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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내안에 살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살고 계신다는
뜻이다. 안수(按手)는 내게 베풀어져 있는 하나님의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것이다.
[디모데 전서 1:2절)믿음 안에서 내 친아들인 디모데에게 인사하노라.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恩惠)와 자비(慈悲)와 평강(平康)이 있기를 비노라.
0 - 1Timothy 1:2 Unto Timothy, my own son in the faith: Grace, mercy,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Jesus Christ our Lord. ]
[디모데 후서 1:2)사랑하는 내 소중한 아들 디모데에게 인사하노라.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자비와 평강이 있기를 비노라
0 - 2Timothy 1:2) To Timothy, my dearly beloved son: Grace, mercy,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Christ Jesus our Lord.]
성도들, 그 신부(新婦)는 교회의 지체들이다. 각 사람이 각기 별개이면서 남남이 아니라, 뗄 수 없는 한몸이고, 서로 돕고 서로 보살펴주고 세워주는 그런 관계다. 그리스도인은 몸 안에서, 한 몸, 한 믿음, 한분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특별한 관계다. 그러니까 지역교회가됐던, 영적교회으로 말하는 전체적 교회를 말하던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교회 안에서 한 믿음 안에서, 한몸, 그리스도 몸 안에서 특별한 관계라는 것을 한시도 잊으면 안된다. 교회생활을 무슨 사회생활하듯이 하는 것은 종교집단에서나 하는 짓이다.
바울과 디모데가 그런 관계였다. 그야말로 뗄레야 뗄 수없는 한 믿음 안에서, 한 몸 안에서 손발이였고 지체들이였다. 사실은 그 이상이였다. 왜냐면 바울은 디모데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주 안에서 형제된 사람, 믿음 안에 있는 형제, 또는 주 안에 있는 형제, 믿음의 형제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믿음 안에서 내 친아들이라고 불렀다. 또는 내 사랑하는 소중한 내 아들, 이렇게 불렀다. 그러니까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부르는 것과는 다른 호칭이였다.
바울은 디모데를 그냥 특별히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바울과 디모데와의 관계는 부자지간(父子之間)으로 불렀다. 바울은 수많은 서신서를 썼다.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히브리서등등이 지역교회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의 모임을 대상으로 썼다. 그런데 디모데 전후서만큼은 디
모데라는 한 특정 개인에게 보낸 유일한 편지들이였다. 아버지로써 아들에게 써보낸 편지였고, 바울이 생을 마칠
때 까지 지속 되었다.
사도행전 16:1~2절에서 쓰고있듯이 유대인 모친(母親)과 헬라인 부친(父親) 사이에서 태어났다. 바울은 그런 디모데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디모데 후서 1:3) 내 선조들 때부터 내가 순수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분께서는 내가 밤낮으로 기도 할 때마다 네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게 해주시느니라.
디모데 후서 1;4)네 눈물들 생각이 끌어올라서, 내가 하루빨리 너를 만나 기쁨으로 가득차기를 간절히 열망하며 기도할 때마다 그리하시느니라.
디모데 후서 1:5)네 조모(祖母) 로이스와 네 모친(母親) 유니케 안에 먼저 살고 있다가, 네 안에도 살고 있다고 내가 확신하고 있는 믿음. 네 안에 있는 그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에 떠올리며 내가 기도할때 그러하시느니라.
디모데 후서 1:6)그러므로 내가 너를 일깨우나니, 내 두손을 올려놓음으로써 네 안에 있게 된 하나님의 은사(恩賜)들을 너는 흔들어 깨우라.
디모데 후서 1:7)하나님께서 두려움의 이 아니라 권능의 영(靈), 사랑의 영(靈), 건전한 생각의 영(靈)을 우리에게 주셨느니라. ]
이 말씀에 의하면, 디모데의 할머니 로이스, 그리고 어머니 유니케는 바울이 디모데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거짓없는 믿음이 살고 있는 그리스도 신앙인들였다. 사람들 속에 '믿음이 살고 있다', 라고 표현한 것은 성경에서 오직 여기 한곳에만 나온다. '믿음이 살고 있다' 이 표현도 우리가 주목하고 넘어가야할 표현이다.
믿음( faith)이 무엇인가? 믿음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正義)가 정립(定立)되지 않으면, 믿음이 '내 안에 살고있다' 는 것을 이해 할 수가 없게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루고, 한몸이 되있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다. 믿음이 내안에 들어 와 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와 사신다는 표현이다. 만약, 믿음( faith)를 '내가 믿은 것이 믿음이다'라고 말한다면 내 지식(知識)이고 신념(信念)일 뿐이지 그게 어떻게 내 안에 들어와 살겠는가?
디모데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케는 바울이 디모데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들어와 살고 계신 이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였다. 그런데 디모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만나기 전에는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있었다. 바울이 분명히 '내 두손을 올려놓음으로써 하나님의 은사(恩賜)가 네게 있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은사(恩賜)란 각사람에게 각기 다른 달란트로 주어지는 선물을 말하는게 아니다. 무슨 치유의 능력이라든, 예언의 능력을 말하는게 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普遍的)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 영원한 생명, 성령 , 하나님의 의(義), 또는 진리의 말씀, 또는 믿음, 이렇게 구원(救援)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총칭해서, 여기서 하나님의 은사다,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고린도 전서 7장에서 보면, 각사람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고유의 은사가 있어서 이 사람은 이런식으로 말하고 저 사람은 저런 방식으로 행한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런 은사(恩賜)를 말하는게 아니다.
[고린도전서 12:4) 은사(恩賜)들은 여러 가지지만 그러나 성령께서는 한 분이니시니라.
고린도전서 12:5)또 베풀어지는 것들은 갖가지로 다르다. 그러나 베푸시는 주께서는 한 분이시니라.
고린도전서 12:6)그리고 다양한 활동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이시니라.
고린도전서 12:7)성령의 나타나심이 각 사람에게 베풀어져서 모두를 이롭게 해주시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2:8)그래서 누구에게는 성령에 의해서 지혜(智慧)의 말씀이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같은 성령에 의해서 예지(叡智)의 말씀이 주어지며
고린도전서 12:9)누구에게는 같은 성령에 의해서 믿음이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치유(治癒)의 능력이 주어진다.
고린도전서 12:10)누구에게는 기적의 역사(役事)함이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예언(豫言)의 능력이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영(靈)들의 분별력이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다양한 방언들, 또 누구에게는 방언들의 통역(通譯)능력이 주어지지만
고린도전서 12:11)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당신께서 뜻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따로따로 나누어주시는 가운데, 동일하신 그 한분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은사(恩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선물로 나눠주신 각기 다른 재능들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또 로마서 5:13~19절의 말씀을 보면,
[로마서 5:13) [사실 율법 이전에도 세상에는 죄(罪)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는 때에는 죄가 씌워지지 않느니라.
로마서 5: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에서 모세에 이르기까지도 죽음이 군림(君臨)하고 있었나니 장차 오실 분의 표상(表象)이었던 아담의 범죄와 유사는 죄를 짓지 않는 자들에게까지도 그러하였느니라.
로마서 5:15)그러나 범죄가 그랬던 것과는 달리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 또한 있느니라. 이는 한사람의 범죄를 통하여 많은 자들이 죽어있을지라도 훨씬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 한사람 덕에 은혜로 베울어지는 선물이 많은 자들에게 넘치게 되었음이라.
로마서 5:16)그 선물은 죄지은 한 사람으로 인한 것과는 다르나니 한 사람으로 인한 심판은 정죄에 이르게 하였지만 많은 범죄로 인해 거저 주어지는 선물은 의롭게 되게에 타당하다고 인정받기에 이르도록 하느니라.
로마서 5:17)그래서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한 사람을 통해 죽음이 군림(君臨)할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한분 덕에 넘치는 은혜와 의(義)의 선물을 받는 자들이 그보다 훨씬 더 생명 안에서 군림하여야 하느니라.
로마서 5: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정죄에 이르게 하는 심판이 모든 사람들 위에 이르렀듯이 한사람의 의로 인하여 생명을 받기에 타당하다고 인정받게 해주는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 모든 사람들 위에 임하였느니라.
로마서 5:19) 실로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자들이 죄인들이 되었듯이 한사람의 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자들이 의로워질 수 있게 된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받는 공통적인 은혜를 말한다. 내가 네 머리 위에 두손을 얹음으로써 네 안에 있게 된 이 은혜, 그것을 흔들어 깨어라. 어떤 특별한 재주를 썩히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요컨대,네 안에 성령이 들어와 계시자 않느냐?내가 너한테 머리위에 손을 얹음으로써 네가 비로소 그때 구원받고 성령께서 네 안에 들어 오시지 않았느냐? 그 성령 잠재우지 말고 활동하시게 하라는 말이다.
구원(救援)받았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다는 뜻이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서 그분과 한몸이 되므로써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生命)을 지니게 되었다는 뜻이다.내가 받고 안받고 할수 있는게 아니라, 그분 안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그분의 생명이 내 생명이 된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말로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디모데후서 1:6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물이 자기가 디모데에게 손을 얹음으로써 디모데가 구원들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안수(按手)누군가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모든 고난을 너와 함께 하겠다"는 각오와 마음가짐의 영(靈)을 그에게 쏟아 붓는 행위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제로 전달하는 과정이고 모든 것을 다해서 사랑하는 사랑을 약속하는 행위다. 안수는 기본적으로 내게 있는 것, 내게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모든 선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전달해주는 것이다. 레위기1장,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규정인데 안수(按手)에 대한 규정이 나온다.
레위기 1:4) 그 번제물의 머리에 그의 손을 얹어야할지니 그래야 그 번제물이 그를 대신하여 받아들여져서 그를
위하여 속죄(贖罪)하게 되느니라 ]
번제물에 안수(按手) 함으로써 내게 있는 죄(罪)를 그 번제물에 전가시킨다, 모든 죄들을 그 제물에 전가시켜야만, 그 제물이 내 모든 죄들을 속죄(贖罪)하는 제물로써 받아들여진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똥같이 더러운 제물, 내 모든 죄(罪)들이 묻어있는 제물을 받으신다. 그러니까 레위기 1:4절에서 말하는 이 안수는 내 죄를 다른 무엇에게가 전가하는 것이다.
물론, 속죄를 위한 짐승 제물이니까 그렇게 하지, 사람에게 안수해서 내 죄를 전가할 수는 없다. 어떻게 사람에게
안수해서 내 죄를 전가할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 안수해서 내죄를 전가시키는 행위는 사람을 죽여서 사람을 번제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성경에서 금하고 있다. 하지만 이교도들은 사람을 죽여서 제물을 받치는 짓을 했다.
사람에게 하는 안수는 무엇이든 간에, 내게 있는 하나님의 선한 것을 주는 행위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있는 나쁜것은 내가 받는 것이다. 안수는 고통없는 평강, 내 안에 있는 평강을 주는 것이다.
신명기 34:9)그리고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지혜(智慧)의 영(靈)으로 충만하였으니, 이는 모세가 그의 손을 그의 위에 얹었기때문이었느니라.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에게 귀를 기울여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던대로 실행
(實行)하였느니라.]
여호수아가 지혜의 영으로 충만했는데,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라 모세 안에 있었던 지혜의 영이 안수를 통해서 전달되었다. 안수(按手)는 내게 베풀어져 있는 하나님의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그러면 내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가?
신명기 34:9절에 의하면 모세의 경우는 지혜(智慧)의 영(靈)이였고, 디모데후서 1:7절은 바울의 경우 그것은 권능의 영, 사랑의 영. 건건한 생각의 영(靈)이였다. 요컨대 성령(聖靈),성령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들이 한두가지뿐이겠냐만은 구원이다, 영원한 생명이다, 예지다, 하다 못해 육신적 은혜, 물질적 은혜까지도 선물은 모두가 성령을 통해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 선물들은 성령이라는 한마디 말로 집약되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은 바람과 같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만 전기와도 같다.그래서 전기는 전선을 이어야만 전류가 흐른다, 안수는 전기가 흐르도록 전선을 잇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 머리 위에 손을 얹는 행위 만으로 안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안수는 내 안에 계신 성령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게 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상대방 안에 있는 것이 내게 흘러들어 오게 하는 쌍방향 소통이다. 전기 줄에 흐르는 전기는 플러스, 마이너가 동시에 흐른다.
내게서 가는 전기는 플러서, 거기서 빠져나오는 전기는 마이너스 전기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듯이 그리고 빠져나와야 그 병자가 나한테 옮겨와야 치유의 권능이 흘러 들어간다. 그래서 병자를 위해서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려면 그 병자의 병을 내가 떠 안을 각오하고 머리에 손을 얹어야 한다, 안수는 대속하는 것이다.
내가 대신 짊어지는 것이다. 기도가 그렇다. 사실 안수 할 필요없다.왜냐면 기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요즘 스마폰이나 무선 가전 제품들은 전기줄 없이 전기가 흐르고 있다. 그와 같이 기도가 정말로 순수하고 뜨거운 열망으로 진실한 기도라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성령으로 연결해준다. 무선으로 전기가 흐르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기도만으로도 충분하다. 기도는 가장 쉽고도 가장 효과적인 안수다. 그런데 그 기도가 진실해야 한다. 정말 간절하고 순수하고 뜨거운 열망으로 펄펄 끓는 기도여만 쌍방의 소통이 이루어지듯이 성령이 오가는 것이다.
병자를 위해서 , 고난에 처한 형제들을 위해서하는그 기도가 정말로 순수하고 간절하고 뜨거운 열망으로 드리는 진실한 기도인가?그래서 내게 주어져있는 하나님의 은혜들을 정말로 그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가? 아니, 그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질병, 그에게 임하여 있는 고난들을 내게 흘려들어오게 할, 내가 떠안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성령께서 반드시 두사람 사이를 잇고 역사하시고 기도응답을 반드시 받게 된다.
성령께서 모든 권능으로 역사하신다. 바울은 이런 안수를 통해서 자기에게 있는 성령을 디모데에게 흘러가게 했고 그에게 생명을 주었고, 구원으로 인도했다. 그래서 디모데는 바울이 낳은 진짜 아들이였다. 디모데가 육신적으로는 그의 어머니 유니케의 아들이였지만, 유니케는 디모데에게 있어서 죄(罪) 안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예사람, 디모데의 어머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있어서 모든 죄들이 말소되고 영원히 살수 있는 그리스도로 낳아준 어머니였다. 디모데에게 있어서 바울은 그런 어머니였다. 물론 모든 죄들을 탕감하고, 용서하고 말소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