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016년 5월
오늘, 내일 사이에 무엇인가를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소. 어떻게건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소. 그러나 이상하게 써지지 않는구려. 무엇을 써야할지, 어떻게 써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는 말이요.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았다, 일어섰다 하기를 반복했소. 그러다가 이렇게 앉은 것이요.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요. 편지를 쓰자. 진짜 사신(私信)을 쓰자.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연애편지를 쓴 적이 많지 않은가? 그렇게 편지를 쓰자. 한 사람만을 위한 글, 두 사람 사이에서만 통하면 되는 글 — 그런 글을 쓰자.
토요일 날 (7일 날) 아침 여덟시 반쯤 삼례를 출발했소. 그 전전날 희주가 내려와 있어서 희주까지 태우고 올라왔소. 어머니한테 들렀다가 어머니 집 근처에 있는 결혼식장에 갔소. 이명구선생댁에 혼사가 있었소. 피로연장에서 식사를 할 때였던 것 같소. 이런 생각이 들었소. 아, 오늘이 바로 당신과 나의 결혼기념일이구나. 우리가 결혼식을 올린 것이 5월 7일이었으니까. 내가 결혼기념일을 잊어먹은 것은 그 동안 한 번도 없었잖소. 그렇소. 어느 집에나 5월에는 행사가 많지만, 우리한테는 한 가지가 더 있었던 것이요.
그리고 거기다가 한 가지 행사가 더 추가된 것이요. 우리는 일요일 날 (8일 날) 3시에 공원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에 모였소. 사무실에 들어가 산소에 천막을 쳐놓았는지를 확인하고 비용을 지불한 후 나오니 다들 도착해있었소. 우리 아이들과 나, 영진이 부부와 아이들, 영숙이 부부. 우리는 햇볕을 받으며 빙 둘러섰소. 다 왔으면 출발하지. 다 왔나? 이렇게 말하면서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소. 약간 어질하였단 말이요. 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였소. 아니, 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 곧바로 없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였소.
당신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는 상황은 가급적 만들지 않기로 하고 있소. 어버이날 식사 모임도 없앴소. 영숙이는 영숙이대로, 영진이는 영진이대로 어머니한테 가기로 하였소. 처제들은 어떻게 하였는지 모르겠소. 어버이날 제일 힘든 사람은 장모님일텐데 말이요. 참, 처제들이 들고 온 꽃은 잘 보았소? 백합인가? 흰 꽃이었는데. 우리가 산소에 올라가니 흰 꽃으로만 된 커다란 꽃다발이 산소에 놓여 있었소. 다 시들었더구만. 4일이나 5일날 다녀갔다니 그렇게 되었겠지. 우리가 가져간 꽃은 희주가 만든 것이요. 당신은 희주가 요즘 화훼를 배우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구려. 당신이 그런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하는구려. 나를 몹시 슬프게 하는구려.
당신이 모르고 있는 것이 많겠소. 산소에서 손서방이, 벌써 1년이 지나갔다고 말했지만, 내 느낌은, 아직 1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는 거요. 작년 5월 이래로,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1년을 보냈소. 우리가 살던 무궁화단지 근처로 도로 이사를 하였소. 호계 도서관 밑이요. 그랑블에 입주하기전까지 이곳에서 계속 지낼 참이요. 진주는 회사 잘 다니고 있고 대경이는 대학원을 졸업했소. 절두산 성당을 위해 당신이 내던 기부금은, 내가, 당신 이름으로, 계속 내고 있소. 지난 겨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당신 생일을 지나 보냈소. 그리고 그 얼마 뒤, 또 아무 행사도 하지 않고 내 생일을 지나 보냈소.
나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소. 기타를 꺼낸 지도 1년이 된 것이요.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노래의 가사라는 것은 하나같이 슬픈 내용이더구만. 그 이후, 서너 번 당신 꿈을 꾸었소. 하루에 너덧 번씩 당신 생각을 해왔소. 특히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 당신 생각이 많이 나오. 당신 핸드폰을 처분하지 않고 내가 쓰고 있소. 그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희주밖에 없지만 말이요. 며칠 전, 어떤 사람이 그 핸드폰의 벨소리를 듣고는 그것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노래라고 합디다. 당신이 좋아하던 마이클은 여전히 자기 손주 사진을 첨부한 메일을 보내왔는데, 4, 5개월 전에 그가 보낸 메일에, 내가 짧고 무례한 답장을 하였소. 마이클,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생겼어요, 그 일이 어떤 일인지를 당신이 알게 하지 않기로 내가 결정한 그런 일이 생겼어요. 그 이후로 마이클은 메일이 없소.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잘 지내고 있소. 진주가 당신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내고 있소. 할아버지 제사 등의 기제사나 명절 차례 지내는 것도 책임있게 해내고 있고, 자기 외가와의 연락도 알아서 잘 해내고 있소.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슬픈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새삼스럽게 서로의 존재와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 같소. 저 사람도 갑자기 나를 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요. 우리 아이들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요. 영숙이 가족과 영진이 가족도 마찬가지요.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조금씩은 더 잘하게 된 것 같소. 마치 당신에게 못해준 것을 그 사람에게라도 해 준다는 듯이 말이요.
원래 슬픔이라는 것은 그렇게까지 오래 가는 것이 아닌가 보오. 이제 당신 꿈은 꾸지 않소. 아직도 하루에 너덧 번은 당신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리고 그 때마다 ‘카--’ 하는, 허파 속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긴 소리를 내지만, 눈물은 나지 않소. 며칠 전에 희주가 꽃밭에서 벌을 보고 놀라 “아이고, 엄마”라고 소리를 질렀을 때, 나는 하마터면 “너한테 엄마가 어디 있니?”라고 농담을 할 뻔했소. 용인 공원 근처에, 점심 특선으로 1만원짜리 돼지갈비를 내는 맛집이 있는데, 우리는 당신에게 갔다 올 때 그 집에 들르곤 했소. 벌써 두 번이나 다녀왔소. 너무 양이 많아서 고기를 남길 정도요. 마이클에게 메일을 보내 무례를 비는 사과를 하면서, 1년 전,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담담하게 알려줄 참이요. 일요일 날 산소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오늘부로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을 것을 지시하였소. 이제는 가급적 잊어버리려고 애쓰라고 말이요.
일요일 날 그곳에서 당신 영정을 태웠소. 당신도 보았겠구만. 49재 때라도 없앴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없앤 것이요. 진주 결혼식 때 미장원에서 찍었던 사진이잖소. 커피잔을 들고 찍은 것 말이요. 우리는 사진을 태우면서 눈물을 흘렸소. 나는 그것이 마지막 눈물이 되기를 기대하오. 진주, 희주는 아직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고, 특히 5월이 되면서 더욱 힘들어하고 있지만, 나는 다른 것 같소. 1년이 나한테는 충분히 긴 세월인지, 나는 내 슬픔이 많이 사라진 것을 느끼오. 정말이요.
그러나 내 슬픔은 그렇다치고, 당신 슬픔은 어쩐다는 말이요. 그곳은 정말로 슬픔도, 괴로움도 없는 곳이요? 내 슬픔, 내 허무함, 내 억울함, 내 미련은 그렇다치고, 당신의 슬픔, 당신의 허무함, 당신의 억울함, 당신의 미련은 어쩐다는 말이요. 미안하오, 이영복. 그러나 아마 지금쯤은 당신도 나한테 미안해하고 있을 것이요. 그러니 내 미안함은 그렇다치고, 당신의 미안함은 어쩐다는 말이요. 소식 기다리겠소. 이렇게 인터넷에 띠워놓으면 당신에게 가 닿겠지 하는 생각이요. 부디 내 마음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 (2016, 5)
첫댓글 조교수의 애절한 사랑이 충분히 부인께전달이 닿았을테요^^^^^
영태야....
마치 내가 그대가 된듯한 착각을 느꼈어요
혹 안양오게 되면 바로 옆동네 살고 있으니 얼굴 한번 봅시다
잘 쉬시고 계실기야...이제 편히 놓아주시게~
깊은 사랑의 마음을 느낍니다. 억지로 그리움을 지우려고 하지는 맙시다. 그것도 삶의 일부분이 아닐지---
내 영복씨 핸폰으로 전화드리겠네. 늦게 읽었네.
늦게야 이글 발견했네..
참 좋은 분이었어.. 그대의 천생 연분^^
영태 글이 혼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의 미래 자화상 아닐까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