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을 하는 오 모(59)씨에게는 지난 1년이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지난해 여름 갑자기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을 느껴 응급실을 찾은 오 씨는 급성 심근경색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막혀있던 심장의 관상동맥을 스텐트(stent) 시술로 넓힌 뒤,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 박 씨가 다시 병원에 입원한 것은 올 여름이다. 예전만큼 쥐어짜는 통증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자 겁이 나서 병원을 찾은 것. 진단 결과 심근경색증이 재발한 것으로 나타나 다시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오 씨를 진료한 의사는 “급성 심근경색증의 경우 시술을 받은 후에도 다시 재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지적하며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되며, 정기적으로 혈관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스텐트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그물망 형태의 관으로서,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을 확장시키는 삽입형 장비다 ⓒ Quora.com
혈관 상태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스마트 스텐트 개발
심장은 관상동맥이라 불리는 세 가닥의 굵은 혈관이 산소와 혈액을 공급함으로써 활동할 수 있다. 이 3개의 관상동맥 중 어느 하나라도 막히면 심장 근육의 조직과 세포가 괴사하게 된다. 이 같은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게 되는 현상을 급성 심근경색증이라 부른다.
스텐트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그물망 형태의 관으로서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을 확장시키는 삽입형 장비를 말한다. 지난 1980년대에 처음 개발된 이후 협심증과 심근경색 같은 심장 질환을 치료하는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
다만 스텐트를 시술한다고 해서 심장 질환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텐트로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을 넓혀준다 해도 다시 혈관 세포가 자라나기 때문이다. 스텐트를 삽입한 부위가 예전처럼 막히거나 좁아질 수 있다.
실제 서울시심혈관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의 27%가 재발로 인한 추가 시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심장 돌연사의 50%는 급성 심근경색증 발병 후 1년 내 재발한 환자로부터 발생했다.
문제는 심장 속 혈관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까다로워 이 같은 증상을 조기에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캐나다 과학자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스마트 스텐트(smart stent)’를 개발해 주목을 끌고 있다. (관련 기사 링크)
캐나다 과학자들이 개발한 사물인터넷 방식의 스마트 스텐트 ⓒ UBC
스마트 스텐트를 개발한 과학자들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소속 연구진이다. 이들은 기존 스텐트에 초소형 마이크로 센서와 미니 안테나를 장착해 혈관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를 무선 신호로 알려주는 사물인터넷 형태의 스텐트를 개발했다.
연구 책임자인 다카하타 겐이치(Takahata Kenichi) UBC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새로운 스마트 스텐트는 혈류의 속도를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아주 미세한 변화만 나타나도 이를 감지해서 알려 준다”라고 밝혔다.
겐이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스마트 스텐트는 돼지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동물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도 추진할 예정이다.
겐이치 교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의 성공 여부를 지금 판단하기는 이르다”라고 전제하면서도 “기존 스텐트가 가진 한계를 센서와 통신이 결합된 사물인터넷 기술을 통해 극복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라고 강조했다.
조영제 투여하지 않고도 혈관 내부 모니터링 가능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3D프린팅과 화학반응을 통한 신개념의 스마트 스텐트가 개발돼 관심을 끈다.
포스텍(POSTECH) 연구진이 개발한 스마트 스텐트는 소화제로 활용되는 탄산칼슘이 산을 만나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성질을 이용했다.
신소재공학과와 기계공학과 그리고 창의IT융합공학과 소속 연구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생분해성 고분자를 이용해 3D프린터로 스텐트를 만들었다. 연구진은 이에 탄산칼슘을 코팅해 시제품을 제작했다.
조영제가 없어도 혈관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스마트 스텐트가 개발됐다 ⓒ POSTECH
연구 공동 책임자인 한세광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탄산칼슘으로 코팅된 스텐트를 막힌 혈관에 삽입하면 스텐트 주변을 둘러싼 지방 찌꺼기의 낮은 산도 때문에 이산화탄소 거품이 생겨난다”라고 밝혔다.
이산화탄소 거품은 그 자체가 조영효과가 있기 때문에 조영제를 투여하지 않고도 체외 초음파 기기를 이용해 혈관 내부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또한 거품에 의해 지방 찌꺼기가 제거돼 스텐트 시술의 부작용으로 알려진 혈전 생성과 반복되는 협착 증상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한 교수는 “스텐트 세계시장 규모는 12조원 이상이다. 여기에 혈관뿐만 아니라 식도와 같은 다양한 소화기관 등으로 시술 부위가 확대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하며 “스마트 스텐트의 성공적 상용화는 국내 의료기기 산업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텐트 시장 규모는 국내만 해도 1300억 원 대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수입제품이 90%에 달해 국산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따라서 업계는 이번 스마트 스텐트 기술 개발이 국산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