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눈물 / 조성순
지난해 11월, 언니 몸에서 초록물이 빠지고 있었다. 온몸이 노랗게 물든 언니는 수액을 뽑는 나무처럼 바늘을 꽂은 채 몸 밖으로 수액을 내보냈다. 끈적이는 녹색 액체가 쉼 없이 흐르는 몸을 이끌고 병원 창밖의 중앙공원의 고운 가을을 보고 있었다. 노란 눈동자에 비춰진 가을은 얼마나 어지러웠을까.
병원에 가면 소변 줄을 달고 다니는 환자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모아진 비닐 팩에 소변이 있음은 당연하지만 언니가 달고 있는 비닐 팩에는 초록물이 가득해 놀랐다. 담도가 막혀 담즙을 빼내고 있다고 했다. 토해내지 못한 한숨, 삭히지 못한 고통이 뭉치고 뭉처 숨통을 막을 작정이었는지 언니를 옥좼던 끈적이는 액체가 고약할 따름이다. 담즙을 다 빼내고 나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니 하루가 일 년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언니는 소화가 안 되는 날이 계속 되어 소화제를 먹으며 지내다 며칠 만에 만난 아들의 성화로 응급실에 갔다고 했다. 멀쩡하게 걸어 들어가는 사람을 환자로 받아 주겠냐는 걱정을 하면서, 그러나 정상인의 수십 배가 넘는 황달 수치로 병원에 묶여 버렸다. 졸지에 중환자가 되어 버린 언니는 계속되는 검사와 떨어지지 않는 수치에 지쳐 있었다. 슬기로운 시장 사람으로 30여 년 자리를 지킨 현장에서 갑자기 퇴출당한 기분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언니는 여장부요, 재래시장 지킴이었다. 재래시장 통로는 천막으로 하늘을 가려서 눈, 비를 피할 수 있지만 바람이 드나드는 것도 막혀 있다. 겨울에는 견딜 만하다지만 여름에는 찜통 속이나 마찬가지다. 가게 안이라고 해야 겨우 엉덩이나 붙일 수 있는 쪽마루가 전부다. 일 년 열두 달, 하루 열두 시간 이상을 그 공간에 있었다. 긴 세월 무슨 일만 생기면 하소연을 하는 친정 동생들 뒤치다꺼리에도 두 팔을 걷어붙인다.
어디 친정 식구뿐이랴, 친인척, 시장 사람들, 하다못해 TV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전화 기부를 하고 눈물이라도 보태야 하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팔뚝 굵은 아줌마였다. 매일 반복되는 동작으로 어깨와 허리 통증이 생겨 병원에 다니며 새벽 수영까지 늘 바지런했다.
그해 가을은 몇 년 만에 유난히 고운 단풍이라며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단풍 명소마다 관광객이 붐비던 때였다. 도심의 공원도 절정의 가을로 화려하기만 했다. 입원 소식에 놀란 가슴으로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스치던 풍경도, 병원에서 보이는 중앙공원의 단풍도 너무 고와서 우리는 더 슬펐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잎을 떨어뜨리고 가지를 쳐내며 비워내기를 하던 언니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항암치료를 하느라 병원을 드나들 때도 곁에 있어 주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다행히 단단한 언니는 쓰나미처럼 덮친 병마에 무너지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수술이 가능했고, 퇴원 후 2주 동안 약을 복용하고 한 주는 휴약 하는 방법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아무 준비 없이 맞닥뜨린 낯설고 두려운 일상은 약부터 먹고 밥 챙겨 먹고 또 약 먹고 운동하는 단조로운 시간이었다. 멀리 있는 우리를 대신해 지척에 있는 시장 사람들이 반찬도 해다 주고 함께 운동도 하며 불안한 심정을 덜어주었다. 그 고마운 시간 동안 언니의 항암치료는 반환점을 돌았다. 겨우내 호수공원을 몇 바퀴씩 돌아 1만 보를 채울 만큼 열심히 운동을 했고 일터에 나가지 않고 전업주부로 지내는 하루에도 어느 정도는 적응을 한 것 같다.
가로수 가지 끝이 통통하게 물이 오르기 시작한 어느 날, 우리 세 자매는 동해바다로 여행을 갈수 있었다. 해마다 진행하던 일정이 코로나와 언니의 발병으로 중단되었다가 이제 물꼬를 튼다. 이번엔 든든한 보디가드로 형부와 조카가 동행했고 가이드를 자처한 제부도 함께였다.
작은 배낭 가득 약을 채우고 갇힌 공간에서 벗어나 바다에서 노을을 보고 일출도 본다. 강릉 커피거리에서 달보드레한 커피로 여유도 부리고, 건강한 맛집을 찾아가고, 드넓은 바다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상큼한 사이다 한잔 마신 듯 가슴에 별을 품기도 했다. 제주 올레길 가듯 '놀멍 쉬멍 걸으멍' 강릉에서 울진을 지나 영덕까지, 언니는 걱정했던 우리가 무색하게 다소 무리가 될 '바다부채길' 코스도 우리보다 앞서 갔다.
씩씩한 뒷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엄마가 우리처럼 나이 들었다면 꼭 저런 모습이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언니는 엄마였다. 앞으로도 여전하겠지만.
메마른 겨울을 보내고 하지감자를 심을 시기가 됐음에도 가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들판은 연둣빛으로 아롱지고 있는 휴일 이른 아침, 소나기가 내린다. 사방은 훤하게 밝고 지나가는 비처럼 내리는 비가 두어 시간이라도 이어졌으면 했는데 감사하게 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초록을 재촉하는 비다. 내리는 빗속에 서 있는 나무 끝에 맺힌 물방울이 영롱하다. 오래된 나무를 오래된 내가 바라본다. 지긋이 감히 우리도 나무처럼 해마다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빗속에 서 있는 나무처럼 간질이는 비에 젖어 본다. 내리는 빗줄기가 링거처럼 온몸을 휘돌아, 겨울 동안 언니가 흘렸던 초록눈물을 채울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한국문협 <2023 한국 문학인상> 수상작품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짠합니다.
국장님 받은 상이 '언니의 초록 눈물'을 채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언니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네요.
자매들이 더 행복하시길 빌며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