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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5 ~ 30일 / 예술의 전당 / 국립발레단 & 볼쇼이 발레단 합동공연 / 106분>
한 • 러 수교 20주년 기념 국립발레단 & 볼쇼이발레단의 최초 합동 공연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살아있는 전설,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
글라주노프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 펼쳐지는 황금빛 러브스토리
음악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 안무 유리 그리가로비치
감독 최태지
미술 미하일 사포즈니코프
지휘 박태영
연주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주연 김주원, 김현웅
=== 줄거리 === <내지해설>
<라이몬다 Raymonda>는 러시아 작곡가인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Aleksandr Glazunov, 1865.08.10 ~ 1936.03.21)의 역작이다. 중세 기사도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발레는 라이몬다(Raymonda)의 사랑을 차지하기위해 위엄 있는 기사 장 드 브리엔(Jean de Brienne)과 비열한 사라센 기사인 압데라흐만(Abderakhman) 사이의 라이벌 관계를 그린 중세 시대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믿음, 고귀함, 아름다움, 그리고 숭고한 사랑이 승리한다는 교훈을 주는 두 남자의 극적인 대립은 글라주노프의 음악에서 잘 표현된다.
이 발레 음악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라이몬다의 시적 성향과 그녀의 꿈속에서 등장하는 환상적인 왕국, 압데라흐만의 이국적인 부하들과 궁중 축제의 웅장함을 잘 묘사하는 모음곡들이다. 이 모음곡들은 서로 대조적이며 주인공들의 연속적인 춤으로 구성된다. 1898년 <라이몬다>의 첫 공연 이후 많은 극장에서 고정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이 발레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들에 의해 재창조되고 있다.
1막
프랑스 귀족 백작부인의 젊은 조카인 라이몬다(Raymonda)는 장 드 브리엔(Jean de Brienne)의 약혼녀다. 헝가리의 왕인 앤드류 2세가 지휘하는 십자군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장 드 브리엔은 그의 약혼녀 라이몬다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성에 도착한다. 서로 작별인사를 하고난 후 손님들이 등장한다. 그날 저녁 그녀의 친구들에 둘러싸인 라이몬다는 하프를 연주하며 떠나 보낸 연인을 그리워한다.
그날 밤 라이몬다는 혼자 잠에 든다. 꿈속에서 그녀는 환상의 세계에서 아름다운 그리스 여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장 드 브리엔을 발견한다. 이 행복한 연인들이 재회하자마자 갑자기 장 드 브리엔이 사라진다. 장 드 브리엔의 집에 혼자 남겨진 라이몬다는 그녀를 열정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동쪽에서 온 이름 모를 기사를 발견하고, 두려움에 떨다 기절하고 만다. 꿈속의 장면들이 사라지자 라이몬다는 잠에서 깬다. 새벽이 밝아온다. 라이몬다는 그녀의 꿈속에서 등장한 그 환영은 나쁜 징조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2막
도리스 백작부인의 성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에 초대된 손님들 가운데 화려한 수행원들을 이끌고 온 사라센 기사 압데라흐만(Abderakhman)도 있다. 라이몬다는 바로 그가 전날 밤에 꿈속에서 봤던 그 의문의 기사임을 알아챈다. 그녀는 두려움에 떤다. 압데라흐만은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권력과 부를 주려 하지만 라이몬다는 거절한다. 분노한 압데라흐만은 그녀를 납치하려 한다. 그 순간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기사들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라이몬다의 약혼자 장 드 브리엔도 포함되어 있다. 앤드류 2세는 장 드 브리엔과 압데라흐만에게 결투로 그들의 운명을 결정할 것을 제안한다. 장 드 브리엔이 승리한다. 마침내 연인들은 재회하여 평생을 함께한다.
=== 프로덕션 노트 === <내지해설 /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한정숙 교수 글>
문화적 만남의 복합체 <라이몬다> About the Spectacle
신동 글라주노프, 발레음악으로 만나다
어린 시절 집에 있던 두툼한 '생활대백과사전'에는 음악회, 발레, 연극 공연 화보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중 남녀 주역 무용수의 아름다운 파드되 장면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발레 <라이몬다> 중의 한 장면이라는 설명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 후 이 발레를 위한 음악을 작곡한 이가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이고 그가 제정 러시아 말기부터 소련시대 초기까지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긴 뛰어난 음악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발레를 감상할 기회는 별로 없었어요. 그가 러시아 혁명 후 소련 정부 아래서도 계속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원장으로 재직한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었는지, 냉전시기 한국에서 그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 음악인의 범주에 속했지요.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그의 가장 빛나는 제자였던 소련 최대의 음악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들을 수 없었던 것이나 비슷했다고 할까요.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냉전 시대에도 글라주노프는 금기시될 이유가 없는 작곡가였습니다. 제정 러시아의 부유한 출판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조에 속하는 발라키레프와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에게서 천재음악가로 인정받으며 러시아뿐 아니라 국제 음악계에서도 이름을 날렸지요. (한 번 들은 곡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그의 경이적인 기억력은 음악사가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곤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러시아 황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된 <라이몬다>의 음악을 쓴 작곡가가 아니던가요.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서 관현악을 배웠던 글라주노프의 작품답게, 또 차이콥스키를 낳은 19세기 후반 페테르부르크의 발레음악답게 <라이몬다>의 음악에서는 관현악의 화려한 색채감과 낭만적 선율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을 잘 들을 수 없었던 데는, 서양 음악 수용의 역사가 길지 않은 한국에서 음악계의 주된 관심이 서유럽 음악 쪽에 몰려 있어, 차이콥스키나 라흐마니노프를 제외한 러시아 음악인들의 작품을 듣고 연주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20년 전 한국과 러시아(당시에는 소련)의 수교는 한국의 예술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어주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수교 후 러시아의 여러 장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이 나라를 발레, 연극, 오페라를 비롯한 공연예술과 문화의 나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점에서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의 음악은 한국인들에게는 새로 열어야 할 보물창고와 같은 그 무엇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발레 공연의 역사라는 점에서도 이는 새롭게 열린 광대한 지평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이몬다>는 고전 발레의 가장 뛰어난 레퍼토리의 하나로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었고 그 중에서도 그랑파드되는 주역 무용수의 기량을 가늠하는 시금석의 하나로 여겨져왔지만, 한국에서만은 지금까지 상연된 적이 없었지요. 이제 한국 국립발레단에서 글라주노프가 작곡한 음악에 맞추어 공연되는 <라이몬다>를 한국 최초로 무대에 올리게 되었으니,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서는 이보다 더 적절한 작품도 드물 것입니다. 국립발레단은 최태지 예술감독의 지도 아래 차이콥스키 등 러시아 발레예술의 걸작들을 공연해왔는데, 이제 <라이몬다>를 공연함으로써 국립발레단과 러시아 무용의 만남은 하나의 절정을 향해간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라이몬다> 속의 여러 문화적 요소
<라이몬다>는 1898년 러시아 황실바레단에 의해 초연되었습니다. 이 무용단의 수석감독직을 오래 역임한 당대 최고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안무를 맡았지요.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서양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귀족 아가씨인 라이몬다가 기사인 장 드 브리엔과 사랑하는 사이지만 그가 십자군 원정을 떠난 사이 이슬람교도(사라센인)인 압데라흐만에게서 집요한 구애를 받아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가 연인의 귀환으로 사랑을 이루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어려움을 딛고 이루는 사랑의 승리라는 점에서나 십자군 원정 기사가 연인을 괴롭히던 적수를 물리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나 고전적인 틀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줄거리의 특성상 이 작품에는 19세기 말 러시아식 오리엔탈리즘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사라센인인 압데라흐만이 라이몬다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갖은 수를 쓰지만 기독교도 기사인 장 드 브리엔이 결투 끝에 결국 그를 물리치는 이야기가 유럽중심적-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고 있지요. 러시아가 서유럽 사람들에게는 동방으로 여겨졌지만,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인들은 이슬람권을 동방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도 이슬람권과 전쟁과 정복, 영토분쟁 등의 역사를 겪었기 때문에 작품 속에 이러한 요소가 반영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한편 이 작품은 수많은 문화적인 요소들이 만나고 전달되고 이해되는 매개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시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발레 작품 속의 동양적, 이슬람적 요소들은 작품에 풍성함과 다양함을 부여하는 요소입니다. 발레 속에서 이슬람 사람들이 그려지는 방식은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가 외래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했는지, 그들이 이슬람 문화에 대해 어떠한 이미지를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의미를 가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고전 발레의 주된 고객이던 황실 및 귀족 사회는 이국적인 소재, 환상적인 소재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프티파의 출세작이었던 <파라오의 딸>도 이집트를 소재로 다루었지만, 그외에도 인도, 터키, 아라비아 등 이국적인 소재가 자주 발레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발레를 통해 19세기 황실 및 귀족 사회에서 외국문화가 전달되고 이해되고 이미지로 고정되던 방식을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아하, 그들은 이국에는 신비스러운 삶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자신들의 삶에서 부족한 어떤 것을 보완하려 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같은 이미지들이 바뀌어 온 과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러시아에 대해서 과거에는 냉전적 상황에서 유래한 특유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여러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라이몬다>가 서로 다른 문화의 부딪힘, 서로 다른 사회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배경으로 해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펼치고 있듯이, <라이몬다>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이 발레 작품을 통해 다시 여러 문화를 만납니다. <라이몬다>를 작곡한 러시아 음악가 글라주노프는 러시아 국민주의적 경향과 서구주의적 경향을 겸비하고 있는 작곡가로 일컬어지지만, <라이몬다>에서는 더 나아가 헝가리적 집시적 요소, 아랍적 요소, 스페인적 요소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를 공연하는 사람들은 한국인 무용수들과 볼쇼이 발레단 소속 러시아 무용수들입니다. 그리고 공연을 보는 사람은 한국인들이고요. 그러고보니 이 작품의 공연에는 온 세계가 함께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요.
러시아 황실예술, 한-러 국민들의 만남을 매개하다
예술장르에도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발레처럼 특이한 운명을 가진 예술도 드물 듯합니다. 일찍이 프랑스 궁정에서 발전했던 발레는 19세기 러시아에서 최고로 꽃을 피우게 됩니다. 마리우스 프티파도 프랑스 출신이면서 러시아로 와서 재능을 발휘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안무가가 되었지요. 19세기 러시아가 발레 예술의 발전에 지대하게 공헌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 황실이 발레 공연을 위해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이몬다>도 그러한 맥락 속에서 태어난 작품이었던 것이 분명하고요.
이 가장 귀족적인 장르였던 발레가 러시아 혁명 후 사회주의 체제인 소련 시대에도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소련 정부는 과거에 소수특권층만 누릴 수 있었던 이 예술을 일반시민들을 위한 예술로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지원을 했고 새로운 발레 레퍼토리의 개발에도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볼쇼이 발레단, 키로프 발레단이 황금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습니다. 남성적 역동성으로 가득한 <스파르타쿠스> 같은 가장 소련적인 발레 작품이 태어난 것도 러시아 혁명 후 형성된 새로운 예술정신 아래서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연방에 들어와서도 러시아 발레의 위대한 전통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발레가 이제 한국과 러시아의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만남을 위한 매개자가 되고 있습니다. 당장 이번 공연을 위해 볼쇼이 발레단에서 10여 명의 무용수들이 내한하여 국립발레단 무용수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10월에는 국립발레단 무용수 10여 명이 러시아로 가서 볼쇼이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 동참하게 됩니다. 과거에 두 사회가 단절되어있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지요. 그러나 에술은 원래 이러한 벽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예술 덕분에 시민들의 만남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것을 보니 예술의 위대한 힘을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이번 <라이몬다> 공연은 볼쇼이 발레단의 살아있는 전설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안무로 이루어집니다. 러시아 황실을 위해 활동하던 프티파의 안무로 초연되고 그 후 오랫동안 이 버전으로 무대에 올려졌던 <라이몬다>가 소련 시대 러시아 연방의 인민예술가이며, 저 유명한 <스파르타쿠스>의 안무가이기도 한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안무로 어떻게 다시 해석되는지,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와 설렘을 안고 기다립니다.
===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의 세계적인 거장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솔리스트로 데뷔한다. 이 극장에서 그는 안무가로서 빛나는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데, 1957년 안무한 그의 첫 작품 <석화 The Stone Flower>는 새로운 '천재'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61년 그가 안무한 <사랑의 전설 The Legend od Love>은 이듬해 그에게 발레 마스터 자리를 부여받게 했다. 그리가로비치의 발레는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함께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으며 러시아 발레계의 새로운 경향을 주도하게 된다.
1964년, 37세의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볼쇼이 발레단(1776년 설립)의 예술감독이 된다. 이 젊은 예술감독은 1995년까지 33년 동안 볼쇼이 발레단의 수장으로서 그때까지 키로프 마린스키 발레단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볼쇼이를 러시아 대표 발레단으로 키우고 '발레 하면 볼쇼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는 신화를 이룩한다. 그리가로비치의 부임 후 볼쇼이 발레단은 90회가 넘는 해외 순회공연을 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리가로비치로 인해 재능 넘치는 무용가들이 러시아로 몰려온다.
그는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20세기 발레 영웅'에 걸맞게 많은 작품들을 새로 안무하거나 초연했다. 차이콥스키의 3대 걸작 <잠자는 숲속의 미녀 1963년/1973년>, <호두까기 인형 1966년>, <백조의 호수 1969년>과 글라주노프의 <라이몬다 1984년>, 아당의 <지젤 1987년>, 밍쿠스의 <라 바야데르 1991년>, <돈 키호테 1994년> 등이 고전 발레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라면, 하차투리안의 <스파르타쿠스 1968년>, 프로코피에프의 <이반 대제 1975년>는 초연 때의 실패작이 그리가로비치의 손에 의해 완전히 변신하여 볼쇼이의 대표작이 된 작품들이다. 한편 에쉬페이의 <앵가라 1976년>, 쇼스타코비치의 <황금시대 1982년>는 발레에 현대성을 부여한 그의 창작품으로서 역시 많은 찬사를 받았다. 2000년 이후 국립발레단이 선보인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안무작 네 편 <호두까기 인형 2000년>, <백조의 호수 2001년>, <스파르타쿠스 2001년>, <로미오와 줄리엣 2008년>에 이어 클래식 발레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라이몬다>를 통해 그의 천재성과 카리스마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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