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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 멸망과 포로시기
□ 주요 내용 요약
□ 상세 내용
o 앗수르 제국 : BC 1200년~BC 609년 (약 600년) → 국력 쇠퇴기에 애굽과 신흥 바벨론은 앗수르 영토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임
o 1차 갈그미스 전투(BC.609년)
- 앗수르 쇠퇴 →신흥 바벨론 vs 이집트, 구 앗수르 영토 패권 다툼 → 애굽 군대(바로느고)가 갈그미스로 진격중 므깃도에서 유다와 전쟁(요시야왕 전사) → 유다 백성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움 → 1차 갈그미스 전투(BC.609년) → 무승부 → 돌아가는 길에 바로느고(애굽)가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여호야김(여호아하스의 형)을 왕위에 세움 → 유다, 애굽의 지배하에 놓임
o 2차 갈그미스 전투(BC 605년, 바벨론의 예루살렘 1차 침공)
- 바로느고(애굽)와 느부갓네살(바벨론)의 격돌에서 느부갓네살 승리 → 바벨론, 예루살렘 침공, 점령 → 유다, 바벨론에 조공(여호야김, 충성 맹세) → 느브갓네살, 아버지 죽음 소식으로 귀국(다니엘과 친구 등 쓸만한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감)
- 여호야김의 딜레마 : 이집트와 바벨론중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왕궁은 친 애굽파, 친 바벨론파로 나뉘어 다툼.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유다 징계를 위해 바벨론을 사용하고 있으니 바벨론에 저항 말 것을 권고) → 애굽에 붙음
o BC 601년(여호야김 사망?)
- 여호야김은 3년간 바벨론 섬김후 배반하여 애굽 섬김(바벨론의 이집트 침공 실패 & 애굽의 지원 약속) → 바벨론은 주변 외인부대(갈대아, 아람, 모압, 암몬)를 시켜서 유다를 괴롭힘(게릴라전)
- 이 전투중에 여호야김 사망?(BC 601년 혹은 2차 침공때 여호야긴 사망?) → 백성들은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움
o BC.597년(바벨론의 예루살렘 2차 침공)
- 느부갓네살이 직접 침공 → 여호야긴 항복 → 느브갓네살이 여호야긴의 작은 아버지 시드기야(요시야의 아들)를 왕으로 세우고 여호야긴의 온 집안, 고급인력, 병력, 기능공 등 1만명(에스겔 포함)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돌아감
* 포로시대 선지자 다니엘, 에스겔은 남유다 멸망(BC.587년) 전에 바벨론에 끌려감
o BC 597~586년(바벨론의 예루살렘 3차 침공)
- 시드기야, 예레미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애굽 바로와 내통 & 바벨론 배반 → 느브갓네살, 예루살렘 침공(BC 588~586) → 시드기야, 아들들 처형당함 & 자기 두 눈이 뽑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감 & 유다 멸망(렘 39:2)
o 느브갓네살 왕
- 하나님이 ‘내 종’이라고 표현(렘 25:9). 패역한 유다를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
- 첫째 꿈에 세계 열강의 미래를 보여주시고(포로인 다니엘이 꿈 해석)
- 두번째 꿈(통치 기간중 34년)에 '하나님의 징계의 꿈'(순찰자가 나무를 자름)을 꾼 뒤 1년 후 정신병으로 7년을 고생 → 하나님의 긍휼로 건강 회복, 마지막 통치 기간에 하나님을 높이는 조서를 씀 → 2년간 살다가 죽음(재위 45년) → 세상 나라의 ‘니므롯’과 같았으나, 결국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보여줌(느브갓네살아, 왕은 바로 나다!)
* 바벨론 : BC 625년(나보폴라살) ~ BC539년(벨사살)(약 90년)
o 바벨론 멸망과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왕
- BC 539, 바벨론 멸망, 고레스 입성
- BC 538, 유대 포로귀환 칙령 내림
- 기름부음 받은 자(사 45:1)
o 포로귀환 : 1차(BC 538년) → 2차(BC458년) → 3차(BC 445년)
o 에스라서 읽기
- 1차 포로귀환과 성전 재건(스 1~2장, BC 538년)
- 성전재건과 예배 회복(스 3~6장, BC 516년) - 에스더, 학개, 스가랴 포함
․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중심이 되어 성전 재건 추진 → 사마리아인들 협력 거부당하자 오히려 방해(아닥사스다 왕 재건 중단명령은 이 때 아님) → 이스라엘 백성들, 중심을 잃고 자기 농경지 돌보는데 몰두 → 성전 재건 지연(16년간 방치) → 다리오 왕, 성전 건축 재개 칙령 & 학개, 스가랴의 격려로 성전 완성(BC 516년) → 바사 땅에서 에스더 사건 발생(아하수에로왕, BC483~474년)
* 페르시아 역대 왕들은 첨부 참조
- 2차 포로귀환과 에스라 사역(7~10장) : BC 458년
․ 아닥사스다왕, 포로귀환 조서 → 2차 귀환
cf. 시오니즘 : 에스라를 중심으로, 포로시기때 예루살렘(시온)의 회복을 꿈꾸며 자손을 교육시키면서 형성된 유대 공동체의식(구약 역사 전체를 의미하지 않음)
o 에스라
- 다니엘, 에스겔은 BC 605년경 인물들이며 에스라, 느헤미야는 BC 440년경 인물들로서, 약 160년간의 시차가 존재
- 스룹바벨 등 1차 포로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 도착(BC 538년경)한 뒤 약 80년 후(성전 재건후 60년후)에 예루살렘에 도착)
- 포로시대때 바사 땅에서 출생. 고레스대왕 칙령으로 이미 동포중 상당수가 예루살렘으로 떠나있는 상태. 성전은 재건되어 있으나, 율법에 능한 지도자가 없어서 백성을 말씀으로 세우지 못하고 있음. 율법에 정통한 학사인 자신이 백성을 바로 세워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떠남.
-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귀환한 백성들을 중심으로 족장들의 계보를 조사 → 역대상하 및 에스라서 집필 → 말씀을 가르치며 사회 개혁을 주도
- 이방인들과의 혼혈에 매우 민감하여(이스라엘의 멸망이 거기서부터 시작) 결혼한 아내까지도 방출시킴
o 느헤미야서 읽기
- 원전에는 에스라서와 함께 한권의 책으로 되어 있음(→느헤미야서도 에스라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짐)
- 3차 귀환과 성벽재건(느 1~7장, BC 445년)
· 느헤미야는 에스라 귀환뒤 13년후(예루살렘 성전 재건후 약 100년뒤)에 귀환(아닥사스다 왕의 명을 받아 유다 총독으로 12년간 근무) → 예루살렘 성벽 재건 및 개혁운동후 바사로 돌아갔다가 다시 옴
-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공동사역(종교개혁, 8~13장)
· 율법책 낭독, 회개, 개혁을 위한 백성들의 서약, 귀환자 거주지 배정, 영적 회복 주도, 통치를 위한 인구조사, 초막절 준수, 레위인 정비 및 제사제도 확립
o 말라기 :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후 약 10년 뒤(BC 430년경)
- 성전 재건뒤 시간이 가도 바라던 메시야 왕국(단, 겔, 학, 슥 예언)이 도래하지 않음 → 하나님 사랑과 약속 의심(말 1:2),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의심(말 2:17) → 제사장들의 타락(제사 소홀, 계약 파기, 율법 범함) → 백성들 타락(십일조, 헌물 소홀, 잡혼과 이혼)
- 하나님의 약속으로 끝남 (말 4~5장) : 여호와의 날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리라(→ 신약 세례 요한) : 여호와의 날과 엘리야를 기다리며 끝남.
역대 바사(페르시아) 왕들 계보
o 아케메네스
o 테이스페스
o 고레스 1세 + 아리아람네스(고레스1세의 동생, 공동통치자)
o 캄비세스 1세 + 아르사메스( 캄비세스1세의 사촌동생, 아리아람네스의 아들, 공동통치자)
o 고레스 2세(고레스 대왕, BC 559~530) : 유대백성들 귀환 허락. 예루살렘 성전 재건 후원. 기름부음 받은 자(사 45:1)
o 캄비세스 2세 : 성경언급 없음
o 다리오 1세 (기원전 522-486) - 일명 다리우스 대왕. 다니엘에서 말하는 메대 사람 다리오와는 전혀 다른 인물. 학개, 스가랴가 다리오 1세 통치 2년에 설교 시작. 스룹바벨 성전이 이 시기에 건립
cf. 메대 사람 다리오는 다니엘 시대의 인물로서 요세푸스의 기록에서 " 페르샤 왕 고레스와 메대 왕 다리오(Darius)는 그(나보니더스)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다리오와 그의 친척인 고레스와 함께 바벨론을 함락시켜 바벨론의 통치를 끝냈을 때 그의 나이는 62세였다. 그는 아스티아게스(Astyages)의 아들이었으며, 희랍 사람들 가운데서 그는 다른 이름을 가졌다." 라고 되어있음.
o 아하수에로 1세(크세르크세스, BC 486-465) - 에스더를 왕비로 맞은 왕.
o 아닥사스다 1세(BC 465-425) - 에스라와 느헤미야(술관원장)를 예루살렘으로 보낸 왕. 일반적으로 에스라 임무가 아닥사스다 통치 7년째 주어졌다고 함.
o 아하수에로 2세(BC 423) - 2개월만에 죽음(성경 언급 없음)
o 다리오 2세(BC 423-404) - 성경언급 없음
o 아닥사스다 2세(BC 404-359) - 학자에 따라 에스라 임무가 아닥사스다 2세 통치 7년째 주어졌다고 함.
o 아닥사스다 3세(BC 359-338) - 성경언급 없음
o 아르세스(BC 338-336) - 성경언급 없음
o 다리오 3세(BC 336-330) - BC 330년 알렉산더에게 져서 죽음. 바사 멸망
바벨론 왕조
* 함무라비시대 : 고대바벨론
* 나보폴라살(느부갓네살)시대 : 신바빌로니아로 부른다(BC 625-538).
Ⅰ. 나보폴라살과 느부갓네살
나보폴라살은 BC625년에 바벨론 왕이 되면서 갈데아 왕조를 세운다. 앗수르 군대를 패배시킴으로(BC609년) 대제국의 주인이 된다. 그는 일찍이 통치 초기에 왕궁수리와 더불어 아들 느부갓네살에게 왕권을 선포. 이 둘은 앗수르 왕이 하란에서 항복하던 시기에 함께 있었고 여기서 나보폴라살은 바벨론으로 갔고 느부갓네살은 3개월 동안 성을 약탈, 불 지르면서 전쟁의 선봉에 섰다.
이때 앗수르 멸망과 더불어 이집트 왕 바로느고는 자기의 세력을 위해 갈그미스로 올라와 느부갓네살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유다 왕 요시아가 바로느고와 싸우러 나갔다가 므깃도에서 죽게 된다.(대하35:20-24) 이로 인해, 유다는 잠시 이집트의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되며 바로느고는 요시아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를 3개월 만에 폐위시켜 이집트로 잡아가고 그의 형제 여호야김(=엘리야김)을 왕위에 앉힌다.(대하36:1-4)
Ⅱ. 바벨론의 왕성 (BC 605-562년)
초대 왕 나보폴라살의 뒤를 이은 그 아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이 예언한 금 머리처럼 그의 43년간의 통치기간은 황금시기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세력을 시리아와 팔레스틴에서 일소해 버리고 오리엔트 상업의 이권을 차지하였다. 이때의 유다도 이집트의 영향 아래 있다가 바벨론으로 넘어가 마침내 느부갓네살에게 멸망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세 차례에 걸쳐 유배되었다.
이에 이집트는 두로 시돈 등 유다 주위의 여러 나라를 원조하여 동맹을 맺게 하고 바벨론에 대항케 했으나 바벨론으로 하여금 이집트의 국경선까지 세력을 확정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BC 568년 이집트를 침략하고 그리고 대항한 여러 약소국들은 점령되어 엄벌을 받았으며 지형적으로 견딜 수 있었던 두로만이 포위 13년 만에 종주권을 인정받았을 뿐 이집트조차도 나일 강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1) BC585년 : 메데인과 리디아인 사이에 휴전을 중재함
2) 두로 13년간 포위
3) BC 568년 이집트 침략
바벨론을 1세기도 못되어 당시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느부갓네살은 군소국가의 정복과 상업독점으로부터 들어오는 막강한 재정으로 제국을 번영으로 이끌었다. 당시 느부갓네살은 수도인 바벨론에 신전과 제단을 쌓았는데 신들의 여왕인 이시타르를 위한 제단을 180곳에 세웠으며 고대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공중정원을 세우기도 했다.
Ⅲ. 느부갓네살과 예루살렘 파괴(BC 605-562년, 43년간 통치)
갈그미스 전투는 느부갓네살이 이집트 세력을 꺽고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는 중요한 전쟁이었다. 이 대규모 전쟁에서 이집트는 크게 패배(BC 605). 이 과정에서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 진군해 여호야김을 굴복시키고 백성중 일부를 포로로 잡아간다. 이때 선지자 다니엘도 잡혀간다.
느부갓네살은 이집트까지 진군해 가기 원하지만 나보폴라살의 죽음으로 회군하여 바벨론으로 돌아갔다. 이미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제국의 서편에 통치권을 쥐고 있었으며 아버지 죽음으로 제국 전체의 주인이 된다. 그 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는데 여호야김도 바벨론에 반역하였기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느부갓네살은 고대 바벨론을 위대하게 제건했으며 43년간 통치하다가 BC562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Ⅳ. 느부갓네살 이후의 왕들과 바벨론 멸망
(1) 에윌므로닥(렘 52:31-34, 왕하 25:27-30)
① 유다 왕 여호야긴을 석방시켜준 왕
② 2년을 치리한 후 느부갓네살 사위 네리그릿살의 주축이 된 모반자들에게 죽임 당함.
(2) 네리그릿살 : 4년을 치리한 후 BC 556년 전쟁에서 죽음
(3) 라보로소 알코드 : 네리그릿살 아들(저능아) 1년도 못되어 맞아 죽는다.
(4) 나보니두스
① 느부갓네살의 또 다른 사위로서 왕위 찬탈
② 네리그릿살의 아내와 결혼하여 바벨론 멸망(BC 555-538)까지 치리한다.
(5) 벨사살왕(바벨론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의 아들이자 섭정왕. 주의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들로 술잔치를 벌일 때 하나님의 손이 나와 멸망을 기록했으며 그날 밤 벨사살은 살해당했고 바벨론은 멸망했다(단5장, BC 538년 멸망)
나보니두스는 전쟁터(페르시아와 전쟁)에 나가 있었고 벨사살은 왕궁에 있으면서 대규모 연회를 가진 그날 밤 바벨론 도성은 이미 포위된 상태. 고레스는 바벨론 성읍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차단함으로 그 성을 무너뜨렸다. 세속 역사 속에는 나보니두스가 마지막 왕으로 되어 있고 벨사살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아버지 나보니두스와 공동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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