성하기까지는 약 한 달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들이 만든 트리트먼트에는 이미 - 대사를 제외한 - <터미네이터 2>의 모든 이야기가 농축돼 있었다. 이제 관건은 이것을 빠른 시간 내에 이것을 ‘정식 각본’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좋았어! 파일은 이제 충분하네!
두 사람은 트리트먼트를 반으로 나눈 뒤, 개별적으로 각본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트리트먼트의 초반부는 위셔가, 후반부는 짐이 각각 맡아 이야기를 보다 세련되게 다듬고 대사를 첨가해 갔다. 두 사람은 하루나 이틀 정도 골방에 틀어박혀 작업을 한 후, 다시 만나서 서로의 작업분을 검토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해 나갔다. 짐은 칸 영화제가 개최되는 5월을 각본 작업의 ‘잠정적 데드라인’으로 설정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터미네이터 2>의 공식적인 제작 및 개봉일 발표’가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작업의 강도는 높아졌고, 데드라인이 임박했을 무렵에 짐은 외부와의 연락을 철저히 차단한 채 밤을 꼬박 새가며 각본 작업에 열을 올렸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바로 ‘각본 작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짐은 무려 36시간 동안을 전혀 쉬지 않고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타이핑 작업에 몰두했는데, 그가 타이핑 작업을 끝내고 각본의 마지막 페이지를 출력했을 때는 이미 (캐롤코에서 대절한) 공항 행 리무진이 밖에서 경적을 울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짐이 허겁지겁 각본의 출력본을 챙겨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놀드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이미 비행기에 탑승한 상태에서 애타게 ‘독재자’가 제 시간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짐이 탑승하자마자 비행기는 ‘부리나케’ 칸 영화제 현장으로 날아갔으며, 짐은 좌석에 앉자마자 옆 좌석에 앉은 아놀드에게 각본을 건내준 뒤 ‘죽은 사람처럼’ 골아 떨어졌다. 아놀드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쉬지 않고 각본을 읽었다. 마침내 비행기가 착륙하고 짐이 긴 잠에서 깨어나자 아놀드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각본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훌륭해요! 아~주 훌륭해요!
1990년 제 43회 칸 영화제 현장. 짐과 아놀드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지켜보는 가운데, 캐롤코의 중역이 “<터미네이터 2>가 1991년 7월 4일에 극장에 걸릴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이 발표가 있은 직후, 전 세계 SF 영화 팬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으아아아~”
“우오오오~”
“만세! 만세!”
So, What's Your Story?
“1편을 통해 이미 할 이야기를 다 해버린 마당에 2편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려준담?” 짐의 고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동시에 ‘문제의 1편’은 2편에서 그가 전개해야 할 이야기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짐이 1편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의 다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모두 스크린에 구현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짐은 “<터미네이터 2>의 플롯은 사실상 1편에서 (찍히긴 했으나) 사용되지 않은 장면들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터미네이터>에서 삭제된 신들 중에는 2편의 플롯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시퀀스가 두 개나 있다. 바로 다음 신들이다.
터미네이터에게 쫓겨 카일과 함께 도주하던 사라 코너는 돌연 “우리가 미래를 바꾸면 될 것이 아니냐!”며 사이버다인 사를 폭파시키겠다고 나선다. 카일은 ‘너무 위험한 짓’이라며 사라를 말리지만 그녀는 막무가내다. 이 장면은 본래 모텔에서의 사라와 카일의 정사 신 직전에 삽입되기로 예정됐던 신이다. 짐은 이 장면을 통해 ‘순진하기만 했던 사라가 점점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하는 과정’, 그리고 카일의 ‘인간다운(혹은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사라가 터미네이터를 ‘처치’한 후 (본래) 이어지기로 했던 장면이다. 여기서 발견된 터미네이터의 칩은 (물론) 2편의 플롯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국 사이버다인의 다이슨이 (1편의 터미네이터가 남긴) 부서진 칩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한다는 일화나 사라 일행이 사이버다인 사를 폭파하는 일화 등 <터미네이터 2>의 중심 플롯은 모두 (속편을 위해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편이 낳은 ‘친자식’인 셈이다. 자, 이제 2편을 위해 꼭 필요한 이야기의 요소들은 대충 모였다. 여기에 짐이 생각한 ‘소년과 (착한) 터미네이터’ 일화만 첨가하면 기막힌 플롯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짐과 위셔가 플롯 구상 단계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1편과의 연관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1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구조와 규모는 무한대로 확장/변형하되, 톤 만큼은 ‘완벽하게 1편의 연장선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데, 여기서 또 한 가지의 문제가 발생했다. 1편에서 관객들을 녹다운시킨 중차대한 요소는 바로 ‘기막힌 액션과 (시간을 뛰어넘은) 애절한 러브 스토리의 이음매 없는 결합’이었다. 그런데 사라의 ‘애절한 러브 스토리’의 대상이었던 카일 리스가 1편에서 죽었으므로, 2편에서는 ‘러브 스토리’란 있을 수가 없다. 만일 짐이 할리우드의 관행 - 성공한 영화의 속편에서는 반드시 ‘새로운 인물’이 불쑥 나타나 전편의 주인공과 뜨거운 로맨스를 나눈다 -을 좆는다면, 그는 2편에서 카일을 대치할 다른 로맨스 파트너를 등장시켜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사라와 ‘착한’ 터미네이터를 사랑에 빠지게 하든가! (헉!)
사라의 로맨스 파트너는 오직 한 명 뿐!
하지만 (여러분들의 예상대로) 짐이 이런 황당한 결정을 내릴 리는 만무했다. 그는 1편의 서사구조를 그대로 답습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1편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받고, 동시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짐은 2편에서 ‘러브 스토리’를 제거함과 동시에 ‘파격적인 캐릭터의 변형’을 시도해야 했다. 즉, 사라와 (1편의) 터미네이터의 성격을 맞바꿔 버리는 것이다! 짐은 이렇게 말했다. “(2편에서) 린다 해밀턴과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1편에서 서로가 맡았던 역할을 맞바꿨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것이다: 1편에서 순진한 여성이었던 사라는 2편에서는 (따뜻한 인간미를 상실한) 냉혹한 여전사, 즉 ‘터미네이터’와도 같은 인물로 변신한다. 반면, 1편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 기계였던 T-800 사이버다인 시스템 모델 101(이하 T-800으로 표기)은 2편에서는 ‘인간미(?)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짐에 의하면 2편의 플롯은 한 마디로 ‘사라가 (T-800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인간성을 찾는 여정’인 것이다.
‘인간성 회복을 위한 여정’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짐이 1편의 ‘러브 스토리’의 잔재를 2편에서 완전히 없애버린 것은 아니다. <터미네이터 2> 스페셜 에디션에 삽입된 사라의 꿈 장면(카일이 등장한다. 이 신은 영화에서 사라가 ‘연약한 여성’으로 비치는 유일한 장면이다)은 1편의 ‘러브 스토리’의 직접적인 연장선에 있는 장면이다. 특히 해밀턴은 이 장면을 2편에서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해밀턴은 짐이 극장판에서 이 신을 삭제한 데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극장판에서 삭제된 ‘사라의 꿈’ 장면
(터미네이터를 제외하고) 영화의 ‘상징적인’ 주인공이 사라 코너라면, ‘실질적인’ 주인공은 바로 존 코너다. 헌데 문제는 그가 ‘소년’이라는 데 있었다. 짐의 설정에 의하면, 존 코너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강요’로 무기 다루는 법을 익힌 인물이다. ‘무기 다루는 법’은 장래에 (기계에 대항하는) 인간 반란군의 리더가 될 인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리얼리티’적인 측면에서는 (어린) 존 코너가 ‘착한’ 터미네이터와 함께 총을 들고 맹활약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다.
하지만 ‘영화적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수적인 할리우드의 정서 상 ‘꼬마가 총을 들고 설치는 장면’이 허용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결국 짐과 위셔는 다음과 같은 컨셉을 고안하게 된다: “존 코너는 무기 다루는 법을 (물론) 잘 알고 있지만, (적어도 소년 시절에는) 무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며 그것을 자신이 꼭 다루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존은 비행 청소년이긴 하지만 적어도 ‘살상용 무기’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장난감 총을 가지고 노는) 또래의 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이 쪽(?)’으로는 확고한 도덕관을 가지고 있다. 이 컨셉의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의 멋진 컨셉이 탄생하게 된다. 존이 '착한’ 터미네이터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이것은 <터미네이터 2>의 플롯에서 실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착한’ 터미네이터는 처음에는 존이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그 의미를 ‘스스로’ 깨달아가며, 급기야 결말 부분에서는 (자신에게 ‘인간성’의 의미를 가르쳐준 ‘인간’을 위해) ‘자살’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바로 관객들이 ‘착한’ 터미네이터에게 - 그리고 아놀드에게 - ‘연민’과 ‘영웅성’을 느끼게 되는 결정적인 요소인 것이다.
I Swear, I Will Not Kill Anyone!
‘인간성을 가진 기계’라는 기막힌 모티프는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에서 불쑥 튀어나와 관객의 감성을 은연중에 자극하기도 한다. T-800에게 부여된 ‘부성(父性)’과 같은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존 코너는 아버지의 얼굴을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가 비행 청소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어머니가 강요한 ‘미래의 리더로서의 삶’에 대한 본능적 저항감 외에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아버지의 부재’도 크게 작용했다. (이것은 영화 중반부에서 존 코너의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더군다나 존은 먼 훗날, 자신의 아버지가 될 카일 리스를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과거로 보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아닌가? <터미네이터 2>의 T-800은 말하자면, 존에게는 카일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다. 짐 카메론은 영화 곳곳에 이것과 관련된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배치했다. 예컨대, 다음 장면을 보자.
영화 초반부, T-800(아놀드)이 T-1000(로버트 패트릭)이 발사한 총알로부터 존을 보호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적지 않은 분들이 이 장면을 보며 ‘이유 모를 감동’을 느끼셨을 것이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현란한 액션 장면 때문에 ‘그 감동의 정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장면이 ‘짜릿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바로 T-800의 ‘포즈’ 때문이다. T-800은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존을 보호할 수 있었다. 존을 땅바닥에 엎드리게 한다든지, 곧장 옆의 비상문으로 밀어 넣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짐은 이런 '시시한 연출’ 대신 기막힌 방식을 택했다. 아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보여줄 행동 - 본능적으로 아이를 감싸 안고 자신의 등으로 총알을 받아내는! - 을 T-800이 취하도록 한 것이다. (참고로 <티2-3D T2-3D: Battle Across The Time>에도 이것과 거의 똑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T-800은 T-1000이 들고 있는 권총의 총알이 바닥난 후에야 존을 ‘안전하게’ 숨겨주고 T-1000을 향해 돌진한다. 한편, 짐은 영화의 중반부에서 사라의 독백을 통해 이 모티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문제의 장면은 바로 아래 신이다.
(사라의 독백) 기계인간과 함께 있는 존을 보면서 모든 것을 확실히 느꼈다. 터미네이터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절대 존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존을 해치지도, 존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지도, 그리고 술에 취해 존을 때리지도 않을 것이다. 또 ‘너무 바빠서 너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항상 존 곁에 있을 것이며, 존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도 바칠 것이다. 모든 아버지들 중 오직 이 기계만이 아버지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의 <터미네이터 3>에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열혈 팬의 관점에서’ 이 부분을 해석한 대사가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말이다.
아놀드의 입장에서, (1편과 비교했을 때의) T-800의 변화는 ‘반가운 동시에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1편과는 달리, 2편에서 T-800은 ‘너무나도 많은’ 역할을 맡고 있다. 영화 속에 펼쳐지는 모든 액션의 주인공으로, 또 앞서 언급한 ‘인간성 회복’이라는 플롯의 중추적 역할로, 그리고 존의 ‘정신적 아버지이자 친구’로 말이다. 게다가 그는 1편에서 카일이 맡았던 ‘내레이터’ 역할까지 수행해야 했다. (짐은 2편의 모든 배경 설명 -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등 - 을 전적으로 T-800에게 위임했다). 물론 짐은 아놀드에게 캐릭터에 관한 충분한 설명을 하긴 했지만, 캐릭터를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실감나는 연기로 승화시키는 것은 결국 아놀드의 몫이었다.
아놀드는 1편의 T-800과의 연관성을 유지하면서 그와는 180도 다른 역할을 해 내야 했으며, 무엇보다 ‘기계가 인간성을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대사나 상황 설명이 아닌 ‘표정과 몸동작’으로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훗날) 짐은 “아놀드는 내가 원한 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몸동작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그는 내가 원한 T-800의 역을 너무나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라고 극찬했다. 한편, 짐은 관객에게 'T-800이 비록 인간성을 보유한 존재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1편에서와 같은 무서운 살인 기계‘임을 영화 중간쯤에 다시 한번 각인시킬 필요를 느껴 다음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다.
이 장면은 ‘터미네이터가 기본적으로는 살상용 기계임’을 관객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삽입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은 이 장면 덕분에 터미네이터의 ‘영웅성’과 ‘인간성’을 더욱 강렬하게 인식하게 된다.
<터미네이터 2>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짐과 위셔가 가장 고심한 부분은 바로 “‘나쁜’ 터미네이터를 어떤 것으로 설정하느냐”였다. 2편의 근본적인 문제는 ‘압도적인 신체 사이즈의 아놀드’가 애당초 ‘착한’ 터미네이터로 설정됐다는 데서 비롯됐다.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미래에서 오는 ‘나쁜’ 터미네이터는 거대한 체구의 아놀드를 우스운 것으로 만들 정도로 위력적이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짐은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우선, 그는 아놀드보다 더 크고 거대한 터미네이터를 등장시킬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곧 ‘폐기처분’돼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데다가, 짐이 구상한 ‘터미네이터’의 기본 컨셉과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터미네이터는 기본적으로 ‘인간 세계에 침투하여 주요 인물을 암살하는’ 임무를 맡은 기계이기 때문에 겉보기에 보통 인간과 별 차이가 없어야 했다. 하지만 아놀드보다 거대한 터미네이터가 등장한다면, 누구라도 그의 정체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또, 짐과 위셔는 한 때 ‘여자 터미네이터’를 등장시킨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말하자면, <터미네이터 2>를 ‘아놀드 대 *년 (Arnold vs. the Bitch)'의 구도로 만들자는 것이다. (아마도 <터미네이터 3>를 본 뒤 ‘여자 터미네이터’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치를 떠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헌데, 놀랍게도 짐과 위셔도 한 때 ‘Bitch 터미네이터’ 컨셉을 고려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황당무계하고 우스꽝스럽다’는 이유로 이 아이디어도 곧 ‘쓰레기통 행’이 됐다.
“여자 터미네이터? 오, 노!”
두 사람이 내 놓은 또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는 바로 ‘두 명의 아놀드 Two-Arnold' 컨셉이었다. 아놀드에게 ‘착한’ 터미네이터와 ‘나쁜’ 터미네이터의 1인 2역을 맡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럴 듯 한 컨셉이긴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대체 어느 쪽이 착한 터미네이터이고 어느 쪽이 악당인지를’ 관객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분장’ 밖에 없었다. 즉, (만일 이 컨셉을 택한다면) 아놀드는 촬영기간 내내 ‘떡칠 분장’만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결국 짐은 ‘초기에 구상했던’ 터미네이터의 컨셉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1편의 이야기를 구상할 때, 짐은 터미네이터를 ‘평범한 인간형’의 로봇으로 설정한 바 있다. (연재 글 2편 참조) 만일 이 컨셉을 다시 선택한다면, ‘평범한 인간형’의 터미네이터를 어떻게 ‘괴물급 체구의’ 아놀드보다 무서운 살인 병기로 만들 것인지가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짐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이미 10년 전에 내놓은 바 있다. <터미네이터>의 이야기를 구상하던 초창기에 그는 ‘어떤 형태로도 변신할 수 있는 액체 금속 로봇’의 컨셉을 떠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때)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 The Thing>(1982,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는 외계 괴물이 등장한다)이 개봉했고, 짐은 ‘표절작’이라는 누명을 쓰지 않기 위해 이 컨셉을 버려야 했다. (물론 당시의 특촬 기술로는 이 아이디어를 구현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하지만 <터미네이터 2>의 제작이 가시화 되자, 짐은 ‘드디어 그 아이디어를 구현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의 확신은 다름 아닌 <어비스>의 제작 경험에서 비롯됐다. 짐은 <어비스>의 물기둥 장면(연재 글 4편 참조)이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구현된 것을 본 뒤,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도 스크린 상에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액체 금속 로봇이라!
사실, T-1000의 컨셉은 ‘리얼리티의 절대적 신봉자’인 짐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물론 짐은 (전작들에서 그랬듯) <터미네이터 2>를 제작하기에 앞서 다방면에 걸친 방대한 사전 조사를 실시했다. 사라가 수감된 정신병원이나 사이버다인 사의 연구실 광경, 그리고 그 유명한 핵폭발 장면 등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상적인 신들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구현된 것들이다. 허나, T-1000만큼은 짐으로서도 ‘고증을 할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영화의 대전제가 되는 ‘시간여행’이라는 모티프 자체가 (적어도 현재의 상식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타임머신(정확한 명칭은 Time Displacement Equipment)을 만드는 미래의 기술로 그깟(?)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 하나 못 만들겠는가?! (참고로, 영화에서 기술 조언자로 참여했던 Larry Yaeger 씨는 T-1000의 기술이 현재로서 황당무계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불가능한 기술’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T-1000의 기술이 현재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나노 테크놀로지의 먼 연장선에 있다고 주장한다).
"미메틱 합금(액체 금속)? 젠장! 그게 대체 무슨 뜻이래?”
어차피 (현재로서) 고증을 할 수 없는 컨셉인 만큼, 짐은 T-1000을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리얼하게’ 표현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춰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세 가지의 해결해야 할 과제를 낳게 된다. 첫째는 T-1000에 ‘인격’을 부여하는 일이다. T-1000은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이기 때문에 (본래는) 일정한 형태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상에서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정한 형태 -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형태 - 를 부여해야 했다. 그래서 짐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경찰’의 외형이다. 즉, T-1000으로 하여금 ‘과거’에 도착하자마자 마주친 첫 희생자(경찰)의 복장을 하고 영화 내내 돌아다니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 중간 중간에 T-1000은 여러 형태로 모습을 바꾸지만 결국은 ‘(기본 외형인)경찰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이로 인해 T-1000에게는 ‘인격’이 부여되며, 관객은 이 살인기계를 다른 액션 영화의 ‘(인간)악당’과 같이 인식하게 된다.
짐은 T-1000에 ‘인격’을 부여하기 위해 ‘경찰 컨셉’을 택했다
둘째는 T-1000의 능력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자유자제로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액체 금속 고유의 특징 때문에 관객은 T-1000을 황당무계한 컨셉으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있었다. 그래서 짐은 T-1000의 능력에 다음과 같은 한계를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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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00이 ‘변신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변신하고자 하는 대상과 물질적인 접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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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00은 오직 ‘같은 사이즈’의 물체(혹은 사람)로만 변할 수 있다. 또, T-1000은 자동차나 제트기와 같은 복잡한 기계로는 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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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00의 변신은 기본적으로 대상물의 ‘흉내를 내는 것’일 뿐이다. 즉, T-1000이 변했다고 해서 몸체를 구성하는 액체 금속의 성분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다. |
물론 짐은 이 컨셉을 각본에 충실히 반영했다. 또, 관객에게 이를 인식시키기 위해 영화의 실질적 내레이터인 T-800으로 하여금 (영화 초반부에서) 이 한계의 요점을 읊도록 했다.
그러나 짐과 위셔를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든’ 것은 바로 세 번째 과제였다. 그것은 ‘대체 T-1000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짐의 컨셉에 의하면, T-1000은 거의 무적이었다. 아무리 파괴해도, T-1000은 곧 본래의 형상으로 ‘재조립’된다. 위셔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코믹한 멘트를 날렸다. “아마도 T-1000을 다섯 조각으로 잘라서 각 조각을 다섯 개의 대륙에 나눠서 보내버릴 수는 있겠죠. 그러면 적어도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T-1000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겁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T-1000은 재조립되고 말겁니다!” 짐과 위셔는 궁리 끝에, T-1000을 죽이는 유일한 방법은 ‘미메틱 합금(액체 금속)의 분자구조 자체를 변형하거나 해체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위셔는 한 때 'T-1000을 녹여 실생활에 유용한 연장으로 만들어버리는’ 다소 코믹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이것은 짐이 추구하는 테크놀로지 모티프 - 기술은 활용하기에 따라 인간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 와도 맞물리는 것이어서 짐 역시 매우 좋아했다. (T-800이 용도에 따라 악당 - 1편에서처럼 - 이 될 수도, 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영화의 전제는 바로 이 테크놀로지 모티프가 적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진지한 분위기의’ <터미네이터 2>용으로는 부적당했다. 결국 짐과 위셔는 ‘T-1000을 제철 공장으로 끌어들여 용광로에 빠뜨린다’는 아이디어를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린다 해밀턴에게 <터미네이터 2>는 마치 ‘가족 파티의 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것이다. 우선, 그녀는 ‘너무나 적절한 시기’에 사라 코너 역을 다시 맡게 됐다. 2편의 사라는 1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심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였는데, 해밀턴은 1편의 작업 후 여러 영화를 거치며 연기력이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한 상태여서 이 까다로운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밀턴 자신이 (당시에) 홀로 아들을 기르는 처지였기 때문에, 극 중의 사라 역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참고로 그녀의 아들은 ‘핵폭발 꿈’ 장면에서 까메오로 출연했다). 즉, 당시 그녀의 특수한 상황이 (여러분이 보신) 놀라운 열연을 이끌어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 이 영화에는 그녀의 쌍둥이 자매인 레슬리 해밀턴도 출연한다. (<터미네이터 2>의 각본에는 린다 해밀턴의 1인 2역을 요구하는 장면이 세 개나 있었다. 일란성 쌍둥이였던 린다는 이 장면들을 위해 레슬리를 호출했고 두 ‘해밀턴’은 짐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앙상블 연기를 보여줬다). <터미네이터 2>가 해밀턴에게 ‘가족 파티’일 수밖에 없었던 마지막 이유는 (바로) 이 영화를 통해 그녀와 짐이 새로운(?)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서술하겠다).
린다-레슬리 해밀턴 자매가 함께 출연한 장면
이 아이는 린다 해밀턴의 실제 아들이다
역시 자매가 함께 출연한 장면. 이 장면에서 전방에 있는 T-800은 ‘인형’이며 거울(사실은 거울이 아니다) 뒤쪽에서 말하고 있는 T-800이 ‘진짜’ 아놀드다.
역시 자매가 함께 출연한 장면. 앞에 있는 사라(T-1000)는 린다가, 뒤의 사라는 레슬리가 각각 연기했다.
존 코너 역을 맡을 소년을 뽑는 것은 캐스팅 과정 전체를 통틀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짐은 연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을 여러 명 테스트 해보았지만 도통 마음에 드는 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가 찾는 이는 ‘자연스러움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갖춘’ 소년이었는데, 연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유일하게 짐의 눈길을 끌었던 이는 캐스팅 디렉터 말리 핀이 ‘찍은’ 이 소년이었다.
에드워드 펄롱
‘마이클 빈과 린다 해밀턴을 닮은’ 소년을 찾던 말리 핀은 파사데나의 한 소년 클럽에서 묘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소년을 발견하고는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바로 에드워드 펄롱(당시 나이 13살)이었다. 낯선 여자가 자기를 계속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 챈 펄롱은 순간적으로 공포감을 느꼈다. 잠시 후 그녀는 펄롱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너 혹시 영화에 출연할 생각 혹시 있니?” 그녀는 펄롱의 사진을 찍은 뒤 유유히 사라졌고, 소년은 곧 집으로 가서 당시 함께 살고 있던 이모와 이모부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들은 ‘뭐 별 볼일 없는 싸구려 영화의 출연 제의겠지’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고 이모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말리 핀이 “펄롱을 <터미네이터 2>의 오디션 장에 보내주세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은 펄롱의 장점이자 최대의 약점이었다. 펄롱의 오디션 녹화 테이프를 본 짐은 즉각 이 소년에게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린다 해밀턴과 함께 하는 두 번째 오디션에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오디션의 결과는 - 예상대로 - 시원치 않았다. 펄롱은 (가뜩이나 연기 경험도 없는데) 해밀턴과 함께 공연한다는 생각에 지나칠 정도로 긴장을 했고, 그 덕에 짐에게 제대로 된 연기 실력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짐은 펄롱의 강렬한 인상을 잊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짐은 펄롱에게 전담 대사 코치를 붙여주고 충분한 연습을 시킨 다음 재오디션을 하기로 했다. 오디션의 결과는 만족스러운 편이었으나, 여전히 짐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만일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펄롱이 실제 촬영장에서 ‘삽질’을 한다면 영화 자체가 실패작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은 결국 자신의 ‘직감’을 믿고 도박을 하기로 했다. 짐으로부터 캐스팅 확정 소식을 듣자 펄롱은 다음과 같이 외치며 미친 듯이 날뛰었다.
한편, T-1000의 역을 맡을 배우를 고르는 것은 또 다른 난제였다. T-1000은 대사가 아닌 ‘눈빛’과 ‘제스쳐’로 관객을 압도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이에 걸맞는 ‘육체적(?) 조건’이 필수적으로 요구됐다. 여기에 덧붙여 짐은 ‘무명에 가까운 연기자’가 T-1000 역을 맡기를 원했다. 이것은 T-1000의 오리지널 컨셉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짐에 의하면, 여러 대가 생산된 T-800 시리즈와는 달리 최신 기종인 T-1000 시리즈는 ‘단 한대’ - 여러분이 영화에서 보신 그것! - 만이 생산됐다고 한다. 따라서 미래의 인간 반란군들에게조차 T-1000의 외양은 베일에 싸인 것이었다. 고로, ‘생소한 얼굴’의 연기자가 이 역을 맡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다). 짐의 선택은 ‘날카로운 외모의 소유자’인 이 사람이었다.
로버트 패트릭
패트릭은 (짐의 선정 기준대로) <터미네이터 2>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무명에 가까운 배우였다. 이전까지 그는 로저 코만이 제작한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다이하드 2>(1990, 위 사진)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존 맥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악당으로 나왔다).
패트릭은 T-1000역을 따낸 직후, 고된 육체 훈련에 돌입해야 했다. 각본 상 패트릭은 정신없이 뛰는 장면 등 다이내믹한 액션 신을 수도 없이 소화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체력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그는 ‘액체’처럼 유연하게, 그러나 재빨리 움직이는 법을 짧은 시간 내에 터득해야 했으며, 심지어 숨 쉬는 방식조차 바꿔야 했다. T-1000은 사람이 아닌 기계이기에 뛸 때도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일 T-1000이 열심히 달리는 도중 ‘숨이 차는 듯한’ 표정을 보인다면 영화는 그 순간부터 ‘코미디물’로 돌변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격렬한 동작 때에도 ‘입이 아닌 코로 조용히 숨쉬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패트릭은 이 때의 고된 훈련 덕에 자신의 생활 스타일 자체가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훈련을 소화해니기 위해 담배도 끊어야 했다!)
“코로 숨쉬니까 참 좋~다!”
1편에 출연했던 배우들 중 2편을 위해 ‘특별초빙’된 이들도 있었다. 카일 리스 역의 마이클 빈은 사라의 꿈 장면에 잠시 출연하기 위해 다시 캐스팅됐다. 비록 ‘까메오’에 가까운 역이었지만(게다가 이 장면은 극장판에서는 잘려나갔다) 빈은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고 한다. 빈은 이렇게 말했다. “짐은 나의 연기 커리어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인물이다. 만일 그가 자기 집 마당의 잔디를 깎아달라고 요청한다고 해도, 나는 기꺼이 그것을 할 것이다!” 1편에서 실버맨 박사 역을 맡았던 배우 얼 본도 2편에서 다시 출연하게 됐다. 또, <에이리언 2>를 찍으며 짐과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 제넷 골드스타인도 <터미네이터 2>에서 인상적인 ‘깜짝 출연’을 했다.
터미네이터보다 더 질긴 생명력의 소유자 실버맨 박사. 그는 터미네이터(아놀드)를 제외한 주요 배역 중 유일하게 세 편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모두 출연했다.
‘고된 육체 훈련’은 패트릭만 거쳐야 할 통과의례는 아니었다. 린다 해밀턴 역시 ‘1편과는 180도 다른 이미지’의 사라를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전담 코치까지 고용하여 엄청난 강도의 운동을 소화해야 했다. 그녀는 ‘여자 아놀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매일 수 시간 씩 웨이트 트레이닝과 에어로빅, 조깅 등을 하며 땀을 흘렸다. 결국 그녀는 촬영을 시작할 무렵에는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의 ‘근육질 여전사’가 되어 있었다.
극장 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 장면
존 코너 역을 맡은 에드워드 펄롱 역시 오토바이 타는 법 등 적지 않은 개인 훈련을 소화해 내야 했다. 한편, 해밀턴과 패트릭은 개별적으로 실시하던 육체 훈련 외에 ‘무기 다루는 훈련’도 받아야 했다. (아놀드의 경우는 워낙 웨이트 트레이닝이 ‘일상생활’이 된 인물인 데다가, 이전에 수없이 많은 영화에서 총을 다뤄 봤던 ‘총기 전문가’였기 때문에 특별한 훈련이 필요 없었다). 이를 위해 짐은 이스라엘 특수 부대 출신의 우지 갈(Uzi Gal)을 트레이너로 초빙해 배우들의 무기 훈련을 감독하게 했다. (참고로 우지 갈은 짐의 다음 작품인 <트루라이즈>에서 테러리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우지 갈은 거의 ‘군대 식’으로 배우들을 혹독하게 훈련 시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배우들 스스로가 ‘이 훈련을 소화해 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둘째, 짐 역시 배우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훈련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짐은 ‘배우들에게 제대로 된 연기 지도를 하려면 나 자신이 무기 다루는 법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훈련에 자원했다).
<터미네이터 2>를 위한 훈련 광경
촬영에 앞서 짐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각본의 길이를 줄이는 것’이었다. 짐과 위셔가 작성한 각본 초고에는 ‘터미네이터’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컨셉들이 다량 포함돼 있었지만, 이것들을 모두 영상화하려면 적어도 2억불의 제작비가 필요했다! 게다가 초고의 내용대로 영화를 만든다면 영화의 상영시간은 무려 세 시간 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이유로 짐과 위셔는 각본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를 제외한 부차적인 것들을 대거 삭제하기로 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T-1000은 한 마디로 ‘돈 말아 먹는 기계’였다. T-1000이 한번 변신 할 때 마다 엄청난 제작비가 날아갈 것이 불 보듯 뻔 했으므로, 짐과 위셔는 ‘이야기 전개상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T-1000을 변신시켜야 했다. 흥미롭긴 하지만 이야기 전개상 필수적이지 않은 변신 장면은 각본 수정 과정에서 모두 삭제됐다.
그러나 초고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삭제된 부분은 바로 미래 전쟁 신이다. 초고에서 미래 전쟁 신은 영화에서 선보인 것보다 훨씬 길었고, 스케일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영화의 플로로그에 해당하는 이 미래 신을 통해 짐은 ‘인간 반란군이 기계 군단을 점령하여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을 보여주고자 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존 코너가 이끄는 반란군들은 스카이넷 건물의 심장부로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스카이넷의 심장부에는 두 개의 중요한 시설이 있었다: 하나는 타임머신이 있는 방(Time Displacement Chamber)이며 또 하나는 저온 저장소다. 각본에서는 타임머신 챔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챔버는 고등학교 체육관 정도의 크기인데 디자인이 우리의 상식을 훌쩍 초월한다. (-_-;) 그 곳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기술(-_-;)로 제작된 곳이다”.
컨셉 아티스트 스티브 벅이 디자인 한 스카이넷 내부의 광경. 이 그림들은 짐의 컨셉을 충실히 수용해 그려진 것이다. 짐은 벅에게 ‘관객들의 넋을 완전히 빼 놓을 정도의 웅장하고 파워풀한 디자인’을 원했다. 동시에 그는 관객들이 이 시설을 보는 순간 ‘기계에 의해 디자인 됐음’을 한 눈에 알 수 있기를 원했다.
곧 이어 존이 타임머신을 통해 카일을 과거로 보내는 장면이 이어진다. 존은 (물론) 카일이 자신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터미네이터에 의해 죽임을 당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카일이 과거로 간 뒤 존의 부하가 “리스는 어떻게 되나요? 아니, 어떻게 ‘됐나요?’”라고 묻자 존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는 임무를 완수한 뒤 장렬하게 전사한다. 그는 내 아버지다”. 순간 분위기는 숙연해진다. 잠시 후 존의 부하가 타임머신 챔버를 파괴하려 하자 존은 이렇게 말한다. “잠깐 기다려. 아직 할 일이 하나 더 남았다!” 그는 부하를 이끌고 저온 저장소로 향한다.
저장소에는 수 백 대의 터미네이터가 ‘진열’돼 있다. 존은 T-800 CSM 101(아놀드형 모델) 기종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T-800의 열 중 한 자리가 비어 있다. (물론 이것은 사라를 죽이기 위해 과거로 간 T-800의 자리다). 존은 ‘비어있는 자리’ 옆에 서 있는 T-800을 보며 상념에 잠긴다. (이유는 여러분들이 짐작하시는 대로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과거(그러니까 <터미네이터 2>의 주된 배경이 되는 해)로 전환된다. 자, 어떤가? 여러분이 짐작하시듯, 이 모든 것을 영상화하려면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돼야 했다. 짐은 어쩔 수 없이 이 미래 전쟁 장면을 ‘최소한의 길이’로 축소해 버렸다.
타임머신 챔버 디자인 (스티브 벅 작품)
저장소에 ‘진열’된 터미네이터들 (스티브 벅 작품)
위의 타임머신 디자인(세 개의 고리로 이루어짐)은 짐의 각본 초고의 내용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타임머신 디자인은 비록 <터미네이터 2>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훗날 로버트 제멕키스의 <콘택트>에서 거의 그대로 활용됐다. 물론 <콘택트>에서 컨셉 디자인을 맡은 사람은 (역시) 스티브 벅이다.
<콘택트>(1997) 중 한 장면
“각본을 읽은 후 나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각본에는 (내가 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게다가 짐의 완벽주의 성향을 고려하면, (짧은 시간 안에) 그 모든 것이 1급 상태로 완성돼야 했다!” <터미네이터 2>에서 미술 감독을 맡은 조 네멕의 회고담이다. (네멕은 <어비스>에서 이미 한 차례 짐과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각본에 묘사된 ‘엄청난 배경 설정’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그를 ‘OTL 모드’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살인적인 제작 스케줄’이었다.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가 부여받은 사전 제작 기간은 고작 3개월에 불과했다! 이 기간 내에 그는 각종 미술 관련 작업 및 각본에 묘사된 장면을 찍을 로케이션 장소의 ‘치장’을 완료해야 했다. 만일 네멕이 주어진 기간 내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제작 일정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릴 판이었다. 결국 네멕은 임무를 부여받자마자 부리나케 컨셉 디자이너들이 그린 그림을 검토/보완하는 작업에 착수했으며, 동시에 로케이션 매니저들과 함께 ‘근사한’ 로케이션 장소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험난했다.
우선 로케이션 매니저들은 영화 초반을 장식하는 ‘수로 추격 신’의 촬영지로 적당한 곳을 찾아야 했다. 각본에서는 다음과 같은 수로를 요구하고 있었다: 1. 존이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가는 입구와 빠져나갈 출구 있어야 했다. 2. T-800이 견인 트럭에 쫓기고 있는 존을 발견할 수 있는 ‘수로 근처의 고지대’가 있어야 했다. 3. 수로의 폭과 깊이가 (T-1000이 탄)견인 트럭과 촬영용 차량들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여야 했다. 그러나 폭이 너무 넓어도 안 된다. (짐이 영화의 첫 추격 신의 배경을 ‘수로’로 설정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폐소공포증’을 유발시키기 위해서였다. 짐은 -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결 Duel>에서와 같은 - ‘탁 트인 도로’에서의 추격 신에는 느낄 수 없는 긴박감을 관객에게 선사하고 싶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도망갈 공간이 없는’ 꽉 막힌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트럭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 폭의 수로를 추격신의 배경으로 고른 것이다).
수로 추격신의 배경이 된 장소
로케이션 팀은 LA 카운티에서 촬영에 적합한 수로를 겨우 찾아냈는데, 문제가 있었다. 수로로 진입하는 입구와 출구의 수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스텝들은 수 마일이나 떨어진 입구에서 장비를 실은 차량을 진입시켜 실제 촬영장소까지 끌고 와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에 쫓기고 있는 짐으로서 이는 실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로 바닥에 깔린 이끼들 때문에 바닥이 극도로 미끄러웠던 것이다. 스텝들이 걷기조차 곤란할 정도였다. ‘대형사고’를 막기 위해 스텝들은 촬영에 앞서 이끼를 모조리 제거해야 했다. 잠시 후, 또 하나의 장애물이 불쑥 튀어나왔다. 수로의 터널 하나의 높이가 견인 트럭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낮았던 것이다. 이제 와서 다른 수로를 알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짐은 즉석에서 기막힌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추격 신이 전개되는 도중 견인 트럭의 ‘뚜껑’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이 기막힌 장면은 ‘장소의 제약’으로 인해 우연히 탄생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제철 공장 신’을 찍을 장소를 찾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모든 설비를 갖추고 있으나 가동은 하지 않는, 버려진 제철 공장’이 필요했다. 로케이션 매니저들은 우여곡절 끝에 폰타나에서 17년 동안 가동하지 않은 제철 공장을 찾아냈다. 그러나 또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공장의 설비가 (하필이면 그 때) 새 주인에게 매각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각본 상 용광로에 빠뜨리는 것 외에는 T-1000을 ‘죽일’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제철 공장 배경은 반드시 필요했다. 따라서 로케이션 매니저들은 촬영이 가능한 다른 제철 공장을 찾아야 했으나, 과연 그런 장소가 또 있을지 의문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제철 공장을 하나 지어야 할 판’이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새 공장 주인이 설비를 옮기기 전에 영화를 먼저 찍도록 허락한 것이다. 로케이션 장소가 결정되자 조 네멕은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가 장소를 ‘예쁘게(?) 포장’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공장의 규모가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네멕 팀이 ‘치장’을 위한 계획을 짜는 데만 해도 자그마치 8주가 소요됐다. 그리고 네멕 팀은 불과 5주 만에 공장 시설을 ‘촬영용 세트’으로 뒤바꾸는 불가능한 임무를 완수했다.
클라이맥스 신의 배경이 된 제철 공장
사이버다인 사의 건물로 적당한 건축물을 찾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문제는 각본 상 이 건물의 2층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는’ 부분이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자기 건물을 폭파시키는 데 동의할 ‘정신 나간’ 건물주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최악의 경우, 건물의 외관만 촬영한 후 미니어처 건물을 활용해 찍은 폭발 신과 합치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이것은 ‘리얼리티의 열렬한 신봉자’인 짐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설사 건물주가 폭파를 허락한다고 할지라도 인근 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건물이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야 했다. 특히 각본 중에는 저공비행하는 헬기를 대상으로 하여 펼쳐지는 액션 신도 있었기에, 건물이 주택 밀집 지역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었다. ‘외곽에 위치한 빈 건물’을 애타게 찾던 로케이션 스텝들은 마침내 캘리포니아의 산 호세에서 적당한 건물을 찾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기쁘게도) 그 건물의 주인은 ‘건물에서 폭발 신을 찍는 것’도 흔쾌히 허락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건물이 2층짜리여서 거대 기업인 사이버다인 사의 본부로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네멕 팀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건물의 세 번째 층을 ‘만들어야’ 했다.
사이버다인 사의 건물로 쓰인 세트
“짐은 ‘구현이 불가능해 보이는’ 특수효과 장면들을 수도 없이 고안해 냈다. 각본 상 첫 2분 분량의 신에는 <터미네이터> 1편 전체에 사용된 것보다도 많은 특수효과가 포함돼 있었다!” - 스탠 윈스톤 (분장 및 특수효과)
“각본 상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액션 장면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그랬다! 믿을 수가 없었다. 순간, 나는 이 영화가 내가 맡은 영화 중 - 그리고 아마도 지금껏 만들어진 모든 액션 영화 중 - 가장 거대한 영화가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 게리 데이비스 (스턴트 코디네이터)
짐이 쓴 각본을 처음 본 스텝들의 반응은 대략 위와 같았다. 한 마디로 각본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 뿐이었다. 만일 영화의 제작 기간이 3~4년 정도만 할애됐어도 스텝들이 저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터미네이터 2>의 제작 기간은 1년 정도에 불과했다. 그 중 이미 3개월은 사전 제작 기간으로 훌쩍 지나가버린 상태였고, 앞으로 약 6개월간은 촬영이, 그리고 이후 3개월간은 후반 제작 과정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특히 3개월의 후반 제작 기간 동안 영화의 특수효과 신을 모두 완성한다는 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불가능해 보였다(잠시 후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영화의 특수효과 신은 대부분 ‘영화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것들’이었다!). 짐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하기에 앞서 철두철미한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첫째, 그는 사전 제작 기간에 영화의 주요 액션 신을 ‘비디오매틱 기법’(연재 글 3편 참조)을 통해 완벽하게 영상화해 놓았다. 이것은 후에 있을 실제 촬영의 로드맵으로 활용될 예정이었다. 둘째, 그는 후반 편집 작업 시 일어날 수 있는 ‘교통체증’을 막기 위해 ‘촬영과 동시에’ 편집을 진행하기로 했다. 후반 편집 과정에서는 이 때 편집된 분을 체계적으로 분류/정리하고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면 그만이었다. 또한 짐은 한 번의 촬영에서 멋진 영상을 최대한 많이 뽑아내기 위해 모든 액션 신을 ‘여러 대의 카메라’를 가동하여 찍기로 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잠시 후 다시 언급하겠다). 셋째, 그는 특수효과 작업이 촬영과 병행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짐은 이미 <에이리언 2>와 <어비스>의 작업을 통해 특수효과 전문 업체들의 특성을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따라서 그는 ‘별도의 테스트’ 없이 네 개의 특수효과 업체에 각기 어울리는 작업 분을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할당할 수 있었다. 짐은 특히 많은 후반 작업 시간이 소요되는 신 - 예컨대 CG 쇼트 - 을 촬영 스케줄의 초반부에 몰아넣어 촬영분이 최대한 빨리 특수효과 회사에 도달될 수 있도록 했다.
짐, 완벽주의자의 초상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누구보다 열성적인 짐의 지지자이며, 짐의 스타일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짐과 함께 일하는 것은 정말로 특별한 경험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해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각본을 쓰고 모든 컨셉을 고안해 내며 배우들을 일일이 지도한다. 심지어 그는 조명도 직접 손보는 등 모든 영상 요소를 장악한다. 그는 촬영장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각종 장비를 만지고 (특수분장 팀이 이미 해 놓은) 분장을 일일이 다시 손질하기까지 한다. 제작 과정에서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전혀 없다. 짐의 영화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비전을 완벽하게 영상화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짐과 함께 작업하기를 좋아한다.”
아놀드의 증언대로 짐은 초반부터 ‘확실하게’ 촬영장의 분위기를 장악했다. 스텝들은 반농담조로 짐을 ‘제너럴 카메론(General Cameron)’이라 부르곤 했는데, 이는 촬영장에서의 짐의 ‘카리스마’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말이기도 하다. (짐은 종종 ‘패튼 장군’에 비유되곤 했다. 여기에 대해 짐은 ‘적어도 나는 스텝들을 구타한 적은 없다’ - 패튼 장군의 유명한 ‘병사 구타 일화’를 빗대어 - 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다).
<터미네이터 2>의 촬영이 시작된 첫 날(1990년 10월 9일)부터 스텝과 배우들은 이런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젠장! 그건 ‘정확히’ 내가 원한 게 아니란 말이야! G**damn it! That's exactly what I didn't want!" 짐의 쩌렁쩌렁한 울부짖음(?) 소리는 촬영장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짐과 처음 작업을 하는 스텝들은 당연히 그 자리에서 ‘꽁꽁’ 얼어붙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짐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놀드만은 늘 ‘여유만만’했다. 그는 붉으락푸르락하는 짐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며 “다시 한번 갑시다!”라는 사인을 보내곤 했다. 몇몇 스텝들은 이 광경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잠시 후 짐의 ‘찌릿~’하는 눈길을 느끼고는 웃음을 뚝! 멈추곤 했다.
‘촬영장의 패튼 장군’ 짐 카메론
<터미네이터 2>의 첫 촬영은 캘리포니아 랑카스터의 사막지대에서 진행됐다. 촬영 첫날, 짐의 ‘제 1의 근심거리’는 바로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에드워드 펄롱이 과연 존 코너 역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겠느냐’였다. 하지만 리허설 때 그토록 긴장했던 펄롱은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짐은 펄롱의 연기에 크게 감동을 받았으며 ‘대만족’을 표시했다. 그러나 잠시 후 카메라를 보던 짐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막상 렌즈를 통해 보니 존의 입술이 묘하게 빛나고 있던 것이다. 펄롱이 입술에 바른 챕스틱 때문이었다. 순간, 짐은 다시 ‘앵그리’ 모드로 돌입했고 펄롱은 ‘짐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첫 날부터)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펄롱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아놀드와 작업하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흥분 모드’였다. 아놀드는 펄롱을 자신의 아들처럼 친절하게 대해줬으며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다. 휴식 시간 마다 두 사람은 아이들 마냥 장난을 치며 놀곤 했다. 여러분이 영화에서 보신 한 장면(아래 사진)에서 아놀드와 짐의 앙상블 연기를 유심히 살펴보시면,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유대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년, 그리고 ’똑같은 정신 연령의’ 로봇
짐은 이 예기치 못했던(?) 사태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다. 아놀드는 워낙 숙련된 배우였기 때문에 촬영이 시작되면 ‘장난 모드’에서 ‘연기 모드’로 곧장 전환이 가능했지만, 펄롱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짐은 펄롱이 언제든 ‘연기 모드’로 돌입할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항상 갖추고 있기를 원했다. 때문에 가끔은 아놀드가 펄롱에게 장난을 걸어오면(-_-;) 펄롱은 그것을 무시해야만 했다. (물론 아놀드의 ‘장난’을 무시하기란 불가능했다!) 린다 해밀턴은 아놀드가 ‘펄롱과 (정서상) 같은 수준으로 놀고 있었다(-_-;)’고 회고했다. 특히 (해밀턴에게 있어) 압권은 아놀드가 펄롱에게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해 줄때였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긴밀한 유대감은 결국은 영화에 있어 ‘플러스’ 방향으로 작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놀드는 펄롱에게 ‘아버지이자 친구’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두 사람은 ‘전 세계 관객들을 감동시킨’ 아래 장면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
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을 ‘혼수상태’로 몰고 간 감동적인 라스트 신
스텝들은 <터미네이터 2>가 ‘사상 최대 규모의 액션 영화’가 될 것임을 각본을 읽는 순간부터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짐이 ‘이 엄청난 규모의 액션영화를 과연 어떤 식으로 찍을지’에 대해서는 실제 촬영에 돌입하기 전까진 알지 못했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액션 신 중 하나인 ‘수로 추격신’은 각본 상으로만 봤을 때는 (한 마디로)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신이었다. 그 중 압권은 거대한 견인 트럭이 교차로 윗부분을 부숴버리고 수로로 ‘다이빙(!)’하여 존 코너를 계속 추격하는 장면이었다.
사전 제작 단계에서는 미니어처를 활용하거나, 블루스크린을 이용해 트럭의 신을 따로 찍은 뒤 합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 장면이 완성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촬영 직전, 짐은 “진짜로(?) 찍자!”라고 주장해 스텝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미니어처나 블루스크린을 활용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리얼리티 면에서 질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짐의 판단이었다. 결국 이 장면은 짐의 주장대로 ‘진짜 트럭을 이용해 실제 로케이션 현장에서’ 촬영됐다. 촬영 현장에는 ‘살벌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만일 첫 번째 테이크에서 제대로 된 촬영분이 나오지 못한다면 (트럭이 박살나서) 재촬영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짐은 이 신의 촬영이 있던 날, 아침부터 친히 카메라들의 위치와 각종 안전장비의 상태를 몇 번씩이나 점검하며 촬영이 단 한번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했다. 짐이 “액션”을 외치자, 견인트럭은 케이블에 이끌려 교차로의 벽을 부수고 멋지게 수로로 떨어졌다. 순간 스텝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촬영은 단 한번에 마무리 됐으며, (다행스럽게도) ‘다이빙’ 후에도 트럭은 재활용(?)이 가능했다.
견인 트럭이 수로로 진입하는 유명한 신. 아래는 촬영 당시의 모습.
<터미네이터 2>의 촬영 감독은 아담 그린버그(그는 1편에서도 촬영 감독을 맡은 바 있다)였다. 그린버그는 1편과는 달리 2편이 ‘훨씬 거대하고 강렬한(?)’ 영화임을 강조하기 위해, 다소 극단적인 영상 컨셉을 택했다. 색톤의 대비를 극대화하고 조명을 최대한 양식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살벌한 추격전이 전개되는 장면이나 사이버다인 내의 액션 장면 등에서는 (기계와도 같은 차가운 느낌의) 푸른색과 청록색을 주된 색톤으로 활용했고, 사막이나 (T-1000이 최후를 맞는, 즉 ‘인간성’이 승리하는) 제철 공장 장면에서는 이와 정 반대의 따뜻한(혹은 ‘뜨거운’) 색감을 적극 활용했다. (그린버그가 강조한 색 대비는 영화 플롯 및 정서의 흐름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유심히 살펴보시길 바란다).
<터미네이터 2>의 촬영은 그린버그에게도 큰 공부(?)가 됐다. <터미네이터 2> 한 편을 찍기 위해 동원된 조명 시설과 카메라의 수, 필름의 길이는 가히 살인적인 것이었다. 짐의 지시에 의해 그린버그는 거의 모든 장면(심지어 대화 장면마저도)을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짐은 ‘정적인 장면’에서도 상식을 깨는 촬영 방식을 택해 그린버그를 놀라게 했다. 예컨대 존 코너와 T-800의 모습을 보며 사라가 독백을 하는 장면(아래 사진)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존 코너와 놀고 있는(?) T-800’과 ‘사라’의 모습이 번갈아 비춰지는데, 시간상 두 사건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따로 촬영되어 후반 편집에서 한 신으로 합쳐지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짐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조명 세팅 하에!) 이 두 사건을 단 한번의 “액션!” 사인으로 모두 찍어냈다. <터미네이터 2>의 모든 장면에서 놀라울 정도의 통일감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런 촬영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존 코너와 T-800의 즐거운(?) 한 때
짐의 놀라운 영상감각에 감탄한 이는 비단 그린버그 뿐만이 아니었다. 촬영분을 본 세 명의 편집자들 - 콘라드 버프, 마크 골드블랫, 리차드 A. 해리스 - 은 예외 없이 “도대체 짐이 이 장면들을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촬영장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를 쓰는 감독은 (물론) 짐 뿐만은 아니다. 하지만 짐의 촬영 방식이 다른 감독의 그것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유는 이렇다: 일반적으로 (여러 대의 카메라를 활용할 경우) 주된 촬영을 도맡는 마스터 카메라가 정해지고, 다른 카메라는 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짐에게는 ‘마스터 카메라’라는 개념이 없다. 그에게는 촬영에 동원된 모든 카메라가 ‘마스터 카메라’이며, 그 모든 카메라는 짐의 치밀한 사전 계산에 의해 각기 기막힌 장면을 담아낸다. 편집자들은 ‘(촬영분이 모두 멋져서) 대체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몰라서’ 짐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도대체 이런 장면을 어떻게 찍었을까?”
<어비스>를 통해 증명된 CG 기술은 스턴트 신의 완성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극장 개봉 당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 다음 장면을 보자.
T-800, 하늘을 날다!
아마도 이 장면을 본 뒤 ‘아니, 몸값도 비싼 아놀드가 저런 위험한 스턴트를 직접 하다니!’하고 놀란 분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 장면은 아놀드가 아닌 대역 스턴트맨(피터 켄트)이 연기했다. 그럼 저 ‘아놀드틱(?)’한 얼굴은 대체 뭐냐고? 저것은 바로 ‘분장술의 승리’다. (스탠 윈스톤이 이끄는 특수분장 팀은 아놀드의 분장 외에 ‘스턴트맨을 아놀드처럼 보이게 하는’ 분장도 도맡아서 했다. 이 분장덕분에 스턴트맨들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마음껏 묘기를 부릴 수 있었다. 물론 요즘이야 스턴트맨의 얼굴을 후반 제작 과정에서 실제배우의 얼굴로 ‘디지털 합성’해버리면 그만이지만 - 참고로, 이 기술을 최초로 활용한 영화는 바로 짐의 <타이타닉>이다 - 당시만 해도 이것이 불가능했기에 이런 아날로그 분장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피터 켄트가 탄 오토바이는 크레인에 연결된 여러 가닥의 케이블에 묶여서 움직이게 돼 있었다. 이는 물론 스턴트맨의 안전을 최대한 고려한 조치였다. 이전 같으면 이 케이블을 ‘눈에 잘 뜨지 않는 가는 선’으로 했겠지만, <터미네이터 2>에서(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후반 작업에서 케이블을 CG로 지워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촬영장의 독재자’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짐은 할리우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안전제일주의자’다. 그의 영화에는 ‘위험천만한’ 스턴트 장면이 수도 없이 등장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모두 ‘안전을 최대한 고려하여’ 제작된 것들이다. 짐은 ‘위험해 보이는 액션 장면’을 누구보다 선호하는 감독이지만, 그것을 찍기에 앞서 (지나칠 정도로) 철두철미한 대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터 켄트를 비롯한 <터미네이터 2>의 스턴트 스텝들은 짐의 ‘안전지상주의’에 큰 감명을 받았다. 스턴트맨들이 “나는 100정도의 스턴트 장면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밝히면, 짐은 예외 없이 “그럼 90정도만 하시오!”라고 지시했다. 촬영장에서 인명사고보다 더한 ‘제작상의 장애물’은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스턴트 장면의 촬영이 끝난 후 스턴트맨에게 제일 먼저 달려가 “다친 곳은 없소?”라고 물은 뒤 ‘감사’의 포옹을 하는 이도 바로 짐이었다. 위의 ‘오토바이 스턴트 장면’의 경우도 피터 켄트의 안전을 생각해 대단히 느린 속도로 촬영이 진행됐다. 물론 후반 편집 작업에서 - 교묘하게도 - 이 장면은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됐다.
오토바이 스턴트 신의 리허설 과정
90년대 영화의 액션 신 중 최고의 장면으로 손꼽히는 ‘수로 추격 신’의 촬영에는 무려 5주가 소요됐다. 반면, 영화 중반부의 사이버다인 폭파 신 및 건물에서의 액션 신의 경우는 단 1주 반 만에 촬영이 완료됐다. 물론 이는 철저한 사전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 건물의 한 층을 통째로 ‘날려버린’다는 것은 (스텝들의 눈에는) ‘정신 나간’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짐이 미니어처 따위의 눈속임 기술로는 획득할 수 없는 리얼한 폭발 장면을 찍기를 간절히 원했기에, 스텝들은 이 ‘정신 나간’ 촬영을 한 테이크에 완벽하게 끝낼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거대한 폭발 화염을 만들기 위해 1백 갤런이 넘는 가솔린이 여러 개의 드럼통에 담겨 건물의 2층 곳곳에 배치됐으며, 7대의 카메라가 짐이 지시한 장소에 배치돼 다양한 앵글에서 폭발 장면을 담을 수 있도록 했다. 짐의 통제 하에 모든 준비가 완료됐으나, 문제는 ‘폭발 시간’이었다. 근처에 도로가 있었기 때문에, 만약 러시아워에 건물을 날려버린다면 운전자들에게 ‘쇼크’를 주어 극심한 교통난을 유발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너무 늦은 시간에 건물을 폭파한다면 꿈나라에서 즐겁게 유영(?)하고 있을 인근 주민들에게 ‘소음 날벼락’을 안겨줄 터였다. 결국 짐은 밤 10시에서 자정 사이에 폭발 신을 찍기로 결정하고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해 촬영이 진행될 동안 인근 도로의 차량 진입을 통제하도록 했다. 촬영 준비가 끝난 후, 짐은 헬리콥터에 탑승해 폭발 신의 공중 촬영을 진두지휘했다. 촬영은 계획된 대로 단 한 테이크에 끝났으며, 7개의 카메라에는 모두 기막힌 장면이 포착됐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여러분이 영화를 보며 느낀 바와는 달리) 이 엄청난 규모의 폭발 신 촬영 후 건물이 별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사이버다인 폭파 신
사이버다인 폭파 신에 이어 또 하나의 기막힌 추격신이 펼쳐진다. 바로 ‘사라 일행이 탄 SWAT 밴을 T-1000이 탄 헬리콥터가 저공비행하며 뒤쫓는’ 신이다. 이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의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신이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영상화돼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장면을 찍을 고속도로를 찾는 일이었다. 짐의 계산으로 이 신을 찍는 데는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었는데, (물론) 촬영이 진행되는 밤 시간 동안 모든 차량의 도로 출입이 금지돼야 했다. 눈에 불을 켜고 ‘차량 통제가 가능한’ 고속도로를 찾던 로케이션 매니저들은 가까스로 롱 비치 근처에 있는 2.5마일 길이의 도로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촬영일이 임박하자 이번에는 아담 그린버그가 이끄는 촬영팀의 ‘악몽’이 시작됐다. 짐은 2.5마일 길이의 도로 전체에 야간 촬영용 조명을 설치할 것을 지시했는데, 이것은 전례가 없는 살인적인 작업이었다. 워낙 규모가 큰 작업이어서 계획을 짜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으며, 조명 설치 공사에는 ‘할리우드에 있는 모든 전기 케이블’이 총동원돼야 했다. 그린버그 팀은 폭스, 파라마운트, 디즈니, 유니버설 등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에 의뢰해 공사에 필요한 엄청난 길이의 케이블을 조달하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으며, 거대한 크레인과 함께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볼 법한 매머드급 조명판도 여기저기에 설치했다.
2.5마일 길이의 고속도로에서 찍은 기막힌 추격 신
헬리콥터를 땅에 닿을 듯 말 듯한 높이로 모는 까다로운 일은 베테랑 파일롯인 척 탬버로가 맡았다. 로버트 패트릭의 모습이 비쳐지는 클로즈업 쇼트에서는 실제 헬리콥터 대신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형’이 사용됐다. 이 모형은 크레인을 통해 달리는 촬영용 트럭에 연결돼 있었는데 실제 촬영분에서는 오직 모형 헬리콥터만 볼 수 있으므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장면에서 마치 헬리콥터가 실제로 도로 위를 나는 것처럼 보인다.
‘문어팔’의 T-1000. "팔이 세 개 있으니 정말 편하네!”
이 긴 추격신은 T-1000이 탄 액체질소트럭이 전복되면서 마무리된다. 트럭이 전복되어 제철 공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장면은 실사와 미니어처 촬영분을 적절히 짜깁기하여 완성됐다. 트럭에 붙어있던 T-800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멋진 장면은 다섯 개의 촬영분이 교묘하게 편집된 것이다. 각 촬영분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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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가 트럭에서 뛰어내리는(듯한!) 모습을 포착한 클로즈업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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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 트럭과 ‘작은 사이즈의 아놀드 인형’을 이용해 찍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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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이즈의 ‘아놀드 인형’이 굴러가는 것을 찍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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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켄트(스턴트 맨)가 ‘격렬하게 굴러서’ 멈추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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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배우) 아놀드가 (멈춘 동작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장면. |
결국 이 ‘격렬한 액션 신’ 전체를 통틀어 배우나 스턴트맨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위험했던 순간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스턴트 코디네이터 게리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짐은 모든 액션 영화감독 중 ‘가장 안전하게’ 스턴트 신을 찍을 줄 아는 사람이다”
“폼 나지?” 긴 스턴트 신 중 아놀드가 실제로 연기한 장면은 이 부분뿐이다.
<터미네이터 2>의 제작이 가시화된 후 짐의 호출을 제일 먼저 받은 이는 바로 스탠 윈스톤(연재 글 2,3편 참조)이었다. 짐은 ‘스탠 윈스톤 없는 <터미네이터 2>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당시 윈스톤은 감독으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윈스톤은 1989년에 호러 영화 <펌프킨헤드 Pumpkinhead>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터미네이터 2> 제작에 참여하기 직전에는 <구놈 A Gnome Named Gnorm>을 연출했다). 짐은 ‘영화감독으로 새 삶을 살기 시작한 윈스톤이 과연 내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맡으려고 할까?’라고 잠시 걱정했으나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윈스톤은 ‘<터미네이터 2>의 제작에 참여할 수 있겠느냐’는 짐의 요청을 받자,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예스!”라고 대답했다. 여기에 덧붙여 윈스톤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터미네이터 2>에서 당신과 일하는 것은 절대 원치 않소!”라고 외쳤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당신과 일하는 것은 절대 원치 않소!”
아놀드와 마찬가지로, 윈스톤은 짐에 대해 거의 신앙에 가까운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윈스톤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짐과의 작업을 그토록 선호한 이유는 간단하다. 짐은 그가 함께 작업해 본 어느 감독보다도 뛰어난 영상감각을 지녔으며, 특수효과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이였기 때문이다. 윈스톤에 의하면, 짐은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작품’을 가장 훌륭하게 스크린에 구현해내는 능력을 지닌 감독이었다.
사실, <터미네이터 2>의 제작 초기 단계만 해도 윈스톤이 맡을 작업 분량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T-1000의 효과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상적인’ 특수효과 신은 CG로, 그 외의 부분들은 미니어처 촬영 등으로 각각 완성될 예정이었다. 윈스톤은 단지 T-800(아놀드)의 특수분장만 맡으면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각본이 점점 윤곽이 잡히면서 윈스톤의 작업 분량은 산더미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미래 전쟁 신에 등장하는 T-800의 엔도스켈렉튼(인간형 피부가 없는 뼈대 로봇)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놀드의 ‘정밀 복제 인형’까지...짐이 완성한 각본에는 윈스톤이 이전에 상상도 해보지 못한 ‘기괴한’ 것들이 가득했다.
윈스톤의 작업 분량이 늘어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제작 스케쥴 및 예산 문제’였다. T-1000의 효과 등에 활용될 CG 기법은 당시로서는 100% 검증이 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개발 및 적용에 상당한 기간과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최초의 컨셉대로 T-1000의 효과를 모두 CG로 만들 경우, 정해진 제작 기간 내에 영화가 완성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따라서 짐은 CG 작업의 분량을 가능한 한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예컨대, T-1000의 효과 중 ‘반드시 CG로 만들어야 할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모두 ‘아날로그 효과’로 대치하기로 했는데, 이 부분에서 다시 윈스톤의 손길이 요구됐다. (관객들이 <터미네이터 2>에서 ‘CG’라고 생각한 많은 부분이 (사실은) 윈스톤 팀이 창조한 ‘아날로그 특수효과’에 의해 구현된 것들이다. 물론, 윈스톤의 아날로그 특수분장들은 후에 ILM이 완성한 CG 효과와 이음매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결합됐기 때문에 육안으로 구별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스탠 윈스톤 팀의 작업 광경
<터미네이터 2>의 방대한 특수효과 신의 작업은 그 특성에 따라 네 개의 특수효과 전문 업체에 각각 할당됐다. 물론 작업이 할당된 곳은 모두 과거에 짐과 작업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업체들이었다. 우선 진 워렌이 이끄는 판타지 II (Fantasy II)에는 ‘미래 전쟁 신’을 구현하는 작업이 맡겨졌다. 또, 로버트 스코탁이 이끄는 포-워드 프로덕션(4-Ward Productions)에는 - 그 유명한 - 사라의 ‘핵폭발 꿈’ 장면의 작업이 할당됐다. 세 번째 업체는 바로 ‘스탠 윈스톤 스튜디오’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 가장 중요한 - CG 작업은 <어비스>에서 ‘물기둥 장면’의 작업을 했던 ILM(Industrial Light and Magic)에게 맡겨졌다.
판타지 II의 미래 전쟁 신 작업 과정
포-워드 프로덕션의 핵폭발 신 작업 과정. 이 핵폭발 신은 (물론)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정교하게 제작된 것이다. 스코탁은 이 신이 “지금껏 만들어진 핵폭발 관련 장면 중 가장 ‘실제 상황’에 가까운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밝혔다.
T-1000의 CG 작업은 짐에게 있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비스>의 물기둥 장면(연재 글 4편 참조)의 경우는 짐이 애당초 ‘옵션’으로 구상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CG 작업의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장면 전체를 삭제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T-1000의 경우는 영화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만일 CG 작업의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영화 전체가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짐은 <어비스> 때의 경험을 토대로 (검증이 덜 된) CG 효과에 대한 ‘확신’가지고 있었기에, 데니스 뮤렌이 이끄는 ILM 팀을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다. T-1000의 CG 작업은 <어비스>의 물기둥 장면과는 ‘차원이 다른’ 대단히 복잡한 것이었기 때문에, ILM은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제작 초기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혁신적인 CG 신을 창조하기 위해 많은 컴퓨터 전문가, 아티스트, 프로그래머, 애니메이터들이 달라붙어 다양한 프로그램과 CG 프로세스를 개발했는데, 이 과정 자체가 당시 ‘걸음마 단계’였던 영화의 CG 특수효과를 ‘세 단계 정도’ 업그레이드하는 결과를 낳았다.
<터미네이터 2>의 CG 작업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ILM의 마크 디페. 그는 훗날 <스폰 Spawn>(1997)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T-1000의 작업이 ILM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까다로운 작업으로 인식된 이유는 이렇다: ‘T-1000이 인간형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짐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동작을 CG로 구현하기 힘든 이유는, 우리의 눈과 뇌가 ‘본능적으로’ 그 동작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의 움직임이다”. 이전까지 이런 작업을 시도해 본 영화는 (당연히) 단 한 편도 없었다. ILM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분으로 작업을 해야 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터미네이터 2>는 실제 배우를 골격으로 한 ‘3D CG 가상 모델’을 스크린에 구현한 최초의 영화다. ILM이 <터미네이터 2>를 위해 개발한 3D 모델링, 애니메이션, 렌더링 작업 과정은 지금은 보편화 된 것이지만, 당시만 해도 ‘전례가 없는 획기적인’ 기법이었다. 짐이 ‘기존의 2D CG와는 차원이 다른 극도의 리얼리티’를 원했기 때문에 ILM의 테크니션들은 처음부터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보이는’ 영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서 작업을 해야 했다. T-1000의 ‘변신’과정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던 ILM의 테크니션들은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의 변신 과정을 고안해냈다.
“1단계: 일정한 형체가 없는 크롬(Chrome) 덩어리”
“2단계: 인간 형체의 크롬 덩어리”
“3단계: 관절과 이목구비를 갖춘 보다 세밀한 인간의 형상”
“4단계: 로버트 패트릭과 거의 유사한 디테일을 지닌 크롬-인간 형상”
“5단계: 로버트 패트릭”
각 단계의 모델을 CG로 만드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단계 간의 변화 과정을 최대한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용된 것이 바로 - 그 전설적인! - ‘몰핑(Morphing) 기법’이다. 사실 몰핑 기법을 최초로 활용한 영화는 <터미네이터 2>가 아니라 <윌로우 Willow>(1988)였다. 조지 루카스는 <윌로우> 제작 당시 ‘염소가 인간으로 변하는 장면’에 활용될 CG 기법을 만들 것을 ILM에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ILM의 테크니션인 더그 스미스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바로 ‘모프'이며, 이를 활용한 기법을 ‘몰핑’이라 한다. 그러나 몰핑 기법의 엄청난 위력을 전 세계에 알린 영화는 바로 <터미네이터 2>였다. (지금까지도 몰핑 기법이 적용된 최초의 영화를 <터미네이터 2>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윌로우>에서 몰핑 기법이 적용된 장면
<터미네이터 2>에 쓰인 몰핑 기법은 <윌로우>때 쓰인 것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이 기법은 앞서 언급한 변신 단계 외에도 제넷 골드스타인이 T-1000으로 변하는 장면, 벽에 내팽개쳐진 T-1000의 앞뒤가 순식간에 바뀌는 장면, 사라가 T-1000으로 변하는 장면 등 많은 인상적인 신에서 폭넓게 활용됐다. 물론 이 기법이 가장 빛을 발한 장면은 바로 용광로 속에서 T-1000이 최후를 맞이하는 신이다. 1992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터미네이터 2>는 시각효과, 음향효과, 음향, 분장 등 기술부문 상을 독식했는데, 특히 시각효과와 분장 부문에 있어서는 애당초 ‘경쟁자’를 찾을 수 없었다.
<터미네이터 2>는 영화사에서 ‘특수효과의 혁명’을 가져온 작품으로 평가된다.
린다 해밀턴은 짐에 대해 1편 때보다는 매우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연재 글 2편 참조. 해밀턴은 <터미네이터> 1편 제작 당시 짐을 다소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해밀턴은 이렇게 말했다. “1편 때 나와 짐은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당시 나는 짐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짐은 (이전에 비해) 확실히 배우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터득한 것 같았다. 1편 때와는 달리 짐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나에게 많은 재량을 부여했다”. 해밀턴의 ‘증언’대로 짐은 시간이 갈수록 ‘배우를 다루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해밀턴의 이 증언에서는 이와 같은 ‘객관적인’ 사실 외에 또 다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터미네이터 2>의 제작이 종반으로 치달을 무렵, ‘짐과 해밀턴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다. 특종거리에 목말라 하던 언론 매체들은 즉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뒷조사’에 착수했다. 짐은 “린다와 나는 직업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캐서린(비글로우)과 나의 관계는 아무 이상이 없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으나, 촬영장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이는 한둘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머지않아 사실상 ‘동거’ 상태에 돌입했으며, 짐과 비글로우의 결혼생활은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짐과 비글로우는 1991년 8월 30일에 정식으로 이혼했다. 비글로우는 위자료 명목으로 백만 달러 상당의 집 - 두 사람이 함께 생활했던 - 과 ‘향후 짐이 세 편의 자신의 영화를 제작해 줄 것’을 요구했으며, 짐은 아무런 이의 없이 그녀의 요구를 수락했다. 이 때의 합의의 결과로 탄생한 영화가 바로 <스트레인지 데이스 Strange Days>(1995)다.)
짐이 각본을 쓰고 제작을 맡은 <스트레인지 데이스>(1995,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터미네이터 2>의 후반 제작 과정은 - 언제나 그랬듯 -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스피드로 진행됐다. <터미네이터 2>에서 공동 제작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짐과 처음 작업을 해 본 B.J.랙은 ‘패튼 스타일’로 후반 작업을 총지휘하는 짐을 경이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짐이 ‘이 장면은 초당 18프레임으로 구성될 것이며 프레임 라인은 여기쯤에서 끝날 것이오. 이 쇼트의 길이는 4.5초가 될 것이오’라고 하면, 후에 완성된 특수효과 쇼트의 길이는 정확하게 4.5초가 됐다. 정말 놀라왔다! 짐은 여기저기를 옮겨가며 정신없이 제작 현장을 지휘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직접 까다로운 작업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나는 이전까지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개봉일이 점점 다가오고, <터미네이터 2>가 ‘영화사의 제작비 신기록’을 수립할 것이 거의 확실해지자, 캐롤코의 간부들은 서서히 ‘쫄기’ 시작했다. ‘막대한 제작비 지원’을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터라 짐에게 “돈 드는 장면은 이제 그만 찍으시오”라는 지시를 (차마)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었던 간부들은 (그나마 친분이 있는) 아놀드를 통해 짐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짐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놀드는 간부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어림없소! 짐은 꿈쩍도 안 할 것이오!”
결국 <터미네이터 2>는 할리우드 역사상 제작비 1억불 고지를 점령한 최초의 영화가 됐다. (-_-;) 그러나 정작 짐에게 막판의 고민은 제작비 ‘따위’가 아니었다. <어비스>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터미네이터 2>의 결말을 어떤 것으로 해야 할지를 놓고 한동안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짐이 최초에 구상한 <터미네이터 2>의 결말은 다음과 같았다.
<터미네이터 2>의 오리지널 결말. 사라 코너는 할머니가 돼 있으며, 존 코너의 얼굴에는 상처가 없다. 존은 ‘전장의 영웅’ 대신 상원 의원이 됐다. 다음과 같은 사라의 독백이 대사 트랙을 통해 들려온다:
“1997년 8월 29일이 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마이클 잭슨이 40세에 접어들었을 뿐. (참고로 마이클 잭슨은 1958년 8월 29일생이다). ‘심판의 날’은 없었다. 사람들은 평소처럼 자신들의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웃고, 불평하고, TV를 보고, 사랑을 나누며... 나는 거리로 뛰쳐나가 모든 사람들을 붙잡고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오늘부터의 하루하루는 하늘이 준 선물입니다! 잘 활용하세요!’ 대신, 난 술독에 빠졌다. 그것이 3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중략) 희망이라는 사치가 터미네이터에 의해 주어졌다. 만일 기계가 인간 삶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을 테니...”
캐롤코는 (당연히) 이 오리지널 엔딩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이 엔딩은 길이가 너무 긴데다가, 액션 영화의 엔딩 치고는 지나치게 사변적/철학적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엔딩은 훗날 <터미네이터 3>가 제작될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마리오 카사르에게 중요했다). 그러나 짐에게 3편의 제작 여부 따위는 처음부터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플롯의 흐름에 맞는’ 자연스러운 엔딩이 어떤 것인지가 중요할 뿐이었다. 문제는 - 각본상으로는 그럴 듯 했는데 - 막상 편집을 하고 보니 이 엔딩이 의외로 ‘불협화음’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우선, 이 ‘해피 엔딩’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 - 무겁고 어두운 톤 - 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관객의 입장에서 ‘강인한 여전사’였던 사라가 평범한(그리고 인자한!) 할머니로 돌변해 등장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었다. 또, 이 엔딩을 택할 경우에는 또 다른 타임 패러독스가 발생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만일 이 엔딩대로 ‘미래’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존이 카일을 과거로 보내지 않는다면 존은 애당초 태어날 수도 없었다. <백 투더 퓨쳐> 식으로 말하자면, 사라 일행이 사이버다인을 폭파하고 용광로에 칩을 던지는 순간 존은 ‘뿅~’하고 사라져야 한다. 또, <터미네이터> 1편의 사건도 있을 수 없는 게 된다!) 그리고 (막상 찍고 나니) 이 엔딩은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해피 엔딩’으로도 느껴졌다. 짐과 카사르는 결국 협의 끝에 <어비스>에서 그랬던 것처럼(연재 글 4편 참조) ‘테스트 시사회’를 열어 어떤 엔딩을 택할지를 결정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스카이워커 랜치에서 테스트 시사회가 열렸고, 결과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다: 짐은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본래의 엔딩 대신 사라의 짤막한 독백으로 끝나는 ‘열린 결말’을 최종 편집판의 엔딩으로 선택했다.
한편, <터미네이터 2>의 개봉일을 한참 앞둔 시점에서는 스탠 윈스톤이 15만 불의 제작비로 만든 티저 예고편이 공개돼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티저 예고편에는 영화 본편의 내용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고 오로지 대량 생산 라인을 통해 T-800 CSM 101(아놀드의 모델)이 조립되는 과정만이 담겨 있었다. 짐은 이 짤막한 예고편을 통해 ‘아놀드와 같은 모습을 한 터미네이터가 한둘이 아니다’라는 점을 관객에게 인식시키고자 했다. 즉, 이 예고편을 통해 짐은 ‘(1편에서 파괴된) 아놀드가 2편에서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이유’를 시각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스탠 윈스톤이 만든 <터미네이터 2> 티저 예고편
1991년 7월 3일, <터미네이터 2>가 북미 지역 2274개의 극장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곧 이어 전 세계의 극장가에도 ‘오토바이를 탄 아놀드’의 포스터가 차례로 걸리게 됐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미국 개봉일로부터 불과 3일 후인 91년 7월 6일에 개봉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영화는 개봉 즉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제약 조건 - R등급 영화,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등 - 에도 불구하고 <터미네이터 2>는 북미에서만 2억불이 넘는 흥행 수익을 올리며 당당히 그 해 흥행 랭킹 1위에 등극했다. <터미네이터 2>는 또한, 세계 흥행 수익에 있어서도 ‘신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이 영화는 5억불이 넘는 흥행 수익을 올리며 (북미에서와 마찬가지로) 그해 세계 흥행 랭킹 1위에 등극하게 되는데, ‘세계 흥행 수익 5억불 돌파’이라는 것은 ‘R등급 영화’로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터미네이터 2>가 수립한 이 기록은 무려 12년 동안이나 유지되다가 2003년에야 비로소 <매트릭스 2: 리로디드>에 의해 깨지게 된다.
<터미네이터 2> 시사회 현장에서. “아름다운 밤이에요~!”
‘<터미네이터 2> 핵폭풍’으로 인한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해 12월, 비디오테이프와 LD로 발매된 <터미네이터 2>는 극장 개봉 때 이상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터미네이터 2>의 LD는 당시의 평균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경이적인 AV 퀄리티를 선보이며 소장가들의 ‘독보적인 인기 타이틀’로 즉시 자리매김했다. 이로부터 2년 후에는 반 링(Van Ling)이 제작한 <터미네이터 2> 스페셜 에디션 LD 박스 셋이 발매되어 또 한 차례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LD 박스 셋은 지금까지도 많은 AV 애호가들에게 ‘레퍼런스급 타이틀의 원형’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0년에는 아티잔(ARTISAN)을 통해 <터미네이터 2> 얼티밋 에디션 DVD가 발매되어 또 한 차례(이제 지겹다!)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짐의 오랜 파트너 반 링은 이 DVD를 위해 새로운 THX 로고(산산조각 난 T-1000이 다시 조립되는 컨셉)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 로고 역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와 거의 같은 컨셉의 THX 로고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DVD -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제외 - 에도 수록됐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DVD 역시 반 링이 제작했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 2> UE DVD에 수록된 ‘걸작’ THX 로고
<터미네이터 2>가 가져온 비주얼 혁명은 관객들의 ‘눈높이’를 세 단계 정도 높여 놨다. 이 영화 이후, 관객들은 ‘진짜처럼 보이지 않는 특수효과’ 신이 삽입된 영화에는 ‘대놓고’ 야유를 보내게 된다. 따라서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감독들은 - 자신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 ‘의무적으로’ 디지털 특수효과에 관심을 가져야 했다. <터미네이터 2>는 21세기에나 도래할 것으로 예상됐던 ‘디지털 특수효과 시대’를 10년이나 앞당긴 계기가 된 작품이다. <터미네이터 2>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 스티븐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을 기획 중이었다. 본래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을 고-모션 기법(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의 진화된 형태.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의 AT-AT 워커가 바로 이 기법으로 촬영됐다)으로 영상화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2>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결국 <터미네이터 2>로 비주얼 혁명을 주도했던 장본인 데니스 뮤렌과 ILM의 CG 테크니션들은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에서도 맹활약하게 된다. 관객들이 <쥬라기 공원>에서 ‘진짜 같은 공룡’ - 영화사에서 공룡이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구현된 작품은 <쥬라기 공원>이 처음이었다 - 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터미네이터 2> 덕분이었다.
1990년대 초, <터미네이터> 1편을 제작했던 햄데일 영화사는 결국 재정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파산하고 만다. 이 때, 햄데일은 보유하고 있던 재산을 매각했는데 그 중에는 <터미네이터> 1편의 비디오 판권도 포함돼 있었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인생과 작품세계” 2편(<터미네이터>편)을 읽은 분이라면 아마 다음 인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혹시 기억나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2편의 5번 항목을 다시 읽어주시길).
돌아온 할란 엘리슨 (Harlan Ellison)!
헴데일의 판권 매각 후, 새로 출시된 <터미네이터>의 비디오테이프를 본 할란 엘리슨은 다시 한번 ‘앵그리’ 모드에 돌입하게 된다. 엔딩 크레딧에 삽입됐던 자신의 ‘자랑스러운(?)’ 이름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엘리슨은 즉각 이 황당한 사태에 대한 ‘뒷조사’에 돌입했다. 우여곡절 끝에, 엘리슨은 새로운 비디오테이프의 리마스터링을 담당했던 회사의 직원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 직원의 말로는 ‘어느 날 짐 카메론이 리마스터링 현장에 나타나 엘리슨의 이름을 크레딧에서 빼버렸다’는 것이다. ‘열 받은’ 엘리슨은 짐을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할란 엘리슨 Vs. 짐 카메론'의 제2 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엘리슨은 다시 한번 짐에게서 40만 불이라는 짭짤한 ‘목돈’을 뜯어내는 데 성공한다. 엘리슨은 2 라운드에서 승리한 후 이렇게 밝혔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원한 것은 내 이름을 다시 크레딧에 올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1편으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터미네이터>를 엘리슨의 작품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06.02.10.)
- 거짓말 같은 이야기라고요? ‘진짜 거짓말’ 같은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다음에는 <트루 라이즈> 특집이 이어집니다. 여기에서는 <티2-3D>와 <스파이더맨> 이야기도 함께 다뤄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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