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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2014. 11,02.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 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장 14∼17절>
우리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살고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는 우리 몸의 감각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는 물질세계를 말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의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 같이 PPT를 보십시오. <인간은 영(spirit)이며, 혼(soul)을 가지고 있고, 몸(body) 안에 살고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영을 통해 그의 실재 존재영역인 영적세계와 접촉합니다. 그리고 몸을 통해서 물질세계와 접촉하며 살고, 혼을 통해서는 지적영역과 접촉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혼의 세계와 영의 세계 곧 mind와 spirit 을 잘 구분하지 못함으로 인해- 신앙생활에 큰 혼란과 어려움을 초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어떻게 서로 다른 것입니까? 혼의 기능인 mind는- 몸의 오감을 통해서, 보이는 세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그것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지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mind는 어디까지나 보이는 세계만을 분별하는 지각기능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계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우리의 죽은 영을 다시 살려서 거듭나게 하셨는데 이것이 영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이 새 피조물이 영인 것입니다. 이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사는 진짜 <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은 내 마음과 내 몸과는 구별되는 진짜 나인 것입니다. 한 번 더 복창하겠습니다. <인간은 영(spirit)이며, 혼(soul)을 가지고 있고, 몸(body) 안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영의 사람은 몸을 가지고 물질적인 세계 속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영적인 세계를 인식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갖는 지식도 두 근원에서 나옵니다. 혼의 지식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보는 감각적인 수단을 통해서 얻은 지적이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지식 등 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영적인 세계에서 오는 계시의 지식이 있습니다.
이 계시지식은 성령 하나님이 열어서 보여주시는 성경지식으로서 우리 감각이나 이성을 통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이것은 오직 은혜를 입은 자들만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 참된 진리를 알아야 함.
똑같은 사물을 볼지라도 그 사물에 대한 참된 진리가 있고/ 거짓된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선악과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선악을 아는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된 진리요, 참된 정보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똑같은 선악과를 보고도 ‘네가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고 거짓정보를 흘려서 속임질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과/ 마귀가 주는 거짓말 사이에 끼어서 고민하다가/ 마귀의 거짓말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에서 떠나 사망권세 아래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을 지배하는 마귀의 거짓말이 공존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배우고 확신한 일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항상 의식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여 주신 그대로-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은 예수님뿐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범죄로/온 세상이 죄 가운데 멸망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을 때/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으며/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심으로/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새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구원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뭐라고 말합니까? 그는 유대인의 선생이요, 개혁가로서/ 정치적 혁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어느 것이 참말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지식입니까? 아니면 세상이 주는 인간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입니까? 우리가 올바른 진리를 깨닫고/ 올바른 지식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지만/ 세상이 말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혁명가요, 철학자요 이상주의적인 정치가로서 실패하여 십자가에 처형당했다고 생각하면/ 예수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고, 구원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12절-13절을 보시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자들이니라.”고 말씀해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으면/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되지만/ 사람의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멸망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대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 대로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에는 하나님이 보시는 눈이 있고, 마귀와 세상이 보는 눈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이 있고, 마귀와 세상이 가르치는 지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혼이 아닌 영의 눈으로 본 지식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십시오. 블레셋이 골리앗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이스라엘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골리앗의 호령소리에 겁먹고, 절대로 골리앗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다윗은 이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 다른 결론이 나온 것입니까? 사울은 골리앗을 대장군이라고 말했는데/ 다윗은 내가 사자나 곰을 친 것처럼 내손에 죽을 자라고 말한 것을 봅니다. 바로 여기에 서로 다른 두 관점이 있음을 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담대한 믿음의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과 마귀에서 오는 패배적이고 절망적인 지식입니다. 어느 것을 믿어야 됩니까? 사울은 세상과 마귀가 주는 패배적인 지식으로 인해 위축되고, 뒤로 물러나 있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지식을 가지고, 물맷돌로 골리앗을 쳐서 죽이고 이스라엘을 대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과/ 세상과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은 이토록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서 배우고 확신한 삶의 길로 가야 합니다. 말씀은 환경과도 다르고, 감각과도 다릅니다. 이성과 지식과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절대주권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들이고 확신 가운데 사셔야합니다. 우리 감각으로 하나님을 인지할 수 없다고/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하나님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보이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환경 때문에 뒤로 물러가고, 감각으로 느낄 수 없다고/ 인간적인 지식이나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폄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지식이 있습니다. 말씀에서 배우고 확신한 것에 거하여 믿음으로 굳세게 살아야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기능합니다. 이성이나 감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위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고등수학을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의 원대함을/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인간의 지식으로 평가하고 평론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대로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하는 지식은/ 허위 날조된 거짓말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이 계시로 주어진 이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모든 일들은/ 마귀의 허위 날조된 거짓 지식인 것입니다.
미국 FBI 존 애드가 후버는 29세에 FBI의 국장이 되어서 무려 48년 동안이나 국장으로 일했습니다.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당대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그가, 한 말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오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이는 내일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세계적인 범죄학자요, 미국 FBI 국장이 되어 48년 동안 범죄 세계를 들여다본 사람이 한 말입니다. 그는 체험과 통계를 통해서 <오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이는 내일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왜 그런 말을 한 것입니까? 범죄를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아닌/ 세상의 허위 날조된 지식으로 살기 때문에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바른 지식을 배우고 확신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2.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렇습니다. 영적진리는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최고등의 지식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지식으로서/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 마르다와 마리아를 데리고 갔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무덤에서 썩은 냄새가 납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고서 “무덤 문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주님, 오라버니가 죽어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환경이 주는 정보를 받아 들였습니다. 곧, 썩은 냄새가 난다는 감각적인 정보를 받은 겁니다. 이 정보는 죽은 오라버니가 절대로 살 수 없다는 인간적인 지식이 주는 정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무덤 문을 열어젖힌들 무얼 하시겠다는 말입니까?”라고 환경과 감각과 인간의 지식에 완전히 갇혀 부정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들은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마르다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환경과 감각과 인간의 지식은 단지 혼으로 판단하는 영역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으로, 믿음으로 기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과 감각과 이성으로만 살았던 마르다와 마리아가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을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무덤으로 나아가 돌을 옮겨 놓으려고 한 것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왜 그런 이상한 짓을 하느냐?”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무덤의 문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무덤 앞에 서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셨습니다. 이것은 차원 높은 창조적인 명령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실 때 빛이 있었고,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겨나라” 하실 때, 생겨났던 창조주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죽은 나사로가 수의를 동인 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마 나사로란 이름을 호명하지 않았다면 그 음성을 들은 모든 사람이 살아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이 아닌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는 질문에 “네! 주님의 부활과 함께 믿는 자의 부활도 믿습니다.”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 이외에는 우리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심으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것에 굳게 서야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온갖 방법으로 우리에게 압력을 가합니다. 인간적인 지식과 환경과 감각을 통하여- 거짓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항복하도록 압박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냥 팔짱끼고 구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당장에 달려들어 우리 생각에다 ‘야! 네 환경을 좀 봐라. 어림도 없는 소리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허무맹랑한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너는 지성인이다.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라. 그건 안 된다.’고 내 생각에 맹 폭격을 가할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이고 마귀의 말에 항복하면/ 그때부터는 아예 내 속에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역사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귀의 거짓된 지식에 저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난 살아도 믿고, 죽어도 믿는다. 흥해도 믿고 망해도 믿는다.”라고/ 일단 내가 하나님과 한 팀이 되어서 하나님 가는 길로 나도 가겠다고 결단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면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나는 새 피조물이다’고 믿어야 합니다. 중간에 가다가 의심하고/ 뒤로 물러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한번 믿기로 작정했으면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마치 부부가 결혼하면 이혼이란 더 이상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일단 결혼하면, 무덤에 갈 때까지 가야지/ 헤어지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너무나 쉽게 헤어집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한번 출발했으면 끝까지 가야 합니다. 좋아도 가고, 나빠도 가야 합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회 때, 발을 묶어서 함께 뛰는 것처럼/ 자빠져도 다시 일으켜 세워서라도 가야합니다. 주님과 함께 뛰기로 결단했으면/ 끝까지 함께 뛰어야 합니다. 마귀가 아무리 꾀어도 말씀의 띠를 풀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말씀의 띠를 묶고/ 주님과 함께 뛰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1- 24절에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확신한데 거하라.
이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배우고 확신한 일로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확신하고 사는 것은 사실상 많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을 확신하고 계시죠?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또,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오고 또다시 봄이 온다는 것을 확신하시죠? 여기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배우고 확신 한 일에 거하면/ 아무리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고, 마귀가 흔들어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변함없는 진리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서적으로 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배우고 확신 한 일에 거하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바늘구멍에 황소바람 들어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허름한 초가집에 문풍지를 붙여 놓은 집이 있는데/ 창문에 조금만한 구멍이 뚫어져도 바람이 불면 그 작은 구멍을 통과할 때 속도가 굉장히 빨라집니다. 그래서 겨울철에 바람이 불어오면 바늘구멍에 황소바람이 불어와 밤새도록 추워서 벌벌 떨며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어떻게 합니까? 빨리 바늘구멍을 막아야합니다. 바늘구멍만한 작은 의심이라도 마음에 들어오면/ 마귀가 그것을 통해서 황소바람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의심을 막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굳게 서야 합니다.
모세가 홍해를 눈 앞에 두고 어떻게 했는지를 보십시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단호하게 믿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홍해 앞에 왔을 때, 바로 왕이 수많은 병거를 동원하여 질풍노도처럼 쫓아오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고, 아비규환의 절망에 처했었습니다. “모세야! 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홍해에 데리고 와서 다 죽게 만드느냐?”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흔들렸습니까? 모세가 “아이고 어찌할꼬! 하나님이여 어디 계시나이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요동을 하고 혼비백산하여 부르짖어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외친 것입니다.
얼마나 단호한 고백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그는 의지했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요동치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싸우시는 것을 보라. 오늘 내가 본 저 거대한 애굽의 군대를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과연 그의 믿음대로 하나님이 홍해를 열어 가르셨고/ 이스라엘로 건너가게 하셨고/ 그 뒤를 따라오는 애굽 사람을 전부 수장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삶, 이것이 배우고 확신한 것으로 사는 삶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을 보면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도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 이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으로서/ 보이는 것으로 하지 않습니다. 오직 말씀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마귀의 거짓말을 확고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의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만질 수 없어도 오직 말씀만을 의지해서 확고하게 서야 합니다. 의심하는 자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아무것에도 정함이 없어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모든 환경을 격파하고, 모든 감각을 격파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을 다 격파하고/ 오직 예수 중심으로- 말씀 중심으로 확고하게 서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오직 말씀 위에만 서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야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사막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말씀위에 서서 승리만 생각하고 말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선택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의의 표현이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선택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 걸작들입니다. 우리의 영 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 우리 안에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약속이 아브라함의 씨인 나와 여러분을 향한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축복 그 자체인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운반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은 축복을 받고 뿐만 아니라 우리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들입니다. 승리의 삶을 살고 특별한 성공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은 이미 완벽하게 갖추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더 분명하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나를 인해 기뻐하신다는 사실에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 안에 놀라운 하나님의 아들의 씨를 심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확신을 세우는 말씀만을 배우시고 확신한 것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마르틴 루터는 ‘진리 안에서 성경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지나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나의 성실성과 존경심과 봉사심은 어려서 성경 말씀을 듣고 믿은 것에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백화점 왕 워너 메이커는 “내가 12살 때 2달러 50센트를 주고 성경을 샀는데 그 성경 때문에 오늘 내가 백화점 왕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를 움직인 사람/ 세계를 변화시킨 사람은/ 모두가 말씀을 사랑하여 말씀을 읽고 배우고 확신한데 거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