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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앞바다에 있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 한적한 포구에 가면 거대한 줄무늬 호박이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점으로 꿈을 그린 화가'라는 말을 듣는 일본의 설치미술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pumpkin)이다.
쿠사마는 호박도 훌륭한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박 조형물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지추미술관과 함께 나오시마섬의 랜드마크다. 쿠사마는 지금은 수식어가 필요 없는 세계적인 팝아트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몇 십만 원 이면 드로잉 작품을 살 수 있었다.
<쿠사마 야요이 '호박' 드로잉>
실제로 그림을 좋아했던 한 30대 직장인은 그의 판화를 갤러리에서 우연히 60만원에 구입해 10년간 감상한 후 1000만 원에 되팔았다. 쿠사마의 작품은 2010년 런던 크리스티에서 2천만 원대에 낙찰되었으며, 3년 뒤인 2013년에는 8천만 원대에 팔렸다. 국제 미술시장 분석회사에 따르면 쿠사마의 작품 가격은 2000년과 비교해 대략 20년 만에 열 배 이상 올랐다. 흥미로운 기사였다. '그림재테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예술은 아름다운 꽃이다. 생활필수품은 아니지만 꽃이 없다면 세상은 삭막해 보인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꽃을 보면 정서적으로 풍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마 그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곁에 두고 감상하다 보면 품격 있는 삶을 누리게 된다. 그림이 주는 소소한 행복이다.
그래서 나도 모처럼 짬을 내 칼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주말에 '갤러리청주(관장 나진묵)'를 찾았다. 이곳은 미술관이 아니라 화랑이다. 화랑과 미술관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림을 거는 목적이다. 미술관은 작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전시 공간이다. 작품을 소장함으로서 그 가치를 후대에 전하는 것도 미술관의 역할이다.
반면 갤러리라고도 불리는 화랑은 주로 작가의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공간이다. 작가와 작품 구입자 사이의 중개역할을 하고 작가들을 발굴해 육성하기도 한다. 갤러리청주는 상설전과 기획전을 하기도 하고 대관료를 받고 공간을 빌려주기도 하며 작품을 매매하기도 한다.
홈플러스 가경점 뒷편 신한은행 가경지점 8층에 있는 '갤러리청주'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설악산 설경을 거칠고 힘 있는 터치로 그린 묵직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설산(雪山)의 기운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 때 50대 중반의 관장님이 조용히 다가와 나긋나긋하면서도 기품 있는 목소리로 이 그림의 작가와 작품세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림을 감상만 하는 미술관과 달리 화랑은 손님에게 적절한 어드바이스를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고객은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도 어떤 그림이 좋은 작품인지 판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날 갤러리청주에는 올해 그림 경매시장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출품된 민병갑 화백을 비롯 이응로, 서세옥, 김춘옥, 유영국 화백등 국내 대표적인 작가의 그림이 예술혼이 농축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보는 것만 해도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같은 작가의 그림도 작품성과 그림 값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물방울을 하이퍼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리는 김창열 작가의 경우 같은 그림이라도 좀 더 사실적이고 밀도 있게 그린 1970년대 작품이 가장 인기가 있다. 또 물방울의 배경에 따라 그림 값이 다른데 훈민정음이 쓰여 있는 작품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거나 한문 또는 신문지를 배경으로 한 작품보다 비싸다고 한다.
서양화 1세대 작가인 도상봉 화백은 다양한 종류의 꽃을 그렸지만 라일락이나 안개꽃을 그린 그림이 더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같은 정보는 갤러리측에서 예술적 소양을 갖춘 전문가가 조언을 하지 않는 한 일반인들이 알기 힘들다.
갤러리청주는 손님들이 그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쉽게 설명해준다. 대만 유학파 출신의 저명한 서예가이기도 한 나 관장은 "그림을 알려면 먼저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자신의 취향과 기준을 세워 그림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분명 좋은 그림을 수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림은 누구나 감상할 수 있지만 그림을 소유하는 것은 나름 결심을 필요로 한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100만 원 이상을 그림에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애정을 갖다보면 작가와 작품에 대해 공부하게 되고 그림에 대한 지식과 안목이 높아진다. 쿠사마 야요이 의 판화를 산 직장인도 그랬을 것이다.
조선 정조때 선비 유한준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을 남겼다. 예술에 대한 명언이다. 갤러리청주에 가서 잠시 그림에 꽂히다 보면 영혼이 풍요해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내곁의 그림은 '꽃'이고 '힐링'이다.
<연락처 / 나진묵 관장 / 010-8847-8188>
출처/네이버블로그<박상준인사이트>갤러리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