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불수 할아버지 목욕시켜드리는데 갑자기…"-1
['다섯 살' 노인요양보험, 어디로 가나?‧②] 재가 요양보호사들의 목소리
지난 1일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만 4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섯 살 생일을 마음껏 축하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태동한 이 제도가 지닌 선한 취지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제도 이용자 처지에선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심각하다. 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들은 기본적인 노동 인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섯 살'짜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그냥 버릴 수는 없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이 말은 이 제도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좋은 제도는 왜 '애물단지'가 됐을까.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놓인 현실은 정치권에서 구호로만 떠도는 복지 담론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프레시안>은 일선에서 복지 업무를 수행하는 요양보호사의 현실을 짚으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 '다섯 살' 노인요양보험, 어디로 가나?
①"깨물리고 따귀 맞으며 밤샘 근무 한 대가가 125만원"
경기도에 사는 40대 후반의 여성 A씨는 얼마 전 일을 사나흘 쉬어야 했다. 뙤약볕 아래에서 두 달간 밭일을 한 탓이다. A씨는 농민이 아니다. 그런데도 더위를 먹을 정도로 밭일을 한 건 A씨가 돌보는 대상자의 가족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A씨는 재가 요양보호사다.
A씨의 대상자는 투석 치료를 받는 할아버지였다. 대상자 집을 찾은 A씨에게 할머니가 밭에 가자고 말했다. "안 되는 건 줄 알지만 도와달라." 풀 뽑고, 물 주고, 비닐하우스에서 고추 일도 하는 등 예정에 없던 농사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나무에서 매실을 하루에 13킬로그램 딴 적도 있다."
밭일을 하면서 새 필수품이 생겼다. 수건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일할 때 필요한 물품이다. 기자와 만난 날에도 A씨 손가방에는 수건이 들어 있었다. 밭일 할 때 생긴 습관이다.
A씨는 자신이 속한 복지센터에 농사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얘기해 봤자 해결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요구를 거절하면 대상자가 다른 복지센터로 갈아탈 것을 우려해) 나 대신 다른 요양보호사를 보냈을 것이다. 내 일자리만 없어졌을 것이다."
요양보호와 관련 없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A씨에게 낯설지 않다. 지난해 여름, 대소변을 못 가리고 누워 있는 여성을 석 달간 돌볼 때도 그랬다. A씨가 한 일은 밥을 떠먹이고 대상자를 씻어주는 본연의 업무만이 아니었다. "그 집 할머니가 교회에 가면서 '텃밭에 물을 줘라'라고 이야기했다. 어쩌겠나. 줄 수밖에." A씨는 대상자를 돌보다 때때로 투정을 부리는 대상자의 발에 차이기도 했다.
또 다른 집에서는 마당은 물론 집 주변의 풀을 뽑고 거미줄도 제거해야 했다. "화장실이 실외에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대상자가 대소변을 못 가려 마당 곳곳에 대소변 흔적이 있었다. 그래서 마당의 풀을 뽑을 때 주방에 있던 일회용 장갑을 끼고 했다. 그랬더니 물건 함부로 쓴다고 타박하더라."
물론 A씨가 돌본 대상자의 가족이 모두 가욋일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파출부가 아니니 반찬을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 이도 있다. 그러나 이런 건 드문 일에 속한다.
성적 모욕감을 느끼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A씨는 몸의 반쪽을 못 쓰는 80대 할아버지를 돌볼 때 상황을 이야기했다. "목욕을 시켜드려야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속옷을 내리고는 욕실 밖으로 나갔다. 내가 머리를 감겨주고 몸에 비누칠을 해줬다. 그런데 타월이 할아버지 가슴 쪽으로 가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헉헉' 하는 신음소리였다. 할아버지가 날 보며 '조금만 더 해달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부터는 욕실 문을 열어뒀다."
A씨는 "생계를 위해 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잘 못 가누는 할아버지를 부축해 화장실에 모셔가 바지를 내려주거나, 소변통을 대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힘든 일이다."
A씨는 2010년부터 재가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장애인 봉사를 하다가 "부푼 꿈을 안고"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자격증을 딴 후에도 한동안 일을 구할 수 없었다. 일할 곳을 안정적으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재가 요양보호사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또한 A씨는 급여를 며칠 늦게 받기도 하고, 다 못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기자와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A씨는 체불임금 문제로 통화했다.
대상자와 센터의 압박에 짓눌린 재가 요양보호사…안정적 일자리 찾기 어려워
서울에서 일하는 재가 요양보호사 B씨(50대 여성)도 안정적인 일자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상자가 입원하거나, 대상자 혹은 그 가족이 복지센터를 갈아타면 요양보호사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B씨는 요양보호사의 급여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재가 요양보호사들은 시급을 받고 있다. 복지센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시급은 대부분 7000원 미만이다. B씨의 시급은 5000원대다. 오전에 4시간씩 일한 지난달, B씨의 손에 들어온 돈은 56만 원이다. 급여 명세서에 57만 원이 찍힌 A씨와 대동소이하다. B씨는 "하루 8시간 기준으로 한 달에 적어도 130만 원은 받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달라는 말이다.
B씨는 2009년부터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성추행을 당하거나 성적 모욕감을 느낄 만한 일을 겪은 적은 없다. 하지만 요양보호 이외의 일까지 한다는 점에서는 A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상자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상을 차려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를 요양보호사가 아니라 피고용인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B씨는 대상자 측에서 자신을 가리켜 "도우미"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이외에도 대상자 가정의 노인들이 하는 부업을 도와주기도 한다. "옆에 있으면서 모른 척하기 어렵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할 수밖에 없다."
B씨는 동료 요양보호사들 중에 "대상자는 물론 그 가족들을 위해 김장을 담그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대상자 쪽에서 일거리를 만들어놓는다. (요양보호사가 오는 날에는) 그 집 며느리가 설거지도 안 하고 나가는 일도 많다."
대상자를 돌보다 보면 B씨는 "기를 다 뺏긴다." '이 일을 빨리 정리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그만둬야지' 생각하는 요양보호사가 많다. 국가 공인 파출부를 누가 하고 싶어 하겠나? 그냥 파출부를 나가도 이것보다는 대우가 좋을 것이다."
B씨는 일하며 겪는 고충을 가족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현실은 요양보호사로서 자긍심을 느끼며 일하는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B씨는 요양보호사들이 본연의 업무만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요양보호 문제를 시장에 내맡기지 말고 "지자체가 공공기관을 만들어 요양보호 업무를 전담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대상자 및 그 가족이 '들어주지 않으면 다른 복지센터로 옮기겠다'며 무리한 요구를 하고, 복지센터에서는 요양보호사에게 그 짐을 떠넘기는 일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다. 이는 이용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