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악산 대청봉 공룡능선을 다녀와서!
2018년9월26일 한가위명절 연휴 마지막 날 2박3일 일정으로
수요특별 원정산행지로 정한 설악산 일대를 트렉킹하기 위해 새벽 04:30분에
기상하여 2박할 동안 소요되는 장비며 준비해 둔 먹거리들을 챙겨 넣은 며터질 것
같은 배낭을 매고 05:30분에 집에서 출발하여 종로3가에 가니 동승해 가기위해
차를 주차해 두고 기다리고 있는 아우님들을 만나 동승해 가다가 사당동에서 오는
일행과 가평휴게소에서 합류하니 여성분이 두분 여섯분의 남성들과 합류하니 일행이
산행하기에 아주 알맞는 여덟분이라 운전의 달인들의 솜씨로 적자노선이여서 텅빈 미시령
터널도 신나게 달려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09:30여분 17.5km인 18분동안 가는
버스로 이동 백담사 앞에 도착하여 구테타로 정권을 탈취하여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
했던 군부 독재자가 거처하던 곳이라
이라고하기엔 어감(語感)에 무리를 끼얹는 느낌이 드는 사찰 경내를 돌아보고는 숙소로
정한 소청대피소를 향해 수렴동계곡, 영시암, 봉정암을 경유 소청봉에 도착된 시간이
17:00 자리배치 절차를 마친 뒤 이 번 산행에서 봉정암사리탑, 대청봉, 희운각, 공룡
능선, 마등령 등에서 나를 이끌어 주신 보보선배님과 일몰을 보기 위해 대청봉에 올랐
는데 이슬비가 나리는 짙은 안개속이라서 표지석 옆에서서 인증사진만 찍고는 소청숙소
에서 자다가 익일 새벽 03:30분에 기상하여 머리에 랜턴끈을 끼고 밖에 나오니 안개가
자욱하여 아직 야음(夜陰)이 짙어서 안그래도 일정이 버거워서 압박감(壓迫感)이
느껴지는데 비까지 내려서 비닐 비옷을 걸치고 산행을 시작한지 지난 7년동안 한 번
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스틱을 조정해서 들고 처마밑을 나서니 정처(停處)없는
나그네 길을 나서는 느낌이었답니다.
대피소 위의 소청에서 대청 가는 길과 나눠지는 희운각(喜雲閣)길을 내려오는데
비가 오는데다가 안개가 짙어서 시야(視野)가 좁고 길이 미끄러우니 발길을 옮기기가
어렵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함께 오시던 보보선배님의 랜턴과 스틱이 온전치
못해서 걷는 시간이 늦춰지다보니 희운각에 도착한 시간이 예정시간에 못미쳐서 밥을
뎁히고 주먹밥을 만들고 먹고 마시고 하다보니 07:20분이 지나서야 공룡능선을 향한
첫 발걸음 내딛게 되었답니다. 공룡능선으로 마등령으로 오세암으로 가는 길 말로 다
표현 못하겠습니다. 물이 모자라 목이 마르고 배가 곺아 헉헉거리다가 오세암에 와서야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배식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절 사람들이 반겨주시며 조갯살이
들어간 따뜻한 미역국에 먹는 밥을 먹게해 주시는데 밥맛이 꿀맛이었습니다. 다 먹은 뒤
커피까지 얻어마시고나니 절 사람들의 그 정성에 약간의 성의 표시를 안할 수가
없었답니다. 영시암을 경유해서 백담사로 와서 버스로 승용차로 속초에 있는
어느 펜션에서 자고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집에 도착하니 13:00시 였습니다...
백담사(百潭寺)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 1)
자장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한계령 부근의 한계리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라고 하였다. 690년(신문왕 10년)에 불타버려 719년(성덕왕 18)
에 재건하였는데, 《백담사사적기》에 이때의 중건과 관련된 전설이 수록
되어 있다.
낭천현(지금의 화천군)에 비금사가 있었는데 주위의 산에 짐승이 많아
사냥꾼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이 때문에 산수가 매우 부정해졌는데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다.
더러움을 싫어한 산신령은 하룻밤 사이에 절을 설악산 대승폭포 아래
의 옛 한계사터로 옮겼다.
승려와 과객들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비금사는 틀림없었지만 기암괴석
이 좌우에 늘어서고 앞뒤에 쏟아지는 폭포가 있는 산이 이전과 달라
그 까닭을 몰라할 때 갑자기 관음청조가 날아가면서 “낭천의 비금사를
옛 한계사터로 옮겼노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 전설은 그대로 전해지며, 이 지방 사람들은 춘천시 부근
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 등의 지명이 절을 옮길 때 청동화로와 절구
를 떨어뜨려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구전으로 미루어
보면 한계사를 중창할 때 비금사를 옮겨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790년에 한계사터 아래 30리 지점
으로 옮겨서 중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984년
(성종 3)에 다시 불타버려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로 개명하였다.
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다가 1432년 4번째 화재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그뒤 2년 만에 심원사지 아래 30리쯤 되는 곳에 법당과 요사채
를 세우고 선구사라 하였으나 1443년에 불타버렸고, 1447년 옛 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워 영축사라 하였다. 그러나 1455
6번째 화재로 불에 타고 이듬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으로 옮겨
중건하여 백담사라 하였다.
1772년(영조 51) 다시 불타버리자 1775년 최붕, 태현, 태수 등이 초암
을 짓고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 등의 건물을 중건하고 심원사라
하였다가 1783년(정조 7년)에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바꾸었다. 근대
에 이르러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십현담주해》님의 침묵을
집필하였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출처: (두산백과)
수렴동계곡 (水簾洞溪谷)
백담사 주변의 백담산장에서 수렴동 대피소까지의 계곡을 통칭하며, 행정구역상
으로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속한다. 명칭은 금강산의 수렴동계곡에서
따왔다. 구곡담계곡과 함께 내설악의 대표적 계곡으로서 특히 가을 단풍길로 유명
하다. 상류에 구곡담계곡이 있고, 하류에 백담계곡이 이어진다. 백담탐방지원센터
~백담사~영시암~수렴동 대피소에 이르는 수렴동코스는
.2㎞ 거리에 편도 약 3시간이 소요된다.
출처: (두산백과)
봉정암(鳳頂庵)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
성지인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
하다. 대청봉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데, 해발고도 1,244m 지점에 있어 백담사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기 위한 산행은 매우 힘겹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
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현존하는 전당은 법당과 요사뿐이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층
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다른 사찰의 여느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慈藏)율사가 중국 당(唐)나라에서 가져온 부처
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 17) 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
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6·25\
전쟁 때 화재로 자칫하면 명맥이 끊어질 뻔하였다.
출처: (두산백과)
오세암(五歲庵)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백담사에서 약 6㎞ 떨어진
곳에 있으며, 영시암을 지나 마등령으로 가는 길에 있다. 647년(신라 선덕
여왕 13) 자장(慈藏:590~658)이 이 곳에 선실(禪室)을 지은 뒤, 관세음보살
이 언제나 함께 있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관음암(觀音庵)이라고 하였다.
1445년(조선 세조 1)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이 곳에서 출가
하였고, 1548년(명종 3) 보우(普雨)가 이 곳에서 기도하다가 문정왕후에
의해 선종판사로 발탁되었다. 1643년(인조 21) 설정(雪淨)이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름을 바꾼 데 따른 전설이 전하고 있다.
설정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혼자 양양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동안 혼자 있을 4세된 어린 조카를
위하여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조카에게 밥을 먹고 난 뒤 법당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줄 거라
고 일러주고 암자를 떠났다. 그러나 설정은 밤새 내린 폭설로 이듬해 눈이 녹을
때까지 암자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눈이 녹자마자 암자로 달려간 설정은 법당
에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머리를 만지며 성불(成佛)의 기별을 주고는 새로 변하여 날아
갔다. 이에 감동한 설정은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856년(고종 2) 남호가 해인사의 《고려 대장경》 2질을 인출하여 1부는
오대산 상원사에, 1부는 이 곳에 봉안하였다. 1888년(고종 25)에는 백하가
2층 법당을 짓고 응진전을 건립하여 16나한상과 각종 탱화를 조성, 봉안하는
등 크게 중건하였다. 그뒤 6·25 전쟁 때 일부 소실되었으나 지금도 수선 도량
과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당 뒤로는 관음봉·동자봉이, 오른쪽으로는 공룡릉이 올려다보이며, 인근에
내설악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만경대가 있다. 주변에 백담사·용대자연휴양림·
십이선녀탕계곡·옥녀탕계곡·장수대·대승폭포 등 관광지가 많다.
출처 : (두산백과)
대청봉(大靑峰)
해발고도 1,707.9m이다. 태백산맥에서 가장 높고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예전에는 청봉(靑峰)·봉정(鳳頂)이라
했는데, 청봉은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
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공룡릉·화채릉·서북릉 등 설악산의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
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계곡·가야동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 곳에서 발원한다. 인근에 중청봉·소청봉이 있다.
정상은 일출과 낙조로 유명하며, 기상 변화가 심하고 강한 바람과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융단처럼 낮게 자라 국립공원 전체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눈으로 덮여 있고, 6, 7월이면 진달래·
철쭉·벚꽃으로 뒤덮이며, '요산요수'라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와 대청봉 표지
석이 있다. 정상까지 오색 방면, 백담사 방면, 설악동 방면, 한계령 방면의
코스가 있는데, 오색에서 설악폭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5.3㎞
(약 4시간 소요)가 최단거리 코스이다.
속초시내에서 설악동까지 시내버스가 운행되며, 승용차로 가려면 양양
에서 7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낙산을 지나 설악동 입구인 물치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설악산 입구 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
출처: (두산백과)
설악산 공룡능선(雪嶽山恐龍稜線)
강원도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를 이루는 설악산에 있는 능선.
2013년 3월 11일에 명승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공룡능선은 백두대간에 자리한 설악산
정상의 북쪽에 있는 마등령에서 시작하여 남쪽 신선암까지 이르는 능선을 가리킨다
. 이 능선은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나누는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인제군 백담사와
속초시 설악동에서 오를 수 있는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중심 능선
이다. 이 능선에서 내설악의 가야동계곡, 용아장성은 물론 외설악의 천불동계곡과
동해까지 조망할 수 있다.지명은 강원도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지점에 연속되어
있는 암석 봉우리들이 마치 공룡의 등같이 생긴 데서 유래하였다.
공룡릉(恐龍稜)이라고도 불린다.
공룡능선이 자리하고 있는 설악산은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대보화강암으로 이루
어진 돌산이다. 기반암인 화강암은 물의 침식에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에 걸쳐 침식작용을 활발하게 받았다. 따라서 설악산은 폭포와 암봉 등 아름
다운 산악경관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우리나라 제1의 암석지형들이 자태를 뽐낸다.
능선을 이루는 암괴는 화학적 풍화작용이 진행되고 있으며, 심층풍화와 관련된
절리구조도 발견된다. 다른 산지와는 달리 미립물질이 대부분 씻겨나가 암괴만 남
은 모습이 특징적이다. 또한 능선이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평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천화대와 칠형제봉이 천불동 방향으로 뻗으면서 설악골·잦은 바위골 등의
깊은 계류를 만들어 놓았다. 동해에서 유입된 많은 양의 수증기는 공룡능선에서
찬 공기를 만나 구름이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구름은 구름바다인 운해를 형성한다.
따라서 기상변화가 심하며 변화무쌍한 운해는 공룡능선의
암봉들과 어우러져 천혜의 비경을 보여준다.
설악산 공룡능선은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으로 구름이나 안개가 자주 발생해
그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있을 때가 많지 않다. 험준한 봉우리가 줄지어 솟아 있는
공룡능선은 전국 국립공원 대표 경관 100경 가운데 경관이 가장 빼어난 ‘국립
공원 제1경’으로 꼽힐 정도로 최고의 능선이다.설악산국립공원 내에서 공룡능선
을 설악 중 ‘진설악’이라 일컫기도 한다. 능선을 오르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며, 단풍에 물든 가을의 모습은 절경을 이룬다. 마등령의
남쪽에 있는 나한봉을 왼쪽으로 돌아 오르면 본격적으로 봉우리들의 드나듦이
시작되며,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구간도 있다. 능선의 동쪽에 있는
신선대에서 공룡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기반암별 산지와 곡지의 지형 기복 특성과 유형」(이광률,
『한국지형학회지』21-4, 2014)
「설악산국립공원 천불동 계곡에서 발생된 낙석 거동분석」(조용성·김유성,
『한국지반공학회논문집』26-5, 2010)
「설악산 국립공원 지역 아고산대의 암괴원의 기원과 연대에 관한 고찰」
(박경, 『대한지리학회지』38-6, 2003)
문화재청(www.cha.go.kr)
설악산국립공원(seorak.knps.or.kr)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마등령 [馬等嶺, Madeungnyeong]
강원도 속초시의 서쪽에 위치한 고개이다. 설악동과 인제군 북면을 연결한다.
마등령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태백산의 지맥으로 준령이다. 설악산의
주봉인 청봉 다음으로 높은 곳으로, 고개 위에 오르면 한눈 아래 내 · 외설악
의 많은 봉우리들과 멀리 동해 바다까지 볼 수 있다. 지금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는 고개이지만 예전에는 행상인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고개가 매우 가파
라서 산턱을 어르만지면서 오른다는 뜻에서 마등령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고, 고개가 말등 같다는데 연유해서 '말등'이 '마등(馬登)'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82년 속초시에서 발간한 『설악의 뿌리』에서는 산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 올라가야 한다고 하여 마등령(摩登嶺)이라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등령에 대한 기록은 조선 시대 지리지와 고지도에는 나타
나지 않는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마등령(馬騰岺, 늘목영)이라고 수록되어,
도문면 토왕산리에 위치한 영치현명(岺峙峴名)으로 되어 있다. 내설악과 외설
악을 연결하는 고개 중의 하나로 동으로는 금강굴(金剛窟) · 비선대(飛仙臺),
서로는 오세암(五歲庵) · 백담사(百潭寺), 남으로는 공룡(恐龍)능선 · 대청봉
(大靑峰), 북으로는 저항령(低項嶺) · 황철봉(黃鐵峰) ·
미시령(彌矢嶺)으로 연결된다.
출처: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국토지리정보원)
설악산의 노래 / 68
배호,강소희 힛트앨범(황토십리길/뻐꾹새우는 마을) 설악산의 노래 박일호:작사 배상태:작곡 배 호:노래 백리길을 山水 따라 가는 나그네 석가천불 삼천년에 목탁소리 저문데 흔들바위 장한 풍경 천하명산이로세 *태백산맥 오랜 터전 오색 백담사 하늘 높이 솟아지는 무지개 폭포수 못 잊겠는 수령동아 사리탑은 어디메냐 천봉을 밟고 서니 약수온천 그립다.
|
박일호:작사
배상태:작곡
배 호:노래
푸른바다 마주잡고 솟은 설악산
백리길을 산수따라 가는 나그네
석가존불 삼천년에 목탁소리 저문데
흔들바위 장한풍경 천하명산 이로세
태백산맥 오랜터전 오색 백담사
하늘높이 솟아지는 무지개 폭포수
못있겠는 수령동아 사리탑은 어디메냐
천봉을 밟고서니 약수온천 그립다.
2018-09-29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