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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제(聖誕祭)
박 태 원
‘흥! 너두 별수가 없었던 모양이로구나? 그러게 내 뭐라던? 내남직할 것 없이* 입찬소리란 못하는 법이다…….’
흥! 하고 또 한 번 코웃음을 치고, 문득 고개를 들자, 그곳 머리맡 벽에가 걸려 있는 십자가가 눈에 띈다. 영이는 입을 한 번 실룩거리고 중얼거렸다.
“이 거룩한 밤에 주여! 바라옵건댄 길을 잃은 양들에게도 안식을 주옵소서. 아멘…… 흥?”
이렇게 기도를 드려두면 순이도 꿈자리가 사납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게다 ……
‘흥!’
1
영이와 순이――이 두 형제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야 나이가 네 살이나 그밖에 틀리지 않는 계집애 형제란, 흔히 사이가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영이 형제는 그저 그만한 정도로 사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순이는, 우선, 제 형 영이의 직업이 불쾌하여 견딜 수 없었다. 여점원이라든, 여자 사무원이라든, 그러한 것이야, 사실, 자기 말마따나 워낙이 배운 것이 없으니까 될 수 없다고도 하여두자. 누가 꼭 그런 것이라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 또 그런대로, 건넛집 정옥이같이 제사공장에를 다닌다는 수도 있다. 이웃집 점례 모양으로 방적회사 여직공으로 다닌다는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솜틀집 작은딸과 함께 전매국 공장에를 다닌대도 좋다. 참말, 다닐 데가 좀 많으냐? 이 밖에도 하려고만 들면, 영이로서 할 수 있는 일거리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딸들이 종사하더라도 결코 흉될 것은 없는 직업들이다·……
하건만, 어째 하필 고르디 골라 까페의 여급이 됐더란 말이냐? 술 냄새, 담배 연기 속에서 밤마다 바로 제 세상이나 만난 듯이 웃고, 재깔이고, 소리를 하고……·뭇 사내들과 함께 어우러져 갖은 음란한 수작·…… 어디 그뿐이더냐? 이 사내 무릎에도 앉아보고, 저 놈과 입도 맞추어보고·……
잠깐 생각만 하여볼 뿐으로 순이가 더러워서 구역 이 날, 그 여급이란 직업을 대체 어떠한 생각으로 영이는 택하였던 것인지, 암만을 궁리하여본댔자, 알아낸다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이제 이르러서는 달리 일자리를 갈아본다는 것도 수월치 않은 일이요, 또 자기 말마따나 그밖에는 몇 푼이나마 돈을 벌어들일 재간이 달리 없는 것이라면, 그대로 푸른 등불 아래 웃음을 판다는 것도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두자.
하지만, 참말 고렇게도 소견이 없고 무식하고 또 얌체머리 없는 여자도 드물 게다.
“흥! 어느 옘병을 허다가 거꾸러질 년이 그래 지가 주와서 여급 노릇을 허겠니? 다아 집안 사정이 헐수할수없어서 그러는 게지. 그래 제 동기간에두 욕을 먹어가며, 천대를 받어 가며 어느 개딸년이·……”
툭하면 영이가 한다는 소리가 이 소리다. 대체, ‘개딸년’ 이란 뭐고, ‘옘병을 허다가 거꾸러짙 년’이란 뭣이냐? 그러나, 그것도 다 배우지 못하고, 천하게 놀아먹어 그러한 것이라면 깊이 탄할 것도 못된다. 하지만, 그래 저낙 남에게 천대를 받고 욕을 먹고 하였으면 그만이지, 어째서 애매한 나까지 체면을 깎이게 하느냐 말이다.
어머니가 동네 집으로 돌아다니며 품을 파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우선, 집안이 군색한 꼴을 남 뵈기 싫어, 그래, 순이는 언제 한번 학교 동무를 집 앞까지라도 끌고 온 일조차 없는 것을, 요 소갈머리 없는 여자는 어째서 운동횟날, 그, 사람 많이 모인 틈으로 구경을 왔느냐 말이다.
그것도 국으로 한곳에 가만히 앉아서 구경이나 하면 하였지, 어째서 사람 틈을 비집고 돌아다니며,
“이학년, 김순이 어딨는지 모르세요? 김순이요. 이학년 송조 생도요.”
대체 만나는 학생마다 그러고 물어,
“얘애, 순이 언니 온 것, 너 봤니?”
“응. 얘애, 아주 하이칼라더라.”
“아마, 그냥 부인넨 아닌가 보지?”
“그냥 부인네가 뭐냐, 얘애? 껄이야 꺼얼, 카페 꺼얼…….”
그래, 그러한 좋지 못한 소문이란 삽시간에 퍼지는 것이어서, 다음 날부터는 얼굴 하나 변변히 들고 다닐 수 없게시리, 그렇게 남의 모양을 흉하게 만들어놓을 것은 무엇이냐 말이다……
2
그러면, 물론, 영이라고 그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는다. 말을 하자면, 오히려 영이 쪽이 할 말은 더 많을지도 모른다.
딴은 운동회에 구경을 간 것은 내가 잘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장한 구경에는 동네 사람들까지도 흔히 따라나서는 게 아니냐. 친동기간에, 제 동생이 운동회에 나간다는데 형 된 사람으로서 가보고 싶을 것은 인정에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물론 나는 네 말마따나 여급 노릇이나 하고 있는 그런 천한 계집년이다. 바로 양반댁 규수 아씨로 너를 알고 있는 학교에서 내 소문이라도 난다면 네 체면이 안 될 것은 나도 생각을 했다. 그러기에 바로 여염집 부인네같이 차려보느라 반찬가게 큰며느리한테서 긴 치마까지 빌려 입고 갔던 게 아니냐?·
너는 또 내가 한군데서만 가만히 앉아서 구경을 하지 않고 이리저리 너를 찾아다녔다고 그러지만, 너도 생각해봐라, 어디 그때 사정이 그렇게 되었느냐?
도보 경주에 너는 첨부터 첫째로 뛰어가다가 결승점 앞까지 가서는 공교롭게도 엎드러지질 않았니? 어딜 몹시 다쳤는지, 금방은 넘어진 채 그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것을 남선생님 한 분과 상급생 둘이서 달려들억 일으켜가지고는, 사무실 쪽으로 데리고 가더구나. 그러고는 아무리 기다려보아도 네 모양은 다시 볼 수가 없으니, 그래 대체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혹 뼈라도 상한 거나 아닌지, 형 된 마음에 어째 놀라고 근심이 안 되겠니? 그걸 네가 너 하나 생각만 하고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래 너는 그까짓 남의 모양만 흉하게 만드는 형 같은 것은 없느니만도 못하다고 말했지? 대체 뭬 그리 좋아서 여급 노릇을 하는지, 그 속을 모르겠다고 그랬지? 옳은 말이다. 참말이지 너보다도 내가 몇곱절 지긋지긋한지 모른다. 하지만 너도 그만 철은 날 나이니, 좀 사리를 캐서 생각을 해봐라. 그래 내가 이나마 그만두고 말면, 집안이 어떻게 될 게냐?
늙으신 어머니가 아는 집을 찾아다니면서 일을 거들어주시고, 그래 겨우 담뱃값이나 뜯어쓰는 거야 말도 말고, 한때는 세월도 괜찮던 아버지 집주릅* 벌이도, 요즘 와선 집 흥정이 통 없어, 잘해야 달에 모두 주워 모아 돈 십 원이 될까 말까 하니, 그것으론 집세도 못 낼 것쯤은, 아마 너도 짐작이 설 것이다.
그래 집안꼴이 이런 중에 그래도 하루 삼시 밥이라 지어먹고, 더구나 나는 학교라곤 보통학교에도 못 들어가본걸, 네가 그렇게 바로 거드럭거리고 고등학교까지 다니는 게 그게 그래 뉘 덕인 줄 아느냐. 그렇다고 내가 뭐 너한테 고맙다고 사례 한마디라도 받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건 그만두고라도 형의 신세가 가엾고 딱하다고, 그러한 생각쯤은 하여주어야 마땅할 게 아니냐? 그걸 너는 툭하면, 더러운 여자니, 천한 기집이니, 그렇게 함부로 욕하기가 일쑤니, 옳지, 옳지, 워낙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란 저 밥 먹여주고, 공부시켜주고 한 사람의 은공은 몰라도 아무 상관이 없는 법이니라.
흥! 그래 아무리 어린애기로서니, 고런 년의 법이 어딨단 말이냐? 그래 내가 그렇게도 더러운 화냥년이라 하자. 그럼, 넌 왜 이 더러운 화냥년이 더러운 짓을 해서 벌어온 돈으로, 날마다 밥은 먹는 게고, 옷은 입는 게고, 학굔 가는 게냐? 응? 그 더러운 돈으로 왜 그러는 게냐? 홍! 어디 네 대답 좀 들어보자꾸나·……
아아니에요. 어머닌 글쎄 가만히 계세요. 그저 어린아이라고 가만 내버려두니까, 바로 젠 듯싶어서 못할 말 없이·…… 글쎄, 어머닌 잠자코 있으래도·…… 무어, 내 입때 참아온 걸 오늘 새삼스레 탄하자는 것도 아네요. 하지만 요런 깍쟁이년의 기집애도 그래 세상에 있수? 그래 남의 은공은 모르고 밤낮 욕을 하면 욕을 해도 그건 괜찮아요. 요건 고러다가도 제가 아쉬우면 ‘언니 언니’ 하고 살살거리니깐 고게 보기 싫단 말예요.
그저께 저녁때도 점에 있으려니까, 누가 와서 찾는다기에 나가봤더니, 글쎄 요 깍쟁이로구려. 그래 밤낮 천하니 더러우니 하던 까페에로 이 신성한 아씨가 나 같은 여자를 왜 일부러 찾아왔나 했더니, 홍! 동무들하고 활동사진 구경을 가게 됐으니, 돈 일 원만 곧 좀 달라는구려. 그리고 오늘은 제법 날이 추운데 외투도 없이 퍽 고생될 게라고, 언제 제가 내 생각을 하고 날 위해주고 그랬다고, 바로 그런 소릴 다 하는구려. 흥! 고것도 다 내게서 일 원 한 장 뺏어가려고, 고 여우 같은 생각에서 나온 말이지.
예이, 요 여우 같은 년! 구미호 같은 년! 난, 너같이 배운 건 없어도, 그래도 고렇게 심보가 악하진 않다. 인제도 또 내게 할 말이 있니? 요, 재리* 깍쟁이 같은 년아!
3
흥! 왜 욕지거리 안하곤 말을 못하나? 말끝마다 참말이지 누가 욕이야?
그래 돈을 그렇게 잘 벌어서 부모 봉양 극진히 하고, 아우 공부까지 시켜주니 참말 장하시군 장하셔. 온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별 아니꼰 소릴 다 하지. 그래 자기가 날 학교에 너줬어? 학교 얘기가 났을 때, 대체 무슨 돈에 고등학교엔 보내느냐고 들입다 반댈 한 건 누구야? 그걸 다 어머니가, 그래도 그렇지 않다. 너는 공부를 못했지만 이까지 못 시켜서야 어쩌니? 아아무렴 힘이야 들지. 들지만 어떡하든 고등학교 하나만 마쳐노면 학교 교원을 다니더라도, 그 값어치는 벌어들일 게 아니냐?·……그래 아버지가 돈을 변통해다 가까스로 입학을 시켜주신 걸, 자기가 뭐 어쨌다고 큰소리를 하는 거야?
흥! 걸핏하면 자기가 바로 우리들의 희생이나 된 것처럼 떠들어 버티지만, 그래, 참말 자기가 하기 싫은 노릇이면야 단 하루라도 할 까닭이 있나? 술 먹고, 남자들하고 희롱하고, 그러는 게 자기는 역시 재밌어서 그러는 게지 뭐야? 그렇지 뭐야? 그래 참말 맘에 없는 게면 왜 가끔 밤중에 부랑자는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누가 언제 그런 짓까지 해서 돈을 벌어달랬어?
순이의 독설이 여기까지 미치면, 영이의 분통은 끝끝내 터지고야만다.
요년아. 네가 그예, 고걸 또 말을 하고야 말았구나? 왜 부랑잔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거냐고? 누가 언제 그런 짓까지 해서 돈을 벌어달랬느냐고?·……오오냐. 내 다 일러주마. 이년아. 네가 그랬다. 바로 네가 그랬다. 나더러 그렇게라투 해서 월사금을 만들어달라고 바로 네년이 그랬다. 까페에 여급질을 해가지고 무슨 수로 네 식구 밥을 끓여먹고, 옷을 해입고, 그리고 네년의 학비까지 댄단 말이냐? 그래 몸이라도 팔밖에 무슨 수로 다달이 네년의 월사금을 만들어준단 말이냐? 요년아. 바로 네년이 날 보고 그 짓을 하랬다·……
뭐요? 그만해두라고요? 동네가 부끄럽다고요? 이렇게 딸년을 망쳐논 게 누군데 그래요? 어머니요, 어머니야! 바로 어머니야. 툭하면 얘 쥔이 방세 재촉 또 하더라. 쌀이 떨어졌다. 나물 또 들여와야 한다. 김장도 담가야 한다·…… 나는 무슨 화수분*인 줄 알았습디까? 내가 무슨 수로 다달이 이십 원 삼십 원씩 모갯돈*을 만들어논단 말이요? 그걸 빤히 알면서도 나를 지긋지긋하게 조르는 게 그게 나더러 부랑자 녀석이라도 하나 끌어들이라고 권하는 게지 뭐야?
아아니야. 어머니도 조년하고 다 한패야. 다 한패야. 아버지도 한패야. 셋이 다 한패야. 그래 셋이서 나 하나만 가지고 들볶는 거야. 뭐 동네가 부끄러워? 동네가 부끄럽다고? 흐흐, 자기 딸년에게 별별 못할 짓을 다 시켜왔으면서, 그래도 동네가 부끄러운 줄은 알았습디까? 그래도 체면을 볼 줄은 알았습디까? 하 하 하 하 하·……
흡사 정신에 이상이라도 생긴 사람처럼 울고, 웃고, 열에 뜬 눈 속에, 육친에 대한 끝없는 증오를 품은 채, 이렇게 한바탕 영산*을 하고 난 영이는, 할 말을 다 하고 나자, 또 한 번 크게 웃고, 그리고 그대로 까무러쳐 버렸다.
4
영이는 그대로 보름이나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날 와서 주사를 한 대 놓아준 의사는 ‘임신 삼 개월’이라 말하고 돌아갔다. 깨어난 영이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마침내 뱃속에 들어 있는 아이의 ‘아버지’ 를 맞추어내었다.
결코 가난한 잡지사 사원이라던 그러한 사람이 아니라, 유복한 전기상회 주인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우선 다행하였다. 그는 이제까지도 그중 자기에게 은근한 정을 보여왔고, 또 그이면 능히 어린것과 함께 자기의 한평생을 의탁할 수 있을 게다. 나이는 좀 많아 올에 서른아홉이라든가, 갓 마흔이라든가. 하지만, 물론 나이 진득한 사람이라야 계집 위할 줄도 알 게다.
영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시 점에를 나갔다. 당장 그날그날의 밥거리를 위하여서도 돈이 필요하였거니와, 뱃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어린 생명을 위하여서라도 그는 이제 차차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렇게 돈을 탐내면서도, 그는 다시 ‘사내’들을 집 안에 끌어들이지 않았다. 전기상회 주인도 주인이려니와, 뱃속에 들어 있는 어린것을 위하여, 그는 이제부터라도 제 몸을 단정히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사내들은 차차 그에게서 떠나갔다. 그러나 정작 ‘애아버지’까지 그를 소원히 하기 시작한 것에는 영이는 참말 뜻밖이라, 슬프게 놀랐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여보면, 그것이 역시 그러한 남자들의 마음이었다. 불행에 익숙한 영이는, 그래, 이제 새삼스럽게 제 신세를 한숨지으려고도 안했다.
순산을 하였다고 기별을 하자, 남자에게서 오십 원의 돈이 왔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영이도 어린것도 만나보러 오지는 않았다. 물론 영이는 이미 무정한 남자를 심하게 탄하지 않았다.
‘오십 원’은 그가 예상하였던 것보다도 오히려 많은 금액이다.
영이는 그 돈을 긴하게 받아썼다.
5
영이가 이렇게 큰 시련을 받는 동안, 순이도 역시 그 생활에 변화를 가졌다. 그는 이내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때 영이가 그렇게 발악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저도 학교가 그만 시들하여진 모양이다.
학생적과는 달라, 순이는 마음놓고 유난스럽게 화장을 하였다. 그리고 인제 유명한 여배우가 된다고 떠들며 돌아다녔다. 한번 밖에 나가면, 대개는 밤이 제법 늦어서야 돌아왔다. 간혹 집에 붙어 있는 날은, 으레, 영이가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한두 마디씩은 한다.
사실, 무슨 각본 속에 그러한 구절이라도 있어, 그 소임을 맡은 순이는 부지런히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듯이나 싶게,
“저는 결코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제 제게르 돌아오실 날도 있겠지요. 오즉 그것을 한 개의 희망으로 저는 애기와 함께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애기를 위하여서는 여급도 그만두었습니다. 만약 저의 어머니가 그러한 일을 한다고 알면, 애기는 필연코 슬플 게니까요. 저는 집에 외로이 있습니다. 외로이 들어앉아 삯바느질로 그날그날을 지냅니다……”
사실 영이는 바느질을 맡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과 같이 순이 하는 말에 말대꾸를 하려 들지 않았다. 또 그의 하는 일에 전연 간섭을 안했다.
그러면서 다만 영이는 그를 한시도 쉬지 않고 관찰만 하였다.
어디 좀, 두고 보자. 나는 별별 짓을 다 하다가 이 꼴이 됐지만, 어디 너는 그래 얼마나 잘되나, 좀, 두고 보자. 흥!·…… 오늘 밤도 또 늦는구나. 크리스마스라고, 그래, 교회당에 간다고 초저녁에 나갔지만, 자정 넘어까지 뭣 하러 게들 있겠니? 흥!
내일 아침 일찍이 꼭 입게 하여달라는 교하부따에* 저고리를 끝내고, 마침 잠을 깬 갓난애에게 영이가 젖꼭지를 물렸을 때, 그제야 순이는 눈을 맞고 돌아왔다.
그는, 그러나, 곧 마루로 올라오지 않고, 잠깐 앞창 미닫이 밖에가 서서 망설거리는 모양이더니 마침내 방긋이 미닫이를 열고 그 틈으로 안을 엿본다.
영이는 모든 것을 눈치채고 반짇고리를 한옆으로 치웠다. 아이를 안아 들었다. 머리맡 벽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코웃음을 치고 영이는 안방으로 건너갔다.
전에 나는 그런 때마다, 네 이부자리를 안방으로 날랐다. 이번에는 마땅히 네가 내 이부자리를 나를 차례다. 흥!
순이는 형의 이부자리를 매우 거북스럽게 들고 건너왔다.
흥! 나는 너더러 월사금을 해달래진 않았다. 아니야, 혹 어머니가 집세 말이라도 했는지 모르지. 그러냐? 순이야·……
영이는 아우에게 그동안 지녔던 원한과 증오를 이 기회에 그대로 쏟아놓고 싶었다. 참말이지 속이 시원한 듯이 느꼈다. 내일 아침에 순이가 일어나는 길로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 좀더 속이 시원하라고 생각하였다.
잠깐 귀를 기울여보았으나, 건넌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불은 벌써 아까 끈 모양이다.
나는 언제든 그 이튿날 아침이면, 사내를 졸라 식구 수효대로 자장면을 시켜왔다. 참말이지 이 동리 청요릿집에서 시켜다 먹을 것은 그것 한 가지밖엔 없다. 하건만, 너는 그것을 더럽다고 한 번도 입에 대려 들지 않았다·…… 나는 그러나 내일 아침에 어디 한 번 맛나게 먹어볼 테다.
영이는 생각난 듯이 곁에 드러누운 어머니와 또 아버지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물론 지금 건넌방에서 순이의 몸 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을 게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놀라지 않고 또 슬퍼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이란 것이냐?’
갑자기 몸이 으스스 추웠다. 영이는 베개를 고쳐 베고 눈을 감았다. 어인 까닭도 없이 운동횟날 본 순이의 모양이 눈앞에 선하다. 그윽이 그것을 보고 있다 영이는 한숨을 쉬었다.
‘너마저 집안 식구에게 자장면을 해다 주게 됐니? 너마저 너마저……’
영이의 좀 여윈 뺨 위를 뜨거운 눈물이 주울줄 흘러내렸다.
『여성』 21호(1937. 12);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문장사 1938) ;
『성탄제』 (을유문화사 1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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