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9:1~13)
묵상을 skip했지만 어제 본문에서
전성기처럼 가는 곳마다 승리하고 정복하여
세력이 커지는 다윗의 모습이 기록되었다.
세력이 커지면 흔히
그 세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인간적 욕망이 올라오고
그것을 은밀히, 또는 대놓고 추구하다 무너지는 경우가 흔하다.
세력을 가질 때 가장 큰 도전이자 시험이다.
수 년전, 내가 아는 선배가 별 하나를 달고 해군 제독이 되어
주요 지휘관에 취임하자마자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여 장교와 술자리를 같이하다
성폭행으로 구속되고, 아마도 불명예 전역 조치를 받은 듯하다.
선배 마음 속에 호감으로 자리잡고 있던
후배 여장교가 자신이 권력을 얻고 난 후에는
무언가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권력이 점점 더 커지는 그 순간에
그는 죽은 친구의 은혜를 떠올렸고
이제는 몰락한 그 가문의 남은 사람들을 찾았다.
세상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명을
다윗이 찾았다.
사실 요나단처럼 세상에서 억울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선량했지만 아버지의 악행으로 세상적으로는
아버지와 함께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다.
세상에서는 무의미한게 비춰질 지 모르나
하나님 안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완전한 세상이 준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셈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분명 하나님은
공정하게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시기 때문이다.
실존에서는 다윗처럼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면서도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하는 이보다는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하면서도
세상에서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스스로 감내하며 보이지 않는 분투를 하는 이가 더 많다.
시바는 선량한 일을 이어주는
작은 듯 보이나 귀중한 일을 하는 매우 실존적 인물이다.
그의 행동에는 지혜와 세심함이 깃들어 있다.
그 지혜와 세심함의 본질은 예상하듯이 사랑이다.
그 사랑으로 시바는 다윗의 마음을 헤아리고
므비보셋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결국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므비보셋을 보살필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한다. 그를 실존적 인물이라 표현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다윗처럼 성경의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이보다
이러한 작은 일처럼 보이는 일에 순종해야 하는 인생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주의 깊에 보게 된다.
므비보셋에 대해서는
특별히 거론할 이벤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가 요나단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장애자의 삶을 살게 되는데
굴곡 많고 사연 많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이제까지 잘 버켜 온 것만으로도
그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인내의 미덕과
견고함이 배어 있는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듯하다.
그렇게 잘 버티는 일,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기본으로
Setting 되어야 할 기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