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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 자는 내 아버지를 보았다
2014, 2, 2
요14 : 7-11
우리는 지난주까지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하시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고 실제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실제가 되지 아니하면 아름다운 이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주께서 “나는 길이라” 하신 말씀은 오직 주를 믿는 이들만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음으로 아버지께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주를 믿고 죄 사함 받은 이들에게만 주님은 아버지께 가는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 자신을 “나는 진리라” 하셨습니다.
주께서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천국복음과 주의 전하신 모든 말씀이 영원한 사실이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이 일은 영원이 변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주님은 진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또 “나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믿는 자안에 생명으로 들어와 계시는 분이십니다.
놀랍게도 예수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주가 들어와 계시는 것을 알고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 증거도 증인도 없는데 나만 이 말을 한다면 내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가운데 자기 안에 주님이 계시는 것을 증거 할 수 있는 증인들이 있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들 안에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증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그냥 믿는 이들이 아니요, 자기 안에 계시는 주를 알고 주로 말미암아 살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계시는 주를 알고 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신앙의 진수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빌립과 대화하신 내용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 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너희가 그 동안은 나를 본 것은 내 아버지를 본 것이요, 너희가 나를 안 것은 내 아버지를 안 것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갑자기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전에도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며 내가 한 모든 말은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요, 내가 행한 모든 행위와 이적은 아버지가 행하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께서 여기서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동안 제자들은 육체로 계시는 주님만 알았지 주님 육체 안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과 행하신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것으로만 여겨 왔습니다.
제자들은 그 동안 주께서 “내 말과 행함은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이다.” 하시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예수께서 아버지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성경대로 그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라고만 생각해 왔습니다.
그 동안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아버지께 들은 말씀을 전하시는 말씀이요, 예수께서 표적을 행하시는 것은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것을 행하시는 분으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순종하여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으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본문에서 하시는 말씀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한 모든 말씀과 내가 행한 모든 행위는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가 하신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시며 친히 말씀하시고 행하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도 신학교 다닐 때까지 예수께서 하나님 되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로 우리의 구원 주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분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성경에 보면서도 세상에 오신 그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우리의 구원을 성부 하나님이 세우셨고, 성자 하나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와서 복음을 전하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아버지의 계획을 완전히 이루셨고,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예수께서 이루신 일을 우리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믿음으로 우리들의 것이 되게 하신 것임을 깨달으며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완전히 갖게 된 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올라가면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실제로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을 알고 주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오면 그가 나를 증거 할 것이요,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통해 완전히 주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데 참 둔한 사람입니다.
빌립이 말하기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빌립은 계산도 빠른 사람이요, 머리도 잘 돌아가는 사도이었습니다.
그가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라고 하는 말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의 간절함이 묻어 나오지요?
그가 그 토록 하나님을 보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도 그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빌립의 말에 대답하여 이르시기를 “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섬기는데 온 마음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 안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보지 못했고 눈도 귀도 멀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옆에 계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도 우리는 눈도 귀도 멀어 있고 가슴을 둔하여 깨닫지 못합니다.
그 한 예를 들어보지요.
베드로 3장 12절에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라 하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께서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시며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합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눈이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뜻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거나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건져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의 귀는 항상 우리들을 향해서 열려 있으시다”는 뜻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격분하여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어찌 하든지 되갚아 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보살펴 주시는 것과 그분의 도우심을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당한 일을 자기가 갚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기 때문에 가장 좋은 때에 우리를 구하여 주신다는 진리를 확신하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인내하지 못하고 우리가 당한 일을 그대로 복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여 하나님이 보시는 눈앞에 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시는 이들은 우리의 모든 일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의뢰하고 신뢰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고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며 그들의 기도대로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우리 신앙생활 가운데 반드시 깨달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가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 보아 주셨습니다.
풀한 포기 나지 않고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광야를 이스라엘 300만명이나 되는 큰 민족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광야 길을 가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먹을 것만 구하고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다 주시지 않자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면서 하나님의 약속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대로 구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는 구하는 자는 다 받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가나안 땅의 경계까지 와서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그 약속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사도 베드로가 하나님은 그의 귀를 항상 우리의 간구에 기울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담대하게 기도하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을 실제적으로 의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30장 15절에서 “너희가 잠잠히 신뢰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라 ” 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 타고 도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의 모든 말씀에 눈이 감겨 있거나 아니면 본다 해도 아주 혼미한 상태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빛으로 말씀을 새롭게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말씀인데 오랜 세월 동안 아주 혼미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그 말씀으로 인하여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성령이 임하시고 주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 하시는 것을 깨닫고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새롭게 보고 깨닫게 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내게는 새롭게 보고 깨닫게 된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능력과 존귀와 영광과 생수와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을 더 알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세상 살아갈 양식과 지혜와 능력과 힘을 얻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은 오직 주의 말씀으로만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은 주 안에서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아버지를 깨닫지 못하고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하는 빌립의 말을 들으시고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절 말씀을 보면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동안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하시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가 한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요, 내가 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너희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나와 함께 이렇게 오래 동안 있으면서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계시면서 아버지께서 친히 행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예수님께 하늘의 신령한 능력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것은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고 말씀하신 그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말씀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이 땅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분명히 다른 분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10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내가 행하는 이적은 사람인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니라.”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형상이 없으신 영이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신다면 어떻게 나타내시겠습니까?
영이신 하나님께서 사람 되시는 예수님 안에 들어오셔서 친히 말씀하시고 또 친히 행하기도 하시면서 자기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사람이신 예수님 안에 계셨다는 그 증거는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그 표적을 통해서 증거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셨는데 옷 자락만 가득 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에스겔서와 요한 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보좌에 일곱 빛깔의 영광만 둘러 있고 천사들이 날개를 치며 찬양하는 것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그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의 육체 안에 오셔서 주님을 통해서 말씀도 하시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시며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하던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육체를 통해 이 땅에 자기를 나타나신 하나님의 형상을 비로써 보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오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친히 말씀하시고 병든 자들을 친히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친히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동일하신 그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진술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1장3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고 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시오,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분이시오,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진 분이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11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내가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시는 것을 믿으라,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 내가 행하는 그 일로 인하여 믿으라,”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마태복음 12장 13절에 보면 주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여자를 보시고 이르시되 “네 손을 네밀라,”하실 때 그 역자가 손을 내밀 때 곧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죽은지 사흘이나 되어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고 부르실 때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이 일을 행하신 이는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만물이 순종하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권세가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전하신 그 말씀대로 십자가에 달려 믿는 자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는 이들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이를 깨닫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