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시 50:14-15,22-23절
제 목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 구원을 보는 자
일 시 : 2024. 9. 4.
시편 50:14-15,22-23/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사업가들이 어떤 분야에 투자를 했는데 계속해서 적자만 본다면 적당한 기회를 보아서 투자를 줄이거나 그만둘 것입니다. 기업가들에게 이윤이 남지 않는 투자는 망하는 길입니다. 반드시 이윤이 남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주위에 문을 닫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이윤창출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장사가 잘 되고 돈벌이가 된다면 가게를 확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면 가게를 그만두게 됩니다. 모든 일에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어떤 사람을 버리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복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기업가들이 장사가 안되면 가게의 문을 닫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에게 영광이 돌려지지 않는 사람은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으시지만 천지만물과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학습문답서 2번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과 그 답변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인간의 존재목적을 모르거나 상실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하는 것마다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존재목적은 잘사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이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게 되면 실패하는 인생이 됩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본문에는 중요한 문장이 두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첫 번째는 나를 영화롭게 하리니 라는 문장이고 두 번째는 구원하다 또는 내가 너를 건진다 라는 문장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아버지로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 보니까 누구를 구원하시고 누구를 환난에서 건지신다고 했습니까? 나를 영화롭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삼성이나 현대나 SK 같은 대기업에는 계열사(지 회사)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윤을 남기지 못하고 적자만 내는 계열사는 팔아 버리고 이윤을 많이 남기는 계열사에는 더 많은 투자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업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내버려 두시고 무관심하시지만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에게는 구원으로 보상하십니다. 신구약성경 전체의 내용이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경배받기 위해서 솔로몬을 통해서 아름답고 거룩하게 만드신 예루살렘성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할 때 가차 없이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이방인에 의해서 불타고 무너졌습니다. 또한 자기 백성이라고 선택한 이스라엘백성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할 때 2천년 동안 전 세계로 흩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항상 깨닫고 실천해야 할 중요한 진리는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으로부터 계속해서 은혜와 복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까? 즉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됩니까? 본문이 소개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을 몇 가지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14-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는 세 가지입니다. 1) 첫 번째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지존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서원을 갚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1.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감사란 토다 라고 하는데 손을 펼침, 즉(함축적으로)자복, 고백, 또는 경배자들의 합창, 찬송(의 제사), 감사(제, 제물)라는 뜻입니다. 감사라는 뜻에는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들어낸다는 뜻이 포함되었습니다. 죄 용서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들어내어 그분을 영화롭게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다란 자바흐라고 하는데 동물을 살육하다(보통 제사에서), 죽이다, 드리다, 제사드리다, 살해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다란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다란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하나님께 어린 양 예수님으로 상징되는 짐승을 죽여서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어린 양 예수님께서 나 대신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생각하면서 전심으로 감사하는 그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예배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 예수님에 죽으심에 대한 깊은 감사가 내재되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배야 말로 전심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될 것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2.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서원이란 네데르 라고 하는데 서원, 명세, 서원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서원이란 하나님께 약속한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한 것이 곧 서원입니다. 갚으며란 솨람이라고 하는데 완성하다, 완전하다, 온전하다 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하나님이 신실하셔서 자신의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약속을 지켜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도 신실하신 하나님께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서원을 갚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즉 실실하시고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으로 믿고 인정해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약속해 놓고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실실하신 분으로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는 분으로 의심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실하시고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으로 100%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와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라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세 가지다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즉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라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세 가지 모두를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면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서원한 것도 갚지 않는다는 뜻이며,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릴 사람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환란이란 짜라 라고 하는데 역경, 고뇌, 비탄, 고난,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부르다란 카라 라고 하는데 부르다, 선포하다, 소환하다 라는 뜻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는 말씀은 역경과 고난을 만났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오직 하나님을 100% 신뢰하는 사람만 그렇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왜 환난을 당하게 하십니까? 우리를 괴롭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취미라서 그렇게 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의 친구요, 하나님의 파트너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과 연합하여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해서이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싶으셔서 입니다. 그런데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은 도무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모든 좋은 것을 누리도록 만들었는데도 하나님없이 모든 것을 자기 혼자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환난을 만나게 하십니다.
사사기를 보세요. 세 가지가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주변열강들에게 포로되고 억압을 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깁니다.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평안을 주시고 부요를 주십니다. 그러면 또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합니다. 또 환난을 당합니다. 사사시대의 미련한 이스라엘 민족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미련한 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미련한 일을 거듭 반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시대 사람들처럼 그렇게 미련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니까 나도 모르게 실수하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 즉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4. 결국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단 한순간도 하나님 없이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를 죄와 죽음과 마귀의 손에서 건져 주신 놀라우신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잊어버리다란 솨카흐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잘못 놓다, 즉 잘 잊어버리는(기억력이나 주의력 부족으로), 잊다(잊어 버리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물건을 함부로 놓아두고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성도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시16:8/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라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인의 마음 가운데 항상 임재 하여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과 생각에서 떠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며 그분의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시16:9-10/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와 기도와 성전을 멀리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멀리하는 순간 이미 고장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나타납니다. 자기는 엄청 잘하는 것 같은 데 멸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구원이란 예솨라고 하는데 자유, 해방, 번영, 안전, 구원, 승리 라는 뜻입니다. 단 하루도 하나님의 구원을 보지 못하는 날이 없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까? 어떤 방법으로 말입니까? 앞에서 소개한 네 가지 방법으로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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