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임재 인식과 반응 본문 대상16:1-6 '하나님의 임재'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실제로 '임재'라는 단어가 국어 사전에 없고, 한글개혁개정성경에서 보면 겔37:1의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에만 유일하게 번역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임재하다'의 히브리어는 '하야''(존재하다, 있다, 되다 등)입니다. 출3:12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3:14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모두 히브리어로 '하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어적인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임재'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현재 함께 하신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데,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 앞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말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마28:20의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임재 약속입니다. 주님의 임재 약속을 믿고 있지만 여전히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인식을 못하며 살아갑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안일, 외면적인 번영과 성공이 하나님의 임재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면 하나님과 인계적 만남, 교제 등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단절되고, 무늬만 그리스도인에 불과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하나님에 대한 반응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반응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본문 1절의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4절의 "여호와의 궤 앞에서", 6절의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등의 표현은 다윗이 하나님의 궤(법궤, 언약궤, 증거궤와 동일)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법궤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상자에 불과하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상자 속에 가두어 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궤를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 믿었던 다윗이 장막 가운데에 둔 법궤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니의 임재를 인식한 다윗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반응을 보입니다. 1절에서 다윗은 자신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 번제(헌신과 복종의 영적 의미)와 화목제(감사, 평화, 친교의 영적 의미)를 드립니다. 2절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합니다. 4절에서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원어적으로 봉사, 경배의 의미도 있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고(원어적으로 기억하다, 마음에 품다의 의미도 있음) 감사하며 찬양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향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있더라도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거나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예배의 기회가 줄고 성도간의 교제가 끊기고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어가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과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다윗 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할 때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과 인격적인 친밀한 교제를 통해 섬김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