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품 수순분 강의
1. 수순중생의 근본의미
행원의 아홉째는 모든 중생들을 수순하는 것이다. 수순이라 함은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그의 뜻을 받들고 필경 그의 참된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다.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고 이롭게 하는 그 모두가 수순이다. 경에는 중생을 수순함으로써 여래의 무량공덕이 성취되고 무상정각을 성취한다 하였으니 이 중생을 수순한다는 법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중생을 수순하는데 있어서 먼저 알아둘 것은 가지가지의 중생의 차별에서 중생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중생의 마음이 평등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중생의 마음이 평등하므로 거기에는 일체 중생을 자기와 차별하지 않고 나아가 부처님과 차별하지 않는 뜨거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이 대비심이다.
일체 중생을 평등히 보고 대비심이 성취된 것이 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은 바로 불보살의 마음인 것이며 일체 중생의 청정한 마음 땅(心地)인 것이다. 중생을 수순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마음을 열어 쓰는 것이며 이러한 깊은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감싸고 성숙하는 것이며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 참된 공양을 올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수순중생’에 있어 중생은 중생이 아니다. 청정불심의 내용이며 청정불심의 자성분별이라 할 것이며 수순은 일체 중생에서 청정불심을 실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가히 버릴 중생이 없으며 중생이 높일 불보살이 없으며 온 법계 일체가 청정법성이 크게 활동하고 크게 자재하며 크게 위신력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수순중생’이 이러한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그 공덕은 말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2. 일체 중생의 마음이 평등하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중생들이 살고 있다. 낳는 형태로 말하면 태ㆍ란ㆍ습ㆍ화 4생5)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가지가지 형태로 살고 있다. 몸이 있는가 하면 없기도 하고 땅에 의지하고 초목에 의지하고 또는 허공에 의지해서 살기도 한다.
그 형상과 몸의 형태의 차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수명 또한 천차만별이다. 가지가지 종족들이 가지가지 지역과 나라에 흩어져 산다. 마음이 착하고 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탐욕스럽고 간특한 사람도 있다. 중생들의 생활 양태도 천만가지고 생활환경도 자연적ㆍ문화적ㆍ인위적 상황도 가지가지다. 야만적 생활이 있는가 하면 고도의 문명생활, 그 중에는 제왕도 있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든가 사상에 대하여도 사람 수효만큼이나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행원행자는 이들 중생을 일체 차별하지 아니하고 평등하게 대하며 오직 저들의 안락과 완전한 성숙을 위하여 받들고 섬기는 것이다.
[주해註解]
5)사생(四生) ; 생물이 나는 4종의 형식이니 태생(胎生-모태에서 태어나는 것, 사람이나 짐승 등)ㆍ난생(卵生-알에서 태어나는 것, 새 종류)ㆍ습생(濕生-습기에서 태어나는 것, 버러지등)ㆍ화생(化生-다른 것에 의탁하여 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업력으로 홀연히 화하여 나는 것으로 제천(諸天)이나 지옥ㆍ중유(中有) 등의 유정) 등이다.
3. 극복되어야 할 차별심
보살이 수순할 중생들은 많기도 하다. 위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경에는 온갖 방법으로 중생을 분류해 가며 그 모두를 수순한다 하였다. 그러한 중생은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까지도 포함하며 그들의 가지가지 마음씀씀이나 행동에 상관없이 수순한다 하였다.
우리들은 착한 욕심, 범부로서 정상적인 욕망, 범부로서 행하여질 수도 있는 행동의 범위까지는 그래도 받든다 하지마는 그러한 범위 한계를 벗어나 어떠한 괴벽하거나 파괴적인 것이나 의도적 악심, 악행을 일삼는 중생까지도 수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점을 주의 깊게 마음에 두어야한다.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또 오늘날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대립은 생활이나 문화나 이해의 대립보다도 보다 큰 대립이 있다. 그것은 사상의 대립이며 지견의 대립이며 신념의 대립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사상과 신념과 종교의 대립인 것이다. 이 대립 앞에는 높은 명분을 붙들고 확신을 가지고 진리니 정의니 하는 신조를 내세워 대립과 갈등을 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 사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 한 지역 내지 세계를 쪼가리로 내어 가며 항쟁하고 고집하며 화해를 모르는 것이다. 크고 작고 헤아릴 수 없는 전쟁들이 거기서 터져 나오고 수많은 불행과 형용할 수 없는 파괴와 인간 비애와 야만적인 행동이 그로부터 싹트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심성ㆍ지견 일체를 차별하지 않고 수순하라 하신다.
이 얼마나 깊은 가르침인가, 이 얼마나 높으신 가르침인가, 이 얼마나 영원한 평화와 인간 심혼을 감싸주는 대자비이신가.
우리들은 가지가지 명분을 내세워 고집과 대립과 항쟁(抗爭대항하여 싸움)을 합리화하고 정당화를 꾀한다. 이 가르침 위에서 우리는 이런 지말적 차별심에서 용감히 뛰쳐나와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열강들은 한결같이 평화 번영을 소리높이 외치면서도 자기주장과 자기 이익 앞에 상대방의 타협을 그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호는 평화이지만 행동은 갈등ㆍ알력ㆍ투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일체중생ㆍ일체심성ㆍ일체욕행(一切欲行)이라는 현상적 차별에 걸리지 않는 넓고 깊은 지혜의 눈에서 세계를 보고 국토를 보고 중생을 보지 않는 한 전쟁의 악순환은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보현행원품 수순장」에서 이에 대한 명쾌한 지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첫댓글 수순중생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일체중생을 수순한다는 것은 아상이 없어야 하는데 이는 보통 보살이라 일컫죠.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