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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傳統酒)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제조 방법에 따라 만드는 술을 부르는 말이며 각 지방의 독특한 방법으로 만드는 민속주가 있습니다. 삼국시대 부터 한반도의 술은 동아시아 전역에 명성이 높았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원나라를 통해 증류 기술이 전파되어 증류식 소주를 빚기 시작했고, 이러한 증류식 소주의 내력은 조선시대까지 전해지고 최소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밥 대신 막걸리로 혀에 착착 들러 붙는 탁주, 맑고 향기로워 식사 반주에 제격인 청주, 청주에 여러가지 부재료를 넣은 약주, 청주나 탁주를 증류한 증류식 소주, 증류식 소주에 과실이나 부재료를 침전시킨 혼성주, 청주에 증류식 소주를 넣어 보존성을 향상시킨 주정 강화 청주, 그리고 이 술들을 섞은 칵테일인 혼돈주까지 다양한 술이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술 좋아하고 노래 춤 좋아한다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면 역사 속에서 다종다양한 주류 문화가 발달한 것은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그러한 주류 문화를 재발굴하고 탐색하는 것은 21세기에도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가양주(집에서 빚는 술)은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산에서 나는 약초, 나물, 그리고 뱀, 지네와 같은 동물성 재료까지도 술의 재료로 쓰는 독특한 문화가 발달해 수백여 가지의 술이 탄생하고, 계속해서 고급화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대만 식민지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 식민지에는 투자를 하려하지 않았고 대신 조선에서 재원을 수탈하기 위한 법과 정책을 만들었고 그 일환으로 주세법을 시행했고 주세법은 산업 통솔을 위한 면허제와 회사의 통합, 조선주(전통주)와 일본주의 구분을 성격으로 하게됩니다. 이 세법상 분리는 일본주가 유리한 세법을 적용받아 조선에 일본 주조 자본이 잘 정착 할 수 있었다. 또한 일본 본토에 비해 주정식 소주에 대한 세금이 저렴해 1920년대 말 마스나가 주조소의 효시 이후에 조선에 주정식 소주가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일제는 1916년 강화된 주세령으로 제한면허제를 시행하여 자가용으로 만드는 가양주에 대해서도 자가용 제조 면허를 받아야만 했는데 자가용 술에 대해서 시판하는 술 보다 높은 세율을 매겼으며 즉,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 먹는게 더 싸게 만듦으로써 식민지 조선에 진출한 일본 양조장들의 술을 사마시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가양주를 타인에게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면허자가 사망하면 상속인이 면허를 이어받을 수 없도록 했고 사실상 가양주 주조를 막으려는 정책이었다고합니다. 면허제 시행 초기 자가용 면허를 받은 사람이 30만명이 넘었으나 이러한 말살 정책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면허자는 급감하였고 1932년에는 오직 1명만이 남았으며 사망 후인 1934년에는 단 한명도 면허자가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민중들은 밀주로 저항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에 많은 전통주와 가양주들이 대가 끊기거나 사라졌습니다. 소주는 개성 이북 지방에서, 탁주는 개성 이남 지방에서 주로 소비되었는데 1927년 주정식 소주의 도입으로 진천양조상회와 같은 기존 고가의 증류식 소주는 흑국 소주를 생산하는 것으로 가격경쟁을 하려 했으나 전시 통제 경제에 대만산 당밀의 공급에 차질이 생겨 도태되었다. 그러나 탁주만큼은 타 주류의 전시 통제에도 불구하고 전체 주류의 약 70% 점유율을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생산적 기반들은 6.25 전쟁을 통해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원료인 쌀의 이용조차 어렵게 되어 양조에 쌀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이후엔 식량 사정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저가형 희석식 소주, 대량으로 수입되는 양주같은 술을 통해 막대한 주세 수익을 탐한 조세당국과 전통주 금지 정책에 힘입어 몸집을 불린 주류 회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상당히 오랜기간 전통주 제조가 금지되었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기에 대한민국을 대표할 전통주가 있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금복주에서 만드는 경주법주가 나왔지만 그건 브랜드명만 "경주법주"인 도저히 전통주라 할 수 없는 술이었고, 정작 경주에서 법주를 만드는 명가들은 제조를 금지 당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이하면서 전통주를 조금이라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서, 이 때까지는 밀주의 형태로 이어지던 민속주 가운데 딱 8개를 정해서 판매를 허용했다. 이것이 소위 '국가지정 8대 민속주'이다. 1995년이 되어서야 비매 조건부 제조는 가능하게 허락해줬습니다. 오늘날 이 기간을 거치며 희석식 소주가 술의 주류를 차지했고, 먹고 죽자는 식으로 술 문화가 왜곡 되어버렸고 대중적인 막걸리와 청주도 일본식 입국의 사용이 잦아져 그 정체성을 대부분 상실했습니다. 다행히도 2000년대 접어들면서 일본식 입국에서 전통식, 혹은 전통 개량식 누룩으로 바꾸는 추세이며 그리고 전통문헌의 복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새로운 기법의 양조가 진행되며 복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양주 제조가 금지되던 시절에도 밀주 형태로 계속 몰래 만들어오면서 복원이 아닌 진짜 수백년 대대로 이어져 오는 전통주들도 있습니다. 한국의 음주 문화가 맥주/양주에서 와인, 위스키, 보드카로 넘어가면서 식상한 음주문화에 전통주를 소비하는 트렌드가 목격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전통주가 가격이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들어가는 재료나 공정을 생각하면 돈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고합니다. 당장 어지간한 전통주들은 국가 공인 명인의 손 내지는 해당 술의 기록을 더듬어 복원하여 빚어진 술들이기 때문이고 게다가 주세 감면 혜택과 해외 술은 관세가 더 붙는 걸 생각하면 전통주의 가성비는 오히려 좋은 셈이며 최근에는 전통주/막걸리를 취급하는 전문점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소비자들의 전통주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면서 전통주는 새로운 문화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단순한 술 이상의 식문화이고 한류와 수출 같은 거시경제 지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전통주 사업을 장려하고 있고 때문에 전통주는 다른 주류들과 달리 주세법상 여러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세의 경우 해당 주류에 매겨지는 주세의 1/2 혜택을 받기 때문에 비슷한 품질의 타 주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에 따라 전통주는 다른 술과 달리 네이버 쇼핑, 쿠팡, 위메프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술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막걸리나 약주, 증류식 소주를 집에 배달해서 마시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나라 한국의 전통주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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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막걸리는 한국의 전통주로, 탁주(濁酒)나 농주(農酒), 재주(滓酒), 회주(灰酒), 백주(白酒)라고도 한다. 보통 쌀이나 밀에 누룩을 첨가하여 발효시켜 만든다. 쌀 막걸리의 경우 쌀을 깨끗이 씻어 고두밥을 지어 식힌 후, 누룩과 물을 넣고 수일 간 발효시켜 체에 거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막걸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이다. 멥쌀, 찹쌀, 보리쌀 등 곡류로 빚기 때문에 삼국 시대 이전 농경이 이루어진 시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막걸리는 삼국 시대부터 양조되어 왔으며 13세기 고려 시대 서적인 《제왕운기》에는 유화가 해모수가 준 술에 취해 결국 주몽을 잉태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술이 막걸리로 여겨진다. 한반도에는 청주를 언급한 다른 초기 기록들이 많이 있다. 고려서 삼국유사(삼국유사)는 가락국기(가락국기)란 제목으로 661년 가야 수로를 위해 신라에서 17대 세습한 요리의 양조(醪醴, 청주)를 가리킨다. 일본 아스카 시대 고사기의 오진 천황 장에는 백제의 인번(仁番)이라는 사람이 양조법을 전파하였다는 언급이 있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이 쓴 공자시(公子時)에는 신라주(新羅酒)가 멥쌀로 빚어졌다는 내용도 있다.《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미온(美醞)’, ‘지주(旨酒)’, ‘료예(醪醴)’ 등 막걸리로 추정할 수 있는 내용들이 확인된다. 고려시대에 막걸리는 배꽃이 피었을 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화주라고 불렸다. 이것은 그 무렵 한국의 많은 지역사회에서 특별한 의식에서 밤새도록 술과 춤을 추는 전통과 관련이 있었다. 막걸리는 수세기 동안 집에서 양조되었고, 시골 노동자 계층의 음료로 여겨졌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등 당대 문인들의 문집에도 막걸리로 추측되는 ‘백주(白酒)’ 등의 용어가 확인된다. 조선시대에는 《춘향전》, 《광재물보》에서는 ‘목걸리’, ‘막걸니’ 등 한글로 표기된 막걸리를 찾아볼 수 있으며, 《규합총서》, 《음식디미방》을 비롯한 각종 조리서에서도 막걸리 만드는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한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된 알코올 음료인 막걸리는 1970년대에 수입 알코올 음료의 증가로 인기를 잃기 시작했다. 국가 식량 부족으로 인해 이 기간 동안 정부가 시행한 쌀 배급제는 막걸리를 쌀 대신 보리와 밀로 만들어 판매량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했다. 막걸리가 값싸고 구식이기 때문에, 많은 막걸리 회사들이 대량생산에 나서면서, 판매자들은 품질보다는 양산에 중점을 두었다. 이 과정에서, 청주는 보통 전통 누룩 대신에 비전통적으로 제조된 발효 시트로 양조된다. 그것은 또한 물로 희석된다. 21세기에 막걸리는 도시 지역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다시 선호도가 증가하고 있다. 막걸리의 영양성분과 낮은 도수, 그리고 최근 수십 년 동안 문화 전통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막걸리는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2021년 대한민국 문화재청에서는 '막걸리 빚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신규 종목으로 지정했는데, 국민의 제안을 수용하여 지정된 첫 번째 사례이다. 막걸리는 다른 주류에 비해 함유하고 있는 영양성분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트립토판·페닐알라닌·메티오닌, 비타민 B군(비타민 B1·B2·B6·나이아신·엽산)과 비타민 C, 젖산·주석산·사과산·구연산·알코올·에스테르·산·알데히드 등등이 함유되어 있다. 막걸리를 빚는 데 있어 발효를 돕기 위해 첨가되는 것이 누룩인데, 국(麴누룩 국)이라고도 한다. 곡물의 반죽에 누룩곰팡이를 띄운 것을 일컫는다. 6~70년대 이 누룩의 획일화와 대량생산으로 인하여 현재에 이르러 막걸리는 보통 특유의 신맛과 단맛이 나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또한 누룩의 종류에 따라 약간씩 막걸리 맛 차이가 생긴다. 유통의 경우, 과거에는 효모균의 발효가 계속되어 신맛이 더해지기 때문에 양조장에서 일정거리 이상 유통이 어려웠다. 물론 영세한 양조장의 경우 현재에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대형 양조장의 경우 현재에는 어디에서나 같은 맛을 볼 수 있는 막걸리를 생산·유통하고 있다. 과거 생(生)막걸리 위주의 유통에서 벗어나 효모 및 기타 미생물을 살균 처리하는 살균 과정의 도입이 막걸리의 전국 유통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만 살균 막걸리의 경우 생막걸리에 비해 맛과 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으며 막걸리의 주요 장점으로 부각되는 유산균이 모두 사멸된 상태이다. 최근 막걸리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춰 인삼이나 과일 등 다양한 재료를 첨가하거나, 신맛을 줄이는 연구 등 다양한 소비계층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2009년 막걸리 열풍과 함께 더욱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었으며, 매출도 상당히 증가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에 편승한 일부 불량한 제조·유통 업자에 관한 문제가 지적되기도 하였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막+거르-+-이’의 합성으로 ‘지금 막(금방) 거른 술’이라는 뜻과 ‘마구(박하게) 거른 술’이라는 뜻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흐린 모습 때문에 청주와 달리 '탁주'나 '탁배기'라고도 불리며, 농가에서 농사 지을 때 마셨다고 하여 '농주'라고도 불린다발효할 때에 알코올 발효와 함께 유산균 발효가 이루어진다.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 ~ 18% 정도이다. 찹쌀·멥쌀·보리·밀가루 등을 쪄서 식힌 다음 누룩과 물을 섞고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켜 술 지게미를 걸러 만든다. 이때 술지게미를 거르지 않고 밥풀을 띄운 것을 동동주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소주
안동소주 (경상북도 안동)
한라산 소주 (제주특별자치도)
소주
소주라는 말은 태워서 만든 술이라는 뜻이다. 소주의 원명은 증류, 땀을 가리키는 아랍어인 ‘아라크’(Araq)를 한역(漢譯)한 ‘아자길’(阿刺吉)·‘아리걸’(阿里乞)이라고 중국문헌에 나오며, 한국 평안북도의 경우 아랑주, 개성지방에서는 아락주라고 하는 데서도 그 흔적이 드러난다. 불을 붙이면 불이 난다고 화주(火酒), 한 방울씩 모아서 된 술이라 하여 노주(露酒), 한주(汗酒)라고도 부른다. 페르시아의 과학자인 무하마드 자케리아 라지가 최초로 알코올의 증류(蒸溜)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몽골이 페르시아의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증류 방식의 술을 들여왔다. 증류식 소주는 전통적으로 ‘소줏고리’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이 장치는 아래위 두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소주의 술밑(누룩을 섞어 버무린 지에밥)을 큰 솥에 넣고 위에 고리를 올린 후 위층에 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땐다. 그러면 알코올이 물보다 끓는점이 낮기 때문에 먼저 기체가 되어 날아오른다. 이러한 증류액을 모은 것이 소주가 된다. 희석식 소주는 당밀 타피오카 등으로 만든 술을 증류기로 증류하여 주정을 만들고, 이 주정에 물을 희석하여 정제한다. 오늘날 시중에 파는 거의 대부분의 소주들이 희석식으로 만들어진다. 한국의 소주(燒酒)는 전통적으로 쌀로 증류해왔지만,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이후부터 경제 성장기에 걸쳐 감자, 밀, 보리, 고구마, 타피오카 등의 전분을 첨가한 소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소주는 원래는 증류식 소주만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20세기 중반에 희석식 소주가 증류식 소주를 대체하면서 두 가지 종류의 술을 모두 이르는 말이 되었다. 현재 소주는 보통 값이 싸고 대중화한 희석식 소주를 말한다. 소주는 무색 투명하고 알코올 도수는 16.8%에서 53%까지 다양하다. 1990년대 이전에는 25% 이상이 거의 대부분이었으나 이후 저도수 주류가 유행함에 따라 도수가 낮은 소주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1977년 정부에서 1도 1사의 원칙을 정했지만. 1988년 제6공화국 수립 이후 체계로 원칙적으로 폐지되었다 한반도에는 고려 충렬왕 때 쿠빌라이 칸이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진출할 때 전해졌다고 한다. 특히 몽골의 주둔지이던 개성, 전진 기지가 있던 안동, 제주도에서 소주 제조법이 발달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공민왕 때 경상도 원수(元帥) 김진(金鎭)이 소주를 좋아하여 명기(名妓)와 부하를 모아 소주도(燒酒徒)가 되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기록이다. 한국에서는 고려를 부마국으로 둔 몽골군에 의해 몽골군의 주둔지인 안동과 무역의 중심지였던 개성을 중심으로 소주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당시 소주는 제조가 까다로운 증류주였기 때문에 값이 비싸 사치스러운 술로 부유층이 즐기던 술로 인식되었다. 일반 서민층들에게는 약용으로만 쓰여져 약소주라고도 불렸다. 소주의 종류는 여러 가지였고, 지금과는 달리 순수하게 곡식으로 빚어 맛이 좋았다고 한다. 소주의 기원은 13세기 고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몽골 침략 당시 레반틴 증류법이 소개된 시기(1231~1259년)에 레반트,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침략 당시 아라크의 증류법을 터득한 위안 몽골인들이 도입한 것이다. 그 당시 수도였던 개경시 주변에 양조장이 설치되었다. 개성의 주변 지역에서는 소주를 여전히 아락주라고 부른다. 한국 현대 소주의 직접적인 뿌리인 안동소주는 이 시기 몽골의 물류기지가 있던 안동시에서 자조주로서 시작되었다. 소주는 전통적으로 발효된 곡물을 증류하여 만든다. 증류소주의 청주는 보통 약 15일 동안 발효되며, 증류 과정은 여과되고 성숙한 청주를 소주 고리를 위에 얹은 솥(카울드론)에 넣고 끓인다. 1920년대에는 3,200개 이상의 소주 양조장이 한반도에 존재하였다. 소주는 쌀 부족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소주를 쌀로 증류하는 것을 금지한 것과 함께 30%의 ABV를 가진 희석된 소주가 1965년까지 35 ABV의 증류 음료로 언급되었다. 대신에, 소주는 향료와 감미료, 물을 섞은 고구마와 타피오카에서 증류된 에탄올(95% ABV)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최종 제품은 다양한 소주 브랜드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국내 소주업체는 모두 에탄올을 판매한다. 1980년대 후반까지, 사카린은 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감미료였지만, 그 이후로 스테비오사이드로 대체되었다. 비록 1999년에 금지가 해제되었지만, 저렴한 소주는 계속해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희석된 소주는 알코올 함유량을 낮추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30%의 ABV는 1973년까지 25%로, 1998년에는 23%로 떨어졌다. 현재 소주는 17% 이하의 ABV를 이용할 수 있다. 2017년에는 일반 360밀리리터(13.2페인트, 12.7US플루즈) 한 병의 희석 소주가 슈퍼마켓과 편의점에서 1700원(약 1.69달러), 식당에서는 4,000원–5,000원(약 3.99-4.98달러)으로 소매된다. 몇몇 지역은 1999년부터 곡류로부터 소주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수공예인 안동소주는 약 45% ABV를 가지고 있다. 화요는 ABV 17%~53% 범위로 구성된 5가지 다른 혼합물을 가진 브랜드다. 2000년대에 소주는 세계 정신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진로 소주는 10년 이상 세계 최대 판매 정상이었다. 다른 두 개의 소주 브랜드인 첨추름과 굿 데이는 상위 10위 안에 들었고 나머지 세 개의 소주 브랜드가 2016년 세계 100위 안에 들어 있다. 과일 소주스는 2015년부터 생산되고 있다. 칵테일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소주를 첨가하여 과일 추출물이나 주스를 맛보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화주
이화주(梨花酒, 문화어: 리화주)는 배꽃이 피는 계절에 담근 전통주이다. 쌀 누룩과 떡이 주 재료로 빛깔이 희며, 물을 거의 넣지 않고 빚어 되직하기 때문에 마시기보다는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더워지기 시작하는 늦봄부터 시원하고 새콤하게 마시는 탁주로, 여름에는 찬물에 타서 마시기도 하였다"이화주"는 "배를 뜻하는 "이(梨)", "꽃"을 뜻하는 "화(花)"와 "술"을 뜻하는 "주(酒)"로 이루어진 한자어이다. 배꽃이 피는 계절에 빚거나 그 무렵에 누룩을 만들어 빚으며, 술색이 배꽃처럼 희다. 배꽃술 또는 백운향(白雲香)이라고도 부르며, 들어가는 재료가 가루이기 때문에 가루술이라고도 한다. 물을 아주 적게 넣고 빚어 되직하다고 죽술이나 떠 먹는 술이라고도 부른다. 이화주는 쌀가루로만 만든 술로, 발효제인 누룩도 쌀로 만든다. 이화주를 만드는 누룩인 이화곡(梨花曲)은 멥쌀을 물에 하룻밤 불려 두었다가 곱게 가루를 내고 체에 내린 다음 뜨거운 물로 익반죽해 오리 알 크기의 둥근 모양으로 단단하게 뭉쳐 만든다. 물은 쌀가루를 손에 쥐면 모양이 생길 정도로만 붓고, 누룩 안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손으로 힘껏 쥐어 만들어야 한다. 뭉친 덩어리를 볏짚으로 싸고 빈 섬에 담아 더운 구들에 두고 약 30도 전후에서 2주 정도 발효 숙성하면 솜털 같은 곰팡이가 핀다. 3~5일간 햇볕에 나쁜 균을 살균하는 법제(法製) 과정을 거친 뒤, 곰팡이를 다 털어내고 깎아내어서 이화곡의 흰색이 드러나게 다듬는데, 누룩을 반으로 깼을 때 속에 옅은 노란색이 보이면 잘 뜬 것이다. 완성된 이화곡은 절구에 넣고 아주 곱게 빻아서 쓴다. 이화곡 가루에는 쌀 전분을 당으로 만드는 당화효소와 자연 효모가 있어, 물과 쌀이 있는 곳에 넣어주면 탄산을 내뿜으며 알코올을 만드는 발효가 일어난다. 술을 빚을 때는 멥쌀과 이화곡의 비율을 10:3으로 한다. 쌀을 물에 2시간 정도 불렸다 빻아서 가는 체로 친 다음, 고운 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한다. 쌀가루 반죽으로는 설기떡이나 베이글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린 구멍떡을 만들며, 구멍떡은 끓는 물에 삶아 뜨거울 때 멍울이 엎게 풀어주고 넓게 펴서 식힌다. 차게 식으면 이화곡 가루를 부어 섞는데, 잘 비벼진 쌀가루와 누룩가루 반죽을 한 시간 정도 가벼운 헝겊으로 덮어둔 뒤에 수제비처럼 잘게 뜯어서 항아리에 넣어 발효시킨다. 이틀 이상 지나면 알코올 도수가 지극히 낮은 새콤달콤한 맛의 이화주가 되며, 일주일 정도부터 전통 이화주를 맛볼 수 있다. 25도 전후에서 2주 정도 발효를 시키면 알코올 도수가 10도 정도로 높아지며, 두세 달 두면 맛이 깊고 부드러워진다. 이화주는 고려 시대 때부터 빚은 술로, 탁주 중에서도 쌀이라는 고급 재료로만 공을 들여서 고생스럽게 만들어내는 술이기 때문에 주로 특권층인 사대부나 부유층이 즐겼을 것이라 여겨진다. 고려 고종(1213~1259) 때 지어진 경기체가인 《한림별곡》 제4장에 다음과 같이 이화주가 언급된다.
黃金酒柏子酒松酒醴酒
竹葉酒梨花酒五加皮酒
鸚鵡盞琥珀杯예득부어
偉勸上人景긔엇더니잇고
葉劉伶陶潛兩仙翁의
劉伶陶潛兩仙翁의
偉醉景긔엇더니잇고
황금주백자주송주예주
죽엽주이화주오가피주
앵무잔호박배예득부어
위권상인경긔엇더니잇고
엽유영도잠양선옹의
유영도잠양선옹의
위취경긔엇더니잇고
이화주 빚는 법을 상세히 기록한 조선 시대 문헌으로는 1450년 경에 어의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과 1670년 경에 장계향이 지은 《음식디미방》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요록》, 《주방문》, 《산림경제》, 《임원경제지》 등 문헌에 이화주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한국 청주
일본의 청주 오사케(お酒, おさけ)
청주
청주(淸酒, Cheongju)는 곡식으로 만드는 한국의 전통주로, 곡식 가루를 뭉쳐 곰팡이와 효모를 번식시킨 누룩으로 쌀을 당화 발효시켜 만든다. 맑은술(clear wine) 또는 징주(澄酒)라고도 한다. 쌀알갱이와 쌀가루가 섞여 있는 발효 직후의 원주를 정제하여 맑은 부분만 떠낸 것이며, 탁한 상태 그대로 마시는 것은 탁주(濁酒)라고 한다. 참고로, 탁주는 동동주와 막걸리를 의미한다. 약주나 약술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조선시대 금주령이 내려지자 특권층들이 약제로 위장하여 마셨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한국의 청주와 일본의 청주(사케)는 유사하나 사용되는 누룩과 미생물, 제조법에 차이가 있다. 알코올 도수는 보통 13 ~ 16도 정도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곡식 원료의 맑은 발효주를 모두 '청주'라고 불러 왔으나, 현행 한국의 주세제도는 전통적인 명명과 차이가 있다. 현행 한국의 주세법에서는 당화제로 쌀입국을 사용하면 '청주'로, 밀누룩을 사용하면 '약주'로 분류된다. 이 분류체계는 전통주의 명칭에 대한 이해 없이 일제 통감부와 총독부의 분류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1500년 전부터 청주를 빚어 마셨다고 한다. 일본 고사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인이 누룩으로 술 빚는 것을 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도경에도 청주와 탁주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빚어 마셨으나, 일제 강점기의 주세정책으로 인해 자가소비가 불가능해졌다. 제3공화국 때는 주세법의 개정으로 쌀을 사용한 주조가 금지되어 명맥이 끊겼다가 1970년대 말부터 민속주를 포함한 일반주류의 신규제조면허가 허가되면서 다시 이어지고 있다.
한산소곡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소곡주(韓山素穀酒)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호암리, 한산지방의 이름난 술이다. 1979년 7월 3일 충청남도의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한산소곡주는 한산지방의 이름난 술로서 빛깔은 청주와 같다. 백제 때의 궁중술로서 백제 유민들이 나라를 잃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빚어 마셨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 가장 많이 알려진 술로『동국세시기』·『경도잡지』·『시의전서』·『규합총서』등에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다. 소곡주를 만드는 방법은 찹쌀을 빚어 100일 동안 익힌다. 이때 며느리가 술맛을 보느라고 젓가락으로 찍어 먹다보면 저도 모르게 취하여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다닌다고 하여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 한산소곡주는 술맛이 독특한 뛰어난 민속주로 기능보유자 우희열씨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경주교동법주 (경상북도 경주시)
慶州校洞法酒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최부자 집에서 대대로 빚어 온 전통있는 술이다. 경주법주를 처음 만든 사람은 최국준으로, 그는 조선 숙종(재위1674∼1720) 때 궁중음식을 관장하는 사옹원(司饔院)의 참봉을 지냈다고 한다. 법주를 만들 때에는 최씨 집안 마당의 우물물을 쓰는데, 물의 양과 온도가 사계절 내내 거의 일정하며 옛부터 물맛이 좋기로 이름이 나 있다. 술을 빚을 때는 이 물을 일단 팔팔 끓인 다음 식혀서 사용한다. 법주의 주원료는 토종 찹쌀이고 물과 누룩과 쌀로 빚어지는 순수한 곡주로서, 색은 밝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며, 곡주 특유의 향기와 단맛, 약간의 신맛을 지니고 있다. 알코올 도수는 16∼18도이다. 제조방법의 가장 큰 특징은 밑술을 먼저 빚은 다음 이를 바탕으로 제2차 발효과정을 거쳐서 원래의 술을 숙성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제조하는데 약 100일 정도가 소요되며 온도만 주의하면 1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고 한다. 경주교동법주는 줄여서 말하면 교동법주라고도 한다. 만석꾼으로 유명한 경주 최씨 집안의 가양주이며 빚는 시기와 방법이 딱딱 정해져 법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원래 궁중의 술이었는데, 빚던 사람이 경주로 내려와서도 빚어 이후 조선의 국주(國酒)라 불릴 만큼 유명해졌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6-3호다. 대형마트에서는 '경주법주'라는 이름을 가진 술을 판매하는데 이것은 가양주가 아닌 금복주라는 기업에서 생산하는 술이며 경주교동법주와는 다른 술이다. 이름의 유사성으로 자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경주 교동에 있는 최부자 가문에서 대대로 빚어온 술이다. 조선시대 숙종 때 궁중음식을 관장하는 사옹원의 참봉을 지낸 최국준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빚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며 이후 300년 넘게 가문 대대로 빚어오고 있다. 토종찹쌀과 구기자나무 뿌리가 담긴 집안 우물물로 죽을 쑤어 토종밀로 빚은 전통누룩과 섞어 밑술을 만들고, 다시 토종찹쌀로 찹쌀 고두밥을 지어 덧술을 하여 100일 동안 발효/숙성시켜 내보낸다. 주세법 상으로는 약주이지만 원래 의미대로라면 청주인데 청주는 예로부터 겨울 술이라 하였고 교동법주 역시 여름에는 술을 빚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 도수가 19도나 되어 주세법상 판매할 수 없었는데, 이후 17도로 도수를 내려 판매하였다. 경주 최씨 종택 옆에 판매장이 있어 구입과 시음을 할 수 있다. 기업이 아닌 가문에서 생산하는 술이라서 그런지 유통망이 빈약하여 경주 밖의 매장에서 구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다행히도 현재는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판매도 되고 있다. 그러나 가격은 웬만한 증류주 정도라 싼 가격은 아니다. 안주로는 육포나 어포, 전, 약과 등이 잘 어울린다 전수 가문 내에서는 교동법주와 함께 안주로 먹기 좋은 '사연지'라고 하는 가문 고유의 김치와 '다식'이라는 한과 등의 전통안주도 전수되어 오고 있다고 한다.
문배주 (평안남도 평양)
문배주 또는 문배술은 한국의 전통 술이다. 1986년 11월 1일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 제86-1호로 지정되었다. 소주와 같은 증류주로서 문배나무의 과실 향이 풍긴다는데서 문배주라는 이름이 나왔다. 실제로 문배주의 제조에 문배나무 과실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문배주는 다른 첨가물 없이 조, 수수와 누룩으로 빚는 순곡 증류주이다. 알코올 함량은 약 40%로 북쪽 지방의 술이라 독한 편이다. 도수가 높아 영구히 보관할 수 있다. 대동강 인근의 석회암층 물로 술을 담가 마신 것이 시초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제조되는 술은 예전 평양의 문배주와는 달리 화강암층의 물을 사용한다. 문배주는 평안도 지방에서 전승되어 오는 술로 술의 향기가 문배나무의 과실에서 풍기는 향기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문배주는 해방전에는 평양 대동강 유역의 석회암층에서 솟아나는 지하수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원료는 밀·좁쌀·수수이며, 누룩의 주원료는 밀이다. 술의 색은 엷은 황갈색을 띠며 문배향이 강하고, 알코올 도수는 본래 40도 정도이지만 증류 및 숙성이 끝난 문배주는 48.1도에 달하므로 장기간 저장이 가능하다. 보통 6개월∼1년 동안 숙성시켜 저장하는데 문배나무의 과실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문배향을 풍기는 특징이 있다.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본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 인근에서 마시던 향토주였다. 고려 시대에 어느 가문에서 조상 대대로 비밀스럽게 전해 내려오던 제조 방법대로 문배주를 빚어 고려 태조 왕건에게 진상했는데, 왕건이 매우 기뻐하면서 높은 벼슬을 주었다는 이야기 전해 온다. 일제 강점기에는 평양 주암산 아래에 있던 평창양조장이 문배주 제조로 유명했다. 고려 시대부터 왕이 마시는 술로 알려졌고, 현대에도 귀한 외국인 손님의 환영연에서 문배주를 대접하는 전통이 있어 빌 클린턴,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이 한국을 방문하여 문배주를 즐겼다. 남북 정상 회담에서 양 정상이 건배하고 마신 술도 문배주일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술 중 하나이다. 1986년에 서울의 문배주, 충청남도 면천의 두견주, 경주 교동 최씨가의 법주가 국가무형문화재로 함께 지정되었다.
복분자주
국내의 산과 들에 널리 자라고 있는 복분자딸기 열매를 이용하여 담근 술로 보통 리큐르(담금주)나 과일주에 해당한다. 전통적으로는 복분자딸기 열매를 증류식 소주에 담궈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가정에서는 흔히 30% 담금주에 복분자와 설탕을 넣고 숙성하여 만든다. 물론 증류식 소주를 사용할 수도 있다. 맛이 상당히 달콤한 술에 해당한다. 양기를 북돋아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복분자라는 이름 자체가 요강을 뒤엎는 열매라는 뜻으로, 이 열매로 담근 술을 마시고 요강을 뒤엎을 정도로 양기가 강해졌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민간설화에 따르면 어느 노부부가 우연히 복분자딸기를 따먹게 되었는데 그날 밤 남편은 요강에 오줌을 누다가 요강이 뒤집힐 정도로 정력이 강해졌고, 조만간 아내는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안주로는 흔히 장어구이가 알려져있지만, 장어구이 자체가 맛이 강한 터라 맛이 단 복분자주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복분자주에 어울리는 안주로는 문어나 오징어, 보쌈같이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이 낮은 식품이 어울린다. 복분자를 술에 담그는 대신 와인처럼 복분자 자체를 발효시켜서 만든 술도 출시되고 있으며, 이런 제품을 전통적인 복분자주와 구별하여 복분자 와인이라고 한다. 맛도 좋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호평이라는 듯이 자랑한다 주의사항이 있다면 냉장보관 할 것. 가정에서 만들어 제대로 살균과정을 거치지 못한 복분자주라면, 실온에 놔둘 경우 마개를 여는 순간 터진다. 그것도 분수처럼 치솟아 집안이 복분자주로 뒤덮이니 주의하면서 마개를 열면 된다 보라빛과 붉은빛이 섞인 복분자 자국이 공포와 호러 영화에서 마치 피가 터진 느낌이다. 현대식 복분자주를 처음 만든곳은 전북 고창에 위치한 1994년 농림부 추천을 받아 설립된 고창 명산품 복분자주이며,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할때 선운산 복분자주(흥진)의 복분자주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선물하여 복분자주가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분자주 열풍이 불었고, 복분자주를 모두가 알게 만든 회사는 보해양조다. 진한 복분자주를 맛보고 싶다면 복분자 발효원액 함량과 함께 복분자 함량을 비교하여 구매하여야한다, 브랜드마다 농도나 맛의 차이가 조금씩 있으며, 보존재를 넣었는지 안넣었는지로 실력차이를 알수 있다.
백자주
잣을 넣어 빚는 술로 약용주(藥用酒)인 동시에 과실주이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술로서 「한림별곡(翰林別曲)」에 나오고, 『요록(要錄)』·『산림경제』·『민천집설(民天集說)』·『증보산림경제』·『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군학회등(群學會騰)』·『역주방문(曆酒方文)』 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만드는 법은 『역주방문』에서는 “잣 한말을 잘 씻어서 곱게 가루를 만들고, 물 너말을 잣가루와 섞어 체로 밭여서 껍질과 찌꺼기를 제거한 뒤 이 물을 잘 끓여 놓는다. 다시 백미 한말 닷되를 잘 씻어 가루로 만들어 찐 다음, 여기에 잣 끓인 물을 섞어 골고루 저어 식힌 뒤, 누룩가루 석되를 섞어 항아리에 담아놓고 술이 익은 뒤에 사용한다.”고 하였다. 한편, 『요록』에서는 백미 한말에 잣 한되를 누룩가루와 섞어 찧어서 술을 빚는데 방법은 향온주(香醞酒)와 같다고 하였다. 이 술은 기운이 허한 데 좋다고 하여서 고려 때 명종이 즐겨 마셨다고 한다.
매실주
매실주는 숙성되기 직전의 청매를 담구어 만드는 매실주는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대표적 전통주이다. 영어로는 Plum Wine이라 불린다. 매실주의 제조 과정은 다음과 같다. 노랗게 익기 직전의 청매실을 잘 씻은 후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꼭지를 제거한다.매실 1500g에 소주 2500cc를 부어 밀봉한 다음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보관한다. 약 100일정도 지나면 숙성이 되며, 더 오래 숙성시킬 수록 술맛이 좋아진다. 매실주는 6월에 담구는 것이 적기라 알려져있다. 매실은 여러가지 효능 덕분에 예로부터 집안의 약으로서도 널리 사용되어 왔다. 매실에는 특히 구연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있어 피로회복과 체력에 좋고, 간의 기능을 상승시키는 피루부산이라는 성분 덕분에 항상 피곤하거나 술을 자주 마시는 현대인들에게 좋다. 매실에는 독성을 분해하는 피크린산이라는 성분이 소량 함유되어있어 요즘에는 항암식품으로서도 각광받고 있다. 매실을 장시간동안 꾸준히 복용하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어 피부미용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또한 매실주는 소화흡수에도 좋아 장이 안좋은 사람에게 제격인 술이다.
백세주
백세주(百歲酒)는 찹쌀로 만든 한국의 발효술이며, 이 가운데 다양한 허브, 인삼으로 맛을 낸다. 백세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양조하며 미량의 인삼을 넣어 감미로운 맛을 낸다. 백세주라는 이름은 이 술을 마시면 백세까지도 살 수 있다해서 붙여졌다 백세주는 구이나 매운 음식과 함께 곁들여 먹기도 하며, 소주나 맥주에 비해 고풍적인 술로 간주된다 국순당에서 1992년부터 주조하는 청주. 주세법상 분류는 약주다. 국순당 창업주 배상면이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내세울만한 한국 전통주가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개발한 술이다. 도수는 일반 백세주가 13도이고 고급 모델인 자양 백세주와 강장 백세주는 15도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전통식 청주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기준으로 375ml짜리가 일반적으로 3000원대 후반에 판매되고 있다. "백세주"라는 명칭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수광의《지봉유설》에 전하는 "구기백세주"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 선비가 길을 가던 중에 웬 청년이 노인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이를 꾸짖었다.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니 사실은 그 청년이 노인의 아버지였고, 노인은 청년이 여든살이 넘어서 얻은 아들이었다. 노인의 아버지는 구기를 이용해 만든 백세주를 마시고는 더이상 늙지 않게 된 것이다. 후에 백세주 광고 포스터를 제작할 때에도 흔히 주류 광고에 붙는 미녀 모델 대신에 이 설화를 요약한 글과 그림을 소개하는 마케팅을 내세워 좋은 효과를 보기도 하였다. 설갱미라는 국순당 고유 쌀 품종이 개발되고 나서는 그 쌀로 빚고 있다. 보통 현재 약주라고 하면 전통식 청주를 주세법상으로 이르는 말이고 백세주는 그 의미에 부합하는 술이지만, 말 그대로 약재가 들어간 술이라는 의미도 어느 정도 있다. 술 자체의 원료로 한약재를 넣기 때문이다. 설갱미와 전통누룩 외에도 인삼, 오미자, 복령, 구기자, 산수유, 산약, 산사자, 수국, 생강, 감초, 황기, 오가피가 재료로 들어간다. 도수가 13도로 낮아서인지 음식점 등에선 수시로 주전자에 부어져서는 일종의 폭탄주인 오십세주(소주+백세주)로 탈바꿈하는게 일상사다. 그냥 소맥 같은 형식으로 남으려나 싶었는데, 국순당에서 2008년에 정말로 50세주라는 이름을 단 16도짜리 술을 출시했다.# 그러나 정식발매 50세주는 국순당과 관련이 있는 술집이 아니면 구경하기 조금 힘들다. 이마트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다.고급형으로 자양, 강장 백세주도 있는데 강장 백세주는 한약재를 더 많이 집어넣어서 매년 일정량만 생산하는 프리미엄급이고 자양 백세주는 아예 그 정체성이 한방주에 가까운 물건이다. '백세주 담'은 기존 백세주에서 당분과 감초 성분을 아예 빼서 단맛이 빠지고 신맛이 강화된 술이었는데 2021년 현재는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하향주 (대구광역시 달성군)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에서 생산되는 청주다. 주세법 상으로는 약주. 찹쌀과 누룩을 베이스로 약쑥, 인동초, 들국화 등이 부재료로 들어간다.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이 되었으며 연꽃향이 난다하여 하향(荷香)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연꽃보다는 곡물, 카라멜, 커피 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박환희 명인이 제조하고 있다. 하향주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비슬산 중턱에 위치한 도성암을 성덕왕 때 다시 지으면서 인부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임시로 토주를 빚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 한다. 그 후 조선 광해군 때 비슬산의 주둔대장으로부터 이 술을 받은 광해군은 독특한 맛과 향이 천하약주라 극찬하여 매년 10월마다 조정에 진상됐다 유가사의 사찰주이던 하향주는 그 일대에 거주하면서 절의 살림을 도와온 밀양 박씨 집안 사람들을 통해 전수되어 조선 중기부터 가문의 전통으로 이어져 온 역사 깊은 술이다 일제강점기에 가양주 제조를 금지시켜 그 맥이 끊길뻔 했었지만 몰래 계속 제조하고 자손들에게 전수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전수되어 왔으며 현재 확인된 계보는 김성금 -> 김옥련 -> 권분란 -> 김필순이고, 2021년 현재는 김필순 명인의 아들인 박환희 명인이 5대째 하향주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 깊은 한국 전통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하향주는 판매부진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전말은 이렇다. 본래 하향주는 하루 생산량이 200병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는 전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3년도부터 생산량 증가와 안정적인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은행대출 15억을 받아 총 18억을 투자해 일부 공정을 현대화에 도전했으나 판매량이 저조했던 것. 이 와중에 평소 하향주 맛을 본 중국 및 일본 측에선 사정을 듣고 투자를 해줄테니 이쪽에서 술을 만들어 보자는 등 해외매각 제의가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판매부진은 술맛의 문제보다 홍보 부족이 원인으로 보인다. 이는 비단 하향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7년도 기준 국내 전통주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0.4%.# 일제강점기의 주세법과 주세령, 그리고 양곡관리법 등으로 전통주 부재가 길었던 것도 원인이겠지만 정부 및 지자체 홍보부족과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낮은 가격 소주, 막걸리 등에 밀려 존재감을 상실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전통주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견디다 못한 일부 전통주는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거나 기껏 어렵게 복원시켰음에도 다시 사라지거나 해외로 매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1년 7월 하향주는 위와 같은 제의를 거절하고 마지막 돌파구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성공적으로 마감했다.
모주 (전라북도 전주시)
모주(母酒)는 술을 거르고 남은 재강에 물을 타서 뿌옇게 걸러낸 탁주이다. 전주 지역의 모주는 막걸리에 생강, 대추, 감초, 인삼, 칡 등 여덟 가지 한약재를 넣고 끓여 양이 절반 정도로 줄고 알코올이 거의 없어졌을 때 계핏가루를 넣어 먹는 해장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1% 미만이다. 어머니 모(母)를 써서 모주(母酒)이다. 엄마술를 걸러서 팔았는데 이것이 인기가 대단해서 멀리서 온 손님들이 자꾸 조르자 술지게미를 막 걸러서 만든 것이 막걸리, 그래도 손님들이 계속 조르자 술지게미를 있는대로 쥐어짜 만든 술이 모주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야기에는 몇가지 설이 있는데, 어머니가 술을 좋아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몸에 좋은 약초를 넣고 맛도 달게, 그리고 도수도 아주 약하게 만든 술이라서 모주라는 설도 있고, 제주도로 귀양간 인목대비의 어머니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팔아 '대비모주'(大妃母酒)라고 했던 것이 '대비'가 빠지고 모주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일설에는 인목대비는 서울 대가댁 식으로 청주를 걸러서 팔았는데 이것이 인기가 대단해서 멀리서 온 손님들이 자꾸 조르자 술지게미를 막 걸러서 만든 것이 막걸리, 그래도 손님들이 계속 조르자 술지게미를 있는대로 쥐어짜 만든 술이 모주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 외에도 비지찌개 끓이듯, 술지게미에 물과 부재료를 넣고 섞어서 뜨끈하게 끓여낸 음식도 모주라고 한다. 보통 육체노동자들이 해장술을 겸한 아침 요깃거리로 즐겼다. 전라북도 전주시가 모주로 유명하다. 제조법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해먹어도 좋다. 실제로 전주 토박이 어르신들은 예전에 집에서 종종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원래의 제조법은 전통주를 담그고 남은 술지게미를 사용하여 만드는 것이나, 현대에 이를 구하려면 직접 술을 담그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판 막걸리를 사용해 만드는 방법으로도 많이 만든다. 맛 면에서는 전자가 낫다.
필수 재료: 술지게미 1~2 kg 또는 막걸리 1.5 L, 과일청 2-3큰술, 계피, 감초, 대추, 흑설탕
선택 재료: 오미자, 갈근(칡뿌리), 건강
술지게미는 물을 같은 양을 부어서 2일간 추가로 발효시킨다. 막걸리를 쓴다면 2번으로 바로 넘어간다.
체에 한 번 걸러 찌꺼기를 제거한 다음, 다른 재료들을 넣고 40분간 끓인다.
설탕으로 맛을 맞추고, 차게 식힌다.
흑설탕에는 특유의 풍미가 있으므로 업소의 맛을 재현하고 싶다면 흑설탕을 쓰는 편이 좋기는 하지만 계피 같은 부재료의 향 때문에 묻혀 크게 차이는 안 난다. 약간 맛을 희생하고 간소하게 한다면 시판 막걸리, 계피, 설탕만으로도 대강 그럴듯한 맛이 난다. 오래 끓였기에 알코올은 거의 날아가고 끓일 때 넣은 각종 부재료 덕에 새로운 맛이 나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음료다. 일단 명목상 술이라고는 하지만 도수가 사실상 거의 없어 음료에 가깝다. 무알코올 맥주 같은 술맛 음료 개념으로 보아도 좋다. 실제로 시판되는 모주 중에는 1% 미만으로 알코올을 함유해서 술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제품도 있다. 주세법상 주류로 등록하려면 알코올 도수가 1% 이상이 되어야하기 때문. 다만 무알코올 맥주도 제법에 따라 알코올이 미량(1% 미만) 잔류하는 제품이 흔한 판이라, 모주에도 당연히 잔류 알코올이 미량 있다. 알코올에 민감한 사람은 이 점을 유의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마신 직후에 음주단속 측정기를 불면 마신 본인은 체감하지 못하더라도 잔류 알코올 때문에 술 마셨다고 나올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윤창호법 때문에 면허 정지 및 취소 기준이 엄청 강화되었기 때문에 운전할 사람들은 모주조차 조심해야 한다 도수가 낮은 만큼 술이 쎈 사람이 마신다면 술인지도 모르고 그냥 탁한 수정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술꾼들은 새로운 술이라며 희희낙락 마셨다가 콜라의 탄산에 취하는 것이 더 쉽겠다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사실 이건 모주를 취급하는 업소가 많은 전주 등에 놀러와서 처음 먹어보는 술꾼들 얘기고 해당 지역 술꾼들은 당연히 저걸 취하려고 마시지 않는다. 술꾼에게 있어 모주의 용도는 해장술이다. 모주는 특히 콩나물국밥과 찰떡궁합이다. 옛날부터 전주 사람들은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으로 콩나물국밥을 먹으면서 해장술로 뜨겁게 데운 모주를 곁들였다고 한다. 해장술이라는 게 실제로는 오히려 속을 풀기는커녕 속을 버리는 짓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알코올이 거의 날아간 모주는 그나마 바람직한 해장술일 수 있다. 전주가 아니라고 해도 전주식 콩나물국밥을 파는 식당이라면 대부분 모주도 같이 팔고 있다. 업소마다 다르겠지만 여름에는 살얼음을 동동 띄워 내오기도 한다. 한 잔에 보통 1천 ~ 2천 원 정도 하는데 병에 담아서 포장판매하는 집들도 많다. 요즘에는 인터넷 주문이나 전화 주문도 가능하다. 단, 베이스가 막걸리인 특성상 상온에서는 쉽게 맛이 가므로 냉장보관을 권한다. 맛은 구수한 막걸리 특유의 곡물향이 있으면서도 계피향이 어우러지고 달달한 맛이라 누구나 좋아할 그런 맛. 음료로 가볍게 즐기기 좋은 맛이다. 전주에 먹부림 여행을 가서 제일 기억에 남은 게 모주라는 사람들이 꽤 있다. 국밥집에서 굳이 PET 모주를 파는 이유도 관광객들이 전주에 왔으니 콩나물국밥은 먹고 가야지? → 모주? 저게 뭐지? 같이 시켜볼까? → 헐 뭐임 이거 맛있어 나갈때 사가야지와 같은 테크를 자주 밟기 때문이다. 다만 현지인들은 생각날 때마다 국밥집에서 한 잔하지 굳이 병으로 사는 경우는 잘 없다. 기본은 해장술이었던 본래 용도(?)에 맞추어 데워서 뜨끈하게 마시는 것이지만 여름에는 차게 해서 마셔도 시원한 것이 별미. 전주에는 모주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파는 업소도 있으며 이것도 별미다
금정산성 막걸리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산성마을에서 전통적으로 생산해온 쌀 막걸리와 그 브랜드로 대표는 대한민국식품명인 제49호 유청길 명인이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막걸리들 중에서 유일하게 향토민속주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민속주 1호이며 금정산성막걸리, 산성막걸리 그 기원은 금정산 위 산성마을 자락의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누룩을 빚으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마을 전체 600여 가구가 집집마다 자체적으로 누룩을 만들 정도였는데 1960년대 정부의 누룩과 쌀로 만든 술 제조금지 시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당시 누룩을 단속원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보초를 서고 지금의 낙원집 앞에 걸어놓은 종을 울리면 누룩을 숨겼다고 한다. 이렇게 밀주로 한동안 고생하다 부산 방문차 우연히 맛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라질 위기라는 말에 급히 양성화시켰고 1980년 전통민속주 제도가 생기면서 우리나라 막걸리들 중에서 유일하게 향토민속주로 지정되었다. 수제 누룩방이 있는데, 전통방식으로 덧신을 신은 발로 밟아서 누룩으로 발효시킨다. 막걸리 문서에도 있듯이 현대 막걸리의 상당수는 일본식 입국으로 막걸리를 발효시키는데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여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산성막걸리의 전통누룩 특유의 향과 시큼한 맛에는 호불호가 갈린다 현대에 시판되는 막걸리들의 상당수에는 단맛을 내기위해 아스파탐이 들어가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금정산성 막걸리에도 아스파탐이 들어간다. 아스파탐을 뺄 수 없느냐는 질문에 유청길 명인은 '가능하지만 그런 첨가물 없이 단맛을 만들면 단가가 월등히 올라간다. 만 원 넘는 돈을 주고 사먹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아스파탐이 없는 막걸리를 먹고 싶다면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나 해창막걸리, 송명섭 막걸리, 나루 생 막걸리, 배혜정도가의 호랑이 생막걸리 등을 선택해야 한다. 안주와 함께 먹으면 입 안을 완전히 씻어내어 텁텁함이 없고 이 때문에 산성막걸리에 빠진 사람들은 다른 막걸리는 쳐다도 안 본다. 특히 기름진 음식과 함께 먹으면 산성막걸리의 매력을 알 수 있다. 자금에 여유가 있다면 염소고기와 함께 먹기를 추천한다. 산성마을이 염소를 많이 키워서 염소고기 전문점이 있는데, 여기서 산성막걸리를 팔다보니, 알아주는 조합이 되었다. 다만 염소고기가 가격이 좀 있으니, 지갑에 잔탄은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생막걸리는 유통기한이 한 달 정도에 불과한데, 산성막걸리는 더 짧아서 3주일 남짓하다. 이마저도 길어진 결과이고 2010년대 후반까지는 유통기한이 1주일 정도라 사면 바로 마셔야 했다. 기한을 놓치면 순식간에 식초로 변해버리니 딱 마실 만큼만 사서 빨리 마시자.
감홍로 (평안남도 평양)
한국의 전통 증류식 소주의 하나. 감(甘)은 단맛을, 홍(紅)은 붉은 색을, 로(露)는 이슬(즉, 증류주)이라는 의미다. 전통식품명인(제43호)인 이기숙 명인이 만들고 있다. 1800년대 초에 저술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조선의 네가지 명주로 한산의 소곡주, 홍천의 백주, 여산의 호산춘 그리고 평양의 감홍로를 꼽았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18세기 실학자였던 유득공의 시 '애련정'에는 "곳곳마다 감홍로니, 이 마을이 곧 취한 마을일세(滿滿甘紅露/玆鄕是醉鄕)"라는 내용이 나오며, 동국세시기에서는 평안도 지방에서 알아주는 술로 감홍로와 벽향주가 있다고 나온다. 최남선도 조선의 명주로 이강고, 죽력고와 함께 감홍로를 꼽았다. 또한 별주부전에서는 토끼의 간이 필요했던 자라가 토끼를 용궁으로 데려가기 위해 "토선생, 용궁에 가면 감홍로도 있다"고 말하며 토끼를 꼬신다. 그리고 춘향전에서 성춘향이 이몽룡과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마시는 술로 감홍로가 나오는 등 감홍로는 당대 가장 유명한 술이자 명주 중 하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쓴 이규경이 '중국에 오향로주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평양의 감홍로가 있다'고 하듯이 본래는 평양 지역의 술이었다. 그 중 이병일 옹이 평양 지역에 평천양조장을 설립하여 운영했고 후에 그 아들인 이경찬 옹(1915~1993)이 양조장을 이어받아 문배술과 감홍로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6.25 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현재 남한에서 맥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국내의 양곡관리법 때문에 한동안 제조를 중단했다가 1986년부터 다시 제조해오고 있다. 이경찬 옹은 둘째 아들 이기양 명인(대한민국식품명인 제5호)에게 감홍로를 전수했다. 이기양 명인이 2000년에 사망한 후 현재는 이경찬 옹의 막내 딸인 이기숙 명인(대한민국식품명인 제43호)이 이어받아 생산 중이다. 술에 사용되는 약재는 지초, 생강, 계피, 정향, 용안육, 진피, 감초 7가지로, 강한 한방향이 특징이다. 원래 이경찬 옹 시절에는 '방풍'이라는 약재도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그 약재가 법률상 의약품으로 분류되면서 사용이 어려워져서 뺐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는 술에 붉은 색이 많이 줄어들어서 황색에 가깝다. 이기숙 명인에 따르면 감홍로의 붉은 색은 지초에서 나오는데, 지초를 술에 오래 담그어 두면 술맛을 해쳐서 양을 적게 넣고 있다고 한다. 불휘발분이 많지 않은지 주세법 상 분류는 일반 증류주이다. 도수는 40도다.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도 좋지만 높은 도수와 한방향 때문에 꺼려진다면 얼음을 넣어 온더락으로 마시거나 뜨거운 물에 희석시켜서 마시는 것도 좋으며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에 곁들이기도 좋은 술이다. 에스프레소 커피 대신 감홍로를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부은, 감홍로 아포가토로 만들어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도 가능하다. 감홍로를 초콜릿 안에 넣어 만드는 감홍로 초콜릿도 가능하다. 그 외에 호두 아이스크림이나 요거트와 곁들여 먹어도 좋다. 그리고 회 같은 날음식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육류와 잘 어울린다. 어란이나 황태포구이도 잘 어울린다고 한다
죽력고 (전라북도 정읍시)
죽력고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주로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이강고, 감홍로와 함께 꼽은 조선 3대 명주다 대나무 진액이 첨가되는 증류식 소주의 하나. 주세법상 분류는 일반 증류주다 본래는 지역 전반에서 만들어지던 지역의 술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전후로 명맥이 끊겼다. 다행히 송명섭 명인은 외조부가 추려둔 비전을 가지고 있다가 이를 바탕으로 2000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술이다. 대한민국식품명인 제48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읍시에서 소량 생산되는 술로, 중요 재료인 죽력의 추출이 매우 어려워서 의외로 귀한 술이다. 송명섭 명인은 죽력고의 제법을 배우러 찾아오는 사람 누구에게나 공개하고 있지만 워낙 쉽지 않은 일이라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송명섭 명인은 술 빚기에 관한 출강을 자주 다니는 편이며 양조장 앞마당에서도 강의를 한다.죽력은 대나무의 진액으로, 대나무에서 나오는 3가지의 한약재(죽엽,죽력,죽여)중 하나다. 대나무에 불을 쬐어서 추출하는데, 한약재로서의 추출법과는 꽤 다르지만 며칠에 걸쳐 엄청난 내공을 들여야 만들어지는 재료이므로 대량생산이 매우 곤란하다. 괜히 명주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저기서 나오는 죽력만의 제조공정을 정리한다면(죽력의 추출법은 바로 아래에 서술되어 있다 추출법을 아는데 왜 따라하지를 못해.........)
1. 손질한 대나무를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2. 대나무 토막을 항아리에 가득 담는다.
3. 구덩이를 파고 죽력을 담을 그릇을 살짝 묻은 다음 대나무가 담긴 항아리를 엎어서 올려놓고 한지로 봉한다.
4. 항아리를 황토 덩이로 두껍게 잘 덮는다.
5. 항아리 주위로 말린 콩대를 빙 둘러놓고 불을 지른다.
6. 콩대가 다 타고 약간의 불씨를 남겨둔 상태에서 쌀겨를 들이붓는다. 이 쌀겨가 전부 탈 때까지 기다린다. 이 과정은 보통 1주일 정도 걸린다.
7. 쌀겨가 다 타면 봉한걸 풀고 죽력을 확인한다.
상당히 지루하고 오래 걸리는 과정으로, 중간에 비라도 오면 안습. 거기다가 저 과정을 모두 거쳐도 죽력이 제대로 추출되지 않을 수도 있어서 상당히 귀한 재료인 셈이다 한약재로 쓰이는 죽력은 조금 다른 과정을 거치는데, 대나무 줄기를 마디가 막히지 않게 자르고 끄트머리를 가열하여 터진 쪽으로 흘러나오는 진액을 모은다. 사실상 한약재로서 모으는 방법이 가장 번거롭고 죽력고에서 만드는 방법은 떼로 넣어 만들고(...) 콩대와 쌀겨의 속불로 화력을 조절하기 때문에 그나마 쉬운 편이다. 이걸 꿀, 생강, 솔잎, 대나무 잎, 창포, 계피랑 섞어서 소주고리에 넣고 증류해서 죽력고가 탄생된다. 전통주는 원료 공급가액에 25%까지만 이윤을 붙일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값을 받지도 못한다고 하는데#, 정작 주세법에는 그런 거 없다. 통상이윤이라 하여 10%를 산정하기는 하나 이것은 세금 계산을 위한 것으로 실제 이윤과는 무관하다. 아무튼 그래서 죽력고를 팔아도 남는 것은 없다고. 위의 사진 한 병에 약 10만원 정도된다 여담으로 동학농민운동지도자였던 녹두장군으로 유명한 전봉준 장군이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죽력고를 마시게 해달라고 요구를 했었는데, 죽력고를 마시고 난 뒤 기력을 회복했다는 일화가 있다. 워낙 당당하게 이것을 요구해서 일본군들이 조금 쫄았다고 한다. 백화점에서도 종종 찾을 수 있으며, 전통주의 인터넷 판매가 허용됨에 따라 인터넷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따라서 예전에 비해 접근성과 가격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되었다. 2021년 기준으로 인터넷에서는 8~9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으며, 운이 좋거나 연줄이 있으면 오프라인에서 더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술의 가치를 생각하면 비싸지 않은 가격이라는 게 중론이다. 양조장에 직접 방문하는 경우 인터넷 판매가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이강고 (이강주 전라북도 전주시)
이강주라고도 한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죽력고, 감홍로와 함께 꼽은 조선 3대 명주 중 하나로, 이름처럼 배와 생강을 주재료로 하는 소주이다. 오늘날의 주세법상 분류로는 리큐르에 속한다. 전라북도 전주시의 특산물이기도 하다. 무형문화재 조정형 명인이 빚는다. 조 명인의 가문에서 생산되던 술로, 일제강점기를 즈음해서 대가 끊겼다가 70년 후 조 명인이 연구 후 부활시켜 현재에 이른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2호, 대한민국식품명인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쌀과 보리를 원료로 약주를 빚어서 전통소주를 내린 후 또다시 내린 소주를 고아 50도 이상의 소주를 만들고, 여기에 배 ·생강·울금·계피를 넣어 38도 이상의 술로 제성하여 빚어지는 술이다 주도가 높은 고급 소주로서 상류층에서 즐겨 마신 우리나라 3대 명주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특별한 제법으로 주도 높은 소주를 주 酒자 대신 고膏자라고도 하였다. 이강주, 죽력고가 여기에 해당한다. 통밀을 거칠게 갈아 누룩을 만들어서 쌀과 보리를 원료로 하여 약주를 빚어 처음 35도 정도의 전통소주를 내리고, 다시 소주를 고아 50도 이상의 주도 높은 소주에 배·생강·울금·계피·꿀을 넣어 숙성 후 여과하여 마시던 고급 소주이다. 배, 생강의 한문 첫 자를 따서 조선 중엽부터 이강고梨薑膏라 이름 지어 빚어진 38도 이상의 주도 높은 전통 약소주이다. 지금의 분류 방법으로는 소주에 향약재가 많이 들어감으로 해서 혼성주인 리큐어(liqueur)로 분류된다. 문헌을 보면 봉산탈춤의 말뚝이 사설 부분에서 “자라병, 홍곡주, 이강고를 내어놓자…” 라는 대사가 나오듯 역사가 오래됐다. 조선 후기 철학자 유득공柳得恭(1749~1807)이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 정조 때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그 쓰임이 소개되어 있다. 최남선崔南善(1980~1957)의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는 우리나라 3대 명주 중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 시대의 이강고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아리(배의 품종 중 하나)의 껍질을 벗기고 돌 위에서 갈아 즙을 고운 베주머니에 걸러서 찌꺼기는 버리고, 생강도 즙을 내어 밭친다. 배즙, 좋은 꿀 적당량, 생강즙 약간을 잘 섞어 소주병에 넣은 후 중탕하는 방법은 죽력고와 같다.
- 《임원십육지》, 1827
일제강점기 즈음부터 울금과 계피가 첨가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배와 생강만으로는 맛이 영 심심했던 모양인 듯 싶다
외피를 제거한 배 5개와 생강 50급을 진유제어판(眞鍮製御板)으로 갈아 뭉개어 이것을 울금 및 계피의 조분 각 18.7g을 소주와 함께 끓여서 침출한 용액 1~2홉을 포대에 넣어서 소주 1말에 750g의 설탕을 가한 액중에 투입하여 2~3시간 방치하면 울금에서 오는 황색과 계피, 배, 생강에서 울어 나오는 특이한 향기의 술 약 9되 5홉을 얻을 수 있다.
그 후 『조선주조사』 및 유태종의 저서 『한국의 명주』와 조정형의 저서 『다시 찾아야 할 우리술』에서 제조 방법이 자세히 소개되었다. 또한 구한 말 고종 때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시 기록인 조미통상사에도 이강고가 대표 술로 동참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복잡한 제조 과정을 거쳐 특별한 가문에서 빚어내려온 술이다. 전라도 지방의 진상품이 배, 생강, 울금이라 한 것을 보면 빚어내려던 일반 전통소주에 진상품이 배·생강·울금을 넣어 더 좋은 술을 빚어 만들려는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강주가 전라도 전주와 황해도 해주에서 빚어진 이유는 두 곳의 토질이 좋아서 배의 주산지였기 때문이다. 울금은 생강과에 속하는 향신료의 일종으로, 쿠쿠민(curcumin)성분이 많이 있다. 이는 몸의 기능을 조절해 주고 혈압 조절 등 숙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 울금이 전주에서 재배되어 조선 왕실 진상품으로 쓰였으며, 술에는 이때 처음 이용되었다. 이강고는 38도 이상의 고도주로,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는 소주류이다. 약주를 빚고 소주로 내려서 향약재를 넣어 숙성시키는 등 여러 단계의 제조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술의 색도는 옅은 노란색을 띠고, 향취가 강하다. 전통소주에 배의 시원한 맛과 생강의 알싸한 맛이 꿀과 더불어 조화되어 향을 낸다. 생강, 계피는 건위에 쓰이는 약재이다. 특히 울금은 정신안정제의 한약재로서 숙취를 보완하는 효과가 있어 뒤끝이 맑은 술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은 전통식품명인 제9호와 향토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술이다. 안주는 삼합, 홍어회, 육회와 같은 맛이 강한 단백질 음식과 잘 어울린다. 오늘날 생산되는 이강고는 전부 이강고가 아닌 이강주라는 상표로 판매되고 있다. 도수는 보통 19도, 25도짜리가 있다. 시중 대형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이강고는 도수가 19도이고 생강, 계피, 배의 향기가 지나치게 강렬하지 않기 때문에 부담없이 마시기에 좋다. 단 넘김이 부드러운 거지 19도의 도수는 어지간한 희석식 소주보다 높은 도수이므로 과음은 삼갈 것. 일반적으로 마트에 파는 희석식 소주가 16~17도이다. 아무리 부드러워도 도수가 높으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훅 가기 쉽다. 소위 조선 3대 명주 중 가장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가격도 죽력고는 약 8만원, 감홍로는 약 7만원 정도이나 비슷한 용량의 이강주는 3만원 정도로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입문용 전통주로써는 좋다. 특히 19도의 보급형은 대형마트에서 5천원 이하의 가격에 팔리고 있으니 접근성이 훌륭하다. 선물용이라도 명절대목을 전후하여 흔히 팔리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전통주들은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어서 구하기 쉬워졌다 숙성 기간이 더 긴 38도 제품도 있으나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첫댓글 이 처럼 우리 조상님들은 오늘을 살고있는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기쁠때나 슬플때나 희노애락을 술과 같이 즐겼고 장례식 때 제사 지낼때 혼례(결혼)때 관례와 계례(성인식)때 회갑잔치 때 세시풍속 명절이나 농사를 지을때 대동제와 같은 마을의 제사 또는 마을에 잔치나 축제가 열렸을때 즐겼을 을 뿐만아니라 술에 대한 예절과 예의인 주도(酒道)를 지켜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전통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매니아들과 우리곁에 사라질 뻔한 전통주 제조법을 지켜오신 명인 선생님들의 노력을 통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통주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전통주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한국의 전통 죽을 소개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직장인 여러분 힘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