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기 연속극의 아쉬움
임병식 rbs1144@daum.net
과거 80년대와 90년대 방영된 농촌드라마는 참으로 인기가 많았다. 양대 방송사 MBC와 KBS가 내놓은 ‘전원일기’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단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중에 전원일기는 1980년에 시작하여 2002년까지 무려 22년에 걸려 1,088부작을 내보냈다. 그리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1990년 9월에 시작하여 2007년까지 17년간 안방을 찾아갔다.
그러는 동안 전원일기는 작가가 수차례 바뀌었다. 그렇지만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작가가 대본을 책임 졌다. 대단한 일이다.
그러한 연속극 중 나는 최근에 극중에서 연기를 했던 배우들 중에서 세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된 연기자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전원일기 출연자는 17명이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7명이었다.
그걸 보면서 특별히 눈길이 가는 것은 지금의 내 나이에 견주어 보아, 세상 떠난 배우들이 나보다 오래 산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걸 보고서 놀라게 된다. 최불암의 모친역할로 우리에게 친숙한 정미란 배우는 78세에 세상을 떠나고, 이웃집 단골 할머니 역을 도맡은 김지영 배우도 역시 같은 나이에 떠난 것이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출연배우도 마찬가지다. 이일웅 배우만이 나보다 나이가 한살 많아서 80세에 사망하고, 단골 마을이장 이던 김상순 배우는 77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고 보면 배우라는 직업은 남이 보기에는 편해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을 알 게 된다. 아마도 자기의 삶을 사는 이외, 타인의 인생까지 연기를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두 배로 받은 때문인지 모른다.
타계한 연기자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귀에 익은 김무생, 김자옥, 박윤배, 김인문, 박용식 제씨들이 있다. 그밖에 출연진 중에는 너무나 안타깝게, 40도 채 넘지 못하고 떠난 사람도 3명이나 있다.
두 연속극은 모두 농촌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소재로 삼았다. 그런 만큼 농촌출신인 내게는 익숙한 광경인데, 그중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작가가 나와 동향인 보성출신인 양근승 선생이어서 연출한 극중 분위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인물묘사도 마치 어디서 본 듯한 인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농촌 드라마는 마침내 소재고갈로 막을 내렸다. 워낙 오랫동안 방영하기도 했지만 농촌 생활이라는 게 무한정으로 극적인 변화를 꾀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비슷한 내용을 반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하면 시청자들이 식상해 할 것이기에 작가로서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어느 작가인들 좀 더 멋있고, 리얼한 광경을 그려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충을 이야기 하면서 이야기의 전개가 상당부분 밍밍하게 흐르고 농촌현실의 핵심을 구석구석 리얼하게 집어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작가의 입장에서야 보다 리얼한 것을 엄두에 두었을지라도 헌장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남감해하거나 회사측 입장에서 제작비가 많이 추가되는 어려움도 있어 건너뛰었을 수도 있다.
아쉬운 부분 몇 가지 언급하면 이런 것이다. 농촌에서는 모내기와 김매기, 김쌈 하기, 그리고 추수하기, 풀베기, 새끼 꼬기, 멍석 만들기, 쟁기질하기, 이엉 얹기 등이 핵심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미처 놓친 부분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양대 방송에서는 그런 사실적인 알짜배기 농촌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했다. 그냥 수박겉핥기 식으로 사건 중심의 이야기를 풀어간 것이 고작이었다. 좀 더 실상을 핍진하게 접근하여 보여주었더라면 방송분량도 훨씬 더 늘어나고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을 텐데 그러질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모내기는 한해농사의 시작이다. 모판에 볍씨를 뿌려 기른 모를 쪄내어 무논에 던져놓고, 못줄 앞에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자, 저’하는 구령에 맞추어 심어나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생동감의 극치이다.
거기다 김매가는 어떤가. 따가운 햇볕아래 등허리에다 잎가지를 꼽고서 방동사니며 물달개비를 메는데 그 광경이야 말로 물오리 떼의 향연 같다. 여기저기서 무논을 휘젓는 소리가 질펀하였다.
길쌈하기는 삼과 모시를 길러서 쪄낸 다음 낟 실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추수는 지금처럼 기계로 하는 건 언감생심, 오직 신체적 노동이 수반하는 지게로 해결하였다. 논바닥에서 가져온 것을 들판이나 마당에 단을 쌓아서 홀태나 탈곡기로 털어내었다.
한 여름철 풀베기는 이듬에 쓸 퇴비마련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일꾼들이 풀을 베어서 한 짐씩 지게에 지고 줄을 지어 내려오는 광경은 그야말로 이색적인 풍경이다. 거기에다 해마다 마름을 엮어 지붕에 올려놓은 다음 이엉을 얹는 광경은 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한데, 드라마 속에서는 그런 것은 거의 내보내지 않고 생략이 되었다. 그런데는 연기자들이 대부분 도시출신이다 보니 그런 일을 시키기 어렵고, 의욕을 보여 연출하려해도 배우들이 한사코 손사래를 친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밖에도 놓친 부분도 있다. 수박이나 참외서리, 서로 먼저 물을 대려고 싸우던 광경, 혼처를 알아보려고 한가한 시간에 나들이 하던 중매쟁이의 발걸음, 그리고 이따금 출현하던 엿장수나 방물장수 모습도 놓친 것 중에 하나다.
나는 농촌에 살적에 특별히 잊히지 않는 풍경이 있다. 동네에 방앗간이 있었는데 그 발동기는 일 년이면 어느 시기에 한 번씩 밖으로 나왔다. 바로 보리타작을 하던 때로, 야외에서 탈곡기에 밧줄을 걸어두면 그것은 윙윙 기리며 울려 퍼진 소리가 온 동네 메아리를 쳤다.
탈곡기에 보리나 밀 때를 밀어 넣으면 순식간에 알곡은 발아래로 떨어지고 나머지 것들은 검불이 되어서 높이 날아갔다. 그 광경이 보노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보기 좋아 어려서 쪼그려 앉아 구경을 하였다. 그런 보리나 밀이 풋바심을 할 때는 그렇게 힘든 것이 탈곡기는 눈 깜빡 할 사이에 금방 해치웠다.
나는 그 당시 발동기 시동을 걸던 모습도 잊지 못한다. 한손으로 점화장치 코를 누르고 커다란 바퀴를 10여회 돌리면 서서히 '피쉬 피쉬'하며 연기를 피우며 시동이 걸리는데, 이때 보면 방앗간 주인은 옆에 놓인 피대를 들어서 힘차게 돌아가는 바뀌에다 능숙하게 끼어 넣었다. 그 솜씨가 신기에 가까웠다.
아마 작가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드라마에서 실상을 재현하지 않고 많은 부분을 생략한 것은 아쉬움을 준다. 그걸 좀 보여주었다면 농촌생활을 한 사람에게는 그리움을 주고, 그런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색다른 볼거리를 주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양근승 작가는 수년전 85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그가 활동한 흔적은 폐가가 된 고향집 앞에 조그만 빗돌로 새겨져 있다. 그의 활동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흔적이 아쉬움을 준다. 무려 17년 동안이나 단일한 농촌드라마를 써서 시청자를 기쁘게 했다면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줘야 할 것이 아닌가.
날로 쇠퇴해가는 농촌현실을 생각할 때에, 많은 애청자들에게 한 때나마 고향을 생각하고 고향정서를 전하며 울고 웃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24)
첫댓글 전원일기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벌써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었군요. 한창 인기 절정의 농촌 드라마였지만 역시 선생님 지적 대로 농촌의 진면목을 보여주지는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나름 작가나 출연자들이 최선을 다한 작품들이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 무식한 발동기를 얹어 만든 게 경운기입니다. 지금도 경운기는 예전의 발동기처럼 한 손으로 코를 누르고 한 손으로는 시동핸들을 꽂아 젖먹던 힘까지 쏟아서 돌리다가 절정에 도달하면 눌렀던 코를 타이밍에 맞춰 놓아주면 시커먼 연기를 내지르며 탱탱탱 시동이 걸리지요. 물론 배터리로 시동을 걸기도 합니다.
양근승 작가 님도 남도 출신이지만 '전원일기'의 김정수 작가 님을 빼놓을 순 없지요. 한 시대를 호령하던 양대산맥은 김수현 작가와 김정수 작가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특히 김정수 작가 님은 여수가 자랑하는 대작가입니다.
그 연속극에 출연한 배우들의 사망소식을 접하며 옛날이 생각나 글을 써봤습니다.
그러고보니 여수작가 김정수선생도 계시군요.
그분이 아마 고흥출신 유금호작가의 부인일 겁니다.
농촌이 소멸되어가다보니 미흡한대로 당시 연기리에 방영되던 농촌드라마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세월은 흘러가고 사람은 늙어가니 이 세상 영원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연속극을 수 십 년 했으니 주인공들도 이 세상을 많이 들 하직 했을 것입니다.
전원 일기,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농촌 삶을 배경으로 하는 연속극이지만 농촌 흉내를 냈지
청석님이 언급한 농촌의 실상은 너무 빈약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수박 겉 핥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청석님이 그 극본을 썼다면 정말로 실감이 났을 것입니다.
농촌에서 직접 농사지어 보지 못하고 일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여수여중고 경희대를 나온 김정수작가가 전원일기를 썼지만 쟁기질을 해 봤겠습니까,
풀을 벨 줄을 알고 망태를 메 받겠습니까!
탁상에서 상상력으로 써 본 극이니 농촌 냄새만 피웠을 뿐입니다..
청석님의 글을 통해서 오히려 농촌의 실상을 더욱 세심하게 알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농촌드라마라면 농촌에서 벌어진 리얼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못했던것 같습니다.
농촌에서는 오순도순 서로 정답게 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싸우기도 하는데, 어른 싸움은 물론
아이들 다툼도 다루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모심시는 조선시대 임금도 선농단을 조직하여 손수 모를 심고 백성돌과 어울렸는데 그런 광경도
드라마 속에서 본적이 없는것 같습니다.
어떤 소문이야기나 남을 훙보는 이야기도 양념으로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